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회 평강을 위하여
2018년 12월 30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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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7장 3절~4절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평강을 위하여” 平安のために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올 한 해 마지막 주일예배입니다. 이렇게 귀한 시간에 이처럼 함께 하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여러분께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예, 아직도 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분들이 계시다면 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올 한해 어떠셨습니까. 일본의 공익재단법인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 에서는 매년 12월에 “올해의 한자(今年の漢字)”라고 해서 일반인들로부터의 모집을 통해 그 해 1년을 나타내는 한자 한 글자를 선정해서 발표합니다. 여러분께서도 텔레비전에서 보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쿄토 키요미즈데라에서 붓글씨로 크게 한 글자를 쓰는 장면이 꽤 유명합니다.

지난 12월 12일에 발표된 내용에 의하면 올해의 한자는 총 응모수 193,214표 중에서 2만표 정도를 차지한 “재앙 재”자가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4월 9일 밤에 시마네 현에서 발생한 시마네현 서부지진.

6월 18일 아침에 오오사카에서 발생하여 사망자 6명, 부상자 443명이 발생한 “오오사카북부지진”

9월 6일 새벽 일본 홋카이도에서 발생하여 사망자 41명, 부상자 749명이 발생한 “홋카이도 이부리 동부지진”

그리고 지진만이 아니지요. 지난 7월에는 일본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서 총 사망자 227명, 부상자 421명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풍 21호, 24호가 정통으로 일본 상륙을 지나가기도 했고, 예년에 비해 일찍 끝난 장마 때문에 말도 못할 정도로 심한 폭염에 시달렸습니다.

우리 교회가 있는 군마현은 그래도 자연재해가 적은 지역이라서 감각이 좀 무뎌졌을지는 모르지만 이처럼 올 한 해 동안 수많은 재난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디 일본만 그런가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해가 시작되자마자 1월 26일에는 밀양시에 있는 세종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51명이 사망하고 141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7월 22일 서울 기온은 38도, 24일 경북 영천은 40.2도를 기록했습니다.

7호 태풍 쁘라삐룬으로 인한 피해도 심각했습니다. 고급외제승용차가 여기저기서 터지기도 했지요. 11월 9일에 일어났던 종로 고시원 화재, 12월 18일에 강릉에서 일어난 고등학생 일산화탄소 중독 사건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합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금 되돌아보면 이 외에도 수많은 재난이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서 2018년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제 좀 와 닿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떠십니까.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2018년을 한자 한 글자로 나타낸다면 어떤 글자를 쓰시겠습니까.

만약에 누가 제게 이런 질문을 묻는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기다릴 대(待)>자를 쓰겠습니다. 가끔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을 보면 “참 올해는 빨리 지나갔어요”라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 저는 그런 분들을 보면 몰래 가서 살짝 꼬집어주고 싶습니다. ㅎㅎ

올 해는 참 많이 기다리는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안 갔는지 몰라요. 무엇을 기다렸냐 하면 바로 입관, 입국관리국으로부터의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올해만 보더라도 입국 관리국에 몇 번이나 갔는지 모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1년 동안에 대략 6번은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3번은 동경까지 갔었던 것 같습니다. 동경에 한 번 가면 고속도로비를 좀 아껴본다고 밑으로 가니까 편도 3시간, 왕복 6시간이 걸립니다.

비자 문제 때문에 왔다갔다 해야 했기 때문에 올 한 해만 하더라도 저희 아내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하기 위해서도 나리타에 4번 갔다 왔습니다. 나리타공항 까지도 일반도로로 편도 3~4시간 정도 걸리고 하니, 올해는 정말 장거리 운전도 꽤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입관에 한 번 신청을 해놓으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보통 2~3개월이 걸립니다. 거기다가 그 중에서 또 몇 개월은 저는 저대로 일본에서, 제 집사람은 한국에 있으면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소식을 하루하루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것 참 힘들더라구요. 집에서 일을 하다가 창 밖에서 우체부 아저씨 오토바이 소리만 나면 기가 쫑긋 세워집니다. 그렇게 헤어져서 기다린 기간만 해도 결국 4개월이었습니다. 그러니 같이 살면서 기다린 기간과 헤어져서 기다린 기간을 합치면 거의 1년 내내 기다린 꼴이 되어버렸지요.

8월에 헤어질 때에는 그래도 빨리 일이 해결되면 어쩌면 2~3주 만에 다시 만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름이 가기 전에 오게 되면 여기저기서 열리는 불꽃놀이를 볼 수 있겠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8월이 다 가도록 연락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9월에 오면 단풍구경을 같이 갈 수 있겠구나 했는데,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그래서 또 10월이 되면 코스모스를 같이 보러 갈 수 있겠구나……했는데 역시 안 옵니다.

그래서 10월 하순에는 군마현민의 날이 있는데, 그 때는 여기저기서 이벤트도 하고 그러니까 같이 갈 수 있겠구나 했는데,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에요.

그래서 또 11월에는 대학축제가 한창인데, 오면 같이 구경갈 수 있겠구나 했는데, 역시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우체부 아저씨는 오늘도 저희 집 앞을 지나만 갑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이제 연말이라도 같이 보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라는 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이런저런 문제들이 무사히 해결되었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제 비자문제도 해결이 안 되었거나, 아니면 저희 집사람 비자가 안 나왔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니, 지금도 자다 생각해도 참 아찔합니다. 정말 막막한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사실 일본이 물론 이와 같은 절차 같은 것이 까다로운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아닙니다. 규정에 맞게 하나하나 하면 문제 없이 해결 됩니다. 저도 처음에 신청할 때에는 3년짜리 비자가 나왔거든요. 하지만 무엇이 문제였냐 하면 바로 여기에 사람의 생각이 개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목회가 어렵고 교회 상황이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겠어요. 그래서 사람의 생각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보았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 때까지 잘 풀리던 일들이 잘 안되게 되요. 만약에 정말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일만 해왔다면 올 한 해를 이렇게 <기다릴 대>, 우체부 아저씨 오토아비 소리에 예민해지거나 신혼 몇 개월 만에 떨어져서 살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생각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내 생각에는 훨씬 더 잘 될 줄 알았는데, 어쩌면 이게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줄 알았는데, 점점 조금씩 하나하나 걸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어느 한 곳에서 딱 막히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상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상의 정의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4장 9절
“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第一列王記
ところがあなたは、これまでのだれよりも悪いことをした。行って自分のためにほかの神々や鋳物(いもの)の像を造り、わたしの怒りを引き起こし、わたしをあなたのうしろに捨て去った。

시편 115편 4절~7절
4.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彼らの偶像は銀や金。人の手のわざにすぎない。
口があっても語れず目があっても見えない。
耳があっても聞こえず鼻があっても嗅げない。
手があってもさわれず足があっても歩けない。喉があっても声をたてることができない。

이사야 2장 8절~9절
8.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9.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イザヤ書
その地は偽りの神々で満ち、彼らは自分の手で造った物を、指で造った物を拝んでいます。
こうして人間はかがめられ、人は低くされます。彼らを赦さないでください。

자고로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여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출애굽기 20장 4절~6절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あなたは自分のために偶像を造ってはならない。上の天にあるものでも、下の地にあるものでも、地の下の水の中にあるものでも、いかなる形をも造ってはならない。
それらを拝んではならない。それらに仕え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神、主であるわたしは、ねたみの神。わたしを憎む者には父の咎を子に報い、三代、四代にまで及ぼし、
わたしを愛し、わたしの命令を守る者には、恵みを千代にまで施すからである。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형상이든지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절하지 말고 그것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だれも二人の主人に仕えることはできません。一方を憎んで他方を愛することになるか、一方を重んじて他方を軽んじることになります。あなたがたは神と富とに仕えることはできません。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비교하셨습니다만,, 이는 단순히 하나님과 돈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좀 쉽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이 많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이렇게 질문을 드리면 현명하신 여러분께서는 “하나님도 잘 섬기고 재물도 많으면 더욱 행복하다”라고 말씀을 하시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생각이요, 재물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가진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섬긴다> 즉 <귀하게 여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 영적인 생각과 육신의 생각을 동등하게 귀하게 여길 수는 없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로마서도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5절~6절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肉に従う者は肉に属することを考えますが、御霊に従う者は御霊に属することを考えます。
肉の思いは死ですが、御霊の思いはいのちと平安です。

로마서 8장 8절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肉のうちにある者は神を喜ばせることができません。

사람들은 우상을 섬긴다는 것에 대해서 무슨 사람이나 이상한 것을 세워 놓고 거기에 절을 하는 것만을 우상숭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상숭배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왜 우상숭배가 죄가 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가 내 생각대로 내 방식대로 행하려고 하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우상숭배의 시작은 어디냐 하면 바로 에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善悪の知識の木)에 대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창세기 2장 16절~17절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神である主は人に命じられた。「あなたは園のどの木からでも思いのまま食べてよい。
しかし、善悪の知識の木からは、食べてはならない。その木から食べるとき、あなたは必ず死ぬ。」

그런데 하와는 어땠습니까.

창세기 3장 6절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そこで、女が見ると、その木は食べるのに良さそうで、目に慕わしく、またその木は賢くしてくれそうで好ましかった。それで、女はその実を取 って食べ、ともにいた夫にも与えたので、夫も食べた。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 먹으면 죽어!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생각, 영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어땠습니까. 먹음지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아무리 내 생각에, 내 지식과 경험으로 판단하기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한 방법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하지마! 그 길로 가면 죽어! 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있을 것 같으신가요? 이는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는 것이요, 더 쉬운 말로 한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다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섬긴다고 하면서 한 쪽으로는 허고헌날 선악과를 우걱우걱 따먹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람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사람의 방법대로 하려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철저하게 훈련을 시키십니다.

오늘 말씀이 있는 사무엘상 7장에서도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상 7장 3절~4절
“3.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サムエルはイスラエルの全家に言った。「もしあなたがたが、心のすべてをもって主に立ち返るなら、あなたがたの間から異国の神々やアシュタロテを取 り除きなさい。そして心を主に向け、主にのみ仕えなさい。そうすれば、主はあなたがたをペリシテ人の手から救い出してくださいます。」
イスラエル人は、バアルやアシュタロテの神々を取り除き、主にのみ仕えた。

그랬더니 어떻게 됐다고 합니까.


사무엘상 7장 9절
“9.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サムエルは、乳離れしていない子羊一匹を取り、焼き尽くす全焼のささげ物として主に献げた。サムエルはイスラエルのために主に叫 んだ。すると主は彼に答えられた。

여기서의 어린 양이 무엇을 뜻합니까.

요한복음 1장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その翌日、ヨハネは自分の方にイエスが来られるのを見て言った。「見よ、世の罪を取り除く神の子羊。

그렇습니다. 어린 양은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우상을 헐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희생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통해서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상은 다름 아닌 내 생각,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우려고 하는 내 방법, 내 지식, 내 경험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なぜなら私は、あなたがたの間で、イエス・キリスト、しかも十字架につけられたキリストのほかには、何も知るまいと決心していたからです。

이는 바울이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당시 바울은 누구보다도 많은 지식과 학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식이나 학식이나 경험, 내 마음 속에 있는 우상들을 헐어버리고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앞세우겠다고 하는 바울의 강력한 고백인 것입니다.

요즘도 우체부 아저씨의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면, 그런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저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기쁜 소식을 가져다 준 저 오토아비 소리를 들으면 참 반갑게 들립니다. 하지만 반면에, 내가 온전히 순종하지 못해서, 내 생각을 앞세웠기 때문에 1년 내내 우체부 아저씨 오토바이 소리만을 기다려야 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その日、すなわち週の初めの日の夕方、弟子たちがいたところでは、ユダヤ人を恐れて戸に鍵がかけられていた。すると、イエスが来 て彼らの真ん中に立ち、こう言われた。「平安があなたがたにあるように。」

올 한해 많은 재난이 있었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적힌 올해의 한자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내년의 한자는 바꿀 수가 있습니다.

올해의 한자 1위가 <재앙 재>였다고 하는데, 2위는 <평평할 평>자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평창 올림픽의 <평>, 그리고 일본 현재 연호인 헤이세이가 이제 올해로 마지막이 될 테니 그 헤이세이의 <평>, 마지막으로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어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해서 평화의 <평>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의 새해 2019년의 한자는 평강과 평안(平隠と平安)을 누리는 <평>이 되어야 하지 않을 까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신뢰하여 평강과 평안을 누리고 주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은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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