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회 우리에게 주신 검
2018년 12월 9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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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4절~38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에게 주신 검” 私たちに下さった剣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선 오늘 말씀 중에서 우리에게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검>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는 다음 구절로 말씀이 이어집니다.

마태복음 10장 35절~37절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わたしは、人をその父に、娘をその母に、嫁をその姑に逆らわせるために来たのです。
そのようにして家の者たちがその人の敵となるのです。
わたしよりも父や母を愛する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い者ではありません。わたしよりも息子や娘を愛する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い者ではありません。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가족 간에 불화를 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두고 많은 사람드은 이렇게 이해해 왔습니다.

“그래. 우리 가족들 중에서 내가 교회 나가는 것을 ○○가 반대하는데, 이와 같은 일은 이미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일이야. 여기서 물러서면 안돼. 아무리 내 가족 중에서 ○○가 반대를 하더라도, 아무리 가족간에 불화가 생긴다 하더라도 난 교회에 나갈 거야. 주님 제게 ○○를 이길 힘과 능력을 줏시옵소서! 주여! 믿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 말씀 적용과 이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게 맞은 것일까요?

만약에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 우리 가족에는 불화가 없어요. 아주 화평해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뭐라고 되어 있어요? 예수님께서는 화평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서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가정을 생각해보니까 대단히 화평하고 화목해요. 가족간의 불화가 없어요. 그럼 그런 가정은 뭐예요? 예수님이 임하지 않은 가정이 되고 맙니다. 그러잖아요? 예수님이 임하시면 가족 간의 불화가 생긴다는데, 우리 가족은 불화는커녕 서로 아끼고 존중하고 화목해해요.

아, 이건 내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구나. 주님이 제대로 임하시기 위해서는 가족 간의 불화가 있어야 한다는데, 그럼 오늘 집에 가서 당장이라도 뭔가 트집을 잡아서 불화를 일으켜야겠다…….

제 말이 이상한가요?

예전에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어떤 한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분은 제가 직접 뵌 적은 없고 기독교 방송을 통해서 말씀을 접하고 했는데, 제가 참 존경하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께서 이제 막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셨을 때라고 해요. 그 때는 정말 믿음으로 충만했던 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부모님은 믿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당시는 초신자였겠지요? 그래서 이 분께서 가족이 함께 모여서 식사할 때 아버님한테 교회에 한 번 같이 가시자고, 예수님을 믿으시라고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아무리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전하더라도, 이 아버님께서는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으시더래요. 받아들이시기는커녕 기독교를 비판하고 교회를 비판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그러시더랍니다.


그 때 이 분이 생각하셨대요. 아니,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전하는데, 받아들이지 않아? 이게 하나님이 하는 일이야? 아니면 사탄이 하는 일이야. 이는 틀림없이 사탄의 역사야. 그럼 어떻게 해야 되요? 그렇죠. 물리쳐야죠. 사탄을 당장 물리쳐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한 이 목사님. 어떻게 하셨을까요?

밥 먹는 자리에서 큰 소리로 아버님께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했답니다.

여러분,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좀 상상이 가지 않으세요? ㅎㅎ

이 목사님께서는 그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자세한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만, 아무튼 몇 개월 동안 대단히 힘들었다고 합니다.

익히 짐작은 되지요. 아무리 믿지 않는 분이라 하더라도 아버님께 자식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했다면 그 가정에 평안이 임하겠습니까.

그런데, 어? 그러면 오늘 말씀에 뭐라고 되어 있었어요?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그 사람이 아버지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아이고,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네요. 할렐루야…….

여러분, 이게 맞는 말씀인가요?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것이 이런 모습이셨을까요?

이런 말씀을 제가 드리면 어떤 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봐. 홍목사. 이건 그런 뜻이 아니라, 말세가 되고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되면 화목한 가정도 이렇게 불화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뜻이야.


아니면, 이 뜻은 가정에 따라서 교회에 나가는 것 때문에 다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씀이야.

하지만 이 두 의견 모두에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말세가 되면,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다가오면 화목했던 가정도 불화가 생기기 시작한다는 말씀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가정에 따라서는 이와 같은 문제가 일어날 수 있고, 또는 없을 수도 있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이는 대단히 보편적인 표현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간관계에 있어서 불화를 원하고 계신 건가요?

성경말씀을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平安を残します。わたしの平安を与えます。わたしは、世が与えるのと同じようには与えません。あなたがたは心を騒がせてはなりません。ひるんではなりません。

마태복음 5장 9절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平和をつくる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神の子どもと呼ばれるからです。


히브리서 12장 14절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すべての人との平和を追い求め、また、聖さを追い求めなさい。聖さがなければ、だれも主を見ることができません。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결코 불화를 바라고 계시지 않습니다. 화평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많은 분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복음의 이름으로, 전도의 이름으로, 하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불화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저도 한국에 있을 때 대형교회에서 섬겼습니다만, 거기 보면 각 지역, 각 구역마다 담당자가 있고, 성도관리를 합니다. 이는 물론 중요한 일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빠지지 않는 것이 실적평가입니다. 그 지역, 그 구역의 성도들이 얼마나 늘었느냐, 얼마나 줄었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성도들이 늘어난 곳은 좋은 평가를 받고, 줄어든 곳은 나쁜 평가를 받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그런 구역이나 지역을 맡은 목사님들이나 전도사님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전도를 합니다.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가끔은 너무나도 지나칠 정도로 집요하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잡음이 생깁니다.

저도 교회에 다닐 때 보면 전도왕……이라고 해서 상도 주고 그런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많은 사람들을 자기 교회로 출석하게 한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전도왕……거기에다가 <왕>자를 쓰는 게 저는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무튼 그래서 그 분들이 간증을 하는 것을 들어보면 어떻습니까. 아~ 누구는 몇 번 씩이나 예수님을 전하고 말씀을 전해도 교회에 안 나왔었는데, 자기가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를 하니까 마침내 교회에 나왔다……할렐루야!

이런 간증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집요하고 진저리 나게 하니까 오히려 지겨워서 안 나오게 된 사람은 어떡하냐는 거죠.

예수도 좋고 성경도 좋고 교회도 좋지만, 예수 믿는 인간들이 지겨워서 교회에 안 나간다…… 지금도 솔직히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 그 분들이 하는 말씀이 뭡니까.

아~ 성경에 뭐라고 적혀 있냐

디모데후서 4장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みことばを宣べ伝えなさい。時が良くても悪くてもしっかりやりなさい。忍耐の限りを尽くし、絶えず教えながら、責め、戒め、また勧めなさい。

봐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되어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상대방이 듣기 싫어해도 끈질기게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한테 강제로 억지로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베드로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습니다만, 박해를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 듣기를 원하지 않은 사람들한테 억지로 말씀을 전하다가 그랬나요? 아닙니다. 말씀을 갈급한 사람들한테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한테 복음을 전했습니다만, 당시 권력자들이나 기득권자들에 의해 박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또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신 어떤 분은 이 구절을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과부(やもめ)가 재판장한테 끈질기게 가서 말하지 않았느냐

여러분, 이게 맞는 말씀인가요?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이 비유는 무엇입니까. 아무리 옳지 않은 권력자들이라 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끈질기게 부탁을 하면 들어주는데, 우리가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께 간구하면, 이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비유입니다.

성경은 어디를 보더라도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한테 억지로 강제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일까요? 이제 그 사람은 구원 받을 가능성이 없으니 우리가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겔 18장 32절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わたしは、だれが死ぬのも喜ばない──神である主のことば──。だから立ち返って、生きよ。」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악하지 않은 사람만이 아니라, 대단히 악한 자, 정말 인간의 눈으로 보아서 죽어 마땅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죄 가운데에 죽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켜 살 것을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주님께서 지금 내가 전하는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 그 사람을 버리시겠습니까? 아니요. 절대로 안 버리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래도 밤이고 낮이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교회에 나오게 만들어요? 아닙니다. 그것은 전도를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사람의 방법으로 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단 하나. 그래. 저 사람도 하나님께서 살기를 원하시는 사람이야. 지금 내가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거야……. 그렇게 믿고 우리는 기회가 될 때마다 마음으로 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마음을 움직이실 것입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가족 중에서 교회에 나가지 말래요. 예를 들어서 남편이나 부모님이 매주 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가정의 화목이 깨져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그와 같은 가족의 핍박을 무릅쓰고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인가요? 여러분, 가족은 무슨 타도의 대상이나 저항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입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제안을 합니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교회에 당분간 나오지 마세요. 나는 교회에 나가고 싶지만, 부모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안 나가겠습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안 나갈게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기도하고 성경 보고, 인터넷을 통해서 말씀을 듣고 그러십시오.

그러면 우선 가정이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억지로 내가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기도하고 우리의 모습,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마음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마음껏 그 사람을 섬겨보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그 마음의 닫힌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러면 그 때 함께 믿음 생활을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으로 돌아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불화를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는 바로 다름 아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가치관의 파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질서 중 핵심은 가족 내에 있었습니다. 상하관계, 우선순위, 이는 가족에서 시작하고 가족이 그 근본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것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우리의 가치관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가치관은 비단 가족관계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가치관, 전통, 습관을 돌이켜보면 믿음 안에서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 보니까 성경에 대해서 누가 말하면서, 21세기 첨단과학 시대에 아직도 성경을 믿고 있냐는 식의 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21세기 첨단과학 시대 때 우리 인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한국에서는 여전히 돼지머리 앞에 놓고 절을 합니다. 예전에 보니까 제 첫 직장이 IT관련 회사였는데, 거기서 회사 차를 하나 구입했는데, 역시 고사를 지내더라구요. 그래서 왜 이런 걸 하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면 사고가 안 난대요.

고인이 돌아가신 날 제사를 지냅니다. 명절 때 차례를 지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영이 와서 차려놓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 간데요.

일본도 보면 오봉 때 그런다고 하지요. 그리고 또 뻑 하면 신사에 가서 참배를 합니다. 거기 가서 참배를 하면 거기 신이 나를 도와주어서 시험에 합격할 수 있대요. 취직할 수 있대요.

돈을 내고 부적을 사면 교통사고가 안 일어난대요.

이게 지금 21세기 첨단과학 시대 때의 한국과 일본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 동안 당연시했던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1517년 종교혁명으로 태어난 기독교 정신이 무엇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저항정신입니다. 이는 상당히 진보적인 정신, 그 당시까지 당연시되어 왔던 구태의연하고 비신앙적인 모든 것을 거부하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려는 정신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의 정신인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기독교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종교혁명 이전보다도 변화를 거부합니다. 사람의 머리로 만들어낸 전통으로 말씀을 능가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 중에서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 わたしよりも父や母を愛する者、わたしよりも息子や娘を愛する者 인 것입니다. 믿음의 우선순위, 말씀의 우선순위보다도 우리 머리 안에 있는 인간적인 우선순위와 세상적인 우선순위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정답은 우리 머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안에 있습니다. 말씀 안에 있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불화는 가족 간이나 이웃 간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 속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반대되는 생각, 믿음과 반대되는 전통과 우선순위를 깨야 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 38절을 봅니다

마태복음 10장 38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自分の十字架を負ってわたしに従って来ない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い者ではありません。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의 문제 나갑니다. 믿음 안에서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힘든 일, 대단히 귀찮은 일, 대단히 하기 싫은 일……누가 먼저 해야겠습니까. 1번 내가. 2번 니가.

그렇습니다. “힘든 일은 니가 해야 한다”는 낡은 전통을 깨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가족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첫 시작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미움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주 받아 마땅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주신 검으로 말미암아 우리 머리 속에 있는 잘못된 생각들, 잘못된 우선순위들을 모두 깨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족을 섬기고 이웃과 화목하여 섬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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