제140회 언제나 감사할 수 있는 이유
2018년 8월 12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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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9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언제나 감사할 수 있는 이유” いつも感謝できる理由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기도하면 응답을 받는다는 것을 믿으시나요? 예, 아멘.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남들이 기도를 하면 응답을 받는다고 하기 때문이요?

항상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어디서 찾아야 하냐 하면 바로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38장 1절을 봅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そのころ、ヒゼキヤは病気になって死にかかっていた。そこへ、アモツの子、預言者イザヤが来 て、彼に言った。「主はこう仰せられます。『あなたの家を整理せよ。あなたは死ぬ。直らない。』」

히스기야 왕이 이제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제 너는 죽고 살지 못한다고 하는 사형판결을 내리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듣고 히스기야 왕은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기도하는 유명한 장면이 이사야 38장 2절~3절에 나옵니다.

이사야 38장 2절~3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そこでヒゼキヤは顔を壁に向けて、主に祈って、言った。「ああ、主よ。どうか思い出してください。私が、まことを尽くし、全き心をもって、あなたの御前に歩み、あなたがよいと見られることを行ってきたことを。」こうして、ヒゼキヤは大声で泣いた。

히스기야 왕이 간절하게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요.

이사야 38장 5절~6절입니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行って、ヒゼキヤに告げよ。あなたの父ダビデの神、主は、こう仰せられます。『わたしはあなたの祈りを聞いた。あなたの涙 も見た。見よ。わたしはあなたの寿命にもう十五年を加えよう。
わたしはアッシリヤの王の手から、あなたとこの町を救い出し、この町を守る。』

히스기야 왕의 운명은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간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수명을 15년이나 늘려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신약에도 예수님을 만난 후에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병 고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마가복음 5장과 누가복음 8장에서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는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하는 사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는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5장 41절에서는 숨을 거둔 회당장(会堂管理者)의 딸이 살아났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는 이미 죽은 지 4일이나 되어서 냄새가 나는 나사로(ラザロ)를 무덤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何かをわたしに求めるなら、わたしはそれをしましょう。

요한복음 16장 24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あなたがたは今まで、何もわたしの名によって求めたことはありません。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受けるのです。それはあなたがたの喜 びが満ち満ちたものとなるためです。

예수님께서는 이제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해야 하는 것이지요. 혹시 이렇게 구하라고 하면 좀 죄송해서 못 구하시는 경우가 있으신가요?

아니요, 죄송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데 안 구한다는 것은 이는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해야 합니다.

죠지 뮬러라는 사람은 자신의 기도 제목을 노트에 적고, 기도 응답을 받을 때마다 체크를 했다고 하는데, 그는 평생 동안 5만 번이나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 응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십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고 주님께 간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자, 이렇게 말씀을 끝낼 수도 있습니다만, 사실 오늘 본론은 여기서부터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를 보면 기도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 기독교에서는 성령님의 역사와 기도를 대단히 강조해왔습니다. 기도를 하면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응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면 병도 낫고, 기도를 하면 부자도 되고, 기도를 하면 모든 것이 만사 형통이라는 식으로 암암리에 교육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기도는 중요하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을 도외시하고 그저 기도만 한다고 해서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만 열심히 하면 기도 응답 받고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렇게 두꺼운 성경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단이 기승을 부리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열정은 많아요. 기도도 많이 해요. 헌금도 많이 해요. 전도도 많이 해요. 그런데 뭐가 없어요? 예, 하나님 말씀이 없어요. 성경을 모릅니다. 그저 주일 설교 말씀 듣고, 가끔 빨강색이나 노랑색 형광 펜으로 줄을 긋고, 그게 다예요.

이런 사람들을 이단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성경에도 보면 사탄이 예수님을 무엇으로 유혹을 합니까.

마태복음 4장 5절~6절을 봅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すると、悪魔はイエスを聖なる都に連れて行き、神殿の頂に立 たせて、言った。「あなたが神の子なら、下に身を投げてみなさい。『神は御使いたちに命じて、その手にあなたをささえさせ、あなたの足が石に打ち当たることのないようにされる』と書いてありますから。」

이 마귀가 인용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시편 91편 11절~12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시편 91편 11절~12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まことに主は、あなたのために、御使いたちに命じて、すべての道で、あなたを守るようにされる。彼らは、その手で、あなたをささえ、あなたの足が石に打ち当たることのないようにする。

이걸 누가 인용을 했어요? 예, 마귀가 인용을 했습니다. 지금 사탄은 예수님을 거룩한 성의 성전 꼭대기에 세우셨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이 아닐까 하고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만, 그 곳이 예루살렘 성전이든 아니든 간에 분명 대단히 높은 곳이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마귀 사탄이 유혹한 대상이 성경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어? 그래? 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어? 그럼 어디 한 번 뛰어내려볼까?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이단입니다. 거기서 뛰어내려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죠. 잘해야 심한 부상이요, 대부분 사망입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도 왜곡해서 잘못 전달하게 되면 이처럼 엄청난 비극이 벌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이단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생활도 파괴되고 가정도 파괴되어 심하게 다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때로는 우리를 돈이나 욕망 같은 것으로도 유혹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성경 말씀으로 우리를 유혹할 때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렇죠. 뛰어내리지 않았습니다. 왜요? 겁이 많아서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4장 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試みてはならない』とも書いてある。」

성경 말씀을 잘못 적용하는 마귀 사탄을 대항하신 예수님의 방법은 바로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신명기 6장 1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あなたがたがマサで試みたように、あなたがたの神、主を試みてはならない。

이처럼 성경을 알아야 마귀 사탄도 대항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도 중요하고 봉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기도 응답을 받고 싶으십니까? 물론이죠. 하나님을 믿는 분들 중에서 기도 응답을 받고 싶지 않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예전에 5만 번이나 기도 응답을 모두 받았다는 죠지 뮬러 이야기를 듣고, 그래, 그럼 나도 기도 노트를 한 번 적어놓고 해보면 모두 응답을 받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해서 한 번 해볼까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까 조금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요, 성경에 보니까 믿음이 좋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기도 응답을 받은 게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모세를 한 번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추산 200여 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온 모세. 홍해를 가르고 바위에서 물을 내는 모세, 뿐만 아니라 출애굽기 33장 11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主は、人が自分の友と語るように、顔と顔とを合わせてモーセに語られた。モーセが宿営に帰ると、彼の従者でヌンの子ヨシュアという若者が幕屋 を離れないでいた。

하나님께서 자기 친구한테 말씀하듯이 모세한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정말 참 이만 저만 부러운 게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가깝게 대하던 모세의 기도도 모두 들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마지막 간절한 기도는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3장 25절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どうか、私に、渡って行って、ヨルダンの向こうにある良い地、あの良い山地、およびレバノンを見させてください。」

그런데 이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신명기 3장 26절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しかし主は、あなたがたのために私を怒り、私の願いを聞き入れてくださらなかった。そして主は私に言われた。「もう十分だ。このことについては、もう二度とわたしに言ってはならない。

너 이제 그만 구해. 그만하면 됐어. 하지만 더 이상 나한테 구하지 마. 안 돼……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물론 여기에는 모세가 저지른 잘못이 있지요.

광야에서 물이 떨어져서 백성들이 모세한테 물을 달라면서 항의를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20장 8절입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杖を取 れ。あなたとあなたの兄弟アロンは、会衆を集めよ。あなたがたが彼らの目の前で岩に命じれば、岩は水を出す。あなたは、彼らのために岩から水を出し、会衆とその家畜に飲ませよ。」

하나님께서는 그저 반석한테 명령을 하라고 해셨는데, 모세는 어떻게 했냐 하면 10절과 11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민수기 20장 10절~11절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そしてモーセとアロンは岩の前に集会を召集して、彼らに言った。「逆らう者たちよ。さあ、聞け。この岩から私たちがあなたがたのために水を出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
モーセは手を上げ、彼の杖で岩を二度打った。すると、たくさんの水がわき出たので、会衆もその家畜も飲んだ。

이는 말하자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성질을 낸 것입니다. 사실, 뭐 모세라고 사람인데 뻑하면 하나님이나 자신들한테 항의하고 난리를 치고 하는 백성들이 곱게 보이기만 했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성질을 낸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 일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이나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기도를 끝까지 거절하셨습니다.

그럼 신약에서는 어떻습니까. 바울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9절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9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また、その啓示があまりにもすばらしいからです。そのために私は、高ぶることのないようにと、肉体に一つのとげを与えられました。それは私が高ぶることのないように、私を打つための、サタンの使いです。
このことについては、これを私から去らせてくださるようにと、三度も主に願いました。
しかし、主は、「わたしの恵みは、あなたに十分である。というのは、わたしの力 は、弱さのうちに完全に現れるからである」と言われたのです。ですから、私は、キリストの力が私をおおうために、むしろ大いに喜んで私の弱さを誇りましょう。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만, 대체적인 의견으로는 아마도 당시 바울이 어떤 질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신학자들은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질병이든 아니든 간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 바울의 육체를 몹시 힘들게 하고 있던 것을 물리쳐 달라고 주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이 기도를 거절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미 네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 네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 「貴方の受けたわたしの恵みは、十分である。神様の 力は、弱さのうちに完全に現れるからである」는 응답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만약에 모세나 바울이 죠지 뮬러와 같은 기도 노트가 있었다고 한다면 적어도 각자 최소한 한 가지는 기도 응답란에 체크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이신가요? 아니요. 도리어 축복입니다. 바울은 이를 기뻐했다고 합니다.

또한 모세에 대해서는 신학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에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하면 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우상숭배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물론 성경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는 없습니다만, 이 의견에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신명기 34장 5절~6절에 보면 모세의 무덤조차 아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말하자면 모세가 우상 숭배 대상이 되었다면 그의 무덤도 무슨 성지처럼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모세의 무덤을 감추었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면 그것은 축복인가요? 아니요.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저주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회사원인데 다른 회사와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계약금이 10억원이었어요. 자기는 월급을 300만원 받고 있는데 자기 월급에 비하면 10억원은 어마어마한 액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 계약금을 내 주머니 속에 집어넣어요? 그건 범죄입니다. 내 정당한 수입은 회사에서 주는 월급이지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주는 영광은 모두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것을 가로채려고 하는 것이 누구입니까. 그렇죠. 바로 사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진정한 축복이요 은혜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기도 제목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기도를 해도 응답을 안 해주시는 것 같아서 답답하신가요? 예, 그 마음 제가 잘 압니다. 다름 아닌 제가 사실 요즘 그런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태복음 6장 7절~8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また、祈るとき、異邦人のように同じことばを、ただくり返してはいけません。彼らはことば数が多ければ聞かれると思っているのです。
だから、彼らのまねをし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がたの父なる神は、あなたがたがお願いする先に、あなたがたに必要なものを知っておられるからです。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神を愛する人々、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従って召された人々のためには、神がすべてのことを働かせて益としてくださ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신명기 28장 6절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あなたは、入るときも祝福され、出て行くときにも祝福される。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세요? 아니요.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지대한 관심을 가지시고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을 해주시면 감사합시다. 이는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기도 응답이 더디더라도 감사합시다. 그리고 하물며 모세와 바울처럼 기도를 거절하시더라도 감사합시다.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축복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한, 우리는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누워도 복을 받고, 앉아도 복을 받고, 일어서도 복을 받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룹니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결국은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과 동행하며 마침내 넘치는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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