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회 곤고한 날에
2018년 9월 16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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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전도서 7장 14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곤고한 날에” 逆境の日に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구약 여호수아 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함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함락하는 장면을 보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독특합니다.

여호수아 6장 2절~5절을 봅니다.

여호수아 6장 2절~5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ヨシュア記

主はヨシュアに告げられた。「見よ、わたしはエリコとその王、勇士たちをあなたの手に渡した。
あなたがた戦士はみな町の周りを回れ。町の周囲を一周せよ。六日間そのようにせよ。
七人の祭司たちは七つの雄羊の角笛を手にして、箱の前を進め。七日目には、あなたがたは七回、町の周りを回り、祭司たちは角笛を吹き鳴らせ。
祭司たちが雄羊の角笛を長く吹き鳴らし、あなたがたがその角笛の音を聞いたら、民はみな大声でときの声をあげよ。そうすれば町の城壁は崩れ落ちる。民はそれぞれ、まっすぐに攻め上れ。」


이 말씀은 무엇인가 하니, 모든 군사가, 양각 나팔, 그러니까 양 뿔로 만든 나팔을 들게 한 일곱 제사장을 앞세워서 6일 동안 여리고 성 주위를 하루에 한 번씩 걸어서 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한 번이 아니라 일곱 번을 돈 다음 그 나팔을 불래요. 그리고는 군사들더러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대요? 예, 여리고 성 성벽이 무너진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기에 성벽이라고 한다면 고급 주택 담벼락, 기껏해야 지금 서울 덕수궁 돌담길 정도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신학자들에 의하면 당시 여리고 성 성벽 구조는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깥 쪽 성벽 두께는 약 1.8미터, 그리고 안쪽 성벽 두께는 약 4~5미터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높이는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약 9미터 정도, 그러니까 대략 4층 건물 정도의 높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두 벽 사이의 간격은 5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정확한 수치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이 성벽이 얼마나 두꺼웠냐하면, 성벽 위에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생활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성벽 위에 살고 있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여호수가 2장 15절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そこで、ラハブは綱で窓から彼らをつり降ろした。彼女の家は城壁に建て込まれていて、彼女はその城壁の中に住んでいた。

그렇습니다. 당시 여리고 성을 정탐하기 위해서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들을 숨겨주었던 라합이 살던 집이 바로 이 성벽 위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성벽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은 있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무엇이냐 하면, 이 성벽을 사람의 능력으로 파괴하기 위해서는 보통 장비 가지고는 어려울 정도로 이 여리고 성은 난공불락의 아성이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를 공략하기 위해서 당시 이스라엘 군사들이 사용한 최첨단 무기와 최첨단 전술이 무엇이었다고요? 그것은 다름 아닌, 순종이었습니다.

제가 아직도 기억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제가 어렸을 때, 아마도 초등학교 때라고 기억합니다만, 그래도 좀 성경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무엇을 읽을까 하고 뒤적거렸는데, 창세기는 너무 좀 진부해요……ㅎㅎ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에요. 그리고 레위기, 민수기는 뭔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여호수아를 좀 읽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앞에 좀 읽다가 여기에 오니까 이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 성벽을 어떻게 무너뜨렸냐 하면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군사들이 6일 동안은 하루에 한 번 씩 돌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고 나팔을 불고 외치니까 성벽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되요? 그래서 야,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하고 성경을 닫아버렸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 때 좀 누가 성경을 알려주고 그랬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이라는 아쉬움이 좀 있지요.

믿음이 없고 순종이 없었다면 이런 황당한 지시를 어떻게 따랐겠습니까.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민족들은 달랐습니다. 애굽을 탈출할 때의 이스라엘 민족들, 이른바 광야 1세대들은 어땠습니까.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노예였습니다. 그의 조상들도 몇 백 년 동안 노예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들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저 자기 주인집 창고에서 몰래 훔쳐먹는 음식들이 최고인줄 알고, 그게 무슨 자신들의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애굽인이고 뭐고 간에, 하나님보다도 자기 주인들한테 굽신 굽신 거리고 비위를 맞춰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최고의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아,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가 훨씬 편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까지 끌고 나와서 죽게 하냐……이러면서 사사건건이 반대를 하고 불평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막판에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려 했더니만 뭐라고 합니까. 자기들은 안 된대요. 절대로 못 한대요. 아니,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다고 하시는데, 자기들이 못 한다는 거예요. 이 말은 무엇입니까. 할 수 있다고 하신 하나님은 틀렸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기들이 옳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교만을 가만히 두실 리가 있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40년 뒤에 그들이 여리고 성 앞에 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40년 뒤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인가요? 아닙니다. 40년 동안 하나님은 틀렸고 자신들이 옳다고 한 사람들은 모두가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그들이 결국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를 떠돌며 죽어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들의 아들 딸들, 광야 1세대가 불순종할 때 미성년자였던 광야 2세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해서 스스로만이 아니라 자신들 광야 2세대들까지도, 그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광야에서 오랫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리고 공격 명령이 떨어졌을 때, 그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냐, 아니면 자신들의 부모들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광야에서 죽어갈 것이냐……이 둘 중에서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그들은 이제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불순종으로 인한 처참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고는 일체의 불평 불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지막 일곱째 날에 여리고 성 주위를 일곱 번 돌고 난 다음 나팔을 불고 소리를 힘껏 질러 외쳤더니 그 견고한 여리고 성 성벽이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혹시 기억력이 좋으신 분들께서는 이 시점에서 좀 의문이 들였을 것입니다. 아니, 성벽이 무너졌다고 하면, 라합이 살던 집도 그 위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라합이 살던 집도 무너져 내린 것일까. 성경에 보면 라합의 집은 살아남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걸까……하고 걱정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에 대해서 또 신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여리고 성 성벽이 무너졌다고 해서 여리고성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성벽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여리고 성벽 중 일부가 무너져 내림으로 인해서 그 곳을 통해서 안으로 쳐들어갈 수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확고한 믿음과 순종으로 인해서 그들은 여리고 성을 단숨에 함락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승리였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이 울려 퍼집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이제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으나 이스라엘 백성의 목표는 그깟 여리고 성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자손들에게 영원히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제 그 여세를 몰아서 또 하나의 성을 공략하고자 합니다. 그 성 이름이 바로 <아이 성>이었습니다. 한국말로 하면 참 이해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뭐냐 하면 <아이 성> 대단히 작은 성이었습니다. 참고로 <아이>라는 말의 본 뜻은 <폐허>, <돌무더기>라고 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여호수아가 이 아이 성을 정탐하라고 했더니 그들이 말합니다.

여호수아 7장 3절입니다.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彼らはヨシュアのもとに帰って来て言った。「民をみな上って行かせるには及びません。二、三千人ぐらいを上らせて、アイを討たせるとよいでしょう。彼らはわずかですから、民をみな送って骨折らせるには及びません。」

여호수가아 보낸 정탐꾼들은 아이 성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2,000~3,000명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쟁을 해보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여호수아 7장 4절~5절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そこで民のうち、およそ三千人がそこに上って行ったが、彼らはアイの人々の前から逃げた。
アイの人々は彼らの中の三十六人を打ち殺し、彼らを門の前からシェバリムまで追って、下り坂で彼らを討った。民の心は萎え、水のようになった。

아이 성을 점령할 수 있었대요? 아니요. 오히려 36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어쩌다가 한 번 전쟁에 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난공불락의 요새 여리고 성을 점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이스라엘 쪽에 단 한 사람도 죽었다는 기록이 없어요. 그런데 여리고 성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말 그대로 아이 성을 공략했는데, 희생자가 발생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여리고 성은 가나안 땅이고 아이 성은 가나안 땅이 아닌가요? 아니요, 아이 성도 가나안 땅입니다. 아이 성이 여리고 성보다 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아이 성은 여리고 성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성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패배가 아닙니다. 희생자 몇 명이 발생했다는 것으로 끝낼 만한 것이 아니라, 하늘을 찌를 듯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는 마음이 녹아서 물같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반대는 <의심>입니다.

아니, 여리고에서 그렇게 큰 승리를 얻었을 때에는 정말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다고 믿었는데, 저렇게 작은 성 하나를 공격했더니 36명이나 죽었어. 그럼 이거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다고 하는 게 맞는 거야? 뭐야? 여리고 성에서의 승리는 우연히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 아냐? 이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삼국지 같은 경우를 보면 지휘를 맡은 장수를 처벌하거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만, 여호수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도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

여호수가 7장 11절~15절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
너희는 아침에 너희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 뽑히는 그 지파는 그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족속은 그 가족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그 가족은 그 남자들이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


ヨシュア記 7章11節~15節

イスラエルは罪ある者となった。彼らはわたしが命じたわたしの契約を破った。聖絶の物の一部を取り、盗み、欺いて、それを自分のものの中に入れることまでした。
だから、イスラエルの子らは敵の前に立つことができず、敵の前に背を見せたのだ。彼らが聖絶の者となったからである。あなたがたの中から、その聖絶の物を滅ぼし尽くしてしまわないなら、わたしはもはやあなたがたとともにはいない。
立て。民を聖別せよ。そしてこう言え。あなたがたは、明日のために自らを聖別しなさい。イスラエルの神、主がこう告げられるからだ。『イスラエルよ、あなたの中に聖絶の物がある。あなたがたがその聖絶の物を、あなたがたの中から取り除くまでは、敵の前に立つことができない。
明日の朝、部族ごとに進み出よ。主がくじで取り分ける部族は氏族ごとに進み出、主がくじで取り分ける氏族は家族ごとに進み出、主がくじで取り分ける家族は男一人ひとり進み出よ。
聖絶の物のことでくじで取り分けられた者は、彼も彼に属するすべてのものも、火で焼かれなければならない。彼が主の契約を破ったからであり、彼がイスラエルの中で恥辱となることをしたからである。』」


공교롭게도 이 일에 대해서는 여호수아 7장 1절에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7장 1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しかし、イスラエルの子らは聖絶の物のことで主の信頼を裏切った。ユダ部族のゼラフの子ザブディの子であるカルミの子アカンが、聖絶の物の一部を取った。それで、主の怒りがイスラエルの子らに向かって燃え上がった。


유다 자피의 아간이라는 자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물건에 손을 댔다는 것이지요.

여호수아 6장 17절~19절을 봅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この町とその中にあるすべてのものは主のために聖絶せよ。遊女ラハブと、その家にともにいる者たちだけは、みな生かしておけ。彼女は私たちが送った使いたちをかくまってくれたからだ。
あなたがたは聖絶の物には手を出すな。あなたがた自身が聖絶されないようにするため、すなわち、聖絶の物の一部を取ってイスラエルの宿営を聖絶の物とし、これにわざわいをもたらさ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ある。
ただし、銀や金、および青銅や鉄の器はすべて主のために聖別されたものである。それらは主の宝物倉に入れよ。」

이 성에서 얻은 전리품은 모두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간은 이를 몰래 자신의 집에 감추었던 것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결국 전쟁에 패배하고 말았다는 것이지요.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공격할 때에 모든 주민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 8장 25절에 의하면 그 때 사망한 아이 주민들이 12,000명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떤 신학자들은 아이 성 주민이 12,000명이라고 한다면 싸울 수 있는 장정들은 대략 3,500명~4,000명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만일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더구나 그 쪽은 수비하는 쪽이니까 공격하는 쪽의 병력은 더 많으면 많았지 적으면 안 되었겠지요. 그런데 아이 성을 정탐한 이들의 보고는 어땠습니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수아 7장 3절에 의하면 이삼천 명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패배한 것은 전쟁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간의 죄로 인해서 정탐꾼들의 판단부터 흐려졌다고 하는 결론이 되고 맙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아간과 그 집안을 처벌합니다.

여호수아 7장 24절~26절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ヨシュアは全イスラエルとともに、ゼラフの子アカンと銀、外套、金の延べ棒、および彼の息子、娘、牛、ろば、羊、天幕、それに彼のすべての所有物を取って、アコルの谷へ運んだ。
ヨシュアは言った。「なぜ、おまえは私たちにわざわいをもたらしたのか。主は今日、おまえにわざわいをもたらされる。」全イスラエルは彼を石で打ち殺し、彼の所有物を火で焼き、それらに石を投げつけた。
人々はアカンの上に石くれの大きな山を積み上げた。今日もそのままである。主は燃える怒りを収められた。それで、その場所の名はアコルの谷と呼ばれた。今日もそうである。

자, 이렇게 모든 죄들을 해결하고 다시금 아이 성을 공격할 때 몇 명을 보냈냐 하면 여호수아 8장 3절에 의하면 3만 명을 보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제야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께서는 전투방법까지도 자세하게 알려주십니다. 이로 인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또다시 대승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도서 7장 14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順境の日には幸いを味わい、逆境の日にはよく考えよ。これもあれも、神のなさること。後のことを人に分からせないためである。

형통한 날, 일이 잘 풀리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면 기뻐해야겠지요. 하지만 곤고한 날은 되돌아 보라고 합니다. 이 부분을 현대인의 성경은 “어려움을 당할 때는 생각하라”, 일본 신개역판에는 “역경의 날에는 잘 생각하라”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되돌아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첫째는, 원인은 항상 나한테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14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それでは、どのように言うべきでしょうか。神に不正がある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


내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하나님 잘못이에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본에 유명한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일본 야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사람 중에 노무라 카츠야라는 사람이 했다는 말도 있고, 그 이전 에도시대 때 마츠라 세이잔 이라는 사람이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만, 그 말은 이것입니다.

“勝ちに不思議の勝ちあり 負けに不思議の負けなし”
“승리에 우연한 승리 있고, 패배에 우연한 패배 없다”

즉, 시합이나 경기에서 내 실력이 부족해도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실수를 하거나 해서 어쩌다가 이길 수는 있지만, 어쩌다가 우연히 지는 일은 없다. 내가 질 때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그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한테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거나, 일이 안 풀릴 때, 사람들은 쉽게 남의 탓을 합니다. 하물며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는 없어……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풀려야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방법대로 일을 행하시나요? 아니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방법대로 일을 행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린다고 하나님이 있네, 없네 한다면 이는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 앞에 무슨 문제가 있다 하면, 우선 나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 부분을 해결하기 전에는 절대로 앞으로 안 나갑니다. 반드시 그 부분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나 자신을 돌아보아도 하나님 앞에서 잘못이 없어요?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더욱더 놀라운 방법으로 인도해주실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다는 점입니다.

요한1서 4장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第一ヨハネの手紙

私たちは自分たちに対する神の愛を知り、また信じています。神は愛です。愛のうちにとどまる人は神のうちにとどまり、神もその人のうちにとどまっておられます。

하나님은 단순히 사랑이 많다, 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단순한 말씀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고 피를 흘리게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기를 기뻐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시고 곤고함을 허락하실 때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 탓을 했던 사람들, 남의 탓을 했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エペソ人への手紙

その教えとは、あなたがたの以前の生活について言えば、人を欺く情欲によって腐敗していく古い人を、あなたがたが脱ぎ捨てること、
また、あなたがたが霊と心において新しくされ続け、
真理に基づく義と聖をもって、神にかたどり造られた新しい人を着ることでした。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에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환경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던 옛 사람은 이제 저기 광야에 벗어버립시다. 아간을 묻어버린 아골 골짜기에 묻어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 내 안에 있는 문제를 되돌아보고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
이제 우리 모두 형통한 날에도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도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아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고, 사랑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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