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회 안식이라는 선물
2018년 9월 9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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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 5장 12절~14절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안식이라는 선물” 安息という贈物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는 안식일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고 안식일과 예배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만, 오늘은 이제 드디어 안식일의 본연의 의미, 안식일의 핵심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안식일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 구절, 지난 주에 살펴본 창세기 2장 1절~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2장 1절~3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こうして天と地とその万象が完成した。
神は第七日に、なさっていたわざを完成し、第七日に、なさっていたすべてのわざをやめられた。
神は第七日を祝福し、この日を聖なるものとされた。その日に神が、なさっていたすべての創造のわざをやめられたからである。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모두 창조하신 다음에 안식을 하셨다, 즉 쉬셨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안식은 언제 하지요? 말하자면 언제 쉬나요? 예, 피곤할 때 쉽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난 다음에 휴식을 취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좀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을 취하셨다는 것은, 그럼 하나님도 피곤하셨다는 것인가요? 온 천하 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그러니까 너무 피곤해서 쉬셨다는 것인가요?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분들은 이런 의문이 들었을 때,

“음,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서 쉬신 거겠지.”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하나님도 피곤하시면 쉬실 때도 있구나, 하나님도 우리와 비슷한 데가 있네……이러고 넘어갑니다. 그러면서 좀 더 상상력이 풍부하신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럼 안식하면서 무엇을 하셨을까. 역시 우리처럼 평일에 열심히 일하고 지쳤을 테니까 안식일에는 좀 뒹굴뒹굴 거리면서 그 동안 밀렸던 잠도 주무시고 그러셨겠지…….

이런 생각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실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이런 사소한 이해가 나중에는 또다른 크나큰 오해로 이어질 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 40장 28절~29절입니다.

이사야 40장 28절~29절
“28.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あなたは知らないのか。聞いたことがないのか。主は永遠の神、地の果てまで創造した方。疲れることなく、弱ることなく、その英知は測り知れない。
疲れた者には力を与え、精力のない者には勢いを与えられる。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피곤하지도 않으시고 곤비하지도 않으신다고 합니다. 즉, 피곤을 느끼지도 않으신다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능력이 부족한 자에게는 힘까지 더해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편도 볼까요? 시편 121편 4절입니다.

시편 121편 4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見よイスラエルを守る方はまどろむこともなく眠ることもない。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요. 성경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말이 되나요?

성경을 공부할 때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성경무오”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전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을 연구한다고 하면서, 성경 이 부분은 안 맞고, 이 부분은 틀렸고……하면서 마치 그게 대단한 연구성과인 것처럼 자랑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신학자나 목회자라 하더라도 성경 모두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선지서 같은 내용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사람이 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성경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학생들이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서, 자신들이 공부나 지혜가 부족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교수님이 틀렸다,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 원문 중에서 대부분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되어 있는데,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단어 해석을 잘못한다거나 해서 발생하는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이 또한 번역본이 잘못된 것을 두고 성경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료의 부족이나 원문 훼손으로 인해서 읽을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지금 현재 발견된 자료들을 보면 성경 원문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사본입니다. 그런데 극히 일부이기는 합니다만, 자료가 훼손이 되었기 때문에 판독이 어려운 부분도 있고, 또한 발견된 자료나 근거가 부족해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그렇다고 해서 성경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면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면 반드시 돌아와야 할 구절이 바로 디모데후서 3장 16절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聖書はすべて神の霊感によるもので、教えと戒めと矯正と義の訓練のために有益です。

즉, 앞서 말씀드린 성경무오……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말씀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글 개역개정 성경이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있어서는 전혀 오류가 없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다시 안식일에 대한 내용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먼저 안식일에 대한 성경 말씀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 말씀에 적혀 있는 객관적인 사실부터 검토를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절~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을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사야 40장 28절~2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피곤하지도 않으시고 곤비하지도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편 121편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세 구절이 서로 앞뒤가 안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성경에는 오류도 모순도 없습니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하냐 하면 말씀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피곤하셨고 곤비하셨기 때문에, 좀 눈 좀 붙이시기 위해서 안식하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순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창세기 2장 1절~3절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2장 1절~3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こうして天と地とその万象が完成した。
神は第七日に、なさっていたわざを完成し、第七日に、なさっていたすべてのわざをやめられた。
神は第七日を祝福し、この日を聖なるものとされた。その日に神が、なさっていたすべての創造のわざをやめられたからである。

이 구절,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내용입니다만, 이렇게 보면 흥미롭지 않으십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이 구절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피곤해서 안식을 하셨다거나 잠이 와서 좀 주무시기 위해서 안식하셨다는 말씀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하나님께서는 피곤하지도 않고 졸리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안식을 하셨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이 바로 오늘 말씀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신명기 5장 12절~14절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安息日を守って、これを聖なるものとせよ。あなたの神、主が命じたとおりに。
六日間働いて、あなたのすべての仕事をせよ。
七日目は、あなたの神、主の安息である。あなたはいかなる仕事も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も、あなたの息子や娘も、それにあなたの男奴隷や女奴隷、牛、ろば、いかなる家畜も、また、あなたの町囲みの中にいる寄留者も。そうすれば、あなたの男奴隷や女奴隷が、あなたと同じように休むことができる。

우리가 안식일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말이 “노는 날, 또는 쉬는 날”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일요일도 마찬가지죠? 일요일은 노는 날, 쉬는 날입니다. 하지만 신명기 5장 12절~14절을 보면, <안식하라>는 말씀이 없고 그 대신 뭐라고 되어 있어요? 예, <안식하게 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일요일은 노는 날, 쉬는 날이 아니라, 놀게 하는 날, 쉬게 하는 날이라고 우리는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피곤하지도 않은데 안식을 하셨을까요.


예전에 보면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회사에서 하루는 점심시간에 부장님이 부하직원들을 데리고, 자기가 한 턱 쏘겠다고 하면서 중국집으로 갔다고 합니다. 이 부장님이 자리에 앉고 하시는 말씀이, 자, 여러분, 내가 쏠 테니까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시켜요. 그러면서 이 부장님이 뭐라고 했냐 하면, ㅎㅎ뭐라고 했겠어요?

“난 짜장면.”

그러면 거기 같이 있는 부하직원들이 어떻게 해요? 그 자리에서 탕수육을 시키겠어요, 팔보채를 시키겠어요? 다들 그냥 고개를 숙이고, 저도 짜장면요, 저도 짜장면요……그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곤하지도 않고 졸리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을 취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안식일은 쉬는 날? 아닙니다. 쉬는 날이 아니라 쉬게 하는 날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족만이 아니라 가축이나 객이라 하더라도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31장에는 이를 어기면 죽이라고까지 하신 것입니다.

한국이나 일본을 보면, 일요일은 당연히 노는 날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만, 사실 일요일이 도입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요일이 도입된 것은 1895년부터, 일본은 1876년부터라고 하는데, 일요일이 휴일로 널리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훨씬 나중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전은 어땠을까요? 당연하게도 달력에는 일요일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지요. 한국이나 일본 모두 농경사회입니다. 그렇다면 일요일에는 잡초가 안 생겨요? 일요일에는 거름을 안 주더라도 자라나요? 그렇기 때문에 일요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되냐 하면 평균수명이 대단히 짧아집니다. 일요일이 도입되기 전의 평균수명은 50세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60세 환갑까지 산다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장수를 하는 편에 속했지요.

하지만 일요일이 도입된 다음부터 평균수명이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평균수명이 연장된 데에는 의료기술의 발전도 있고 생활환경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일요일이 도입된 시기부터 평균수명이 급격하게 늘어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있어서는 휴식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쉴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냐 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쉬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それは主が六日間で、天と地と海、またそれらの中のすべてのものを造り、七日目に休んだからである。それゆえ、主は安息日を祝福し、これを聖なるものとした。

만약에 하나님께서 쉬지 않으셨다면, 경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이구, 하나님도 쉬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떻게 쉴 수 있을까…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쉬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 쉬시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안심하고 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31장에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죽이라고까지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아니, 단지 쉬라고 하는 날인데, 쉬지 않는다고 죽이래?”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앞서 제가 안식일을 뭐라고 말씀 드렸습니까. 쉬는 날이요? 아니요. 쉬게 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는 말에서 비롯한 말 중에 “성수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떻습니까.

마트 사장님이 계세요. 마트는 현재 연중무휴입니다. 주중에는 사장님이 나와서 직원들이랑 근무를 했어요. 그런데 일요일에는 사장님이 안 나오십니다. 왜냐하면 사장님은 교회에 가야 한대요. 그래서 그 날은 다른 직원들이 마트를 지킵니다. 직원들은 교회에 갈 수가 없어요.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사장님은 자기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면서 직원들에게는 일을 시키고 자기만 교회에 가면 그것으로 되는 것인가요?

누누이 말씀을 드리지만 안식일은 쉬는 날이 아니라 쉬게 하는 날입니다. 더구나 기독교에서의 일요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축제의 날입니다. 그러니 그냥 쉬게 하는 날이 아니라 기쁨으로 쉬게 하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가족들만이 아니라 남종이나 여종들, 그리고 가축들까지도 쉬게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를 어길 시에는 죽이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을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도 쉬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과로사입니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번다 하더라도 그로 말미암아 죽게 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세상의 사장님들은 휴일이 늘어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한국의 전경련도 그렇고 일본에 経団連도 그렇습니다. 그럴 만도 하겠지요. 시급이나 일당이면 모를까 정규직 사원들은 월급이 나갑니다. 짧은 28일까지 있는 2월도 31일까지 있는 달도 똑같이 월급이 나가지요. 그런데 휴일이 늘어나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고 월급이 줄어드나요? 아니요. 정규직 같은 경우에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다 유급휴가 취급이 되는 것이지요. 이게 아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 사장님들은 휴일이 늘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경제학에 있어서 오류입니다만, 경제학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나누어서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실제로 그런가요? 극단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잠을 자지 않고 공장에서 열심히 물건을 만들기만 한다면 회사가 발전하고 우리 나라가 돈을 많이 벌 것 같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요? 아니, 아무리 잠도 안 자면서 물건을 많이 만들었다고 해도 그걸 살 사람이 없다면 회사에 무슨 이득이 되겠습니까. 생산이 아무리 늘어나도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은 돈을 벌 수 없고 나라도 성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는 영원한 생산자나 영원한 소비자가 없고 생산자가 곧 소비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나라의 발전을 원한다면 주5일제가 아니라 주4일제 근무를 해야 한다고 어떤 경제학자는 말합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28절을 봅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28절
“27.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そして言われた。「安息日は人のために設けられたのです。人が安息日のために造ら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
ですから、人の子は安息日にも主です。」

안식일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은 죽이라고까지 하셨으니, 안식일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그러면서 주일에 어쩌다가 교회를 빠지는 사람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벌을 받는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안식을 하신 이유가 우리에게 무슨 벌을 내리기 위한 빌미로 안식일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안식일을 주셨다는 것과 딱 맞아떨어지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누가 하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여기서 안식일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일주일 중 하루 있는 안식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온 율법을 가리킨다고 이해를 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율법을 지킨다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안 살립니까. 아닙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요 완성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식일은 우리를 속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어마어마한 선물인 것입니다.

안식일은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본을 보여주셔서 우리를 쉬게 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들 드릴 수가 있습니다.
안식일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쉬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를 굶기기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 30배 60배 100배로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던 것처럼, 우리는 다른 이들을 쉬게 함으로 인하여 우리가 은혜를 베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생명입니다. 세상 것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안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게 함으로써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해주셨습니다.

성수주일이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주일만 거룩하게 지키면 되는 것인가요? 우리에게 안식은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오늘 하루 동안에도 주님께서 주신 안식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말씀을 드리고 마칠까 합니다. 우리가 생각학기에 클래식 음악 중에서 이른바 명곡……이라고 하면 어떤 음악이 떠오를까요? 여러 곡이 있겠습니다만, 그 중 대표적인 명곡이라고 하면 베토벤의 운명……짜짜짜잔……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그 운명의 악보를 보면 처음에 무엇으로 시작할까요? 이는 4분 음표도 아니, 8분 음표도 아닌, 바로, 8분 쉼표로 시작합니다. 아무리 악보가 많이 들어간 곡이라 하더라도 쉼표 없이는 훌륭한 곡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쉼표는 단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일주일에 한 번만 하실 건가요?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わたしを愛し、わたしの命令を守る者には、恵みを千代にまで施すからである。

우리는 성수주일이 아니라, 성수매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 삶을 통해서 하루하루 주님을 바라보고 안식하며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와 축복을 모든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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