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회 하나님 나라의 회복
2018년 8월 26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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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30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회복” 神様の御国の回復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십니다. 그 단계는 이렇습니다.
먼저 첫째 날은 하나님께서 빛을 만드시고는 빛과 어둠을 나누십니다.
둘째 날은 하늘과 바다를 만드십니다.
셋째 날은 바다 속에서 육지를 드러나게 하시고는 각종 식물을 만드십니다.
넷째 날은 태양과 달과 수많은 별들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다섯째 날은 하늘에는 새를, 바다에는 바다 생물들을 만드셨습니다.
이제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 여섯째 날이 옵니다. 이 날에는 드디어 육지에 온갖 짐승들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이 뿐만이 아니죠. 마지막으로 무엇을 창조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 부분이 바로 오늘 말씀이지요. 물론 뒤에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의 보다 자세한 내용이 나옵니다만, 오늘 말씀 부분에는 사람 창조의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단순히 어떻게 사람을 만드셨나 하는 설명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말씀 안에만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원대한 꿈을 가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마음을 알고 크나큰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에도 생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때와 사람을 창조하실 때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먼저 이 차이, 하나님께서 다른 생물들을 창조하실 때와 사람을 창조하실 때의 차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점입니다.


27절을 다시 봅니다.

창세기 1장 27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神は人をご自身のかたちとして創造された。神のかたちとして人を創造し、男と女に彼らを創造された。

하나님께서는 다른 생물들을 만드실 때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한해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 세상에는 사람을 닮은 동물들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보기에 그렇게 보일 뿐이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다른 동물들을 만드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사람만을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생김새만 하나님을 닮도록 만들었다는 뜻, 그것 뿐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에는 대단히 큰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두 사람이 있는데, 얼굴 생김새가 비슷해요. 나이 또래도 비슷해요. 그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예, 서로 형제나 자매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좀 나이 차이가 있어 보여요. 적어도 나이 차이가 20~30 정도는 있어 보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예, 아마 부모와 자녀인가보다……라고 생각합니다.

왜들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핵심적인 이유가 뭐라고요? 예, 서로 생김새가 비슷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것은 단순히 생김새를 그냥 비슷하게 만드셨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녀 삼으시려고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13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しかし、この方を受け入れた人々、すなわち、その名を信じた人々には、神の子どもとなる特権をお与えになった。
この人々は、血によってではなく、肉の望むところでも人の意志によってでもなく、ただ、神によって生まれたのである。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아무리 사람을 닮은 원숭이나 다른 동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동물한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권세를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한테만 주어진 특권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오늘 말씀 28절을 봅니다.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神は彼らを祝福された。神は彼らに仰せられた。「生めよ。増えよ。地に満ちよ。地を従えよ。海の魚、空の鳥、地の上を這うすべての生き物を支配せよ。」


앞서 다른 생물들을 창조하실 때에도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축복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들과 바다 생물들한테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장 22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神はそれらを祝福して、「生めよ。増えよ。海の水に満ちよ。鳥は地の上に増えよ」と仰せられた。

그러니까 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말씀을 새롭지가 않아요. 그런데 사람한테만 들어 있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1장 28절 후반부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地を従えよ。海の魚、空の鳥、地の上を這うすべての生き物を支配せよ。」
우리는 이 말을 들으면 사람이 물고기도 잡을 수 있고, 새도 잡을 수 있고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과 싸워서 이긴다, 아니면 자연 환경을 우리 마음대로 주무를 수가 있다……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이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있는 전체 생태계 차원의 문제입니다.

즉,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은 이른바 먹이사슬이라고 하는 구조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약육강식이지요. A라는 생물이 있으면 이를 A보다 강한 B가 먹고, B는 B보다 강한 C가 먹고, C는 C보다 강한 D가 먹고……이렇게 해서 맨 위까지 올라갑니다. 그렇다면 먹이사슬의 맨 위에는 무엇이 있어요? 이럴 때 보면 누가 좋은 중학교를 나왔는지 알 수 있어요. 자, 맨 위에는 누가 있어요? 사람이 있어요? ㅎㅎ아닙니다.


먹이사슬은 새들이면 새들의 먹이사슬이 있고, 바다 생물에는 바다 생물들의 먹이사슬이 있고, 육지에는 육지 생물들의 먹이사슬이 따로 있습니다. 알기 쉽게 육지 생물들의 먹이사슬을 보면 가장 아래에는 작은 벌레 같은 것들이 오겠지요. 그리고 맨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어요? 예,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있습니다. 바다 생물들의 꼭대기에는 고래나 상어가 있겠고, 새들의 먹이사슬 꼭대기에는 독수리 같은 맹금류가 있게 됩니다.

하지만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다고 해서 이 구조가 거기서 멈추나요? 아닙니다. 사자나 호랑이도 죽으면 그 시체들을 또다시 작은 벌레들이 먹게 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순환시스템이 바로 먹이사슬입니다. 이 먹이사슬의 순환구조가 균형 있게 갖추어져 있어야지만 생태계가 잘 유지되지, 이러한 균형이 조금이라도 무너지기 시작하면 생태계 전체에 위기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만약에 먹이사슬 구조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면, 예를 들어서 사람은 어떤 특정 먹이만을 먹는데, 그 위에는 사람을 먹이로 하는 생물이 있게 됩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하지만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하늘이나 바다나 육지에 있는 먹이사슬 어디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참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지요. 이 지구상에 있는 생태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로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처럼 어마어마한 축복을 주셨는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감사 드리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동물 학대 하라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동물원 사육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이끌어 나아갈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 사명은 특별히 선발된 사람들한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에게 주신 사명인 것입니다. 동물들은 그저 태어나서 생육하면 됩니다.

생육이 무엇입니까. 살아가기 위해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고 마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번성하고 충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짝을 만나서 새끼 낳고 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동물들은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이 세상에서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것 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특징, 기억하시나요? 예, 첫째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둘째로 사람은 모두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특징이 알아보았으니, 이제 다음 구절로 넘어가보아야겠지요? 예, 창세기 1장 29절~30절입니다.

창세기 1장 29절~30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神は仰せられた。「見よ。わたしは、地の全面にある、種のできるすべての草と、種の入った実のあるすべての木を、今あなたがたに与える。あなたがたにとってそれは食物となる。
また、生きるいのちのある、地のすべての獣、空のすべての鳥、地の上を這うすべてのもののために、すべての緑 の草を食物として与える。」すると、そのようになった。

이 구절, 너무나도 흥미롭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사람과 짐승들한테 먹을 거리로 주신 것이 모두 풀들이에요. 너무하지 않아요? 고기를 먹지 말래요. ㅎㅎ 자,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하니까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는 건가요?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하나요?


창세기 9장 2절~3절에 보면 노아의 홍수가 끝나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9장 2절~3절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あなたがたへの恐れとおののきが、地のすべての獣、空のすべての鳥、地面を動くすべてのもの、海のすべての魚に起こる。あなたがたの手に、これらは委ねられたのだ。
生きて動いているものはみな、あなたがたの食物となる。緑の草と同じように、そのすべてのものを、今、あなたがたに与える。

아휴, 다행이에요. 이제 고기를 먹어도 됩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사람은 이제 고기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그렇다면 에덴에서는 왜 채소만을 먹을 거리로 주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에덴에는 죽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사용되는 죽음은 사람과 동물에 대해서만 쓰입니다. 특히 사람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희생이나 심판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죄가 없으니 희생이나 심판이 있을 수가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죽음 또한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채소를 주셨다는 것은 이처럼 죄가 없는 상태, 그렇기 때문에 희생이나 심판으로 인한 죽음이 없는 세상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しかし、善悪の知識の木からは、食べてはならない。その木から食べるとき、あなたは必ず死ぬ。」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하여 우리 안에 죄가 들어오게 됩니다. 그 결과 사람은 이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30절에 보면 에덴에서는 사람한테 만이 아닌 동물들한테까지도 풀을 먹을 거리로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처음에는 초식동물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다스려야 하는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어쩌면 모든 생태계가 파괴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에는 언제부터인지 기록되지는 않습니다만, 이제 동물들도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게 되고 말았습니다.

어디 동물들만 그런가요? 인간의 세계에서도 약육강식이 생깁니다. 동물처럼 서로 직접 잡아먹지는 않더라도 서로를 비판하고 비난하고 증오하고 억누르고 짓밟고 올라서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 알고 보면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죄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인가요? 아닙니다. 성경은 회복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복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 회복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서를 봅니다. 이사야 11장 6절~9절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狼は子羊とともに宿り、豹は子やぎとともに伏し、子牛、若獅子、肥えた家畜がともにいて、小さな子どもがこれを追って行く。
雌牛と熊は草をはみ、その子たちはともに伏し、獅子も牛のように藁を食う。
乳飲み子はコブラの穴の上で戯れ、乳離れした子は、まむしの巣に手を伸ばす。
わたしの聖なる山のどこにおいても、これらは害を加えず、滅ぼさない。主を知ることが、海をおおう水のように地に満ちるからである。

여러분, 상상이 가십니까.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들이 함께 있는데 어린 아이들이 이 짐승들을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고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을 쳐도 해 됨도 없고 상하는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입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회복하고자 하시는 나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세상은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을 하십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죄송합니다만, 오늘 말씀은 아직도 다음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냥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분명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세상을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에 이루어야 할까요. 그냥 당장 동물원에서 호랑이건 사자건 다 풀어놓으면 되나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을 봅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パリサイ人たちが、神の国はいつ来るのかと尋ねたとき、イエスは彼らに答えられた。「神の国は、目に見える形で来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見よ、ここだ』とか、『あそこだ』とか言える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見なさい。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ただ中にあるのです。」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마음 안을 한 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표범이 보이십니까. 염소가 보이십니까. 표범이 염소와 함께 누워서 놀고 있습니까. 아니면 표범이 염소의 살을 찢고 있습니까.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빨을 드러내며 어린 양을 물어 뜯고 있습니까.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고 장난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독사에 물려 괴로워하며 죽어가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 속에 불평과 불만과 비판과 비난과 증오로 가득 차게 되다면, 이는 우리 마음 속에 저기 아프리카 벌판이나 정글 밀림처럼 짐승들이 서로 싸우고 물어 뜯고 비 비린내 나는 세상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에 기쁨과 감사와 찬송과 소망과 사랑이 충만하게 된다면 미움이 사라집니다. 분노가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감사와 은혜로 넘치게 됩니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하는 사람들도 그저 사랑으로 보듬어 안아주고 싶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 안에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면 믿음이 성장합니다. 말씀이 선포됩니다. 복음이 전파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은혜의 길이 열립니다. 하늘에서 축복의 문이 열려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주신 우리의 크나큰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이루어, 마침내 넘치는 은혜와 넘치는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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