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회 감사라고 하는 명령
2019년 3월 10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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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전반부
“범사에 감사하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감사라고 하는 명령” 感謝という命令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먼저 여러분께 질문을 하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는 감사함을 알고 계신가요? 예, 우리는 감사함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함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감사를 해야 할까요. 그리고 또한 우리는 무엇에 대해서 감사해야 할까요.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전반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すべてのことにおいて感謝しなさい。

그렇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범사에……라고 하는 뜻은 모든 일에……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가 느끼기에 좋은 것처럼 생각되는 일은 물론이지만, 반대로 우리가 느끼기에는 안 좋은 것처럼 생각되는 일도 역시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이 말씀은 분명히 명령형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 명령형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명령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명령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지시나 권장(推奨)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지시나 권장은 여기에 따르면 좋은 것이고 따르지 않을 경우에 불이익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처벌 당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명령은 어떻습니까. 이는 자신에게 이익이 있든 없든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 명령입니다. 만약에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는 책임이 발생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처벌을 받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여러분께서 오늘 교회에 오실 때 보면 반드시 몇 개 이상의 신호등을 지나오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파랑신호와 빨강신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파랑신호는 진입(進め), 빨강신호는 정지(止まれ) ……이라고 하는 차이는 누구나 다 알고 있겠지만, 이 두 신호의 차이는 그 내용만이 아니라 성격에 있어서도 대단히 큽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파랑신호는 허가인 반면 빨강신호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 위해서 보행자 신호를 한 번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보행자 신호가 파랑이에요. 그럼 반드시 건너야 하는 건가요? 아니, 난 이쪽 방향인데 보행자 신호가 저쪽이 파랑이 되었어요. 그러면 건너야 해요? 아니요. 건널 수도 있지만, 안 건너도 됩니다. 파랑신호는 <건널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빨강신호는 다릅니다. 빨강신호는 건너면 안 되지만 건너도 됩니다……가 아니에요. 빨강신호는 <절대로 건너서는 안 된다>라는 뜻입니다. 이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파랑신호는 건널 수 있다고 하는 <허가>인 반면에 빨강신호는 건너지 말라고 하는 <명령>인 것이지요.

여기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는데, <허가>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 받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운전면허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많으시겠지요? 지난 달에 저희 아내도 드디어 일본면허로 전환을 했습니다만, 면허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면허를 가지고 있는데 운전을 안 하면 처벌 받나요? ㅎㅎ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운전면허는 어디까지나 <운전을 할 수 있는 허가>이지 <운전을 해야만 한다>는 <명령>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명령>을 어기면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건너지 말라>라고 하는 빨강신호의 <명령>을 어기면 이는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은 허가가 아닙니다. 감사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게 아닙니다. 감사 안 한다 해도 괜찮다는 것도 아닙니다. 감사를 하지 않으면 큰 일 난다, 앞서 살펴본 신호등 이야기로 본다면 <처벌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바로 이 명령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지금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없어요? 누가 거짓말을 하래요? 여러분, 저는 부족한 것이 있을 것 같습니까. 없을 것 같습니까. 없을 것 같으세요? 뭐,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기는 뭐하지만 부족한 것이 이만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편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시편 23편 1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主は私の羊飼い。私は乏しいことがありません。

자, 성경에 이렇게 적혀 있으니, 우리는 이처럼 지금 부족한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해요?

아아, 주님! 저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억지로 고백해야 하는 것인가요?

앞서 말씀 드렸던 것을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래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사실은 내가 무척 부족하지만 부족하지 말라고 하니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또는

“범사에 부족하더라도 부족하지 않다고 말하라”

성경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부족함이 있을 때에는 항상 돌아가는 성경구절이 어디여야 하겠습니까.

마태복음 6장 31절~32절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ですから、何を食べようか、何を飲もうか、何を着ようかと言って、心配しなくてよいのです。
これらのものはすべて、異邦人が切に求めているものです。あなたがたにこれらのものすべてが必要であることは、あなたがたの天の父が知っておられます。

바로 이 구절로 우리는 돌아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도 “하이고, 하나님이 알긴 뭘 알아요” 라고 하시겠어요?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에요. 모든 말씀은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면서까지 우리에게 하시고자 했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고 계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지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채워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남녀 어린아이 다 합해서 200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민족,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200만명 구출작전을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9절~10절
“9.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今、見よ、イスラエルの子らの叫びはわたしに届いた。わたしはまた、エジプト人が彼らを虐げている有様を見た。
今、行け。わたしは、あなたをファラオのもとに遣わす。わたしの民、イスラエルの子らをエジプトから導き出せ。」

자, 지금 모세 나이 80입니다. 지금 이 할아버지가 뚜벅뚜벅 가서 애굽의 황제 바로를 만나서, 저기 여보시오. 당신 나라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풀어주시오……. 이렇게 말하면 바로가 아이구,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거행 하겠사옵니다……라고 할 것이라는 상상이 됩니까? 안 됩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이는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이를 위해 누구를 붙여주셨다구요? 예, 모세의 형인 83살 먹은 아론 할아버지를 붙여주셨어요. 그러면 가능합니까? 아니에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이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죽으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모세한테 무엇을 주셨습니까.


출애굽기 4장 2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主は彼に言われた。「あなたが手に持っているものは何か。」彼は答えた。「杖です。」

출애굽기 4장 17절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また、あなたはこの杖を手に取り、これでしるしを行わなければならない。」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냐 하면, 모세야, 너 오른손에 쥔 게 뭐야? 그러니까, 모세가, 지팡이…인데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래. 그거 가지고 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팡이 하나 가지고 가래요.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었던 지팡이인데, 그거 하나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안 됩니다.

자, 그러면 모세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음 2개 중에 골라보세요.

1번. “주여! 이것으로는 너무나도 부족하오니 애굽을 이길 수 있는 10만 군대, 100만 군대를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한다. 이 기도를 안 들어주면 들어줄 때까지 기도한다.

2번. 애굽으로 간다.

어느 쪽이 정답이겠습니까.


예, 2번이 정답입니다. 왜요? 너무 무모하지 않나요? 그런데 왜 2번이 정답인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고 하셨기 때문에 모세는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좀 더 들어가볼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믿고 간 모세는 마침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는 데에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그가 블레셋 군대의 영웅 골리앗 앞에 섰을 때 다윗의 나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만, 적어도 군대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온다고 해서 형들은 전쟁터로 나갔습니다만, 다윗은 아직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형들의 도시락배달을 나갔던 것입니다. 거기서 만난 것이 바로 골리앗이었습니다.

블레셋 군대의 전쟁 영웅 골리앗, 그리고 군대에도 못 갈 정도로 나이가 어렸던 다윗의 한판 승부. 이는 누가 보더라도 뻔한 승부였습니다. 승부가 시작하자 마자 골리앗의 공격으로 다윗의 몸은 그 흔적 조차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겨지는 비참한 광경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여~ 저 골리앗을 물리칠 군대를 보내주시옵소서~!” 라고 기도를 해야 합니까.

물론 그런 기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저기 눈앞에 골리앗이 쳐들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무엘상 17장 45절~47절

“45.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ダビデはペリシテ人に言った。「おまえは、剣と槍と投げ槍を持って私に向かって来 るが、私は、おまえがそしったイスラエルの戦陣の神、万軍の主の御名によって、おまえに立ち向かう。
今日、主はおまえを私の手に渡される。私はおまえを殺しておまえの頭を胴体から離し、今日、ペリシテ人の軍勢の屍を、空の鳥、地の獣に与えてやる。すべての国は、イスラエルに神がおられることを知るだろう。
ここに集まっているすべての者も、剣や槍がなくても、主が救いをもたらすことを知るだろう。この戦いは主の戦いだ。主は、おまえたちをわれわれの手に渡される。」

이렇게 말하고 어떻게 했대요?


그 다음 48절~49절입니다.
“48.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そのとき、そのペリシテ人はダビデの方に近づき始めた。ダビデは、すばやく戦場を走って行き、ペリシテ人に立ち向かった。
ダビデは手を袋の中に入れて、石を一つ取り、石投げでそれを放って、ペリシテ人の額を撃った。石は額に食い込み、彼はうつぶせに地面に倒れた。

갑자기 음악소리가 짜잔~ 울려 퍼지더니, 하늘에서 빛이 나고 물매가 쫘악 내려왔대요? 아니에요. 물매는 이미 다윗이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을 가지고 골리앗을 물리친 것입니다.

모세나 다윗이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모자라고 하는 불평이나 투정이 아닙니다.

주님, 지금 내게 있는 것이 족합니다. 부족하면 주님께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고 담대하게 애굽 바로를 향해서, 블레셋 골리앗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지정한 믿음의 용사인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인 무엇인지를 가끔 모를 때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는 있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하지만 이는 대단히 위험합니다. 이를 모르면 감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이삭에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는데, 에서와 야곱입니다. 먼저 나온 에서가 형이 되고, 간발의 차이로 나중 나온 야곱이 동생이 되었습니다.

간발의 차이이긴 하나 형은 형입니다. 에서는 아브라함의 축복을 이어나갈 장손이었습니다. 장자였습니다. 이는 대단히 큰 축복이었습니다. 돈을 주고 살래야 살 수도 없는 축복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이것이 그렇게 큰 축복인줄 몰랐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지요. 자기는 아무런 노력도 안 했어요. 태어나서부터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되냐 하면 결국에는 이 권리를 떡과 팥죽 한 그릇을 대가로 야곱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창세기 25장 33절~34절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ヤコブが「今すぐ、私に誓ってください」と言ったので、エサウはヤコブに誓った。こうして彼は、自分の長子の権利をヤコブに売った。
ヤコブがエサウにパンとレンズ豆の煮物を与えたので、エサウは食べたり飲んだりして、立ち去った。こうしてエサウは長子の権利を侮った。

이는 단순히 어떤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장자의 명분은 사람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입니다. 그런데 이를 가볍게 여긴 에서는 결국 언약의 족보, 아브라함의 계보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에서의 하나님이 될 수도 있었지만, 결국 그 장자의 명분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알았던 야곱으로 권리는 넘어가서 야곱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また、だれも、一杯の食物と引き替えに自分の長子の権利を売ったエサウのように、淫らな者、俗悪な者にならないようにしなさい。

이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당연하다, 별것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에서는 자신을 장자로 선택해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를 한 번도 안 해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을 가볍게 여겼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 자체를 가볍게 여겼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이를 당연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여겨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지금 무엇을 가지고 계십니까. 요즘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가지고 계시지요? 성능으로 보자면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나 다윗이 가지고 있던 물매에 비하겠습니까. 그리고 대부분 자동차를 타고 오시거나, 대도시 같으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시잖아요? 그것을 아무리 과거 이집트 황제가 타는 병거라 하더라도 속도나 안전성이 거기에 비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감사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성년자 다윗는 물매로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할아버지 모세는 지팡이 하나로 200만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큰 일을 해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앞서 명령과 허가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 중에서 명령은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씀 드렸지요. 이 점에 대해서는 세상 법이나 믿음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명령을 지키면 상을 주나요? 여러분, 걸어가다가 빨강신호 지킨다고 경찰한테 칭찬 받아본 적 있으세요? 아니요. 이 세상 명령은 좀 이상한 말이지만 지켜봤자 본전입니다. 그러나 어기면 처벌을 받게 되지요.

반면에 믿음의 명령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 혼이 날 수도 있지만, 명령을 지키면 크나큰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넘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명령할 때에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나라가 나한테 빨강신호를 지키라고 했는데 내가 안 지켰어요. 그러면 나라가 책임져 주나요? 아니에요.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이것을 안 지키면 누가 책임을 져요? 예, 하나님이 지십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책임을 지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을 하셨어요. 그런데 인간이 명령을 안 지키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저주를 받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그 책임을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지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항상 감사하라는 명령, 이것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항상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성경에 기록된 놀라운 축복, 넘치는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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