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회 꾸짖으신 예수님
2019년 1월 27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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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 35절~41절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꾸짖으신 예수님” 叱りつけたイエス様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은 배에 타서 건너고 있는데 갑자기 큰 광풍이 불어왔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무슨 튼튼한 배도 아니고 그냥 나룻배나 고기잡이 배였을 텐데 물 위에서 광풍이 부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배는 위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오른쪽 왼쪽으로 심하게 흔들려요. 그리고 무슨 지붕이 있는 배도 아니었을 것이기에 물들이 배 안으로 넘쳐옵니다.

그들 중에는 베드로를 비롯해서 요한이나 야고보처럼 오랫동안 고기잡이를 해왔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배 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자신들의 자존심도 있겠지요. 그래서 그 때까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이나 경험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거 난리 났다고 하면서 뒤를 봤더니만, 뭐가 보여요? 예, 저 뒤편에서 예수님이 누워서 주무시고 계세요. 그 때 그 사람들의 심경이 어땠겠습니까.

아니, 지금 제정신이야, 뭐야. 자기가 선생이면 다야?
배를 좀 어떻게라도 해보려면 사람 손이 아쉬운 마당에 뒤에서 자고 있으면 어떡해?
이런 상황에서 잠이 와?

입으로 말이야 안 했겠지만 이렇게 다급한 상황에서 그런 생각이 안 들었겠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이 뭐라고 했대요?


오늘 말씀 중 38절 후반부를 봅니다.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弟子たちはイエスを起こして、「先生。私たちが死んでも、かまわないのですか」と言った。

차마 심한 말은 못하고, 선생님, 우리가 이렇게 죽게 됐는데 그냥 그렇게 주무시고 계실 겁니까. 좀 어떻게 해보세요……라고 한 것이지요.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음 구절을 봅니다. 39절입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イエスは起き上がって風を叱りつけ、湖に「黙れ、静まれ」と言われた。すると風はやみ、すっかり凪になった。

예수님께서는 그제서야 깨어나시더니 바람과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黙れ、静まれ>라고 하셨더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바람과 바다에게 명하여>라고 해도 될 것도 같은데 굳이 <꾸짖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래요. 뭐 이를 두고 글을 쓴 마가의 문학적 표현이라고 하면 그럴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같은 장면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등장합니다.


먼저 마태복음부터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마태복음 8장 26절 후반부입니다.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それから起き上がり、風と湖を叱りつけられた。すると、すっかり凪になった。

누가복음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8장 24절 후반부입니다.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イエスは起き上がり、風と荒波を叱りつけられた。すると静まり、凪になった。

이렇게 보면 오늘 말씀을 적은 마가만이 아니라 마태와 누가도 역시 <꾸짖었다>는 표현을 똑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큰 소리로 명하셨다……도 아닌 세 사람이 하나같이 <꾸짖었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두고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절묘한 것 같습니다.

복음서의 기록을 두고 신학자들 사이에는 정말 그들이 직접 보고 쓴 것인지, 아니면 누가 쓴 것을 보고 편집을 한 것인지 아직 다툼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런 어려운 논쟁들을 제쳐두고 단순히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이 세 사람이 보기에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는 것처럼 보였다고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보통 꾸짖었다고 한다면 상대방은 무슨 잘못이 있는 경우이겠지요. 물론 우리들은 모두 완벽하지 않은 사람인지라, 사람이 아무리 상대방을 꾸짖었다 하더라도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에 잘못이 있는지는 따져봐야겠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친히 꾸짖었다고 하셨으니 이는 100프로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우리는 봐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상대방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분명 바람과 바다입니다. 바람과 바다가 잘못을 했으니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신 것이라고 이해를 해야 하겠습니다만, 자, 그렇다면 바람과 바다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꾸짖으셨을까요. 오늘은 이 예수님의 꾸짖음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 바람과 바다의 잘못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좀 이상하긴 합니다만 일단 이해하고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바람과 바다가 잘못을 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이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하면 큰 돌풍과 파도 때문에 예수님께서 타신 배가 앞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즉, 돌풍과 파도는 결국 예수님의 앞길을 막았던 것이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옛날에 임금님이 가마를 타고 행차를 하는데 그 앞길을 막는다고 하면 살아 남겠습니까?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임금님도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가시고자 하는 그 앞길을 막는다고 하니, 제아무리 바람이나 바다다 할지라도 혼이 안 날 수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혼이 나야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뭐,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만, 제가 지금 하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린다 하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잠시만 더 들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 앞길을 막아 섰던 바람과 바다를 향해 꾸짖으셨습니다. 그 결과 바람은 고요해지고 바다도 잔잔해졌습니다. 그럼 이제 모두 해결된 건가요? 아닙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시간을 조금 앞으로 되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큰 돌풍이 불어봅니다. 심하게 파도가 휘몰아칩니다. 온 천지가 흔들립니다. 배도 겉잡을 수 없이 흔들립니다. 하지만 흔들린 것은 그 뿐이었나요? 아니에요. 그 외에도 흔들리고 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과 같이 타고 있던 제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증거는 바로 그들의 말이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5절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弟子たちは近寄ってイエスを起こして、「主よ、助けてください。私たちは死んでしまいます」と言った。

마가복음 4장 38절 후반부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弟子たちはイエスを起こして、「先生。私たちが死んでも、かまわないのですか」と言った。

누가복음 8장 24절 전반부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そこで弟子たちは近寄ってイエスを起こし、「先生、先生、私たちは死んでしまいます」と言った。

제자들은 오늘 일을 겪기 전에 그 때까지 예수님의 설교도 많이 들었습니다. 기적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과 한 배를 타고 있음에도 그들은 하나 같이 지금 자기들이 죽게 되었다고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보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던 것, 좌로 흔들 우로 흔들 하고 있던 것은 그들이 타고 있던 배만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바로 그들의 믿음 또한 폭풍 위에 떠 있는 배처럼, 아니 그보다도 더욱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서서 바람과 바다가 잘못했다고 했습니다만, 사실 바람이나 바다가 잘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바람은 단지 불었을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바다는 출렁거렸을 뿐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배도 흔들렸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무엇이 드러나게 되었냐 하면, 예수님과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이 아직도 얼마나 믿음이 부족했는가 하는 것이 여실히 탄로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보면 모두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8장 26절 전반부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イエスは言われた。「どうして怖がるのか、信仰の薄い者たち。」……

오늘 말씀 중 마가복음 4장 40절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どうして怖がるのですか。まだ信仰がないのですか。」

누가복음 8장 25절 전반부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イエスは彼らに対して、「あなたがたの信仰はどこにあるのですか」と言われた。

사실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대상은 바람과 바다가 아닌 아직도 여전히 작은 믿음만 가지고 있던 제자들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렇게 함께 있어주고 그렇게 많이 보여주고 그렇게 많이 들려주었는데도, 아직도 믿음이 그것 밖에 안 되느냐 하시면서 제자들을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보면, 물론 작은 건 그냥 한다 하더라도 좀 큰 치료를 하거나 아니면 수술을 할 때 환자를 보통 마취를 하지요? 그렇다면 마취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죠. 물론 환자가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만, 더욱 큰 이유는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난리 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환자가 아프다고 난리를 치고 도망가고 하면 어떻게 치료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고 꼼짝 못하도록 특별히 전신마취를 하는 것이지요.

출애굽 당시의 유대인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애굽을 빠져 나왔을 때에 그들은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이제 몇 백 년에 걸친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서는 애굽 정예부대가 추격해봅니다.

출애굽기 14장 11절~12절
“11.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そしてモーセに言った。「エジプトに墓がないからといって、荒野で死なせるために、あなたはわれわれを連れて来たのか。われわれをエジプトから連 れ出したりして、いったい何ということをしてくれたのだ。
エジプトであなたに『われわれのことにはかまわないで、エジプトに仕えさせてくれ』と言ったではないか。実際、この荒野で死ぬよりは、エジプトに仕えるほうがよかったのだ。」


그러자 하나님께서 구원을 하시지요.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민족을 모두 건너게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추격해오던 애굽 군대를 모두 홍해 바다에 잠겨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출애굽기 15장 1절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そのとき、モーセとイスラエルの子らは、主に向かってこの歌を歌った。彼らはこう言った。「主に向かって私は歌おう。主はご威光を極みまで現され、馬と乗り手を海の中に投げ込まれた。

이제 언제 그랬냐는 듯이 (手のひらを返したように)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감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같은 15장 22절~24절을 봅니다.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モーセはイスラエルを葦の海から旅立たせた。彼らはシュルの荒野へ出て行き、三日間、荒野を歩いた。しかし、彼らには水が見つからなかった。
彼らはマラに来たが、マラの水は苦くて飲めなかった。それで、そこはマラという名で呼ばれた。
民はモーセに向かって「われわれは何を飲んだらよいのか」と不平を言った。


아니, 얼마나 지났다고 또 모세를 원망합니까. 그 놀라운 기적을 직접 보고도 벌써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원망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들의 원망은 계속됩니다.

출애굽기 16장 2절~3절
“2.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そのとき、イスラエルの全会衆は、この荒野でモーセとアロンに向かって不平を言った。
イスラエルの子らは彼らに言った。「エジプトの地で、肉鍋のそばに座り、パンを満ち足りるまで食べていたときに、われわれは主の手にかかって死んでいたらよかったのだ。事実、あなたがたは、われわれをこの荒野に導き出し、この集団全体を飢え死にさせようとしている。」

출애굽기 17장 3절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民はそこで水に渇いた。それで民はモーセに不平を言った。「いったい、なぜ私たちをエジプトから連 れ上ったのか。私や子どもたちや家畜を、渇きで死なせるためか。」


민수기 14장 3절~4절
“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なぜ主は、われわれをこの地に導いて来 て、剣に倒れるようにされるのか。妻や子どもは、かすめ奪われてしまう。エジプトに帰るほうが、われわれにとって良くはないか。」
そして互いに言った。「さあ、われわれは、かしらを一人立ててエジプトに帰ろう。」

그들의 불평 불만은 끝이 없습니다. 이처럼 흔들리는 믿음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들을 전신마취 시켜버렸습니다. 40년 동안 꼼짝없이 광야 안에 가둬버리시고는 집중적으로 그들을 훈련시켰던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일이 있을 때 기뻐하는 거요? 믿음이 있어야 기뻐하나요? 아니에요. 믿음이 없어도 좋은 일이 있으면 기뻐합니다. 이는 마치 어린 애들한테 맛있는 사탕을 주면 좋아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자기가 좋아하는 맛있는 사탕을 주는데, 그걸 보고 좋아하기 위해서는 교양이 필요해요, 지식이 필요해요. 아니면 믿음이 필요해요? 아니요. 그런 것 없어도 기뻐합니다. 그냥 기뻐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진정한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은 그렇지 않을 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아브라함이나 야곱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막상 그 사이에 있는 이삭 이야기는 별로 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과소평가 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만 이 이삭을 보면 진정한 큰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6장 19절~22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9.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イサクのしもべたちがその谷間を掘っているとき、そこに湧き水の井戸を見つけた。
ゲラルの羊飼いたちは「この水はわれわれのものだ」と言って、イサクの羊飼いたちと争った。それで、イサクはその井戸の名をエセクと呼んだ。彼らがイサクと争 ったからである。
しもべたちは、もう一つの井戸を掘った。それについても彼らが争ったので、その名をシテナと呼んだ。
イサクはそこから移って、もう一つの井戸を掘った。その井戸については争 いがなかったので、その名をレホボテと呼んだ。そして彼は言った。「今や、主は私たちに広い所を与えて、この地で私たちが増えるようにしてくださった。」

너무나 대단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애써 우물을 팠어요. 그런데 다툼이 생겼어요. 다른 사람이 그걸 자기들 거라고 그런 거예요. 그러자 이삭은 싸웠대요? 아니요. 그냥 다른 곳에 우물을 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누가 시비를 걸어와요. 그랬더니 또다시 옮겨서 새로운 우물을 파고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는 이삭이 모자라서 그랬을까요? 아니요. 이러한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툼을 피하고 평안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큰 믿음 아니겠습니까. 이삭의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그는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한국이나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인기직업 1순위가 똑같다는 것이에요. 요즘 한국도 일본도 학생들 사이에서 공무원이 그렇게 인기라고 합니다. 물론 옛날에도 공무원 인기는 높았습니다만, 옛날에는 판검사나 외교관 같은 아무래도 고위공무원 인기가 높았지요. 하지만 요즘은 지방공무원, 중하급 공무원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이에 대해서 저희 집사람이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집사람 말이 이래요. 요즘 한국에서 9급 공무원이라도 되려면 조상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니, 목사 마누라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하고 따지려고 했더니, 그게 아니라, 한국에는 자기 집안 중에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사람이 있으면 그런 취직시험 같은 데에 가산점이 붙는 제도가 있는데, 그런 가산점이라도 받지 않으면 하위직이라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이 공무원이라는 직업과 일반 회사 직원을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일반 회사원의 경우 회사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보너스를 받거나 아니면 무슨 특별 휴가 같은 것을 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안 좋아지면 어떻습니까. 텔레비전을 보면 아무리 큰 회사라 하더라도 상황이 어려워지면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를 한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반면에 공무원은 어떻습니까. 세금이 많이 걷힌다고 보너스를 받나요? 아니면 특별 휴가? 그랬다가는 큰일 나죠. 그건 다 국민들이 내는 혈세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자금 사정이 어려진다 하더라도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 같은 것은 없지요.

한국이나 일본에서 공무원의 인기가 나날이 오르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리 큰 회사라 하더라도 일반 회사는 경기가 안 좋아지면 나와야 하는 반면, 공무원은 이와 같은 안정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공무원이라고 하는 마음 가짐을 갖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목사나 전도사가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안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안정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잠시 에스더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스더 4장 14절입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もし、あなたがこのようなときに沈黙を守るなら、別のところから助けと救いがユダヤ人のために起こるだろう。しかし、あなたも、あなたの父の家も滅 びるだろう。あなたがこの王国に来たのは、もしかすると、このような時のためかもしれない。」


역적 하만이 유다인들을 다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왕비 에스더에게 말하지요. 네가 지금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다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와 너의 집 가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는 말인데, 우리는 이 구절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을 믿어서가 아닙니다. 어떤 재산이나 세상적인 어떤 기득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은 언제든지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들이지요.

하지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 그와 같은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쓰셔서 주님의 일을 하실 수 있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큰 축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작은 배는 물이 조금만 출렁여도 흔들리고 뒤집힙니다만, 큰 배는 바람이 불어와도 파도가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작은 믿음은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 오더라도 믿음이 흔들리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큰 믿음은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와도 주님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의 작은 믿음을 보시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 것처럼 우리를 꾸짖으시면 어쩌시겠습니까.

아니,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것처럼 전신마취라도 하시면 어쩌겠습니까. 이는 정말 큰일 납니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하겠습니다. 気を強く持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

우리 모두 큰 믿음, 안정적인 믿음, 강한 믿음을 갖고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릴 때에 주님의 놀라운 축복, 큰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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