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회 그래도 돌을 던지시겠습니까
2018년 12월 2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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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2절~11절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래도 돌을 던지시겠습니까” それでも石を投げますか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아침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한 여자를 끌고 와서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예수님께 말합니다.

이보시오, 이 여인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소. 모세는 돌로 치라고 명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이와 같은 자세는 예수님께 지혜를 구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6절에 보면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彼らはイエスを告発する理由を得ようと、イエスを試みてこう言ったのであった。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뜻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이 질문을 던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당시에 그들은 이른바 기득권 세력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지위가 확고해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던,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이 서른 갓 넘은 젊은이가 나타나더니만 자신들과 조금 다른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을 보게 하고,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걷게 할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들까지도 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젊은이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젊은이가 이제 자신들까지 비판합니다. 이렇게 되니 기득권 세력이었던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서기관들의 체면이 위태롭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자기들의 말에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아요. 이는 상당한 위기 의식을 느끼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 하면 기회가 될 때마다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트집을 잡아서 함정에 빠뜨릴 궁리를 했던 것입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 하면 어떤 질문을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21장 23절을 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それからイエスが宮に入って教えておられると、祭司長たちや民の長老たちがイエスのもとに来 て言った。「何の権威によって、これらのことをしているのですか。だれがあなたにその権威を授けたのですか。」

예수님께서는 지금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분명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시점에 이른바 기득권 세력인 사람들이 나타나서 예수님한테 말하기를,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사람들한테 가르치느냐……하고 질문을 합니다. 이는 자신이 어떠한 지혜나 도움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공격하는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받았다……이렇게 말씀을 하셨다면 이는 신성모독이라고, 하나님을 모욕한다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사람으로부터 받았다고 하셨다면 어떻게 말했을까요. 만약에 그러셨다면 그들은, 그러면 당신한테 그런 자격을 준 사람이 누구냐.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누구 밑에서 배웠느냐, 어느 학교 나왔느냐, 뭐 이런 식이었겠지요.

당연한 말입니다만, 이 땅에서 누가 예수님께 권위를 드렸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누구 밑에서 성경을 공부한 것도 아니요, 신학교를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대답하면 그들이 뭐라고 했겠습니까. 아~ 제대로 학교도 나오지 못했으면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으면서, 성경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사기를 친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반문을 하십니다.

이후 24절~27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4절~27절
“2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イエスは彼らに答えられた。「わたしも一言尋 ねましょう。それにあなたがたが答えるなら、わたしも、何の権威によってこれらのことをしているのか言いましょう。
ヨハネのバプテスマは、どこから来たものですか。天からですか、それとも人からですか。」すると彼らは論 じ合った。「もし天からと言えば、それならなぜヨハネを信じなかったのかと言うだろう。
だが、もし人から出たと言えば、群衆が怖い。彼らはみなヨハネを預言者と思っているのだから。」
そこで彼らはイエスに「分かりません」と答えた。イエスもまた、彼らにこう言われた。「わたしも、何の権威によってこれらのことをするのか、あなたがたに言いません。

예수님께서는 이러신 것이지요. 내가 그러면 당신들한테 질문을 하겠다. 세례 요한은 누구한테서 권위를 인정 받았다고 생각하느냐.

대다수의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따랐습니다. 그렇다고 세례 요한이 무슨 신학교를 나왔거나 그런 것도 아니죠.

그런 상황에서 세례 요한은 하늘로부터 권위를 받았다고 대답하면, 너는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받은 세례요한을 왜 안 믿었느냐……하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질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권위를 받은 적이 없는 사기꾼이다……이렇게 말했다가는 거기 있던 많은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따랐던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그래서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물러갔지요.

그들의 악의적인 질문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바로 다음 장인 마태복음 22장 17절에서는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ですから、どう思われるか、お聞かせください。カエサルに税金を納めることは律法にかなっているでしょうか、いないでしょうか。」

가이사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황제입니다. 로마 황제한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느냐 하는 질문인데, 이도 역시 대단히 위험한 질문이지요.


쉽게 말하자면 일제 시대 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조선 사람한테 “당신은 일본 천황한테 세금을 바치는 게 옳으냐 옳지 않냐”하고 공개적으로 묻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천황한테 세금을 바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가는 당장 일본 경찰한테 붙잡혀갔겠지요. 그렇다고 “천황한테 세금을 바쳐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조국독립을 염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저놈은 친일파다, 매국노다 하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2장 21절 중반부 이후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そのときイエスは言われた。「それなら、カエサルのものはカエサルに、神のものは神に返しなさい。」

너희들이 생각하기에 그 돈이 가이사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이사한테 바쳐라.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니 역시 그들은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돌아옵니다.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데려왔습니다. 이는 증거도 증인도 필요 없습니다.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잡혔는데 무슨 증거나 증인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여인은 꼼짝없이 아무런 변명도 할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당신, 율법 좀 알지? 요즘 꽤 뜨는 사람 같은데 말이야. 우리 질문에 대답해보시오. 율법에는 이런 여자, 간음한 여자는 돌로 치라고 되어 있지 않소이까? 자, 그럼 이 여자를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이 질문 또한 역시 대단히 위험한 질문,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질문입니다. 그 이유는, 당시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에서는 사형판결을 내릴 권한은 로마한테만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는 판결을 얻어내기 위해 당시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한테 끌고 간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만약에 그 자리에서 <그 여인은 죽여야 한다>라고 했다면 이는 로마의 현행법을 어기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그러면 <죽이지 말라>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것 봐라. 하나님을 전한다고 하면서 율법을 어기라고 하지 않느냐 하고 비난을 했겠지요.

즉,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시더라도 현행법이나 율법 중 어느 한 쪽을 반드시 어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또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대단히 악의적인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에 계실 때 예수님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땅에 무언가를 적으셨습니다. 그 때 무엇을 적었는지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만, 다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적으셨는지 성경에 안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괜히 성경에 안 적힌 것을 가지고 알려고 애 쓰지 마시고, 적혀 있는 것이나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국에 갔을 때 예수님께 한 번 여쭤봐야 할 부분입니다. 여러분도 나중에 예수님을 뵈면, 도대체 그 때 무엇을 적으셨냐고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참 궁금합니다만 성경에 없으니 지금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지요.

아무튼 땅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으니까, 답답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이 여자를 돌로 쳐야 되냐 어쩌냐 하고 자꾸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오늘 말씀 중 7절 중반부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イエスは身を起こして言われた。「あなたがたの中で罪のない者が、まずこの人に石を投げなさい。」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율법? 그래, 너희들 율법 좋아하지? 그러면 한 번 생각해봐. 너희들 중에서 율법적으로 돌에 맞아 죽을 죄를 하나도 짓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먼저 돌을 던져…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율법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라는 죄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교도소에 있지 않다고, 우리가 사형판결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는 선한 존재입니까. 의로운 사람인가요? 거룩한 사람입니까?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次のように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義人はいない。一人もいない。

야고보서 2장 10절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律法全体を守っても、一つの点で過ちを犯すなら、その人はすべてについて責任を問われるからです。

우리가 아무리 거룩한 척하고 의로운 척을 해 봤자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잘 알지 않습니까. 모든 율법 중에서 하나라도 범하면 율법을 모두 범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율법적으로 죽음을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돌을 던집니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면서, 율법을 어긴 사람이라면서,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서 돌을 마구마구 던집니다. 여러분, 사람이 부드러운 지우개를 누가 던져서 그걸 맞아도 아픕니다. 하지만 돌멩이를 던져서 맞았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수없이 많은 돌멩이를 맞으면 머리나 얼굴,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서 쓰러집니다.

올 한해, 어떠셨습니까.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많이 맞으셨습니까. 그래, 내가 여기서도 돌을 맞고 저기서도 돌을 맞았어. 자기들도 잘난 것은 없으면서 정말 이 세상에는 어쩌면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많을까……. 여러분 혹시 그런 생각이 드십니까.

여러분, 왜 맞은 것만을 생각하십니까. 요즘은 한국 군대도 많이 좋아져서 그런 일은 없어졌다고 합니다만, 예전에 보면 군대에서 폭행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당시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 말을 들으면, 아, 나는 누구한테 억울하게 맞았다. 나는 어마어마하게 많이 맞았다는 등, 맨날 맞았다는 이야기밖에 안 합니다. 누군가를 팼다는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럼 도대체 맞은 사람들은 누구한테 맞았다는 것입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만 당하고 사는 것 같으십니까. 나만 돌 맞고, 나만 억울한 일을 겪고 사는 것 같으십니까. 우리는 우리가 맞은 것보다 우리가 던진 돌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따르고 모셨던 이들이 누구입니까. 예, 바로 열 두 사도들입니다. 그런데 결국 그 중에서 누가 예수님을 버렸습니까. 이름 혹시 아십니까? 가룟 유다요?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마가복음 14장 50절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皆は、イエスを見捨てて逃げてしまった。

이는 어쩌면 성경에서 가장 슬픈 구절일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皆は、イエスを見捨てて逃げてしまった。

그렇게 자기 생명을 다 바쳐서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했으면서, 그렇게 마지막 때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으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어떻게 했어요? 예,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당시 예수님을 따랐던 열 두 사도들보다도 더 좋다고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도 모르고 돌을 던집니다. 자기가 거룩한 줄 알고 돌을 던집니다. 돌을 맞고 괴로워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은 마치 의로운 일을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가 피범벅이 된 얼굴을 듭니다. 그 모습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범벅이 된 얼굴을 들며, 돌을 던지는 나를 바라보십니다. 그래도 나는 의롭습니까. 그래도 나는 거룩한가요?

이는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과 45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25장 40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すると、王は彼らに答えます。『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あなたがたが、これらのわたしの兄弟たち、それも最も小さい者たちの一人にしたことは、わたしにしたのです。』


그리고 마태복음 25장 45절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すると、王は彼らに答えます。『まことに、おまえたちに言う。おまえたちがこの最も小さい者たちの一人にしなかったのは、わたしにしなかったのだ。』

여기서 작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극히 하찮은 사람, 지극히 별볼일 없는 사람, 지극히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한테 한 것이 누구한테 한 것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예수님한테 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그만큼 돌을 던졌으면 됐습니다. 이제 그만큼 상처를 입혔으면 됐습니다.

이제 손에 든 돌을 놓고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2장 8절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この知恵を、この世の支配者たちは、だれ一人知りませんでした。もし知っていたら、栄光の主を十字架につけはしなかったでしょう。

우리는 그 누구한테도 돌을 던질 만큼 의로운 이도 없고 거룩한 이도 없습니다. 우리가 돌을 던지면 그 돌을 누가 맞는다고요?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맞으십니다. 이 지혜를 알았더라면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을 것이요, 예수님을 향해 돌을 던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キリスト・イエスにつく者は、自分の肉を、情欲や欲望とともに十字架につけたのです。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もはや私が生きているのではなく、キリストが私のうちに生きておられるのです。今私が肉において生きているいのちは、私を愛し、私のためにご自分を与えてくださった、神の御子に対する信仰によるのです。

이제 우리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님께서 부어주시는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화평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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