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5회 옳은 길
2019년 4월 7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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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옳은 길” 正しい道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 광고 말씀을 드린 것처럼 저희 집사람이 잠시 한국을 방문을 하게 되어서, 지난 목요일에 생전 처음으로 이바라키 공항이라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이바라키 공항이라고 하니 당연히 이바라키 현에 있는 공항입니다만, 지금까지는 그냥 하네다나 나리타를 이용했었는데, 조금이라도 저렴한 항공편을 알아보려 하니까 이바라키 공항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에는 처음으로 그곳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뭐, 주지하시는 바와 갈이 일본은 고속도로 요금이 좀 비싸잖아요. 그래서 뭐, 이른 시간도 아니고 해서 이번에도 여느 때와 같이 일반도로로 갔다 왔습니다. 편도 3시간 반 정도 걸리더라구요.

도중까지는 꽤 괜찮았습니다. 여기 군마에서 보자면 계속 동쪽으로 가는 것이죠. 군마에서 토치기로 해서 이바라키로 들어서기까지는 제법 넓은 길로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바라키에서 좀 가다보니까 길이 심상치가 않아요. 꽤 좁더라구요. 그래도 뭐 이렇게 가다가 보면 넓어지겠지 했는데, 왠걸……좀 가다보니까 시골 주택가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고 있어요. 가끔 보면 저쪽에서 오는 차와 서로 닿을 수도 있을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조심조심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뭐 그냥 가고 있는데, 옆에서 집사람이 좀 불안해하는 것 갈더라구요. 제가 지금 어디를 가고 있었다구요? 예, 전철 역도 아니요, 고속버스 터미널도 아니요, 공항입니다. 그런데 지금 차는 어디를 지나고 있냐 하면 정말 그야말로 시골 농촌 주택가 골목길들을 계속 지나고 있었어요.

집사람은 제게 물어봅니다. 이 길이 맞냬요. 그래서 저는 맞다고 괜찮다고 하지요. 그렇다고 제가 그 길을 가본 적이 있어요? 아니요. 처음 갑니다. 정말 제가 보더라도 불안해 할만 해요.

그 길이 공항은 고사하고 무슨 산속 온천 휴양지에 가는 길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저는 그래도 자신 있게 갔습니다. ……솔직히 저도 좀 불안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멈춰 서서 우물쭈물할 수가 없었지요. 왜 제가 앞으로 갈 수 있었을까요. 이유야 간단하죠. 나비가 가라고 하니까 그대로 간 것입니다.

정말 어느 정도냐 하면요. 나비에 보면 목적지 도착 시간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10분 뒤면 도착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전혀 공항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아요.

하지만 어땠을까요. 예, 참 놀랍게도 공항이 나오더라구요. 그런 곳에 공항이 있을 줄이야 정말 몰랐습니다. ㅎㅎ

우리 성경을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 6절입니다.

로마서 8장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肉の思いは死ですが、御霊の思いはいのちと平安です。

아멘. 그렇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제가 지난 번에 이바라키 공항에 가는 길을 예로 본다고 한다면 육신의 생각은 제가 운전하면서 앞을 바라보았을 때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앞을 바라보았을 때 간판이나 표지판이 큼지막하게 있으면 참 감사하겠습니다만, 이 공항에 갈 때를 보니까는요, 거의 도착할 때까지 공항 간판이 안 나오더라구요. 그런 상황에서 아, 이쪽 길이 왠지 좀 넓으니까, 저쪽 길이 왠지 좀 예쁜 꽃도 피었으니까, 이쪽 길이 왠지 공항으로 이어지는 길처럼 생겼으니까…….

만약에 이런 식으로 길을 선택했다면 저는 아마도 아직까지 공항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리고 또 집으로도 못 돌아오고, 아마 이 시간까지 저기 이바라키나 토치기현 산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무사히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 나비를 보았습니다. 거기서 길을 알려주어요. 실제로 육안으로 앞을 보면 아무 것도 안 보이지만, 나비를 보면 올바른 길 쪽으로 줄이 쭈욱 쳐져 있습니다. 그 줄 따라서 가면 되는 거예요.

어디 그 뿐인가요. 왼쪽으로 꺾을 일이 있으면 한 번만 말하지 않습니다. 약 300미터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집니다. 조금 더 가면 이제 곧 왼쪽으로 꺾어집니다. 사거리에 가면 왼쪽입니다……. 이처럼 몇 번씩 말해줍니다. 잘못 갈래야 갈 수가 없어요. 그리고 또 만에 하나 골목을 놓치잖아요? 그럼 또 새로운 길을 찾아서 알려줍니다. 정말 다른 길이 없으면 유턴 하라고 난리에요.

그런데 만약에 그런 나비가 시끄럽다고 꺼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어디 운전 한 두 번 하냐……하고 스위치를 꺼버리면, 예, 그렇습니다. 영영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나비는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 성경,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13장 9절~11절을 봅니다.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全地はあなたの前にあるではないか。私から別れて行ってくれないか。あなたが左なら、私は右に行こう。あなたが右なら、私は左に行こう。」
ロトが目を上げてヨルダンの低地全体を見渡すと、主がソドムとゴモラを滅 ぼされる前であったので、その地はツォアルに至るまで、主の園のように、またエジプトの地のように、どこもよく潤っていた。
ロトは、自分のためにヨルダンの低地全体を選んだ。そしてロトは東へ移動した。こうして彼らは互いに別れた。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서로 헤어질 때가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양보를 하지요.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내가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내가 왼쪽으로 가겠다…….이렇게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그런데 롯이 이렇게 앞을 보니까 정말 거기가 온 땅에 물이 넉넉한데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아더라…. 이는 정말 딱 보기에 땅이 윤택하고 풍요로워 보였다……제가 앞서 말씀 드린 식으로 말하자면 정말 딱 보이게 공항으로 연결된 길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가 어디래요? 예, 바로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보면 가끔 실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정말 믿음이 좋고 충성된 사람들이 많이 나오죠. 그런 분들을 존경하고 본받는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끔 보면 잘못을 저지르거나, 오늘 이 롯처럼 잘못 판단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그리 옳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잘못 판단한 경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인간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절대로 반복하지 않는다……라고 하면 우리는 옛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를 참고할 필요가 없지요. 그렇잖아요. 하지만 만약에 그랬다고 한다면 어쩌면 성경 중 대부분은 없어졌을 지도 모릅니다. 없어도 알아서 잘 하는데 굳이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닐 필요가 뭐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인간이 어떻습니까. 진화요? 진화는 무슨. 옛날에 했던 일들, 특히나 미련한 일들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옛 사람들의 실수는 우리에게 대단히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이끌려서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이제 가나안 땅 바로 직전까지 왔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이제 열두 명의 정탐꾼을 골라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합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어요. 무려 40일 동안, 그것도 열두 명을 시켜서 정탐을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자세히 보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중 열 명은 뭐라고 하냐 하면 대단히 절망적인 말을 합니다. 우리는 안 된대요.


민수기 13장 28절
“28.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ただ、その地に住む民は力が強く、その町々は城壁があって非常に大きく、そのうえ、そこでアナクの子孫を見ました。

민수기 13장 31절~33절
“31.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しかし、彼と一緒に上って行った者たちは言った。「あの民のところには攻め上れない。あの民は私たちより強い。」
彼らは偵察して来 た地について、イスラエルの子らに悪く言いふらして言った。「私たちが行き巡って偵察した地は、そこに住む者を食い尽くす地で、そこで見た民はみな、背の高い者たちだ。
私たちは、そこでネフィリムを、ネフィリムの末裔アナク人を見た。私たちの目には自分たちがバッタのように見えたし、彼らの目にもそう見えただろう。」

쉽게 말하면 뭐라는 거예요? 우리는 가나안 땅을 점령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정탐꾼 12명 중에서 10명의 보고였습니다. 딱 2명, 갈렙과 여호수아는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 10대 2에요. 7대 5도 아닙니다. 8대 4도 아니에요. 10대 2예요. 어느 쪽을 따르겠습니까.


10명은 점령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요? 육의 눈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민족들은 어쩌자고 합니까.

민수기 14장 4절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そして互いに言った。「さあ、われわれは、かしらを一人立ててエジプトに帰ろう。」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그게 제일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우리가 뻔히 질 전쟁을 한다는 것은 죽으러 간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하자면 여기서 개죽음 당할 바에야 차라리 모세가 아닌 새로운 리더를 뽑아서 애굽으로 돌아가서, 뭐 노예로 사는 게 여기서 이대로 죽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죠. 이해가 안 가요? 아니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땠습니까.

민수기 14장 6절~8절
“6.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すると、その地を偵察して来た者のうち、ヌンの子ヨシュアとエフンネの子カレブが、自分たちの衣を引き裂き、
イスラエルの全会衆に向かって次のように言った。「私たちが巡り歩いて偵察した地は、すばらしく、良い地だった。
もし主が私たちを喜んでおられるなら、私たちをあの地に導き入れ、それを私たちに下さる。あの地は乳と蜜が流れる地だ。

앞서 열 명은 자신들의 판단을 믿었습니다. 말하자면 나비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8절
8.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わたしが下って来 たのは、エジプトの手から彼らを救い出し、その地から、広く良い地、乳と蜜の流れる地に、カナン人、ヒッタイト人、アモリ人、ペリジ人、ヒビ人、エブス人のいる場所に、彼らを導き上るためである。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아름다운 땅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말씀을 그들은 믿었던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표지판이 있건 없건, 지금 길이 포장되어 있건 비포장도로건, 지금 길이 넓건 좁건 간에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그 길이 옳은 길이냐 아니냐, 그것 하나입니다.

옳은 길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에요. 딱 하나.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냐 아니냐.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4절
24.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狭い門から入るように努めなさい。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が、多くの人が、入ろうとしても入れなくなるからです。

그 옳은 길,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길을 오늘 말씀에서는 <좁은 문>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이 말씀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가난해야 한다. 맞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가난해야지 믿음이 좋은 것이요, 돈이 많으면 믿음이 안 좋은 건가요?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이바라키 공항에 가기 위해서는 좁은 길로만 가야 한다> 이게 맞습니까? 아니에요. 하지만 예수님을 잘 믿으려고 한다면 가난해야 한다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가난해야 하고 고생해야 하고, 그러면 나중에 죽어서 축복 받는다? 그럼 이 세상에서는요?

이름을 말씀 드리면 알 만한 일본 신학자가 있습니다만, 저는 이 분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된 책이 있길래 좀 앞을 읽어보았더니 이렇게 되어 있더라구요?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心の貧しい者は幸いです。天の御国はその人たちのものだからです。

이 말씀을 해석하기를, 성경은 내세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갖고 읽어야 한다면서, 이는 지금 현세에는 우리가 가난하다 하더라도 내세에는 천국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저는 여기까지 읽고 그만 닫아버렸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면 이 세상에서는 고생만 하고 죽은 다음에 축복을 받는다는 건가요?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병든 자가 고쳐달라고 하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어요.

응. 조금 참아. 나를 믿으면 지금은 좀 고생스럽더라도 나중에 죽고 난 다음에 천국 갈 거야……그러셨나요? 아닙니다. 모든 문제가 즉시 해결 되었습니다. 모든 질병이 즉시 나았습니다. 죽은 사람마저도 즉시 일어났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ただちに たちどころに

요한3서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愛する者よ。あなたのたましいが幸いを得ているように、あなたがすべての点で幸いを得、また健康であるように祈ります。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영혼이 잘 됩니다. 그러나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도 범사에 잘 되기를 주님께서는 원하고 계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을 믿으면서 맨날 질병을 앓고 있고, 가난에 찌들고, 인생에는 여전히 문제 투성인데 그런 사람이, 여보쇼……예수 믿으세요. 음? 예수 믿으면 어떻게 되는데? 그러면 응, 예수 믿으면 나 같이 돼……라고 하면 누가 믿겠냐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좁은 문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좁은 문이라 하더라도” “좁은 길이라 하더라도”입니다. 주님이 인도해주시는 길이 항상 비좁고 험난한 길이에요? 아닙니다. 때로는 넓은 길일 수도 있습니다. 평탄한 길일 수도 있습니다. 향기로운 길일 수도 있습니다. 화창한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길로 인도해주시면 어쩌겠습니까. 안 갈 거예요? 아이구, 저는 믿음이 좋아서 그렇게 넓고 좋은 길은 안 갈래요. 그냥 좁은 길만 갈래요……그러시겠습니까.

그것은 넓은 길만 가겠다는 것과 같은, 아니, 자칫하면 신앙적인 교만에 빠질 수도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리로 가라고 하면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라고 하면 저리로 가는, 그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이곳 일본에서 사역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왜 안 들겠습니까. 아…… 정말 이 길이 맞는 걸까…… 이거 되돌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이거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틀린 것 같지가 않아요. 왜요? 제가 잘 났기 때문에요?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예, 성경에서 벗어난 것 같지가 않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자다가 생각해도 이 길이 틀린 것 같지가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 가야죠. 성경이라는 이름의 나비를 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그 길이 바로 옳은 길이요, 그 길이 바로 축복된 길이라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고난 당하는 일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큰 고난은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이미 십자가 위에서 모두 당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인생에 있어서 고난을 당하는 것 같으신가요? 물론 우리 인생에서 고난도 있지요. 하지만 그 고난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에 비하면 그냥 흉내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인가요? 아니요. 그 흉내만 내더라도 주님께서는 큰 축복으로 갚아주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고난을 당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순종의 결과,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결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넓은 길이냐 좁은 길이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옳은 길이냐 아니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옳은 길은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길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길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마침내 주님께서 예비하해주신 땅, 예비해주신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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