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회 사랑의 시작
2018년 12월 23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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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1절~35절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랑의 시작” 愛の始まり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일본에서의 성탄절,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다 주는 날, 연인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날, 친한 사람들과 선물을 주고 받는 날, 화려하게 장식된 조명과 트리, 연말 세일이 한창인 백화점에서의 쇼핑……그와 갈은 풍경이 있습니다. 이는 한국에서도 비슷하지요.

하지만 일본 특유의 모습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치킨을 먹는다는 것이지요. 혹시 오늘은 23일이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에 보면 KFC 같은 일본 치킨 집 앞에는 줄을 서기도 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콘서트가 여기저기서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山下達郎의 “크리스마스 이브”, 그리고 ユーミン 松任谷由実의 “恋人はサンタクロース”가 거리 여기저기에서 울려퍼집니다. 제가 얼마 전에 차를 타고 어디를 갔다 올 일이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가는 길에 이 恋人はサンタクロース가 나오더니, 오는 길에도 똑같이 이 노래가 나오더라구요.

이처럼 일본에는 일본 특유의 성탄절이 있습니다. 이와 갈은 모습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도 있을 것을 것입니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북반구는 성탄절이 있는 12월이 겨울이지만 호주나 남미 같은 남반구에서는 지금이 여름입니다. 얼마 전 브라질 사람이 쓴 글을 보았는데, 이 분의 글에 의하면 브라질에서는 더운 날씨 때문에 대부분의 가족들은 크리스마스를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고 물놀이를 하면서 보낸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탄절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처럼 각 나라마다 달라지고 있는 성탄절이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을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두 번째의 공통점이 문제입니다. 이는 바로 크리스마스에서 예수님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있건 없건, 예수님에 대해서 알건 모르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끼리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되지 않냐 할지 모르지만, 사실 이는 대단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크리스마스에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더라도 거기에 예수님이 안 계시다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저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옳지 않다거나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위험하다고 말씀 드리는 그 이유에 대해서 오늘은 먼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쉬운 질문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요한복음 3장 14절~16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16절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モーセが荒野で蛇を上げたように、人の子も上げら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れは、信じる者がみな、人の子にあって永遠のいのちを持つためです。」
神は、実に、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それは御子を信じる者が、一人として滅びることなく、永遠のいのちを持つためである。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을 때, 그들이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셔서 백성들을 상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모두가 죽도록 내버려둔 것이 아니었지요.

민수기 21장 7절~9절을 보겠습니다.

민수기 21장 7절~9절
“7.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民はモーセのところに来て言った。「私たちは主とあなたを非難したりして、罪を犯しました。どうか、蛇を私たちから取 り去ってくださるよう主に祈ってください。」モーセは民のために祈った。
すると主はモーセに言われた。「あなたは燃える蛇を作り、それを旗ざおの上に付けよ。かまれた者はみな、それを仰ぎ見れば生きる。」
モーセは一つの青銅の蛇を作り、それを旗ざおの上に付けた。蛇が人をかんでも、その人が青銅の蛇を仰ぎ見ると生きた。

이렇게 해서 장대 위에 높이 올린 뱀을 쳐다보았더니 불뱀에 물린 자들이 모두 나음을 입고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대 위에 올려졌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명기 21장 23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즉, 장대 위에 불뱀을 매달았다는 것은 질병의 근원인 불뱀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불뱀으로 인한 모든 질병이 나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떠실까요.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십자가가 바로 장대인 것이지요. 그러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나요? 만약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실 이유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第一ペテロの手紙
キリストは自ら十字架の上で、私たちの罪をその身に負われた。それは、私たちが罪を離れ、義のために生きるため。その打ち傷のゆえに、あなたがたは癒やされた。

빌립보서 2장 6절~11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ピリピ人への手紙 2章6節~11節
キリストは、神の御姿であられるのに、神としてのあり方を捨てられないとは考えず、
ご自分を空しくして、しもべの姿をとり、人間と同じようになられました。人としての姿をもって現れ、
自らを低くして、死にまで、それも十字架の死にまで従われました。
それゆえ神は、この方を高く上げて、すべての名にまさる名を与えられました。
それは、イエスの名によって、天にあるもの、地にあるもの、地の下にあるもののすべてが膝をかがめ、
すべての舌が「イエス・キリストは主です」と告白して、父なる神に栄光を帰するためです。

누구는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합니다. 누구는 예수님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서 하나님의 아들로 뽑혔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분들께는 조용히 이렇게 말씀을 드려야겠지요. 성경을 좀 읽어보세요.

성경에는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나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본체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하나님,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미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이 일은 예언 되었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イザヤ書 53장 4절
まことに、彼は私たちの病を負い、私たちの痛みを担った。それなのに、私たちは思った。神に罰せられ、打たれ、苦しめられたのだと。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셨기에 예수님은 철저한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한 두 사람의 죄도 아니고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는데 그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우셨겠습니까.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던 불뱀이 장대에 높이 올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올려본 사람들은 그 질병의 원흉인 불뱀으로 말미암은 질병이 모두 나아서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장대 위에 높이 올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십자가를 올려다본 사람들은 우리를 괴롭히던 죄악의 근본이 해결되었다는 것을 믿기에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야말로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7절~8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로마서 5장 7절~8절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正しい人のためであっても、死ぬ人はほとんどいません。善良な人のためなら、進んで死ぬ人がいるかもしれません。
しかし、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私たちのために死なれたことによって、神は私たちに対するご自分の愛を明らかにしておられます。

의인을 위하여 죽는다면 그 죽음은 그래도 어느 정도 가치가 있겠지요. 예를 들어서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면 그 사람은 위인으로 추앙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것이지요.

생각해보십시오.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은 흉악범, 정말로 용서 받을 수 없는 흉악범을 한 번 머리 속에 떠올려보십시오. 한국이나 일본에도 얼마나 나쁜 사람들이 많았습니까.

자, 떠올리셨나요?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떠올린 그 나쁜 사람이 사형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는 지당한 판결이에요. 누가 보더라도 그 사람은 사형판결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 사형판결을 내린 판사가 이상한 말을 해요. 만약에 이 중에서 이 사람을 대신해서 사형을 당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사형시키고 이 사람을 풀어주겠다……물론 현행법에서 이런 제도는 허용되지 않습니다만, 만약에 이런 일이 허용되었다고 한다면, 여러분께서는 여러분 머리 속에 떠올린 그 사람을 대신해서 형벌을 받으시겠습니까?

말이 되나요? 예, 말이 안 되죠. 만약에 누군가가 그랬다면 그건 뭐예요? 그야말로 한 낯 가치 없는 죽음. 좀 험한 말로 말하자면 개죽음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분이 계셨습니다. 누구세요? 예,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죽어 마땅하다고 여겨진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떳떳하십니까? 죄가 없으십니까? 이는 정말로 운이 좋아서. 아니, 하나님의 은혜로 안 들켰을 뿐입니다. 아니면 너무나도 뻔뻔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이미 죄악이라는 이름의 불뱀에 여기저기를 물려 뜯겨서 이미 만신창이입니다. 이미 온몸에 불뱀들의 이빨자국이 가득해요. 어쩌면 좀 끔찍한 얘기이지만 아직도 불뱀이 내 온몸 여기저기에 매달려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내 손이 죄악이라는 이름의 피에 범벅이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뭐래요? 괜찮대요. 나는 죄가 없대요. 나는 안 죽는대요. 깨끗하대요. 만약에 그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요, 딱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렇게 흉악한 죄를 지어놓고도 태연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면 얼마나 나쁜 사람입니까.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스스로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우리를 위해서, 그와 같은 우리를 어떻게든 살려보시려고 어떻게 하셨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하나님의 모든 저주를 한 몸에 받고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성탄절에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선물을 교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 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선물과 뇌물. 무엇이 다릅니까.

그것은 바로 “대가성이 있느냐(見返り)”가 핵심입니다. 대가성이 없으면 선물이지만, 조금이라도 대가성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아무리 선물이라고 우긴다 하더라도 뇌물입니다.

선물은 사랑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그 마음은 사랑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내 이득을 위한 대가성 있는 뇌물은 범죄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이요,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4장 12절~14절
“12.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イエスはまた、ご自分を招いてくれた人にも、こう話された。「昼食や晩餐をふるまうのなら、友人、兄弟、親族、近所 の金持ちなどを呼んではいけません。彼らがあなたを招いて、お返しをすることが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す。
食事のふるまいをするときには、貧しい人たち、からだの不自由な人たち、足の不自由な人たち、目の見えない人たちを招きなさい。
その人たちはお返しができないので、あなたは幸いです。あなたは、義人の復活のときに、お返しを受けるのです。」

이와 같은 말씀을 드리면 간혹 오해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착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겠구나.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좀 착하게 마음을 먹고 착하게 살아야 복을 주시는구나……

그래요.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됩니까? 내가 아무리 착하게 살려고 해도, 그렇게 마음을 먹자 말자 누군가가 속을 박박 긁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뭐 어째고 어째?” 라고 화를 내지 않습니까?

우리 생각을 좀 바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것이 아니에요. 다음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21절입니다.


로마서 12장 19절~21절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愛する者たち、自分で復讐してはいけません。神の怒りにゆだねなさい。こう書かれているからです。「復讐はわたしのもの。わたしが報復する。」主はそう言われます。
次のようにも書かれています。「もしあなたの敵が飢えているなら食べさせ、渇いているなら飲ませよ。なぜなら、こうしてあなたは彼の頭上に燃える炭火を積むことになるからだ。」
悪に負けてはいけません。むしろ、善をもって悪に打ち勝ちなさい。

이 말씀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한국이나 일본의 옛날 예기를 보면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 무슨 미담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성경은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원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도 역시 그저 착하게 살라는 그런 윤리적인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내가 내 손으로 원수를 갚지 않더라도 나를 대신해서 원수를 갚을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위에서 누가복음 14장 12절~14절에서의 말씀도 그냥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라, 대가성이 없는 사람, 내가 아무리 그 사람한테 도움을 주더라도 그 사람이 나한테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면, 누가 나한테 갚아주신대요?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욱 큰 것으로 갚아주신다는 것을 믿은 믿음을 가지라고 성경은 말씀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 귀한 피를 흘려주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서 그 은혜를 갚을 수가 있을까요. 모세의 율법을 모두 지키면 갚을 수가 있을까요? 아무리 모세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면서 산다고 해도 100년이 아니라 100만년을 살아도 티끌만큼도 갚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으로부터 보답을 받기 원하셨습니까? 오늘 말씀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오늘 말씀 중 요한복음 13장 32절
“32.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예수님은 우리한테 영광을 받지 않으셔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같은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
“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ヨハネの黙示録
「見よ、わたしはすぐに来る。それぞれの行いに応じて報いるために、わたしは報いを携えて来る。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억지로(無理やり) 착한 사람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갚아주신다고 하신 성경 말씀을 믿는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 이와 같은 말씀이 있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어야 할 것은 뇌물이 아닙니다. 선물입니다.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은 범죄가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의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모두 해결해주시기 위해 오신 성탄절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시작된 오늘 성탄절 예배를 기념하여 이제 바로 오늘 성탄절부터 시작하여 뇌물이 아닌 선물을, 범죄가 아닌 사랑을 베풂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알리고 예수님의 제자 됨을 알리며 온 천하에 예수님을 들어내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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