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회 닮음과 흉내
2019년 2월 17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닮음과 흉내” 倣うこととマネること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 개인적인 일이라도 참 송구스럽습니다만, 요즘에 제 주변을 보니 왜 이렇게 자꾸 고장 나는 것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맨 처음에는 프린터부터 시작했어요. 100엔샵에 보면 프린터 잉크를 이렇게 주입해서 쓰는 것을 파는데, 전도지도 뽑고 하니까 잉크 소모가 좀 빨리 되더라구요? 그래서 그걸 사서 좀 해볼까 했는데 영 좀 신통치가 않습니다. 프린터 움직임이 적지 않게 수상해요. 아무래도 뒤에서 잉크가 새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일 하고 있어요.

그러던 차에 얼마 전 갑자기 모니터 두 대 중에 한 대가 고장이 났습니다. 제가 모니터가 원래 두 대가 있었어요. 그 이유는 한국에서 컴퓨터 두 대를 가져왔는데, 하나는 이미 몇 년 전에 고장이 나서 못 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거기서 쓰던 걸 나머지 한 컴퓨터에 연결해서 두 대를 두고 쓰고 있었는데, 요즘 제 아내한테 일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남은 컴퓨터라고 하는 게 노트북 중에서도 작은 것, 이른바 넷북이라고 하는 컴퓨터인데, 속도도 느리지만 모니터가 작아요. 그래서 제가 있는 두 대의 모니터 중에서 하나를 떼어서 연결을 해주었습니다. 화면이 커지니까 아무래도 일을 하기가 수월하죠. 그런데 이게 하루 만에 갑자기 고장이 났습니다.

프린터도 속을 썩이고 그랬는데 왜 모니터까지 이렇게 고장이 났을까……그래, 뭐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러는 거겠지……라고 했는데, 마침 지난 주 화요일에 제가 집에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어요. 사실 지금까지도 몇 번 떨어뜨린 적도 있었거든요. 하물며 바깥에서 아스팔트 위에 떨어뜨린 적도 있었습니다만, 튼튼한 케이스 덕분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별 문제 없겠지……라고 했는데, 좀 보니까 액정 한 구석이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뭐 큰 문제가 있겠나……했는데, 점점점점 범위가 넓어 지더니, 저녁이 되니까 절반 정도가 퍼렇게 물들게 되었습니다. 그래,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보이니까 괜찮겠다 했는데, 다음날이 되니까 아예 화면이 보이지 않아요.

아……정말 그 때 심경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카카오톡에 보면 낙심, 좌절, 슬픔 같은 걸 표현한 이모티콘이 여러 개 있잖아요? 이걸 모두 다 합쳐놓은 심정……에 곱하기 5 정도라고 할까요? 참 암담합니다. 이 핸드폰은, 뭐 스마트폰 가지신 분들은 대부분 그렇시겠지만, 메일이나 메신저 뿐만이 아니라, 어딜 가려면 네비게이터로도 써야 하고, 은행 업무도 이걸로 해야 하고, 또 동영상 촬영도 스마트폰으로 해야 합니다.

참 순간 아찔하더라구요.

아니, 내가 요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할까……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하나님이 사탄한테 내 자랑을 하셨나보다……했습니다.

욥기 1장 8절~12절을 좀 바꾸어 보았습니다.

8.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홍 목사를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홍 목사가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주께서 그에게 프린터와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주셨기 때문이 아니니이까
11.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프린터와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프린터와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主はサタンに言われた。「おまえは、わたしのしもホン牧師に心を留めたか。彼のように、誠実で直ぐな心を持ち、神を恐れて悪から遠ざかっている者は、地上には一人もいない。」
サタンは主に答えた。「ホン牧師は理由もなく神を恐れているのでしょうか。
あなたが、彼のプリンター、モニター、そしてスマホをあげたからではありませんか。
しかし、手を伸ばして、彼のプリンター、モニター、そしてスマホを打ってみてください。彼はきっと、面と向かってあなたを呪うに違いありません。」
主はサタンに言われた。「では、ホン牧師のプリンター、モニター、スマホをすべておまえの手に任せる。ただし、彼自身には手を伸ばしてはならない。」そこで、サタンは主の前から出て行った。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하고 저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참고로 말씀을 드립니다만, 이런 저를 보고 제 아내는 욥의 처처럼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神を呪って死になさい。)” 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오히려 “이왕 망가질 거면 좀 넉넉할 때 망가지거나 하지, 왜 하필이면 이럴 때 망가지는지 모르겠네”라고 미안해하는 저에게 “괜찮아요. 여자들도 꼭 돈이 없을 때 화장품이 떨어져요”라는 말로 위로해주었습니다. 참 은혜가 넘치는 말씀입니다.

욥이 처음에는 큰 고난을 당하지만 마지막에는 큰 축복을 받지요.


욥기 42장 12절~15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12.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13.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14.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15.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主はヨブの後の半生を前の半生に増して祝福された。それで彼は羊一万四千匹、らくだ六千頭、牛一千くびき、雌ろば一千頭を持つことになった。
また、息子七人、娘三人を持った。
彼はその第一の娘をエミマ、第二の娘をケツィア、第三の娘をケレン・ハ・プクと名づけた。
ヨブの娘たちほど美しい女は、この地のどこにも見つからなかった。彼女たちの父は彼女たちに、その兄弟たちの間で相続地を分け与えた。

참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욥이 이처럼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욥이 고난을 받았기 때문일까요.

물론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시편 119편 71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苦しみにあったことは私にとって幸せでした。それにより私はあなたのおきてを学びました。

고난에 있어서 성경에는 많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난은 바울도 많이 받았고 그 외 선지자들 사도들 제자들도 많은 고난을 받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しかし、彼は私たちの背きのために刺され、私たちの咎のために砕かれたのだ。彼への懲らしめが私たちに平安をもたらし、その打ち傷のゆえに、私たちは癒やされた。

여기서 <그>라고 하는 분은 다름아닌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구약 중에서도 이 이사야서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대단히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못에 찔린 이유는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채찍에 상하신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징계를 받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채찍에 맞아야 하고 고통과 고난을 받아야 한다면,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과 고난의 80%나 90%를 받았고,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나머지 10%~20%의 고통과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과 고난은 모두 2천년 예수님이 십자가 위해서 100% 모두 받아 주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셨을 때, 우리에게 특별히 고난을 허락하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 스스로가 구원을 받기 위한 고난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하셔서, 특별히 허락하시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욥이 고난 끝에 이처럼 놀라운 축복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욥기 42장 5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私はあなたのことを耳で聞いていました。しかし今、私の目があなたを見ました。

욥은 고난이 끝난 후에 이처럼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이와 같은 고난을 당하기 전에도 그는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고난을 당한 후에 눈으로 주를 뵙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욥이 받은 큰 축복은 나중에 나오는 후손이나 재물에 대한 축복보다도 이처럼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는 축복이 진정한 축복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게 되는 축복. 이는 너무나도 큰 축복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고 합니다. 왜 빛이 났을까요. 오늘 말씀에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하게 적혀 있습니다.

오늘 말씀 출애굽기 34장 29절 중반부를 봅니다.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モーセは、主と話したために自分の顔の肌が輝きを放っている

하나님과 말을 하면 광채가 났다고 하는데, 하나님과 말을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죠. 기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기도를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 얼굴에 광채가 나십니까.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셨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 때 거울에 보니 얼굴에서 광채가 나던가요? 세수를 안 해서 기름이 번들번들 그래요? 에이, 그건 광채가 아니지요.

그렇다면 광채가 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성경대로 해석을 하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겠지요. 모세처럼 하면 됩니다. 모세가 어떻게 했어요? 예, 하나님과 말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어? 이상하네요. 나도 기도하고 그러는데 광채가 안 나요.

그렇다면 모세는 어느 정도 하나님과 함께 있었느냐 하면 바로 위 2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8절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モーセはそこに、四十日四十夜、主とともにいた。彼はパンも食べず、水も飲まなかった。そして、彼は石の板に契約のことば、十のことばを書きしるした。


자, 이제 큰일 났습니다. 얼굴에서 광채가 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대요? 예,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四十日四十夜、主とともにいた。彼はパンも食べず、水も飲まなかった。

쉽게 말해서 사십 일 동안 금식했다는 것입니다. 보통 금식하시는 분들 보면, 식사는 안 하시더라도 물은 많이 드시잖아요? 그런데 물도 안 마셨대요. 며칠 동안요? 예, 40일 동안이랍니다.

그러면 믿음이 좋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요? 예, 오늘부터 시작하는 건 좀 힘들 테니까 오늘 좀 넉넉히 먹어놓고 내일부터 40일 동안 물 한 방울 먹지 않고 금식을 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요? 예, 얼굴에서 광채가 날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유, 믿기는 뭘 믿어요.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노아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엘리사, 사무엘, 다윗, 베드로, 바울 요한 등등 뭐 끝도 없지요. 그 믿음의 사람들을 닮아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흉내를 내면 이건 곤란하지요.

그래, 모세가 40일 금식해서 얼굴에 광채가 났다니까 나도 40일 금식 한 번 해보자……이는 모세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세 흉내, 말하자면 모세 코스플레입니다. 모세를 닮겠다고 하면서 지팡이 들고 허허벌판을 돌아다니면서 바위를 지팡이로 치고는 물이 나오라고 소리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세는 하나님과 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누가복음 17장 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ただ中)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찾지 않아서인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7장 7절~8절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与えられます。探しなさい。そうすれば見出します。たたきなさい。そうすれば開かれます。
だれでも、求める者は受け、探す者は見出し、たたく者には開かれます。

우리는 어쩌면 이 말씀을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래,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된다. 우리한테 필요한 게 있으면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을 것이요, 열릴 것이다. 그래서 돈도 구하고 물질도 구하고 건강도 구하자……. 하지만 정말 구하는 대로 모두 다 받으셨습니까? 아니에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신 겁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마태복음 6장 33절과 연계시켜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まず神の国と神の義を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これらのものはすべて、それに加えて与えられます。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神の国と神の義を求めなさい)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이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더 쉽게 말씀 드리자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힘 쓰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고 난 후에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千匹の全焼のささげ物を献げた).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지요.

그 때 솔로몬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열광기상 3장 7절~9절
“7.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わが神、主よ。今あなたは私の父ダビデに代わって、このしもべを王とされました。しかし私は小さな子どもで、出入(でい)りする術を知りません。
そのうえ、しもべは、あなたが選んだあなたの民の中にいます。あまりにも多くて、数えることも調べることもできないほど大勢の民です。
善悪を判断してあなたの民をさばくために、聞き分ける心をしもべに与えてください。さもなければ、だれに、この大勢のあなたの民をさばく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


이 뜻이 무엇입니까. 주님, 제가 너무나 부족해서 이 백성을 다스릴 능력이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 재판할 능력을 허락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드렸던 것이지요. 지금은 대통령이나 총리가 재판을 하지는 않습니다만, 당시에는 왕의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재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재판을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그 나라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것과 같은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자신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택하신 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능력을 달라고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열왕기상 3장 11절~13절
“11.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神は彼に仰せられた。「あなたがこのことを願い、自分のために長寿を願わず、自分のために富を願わず、あなたの敵のいのちさえ願わず、むしろ、自分のために正しい訴えを聞き分ける判断力を願ったので、
見よ、わたしはあなたが言ったとおりにする。見よ。わたしはあなたに、知恵と判断の心を与える。あなたより前に、あなたのような者はなく、あなたの後に、あなたのような者は起こらない。
そのうえ、あなたが願わなかったもの、富と誉れもあなたに与える。あなたが生きているかぎり、王たちの中であなたに並ぶ者は一人もいない。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자, 그러면 솔로몬이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구했더니 이렇게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놀라운 축복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일단 솔로몬처럼 1천 번제를 해야겠지요? 번제……그러니까 짐승을 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드렸다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1,000이라고 하는 숫자가 회수인지 아니면 1000마리라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양이든 염소든 간에 집에서 1,000마리를 우리가 태울 수는 없고, 만약에 1000일 연속해서 드렸다는 것으로 한다면, 그래요. 편의상 1000일 새벽기도를 드린다고 합시다. 1000일이라고 하면 대략 2년 8개월 하고도 보름 정도 됩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짠~ 하고 나타나십니까. 그러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오~주님! 저에게도 이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도 역시 솔로몬 흉내, 솔로몬 코스플레입니다.

솔로몬이 이처럼 놀라운 축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열왕기상 3장 10절에 적혀 있습니다.

열왕기상 3장 10절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これは主のみこころにかなった。ソロモンがこのことを願ったからである。

솔로몬이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솔로몬이 구한 그 기도가 하나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의 고집을 세우는 것이요? 그래, 하나님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이게 기도 입니까. 아닙니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 마음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도의 목적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구할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알게 됩니다. 바로 그 때 구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는 마치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열쇠를 넣지도 않고, 아니면 열쇠를 넣었지만 돌리지도 않고 문을 열라고 아무리 해봤자 안 열립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마음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리 구하고 찾고 두드려봤자 몸만 피곤합니다. 두드리는 손만 아프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면, 모세처럼 어떻게 되요? 예,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이는 바로 우리 마음에서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빛이 나기 시작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 주변의 물건들이 막 고장 나는 것을 보고, 아……이제 하나님께서 욥한테 주신 고난을 나한테도 주시려는구나……하고 생각했다면 저는 이제 뭘 해야 해요?

욥기 2장 8절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ヨブは土器のかけらを取り、それでからだを引っかいた。彼は灰の中に座っていた。

예, 몸을 긁을 깨진 질그릇 조각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좀 괜찮은 피부병 의료보험에 가입하던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ㅎㅎ

하지만 이렇게 하면 뭐라구요? 예, 욥 흉내내기, 욥 코스플레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神を愛する人たち、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したがって召された人たちのためには、すべてのことがともに働いて益とな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지금은 안 좋은 일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사람들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닮아감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듯, 하나님을 본 욥의 삶에서 빛이 남으로 인하여 큰 축복을 받은 것 같이, 하나님 마음을 알게 됨으로 인하여 우리 마음에도 빛이 나고, 우리 삶 속에서도 빛이 나게 되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놀라운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169회 좋은 친구 예수님 →

← 제167회 창대한 축복의 시작

 

이카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