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회 부활하셨기 때문에
2019년 4월 21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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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0절~31절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부할하셨기 때문에” 復活されたから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지난 주에는 블랙홀 뉴스가 계속 나오더니 지난 주 뉴스에서는 어떤 내용이 많이 나오던가요? 뭐,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세계적으로 공통된 내용은 대부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소식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현지시간 4월 15일 오후 6시 넘어서 발생한 이 화재로 그 성당의 상징인 청탑과 지붕이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1163년부터 세워지기 시작해서 완성된 것이 1345년이라고 하니까 182년 만에 세워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345년이라고 하면 지금으로부터 670년 이상 전의 건물이라고 하니 역사가 깊은 건물입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국보급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건물이 불에 타고 청탑이 불길 때문에 넘어가는 모습을 많은 분들이 보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저도 참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특히나 고난주간에 교회 건물이 불에 탄다는 것 자체가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상에는 워낙 남 말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마 이번 일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말을 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20년 정도는 전의 일일 것 같습니다. 그 때 어떤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세운 교회에 대해서 말이 나왔습니다.

그 분이 하시는 말에 의하면, 보통 한국에 보면 이렇게 교회가 있으면 건물 꼭대기에 십자가 탑을 세워놓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다른 사람들은 피뢰침을 세워놓는데 자기는 세워놓지 않는대요.

왜냐하면 만약에 교회가 번개를 맞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벌하셨다는 뜻인데, 자기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교회 십자가 탑에 피뢰침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 그 이웃에 사시는, 역시 개척교회 목사님이 계셨는데, 이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감명을 받으셨나 봐요. 그래서 그 이웃 목사님도 건물 옥상에 십자가 탑을 세워놓으시고는 피뢰침을 안 달아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왜요? 예, 믿음이 있으니까요.

피뢰침이라는 것은,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피뢰……사실 글자는 번개를 피한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번개를 피한다기 보다는 번개로 인한 피해를 피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피뢰침을 이렇게 세워두었는데, 번개가 거기에 맞으면, 말하자면 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흘러 보내기 때문에 그 밑에 있는 시설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이웃 목사님이 세우신 십자가 탑에 번개가 떨어졌어요. 그게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 십자가 탑이 쇠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제게 말을 해 주신 목사님이 그 번개를 맞은 십자가 탑을 보니까는 완전히 무슨 엿가락처럼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웃 목사님이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기 집에 왔었는데, 결국 아무런 위로의 말도 못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기껏 벼락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얘기했었는데 그 분의 교회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 교회가 저주를 받았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제가 그 목사님한테 물어봤지요. 그 이웃 목사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정말 무슨 나쁜 짓을 하신 분이셨는지 말이에요. 그랬더니 아니래요. 전혀 그렇지 않고 대단히 성실한 분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교회에 벼락이 떨어지니 자기도 해줄 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당시 성경에 대한 지식이 지금보다도 훨씬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그렇구나 했습니다.

여러분께 하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교회 건물을 지을 때 높은 곳에 피뢰침을 달아야 합니까, 아니면 안 달아야 합니까.

조금 질문을 바꿔볼까요? 교회 건물을 지을 때에 피뢰침을 달면 믿음이 적은 것입니까, 아닙니까.

성경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신명기 22장 8절을 봅니다.

신명기 22장 8절
“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新しい家を建てるときは屋上に手すりを付けなさい。だれかがそこから落ちても、あなたの家が血の責任を負うことの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ある。

흥미롭지 않습니까? 아니, 믿음이 있으면 난간을 달 필요가 뭐가 있어요. 기도하면 사고가 안 일어나는데. 그렇잖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굳이 이처럼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면 교회를 지을 때에 성경에는 난간을 만들라고 되어 있으니까 난간은 만들지만,

“새 교회를 세울 때에 피뢰침을 만들어 벼락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新しい教会を建てるときは屋上に避雷針を付けなさい。

라는 말씀은 없으니까 피뢰침은 안 만드나요? 그럼 스프링클러는요? 소화전은요?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볼까요? 교회 가는 길입니다. 얼마나 거룩한 길이에요. 자동차 안전띠를 매야 합니까, 안 매도 됩니까. 안 매도 되지만 법이 매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매야 해요? 아니, 믿음이 있으면 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안전벨트를 안 해도 사고가 안 나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경찰 단속에도 안 걸리도록 지켜주실 것 아니에요?

사실 이런 건 정말 우스갯소리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와 같이 생각하는 분들, 그러니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하겠지요. 하나님께서 기껏 주신 지혜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불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곧 하나님의 저주다, 벌 받은 것이다, 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예를 들어서 현대에 있어서 위대한 목사님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미국의 무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1871년에 발생한 시카고 화재로 인해서 교회가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인가요? 아닙니다. 오히려 이 일로 인해서 무디 목사님은 더 큰 교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요.

다시 말해서 교회에 불이 났다고 해서 그 교회가 저주를 받았다는 둥 벌을 받았다는 둥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그러나 말입니다. 텔레비전 화면을 보니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불 타는 건물을 향해 촛불을 들고 기도를 하거나 성가를 부르는 모습들도 보았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 저는 좀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물론 그 건물은 카톨릭 성당이었기 때문에 그 분들의 생각은 우리와 다를 수가 있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보았을 때, 교회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또한 대단히 흥미로운 곳이 있는데 어디냐 하면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했을 때의 장면입니다. 애초에 다윗이 성전을 세우려고 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말리셨죠.

그 이유가 역대상 22장 7절~10절에 나와 있습니다.

역대상 22장 7절~10절

7.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8.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9.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10.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ダビデはソロモンに言った。「わが子よ。私は、わが神、主の御名のために宮を建てる志を持ち続けてきた。
しかし、私に次のような主のことばがあった。『あなたは多くの血を流し、大きな戦いをしてきた。あなたがわたしの名のために家を建ててはならない。わたしの前に多くの血を地に流してきたからである。
見よ、あなたに一人の男の子が生まれる。彼は穏やかな人となり、わたしは周りのすべての敵から守って彼に安息を与える。彼の名がソロモンと呼ばれるのはそのためである。彼の世に、わたしはイスラエルに平和と平穏を与える。
彼がわたしの名のために家を建てる。彼はわたしの子となり、わたしは彼の父となる。わたしは彼の王座をイスラエルの上にとこしえに堅く立てる。』

그래서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왕이 된 다음에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건축을 시작한지 7년 뒤에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되는데, 이 성전의 모습이 열왕기상 6장에 나옵니다만, 이는 대단히 크고 화려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자, 이 성전이 완성한 다음에 솔로몬이 온 회중들을 모아 놓고 그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이 때 솔로몬의 기도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 기도 중의 일부를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일단 열왕기상 8장 29절~30절까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29.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そして、この宮、すなわち『わたしの名をそこに置く』とあなたが言われたこの場所に、夜も昼も御目(おんめ)を開き、あなたのしもべがこの場所に向かってささげる祈りを聞いてください。
あなたのしもべとあなたの民イスラエルが、この場所に向かってささげる願いを聞いてください。あなたご自身が、あなたの御住まいの場所、天においてこれを聞いてください。聞いて、お赦しください。


여기서 보면 이 곳을 향하여(この場所に向かって)……라고 나오는데 <이 곳>(この場所)은 바로 자기가 세운 하나님의 성전이 되겠지요. 그런데 여기를 보면 29절부터 50절까지 <이 곳> 같은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31절에는 <이 성전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この宮の中にある、あなたの祭壇の前に来て誓うなら、

33절에는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この宮であなたに祈り願うなら、

35절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彼らがこの場所に向かって祈り、御名をほめたたえ、あなたが苦しませたことによって彼らがその罪から立ち返るなら、

38절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この宮に向かって両手を伸べ広げて祈るなら、どのような祈り、どのような願いであっても、

42절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この宮に向かって祈るなら、

여기까지 보면 뭐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43절부터는 이제 솔로몬의 본색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43절에는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私が建てたこの宮で御名が呼び求め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知るでしょう。

44절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私が御名のために建てた宮に向かって主に祈るなら、


48절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私が御名のために建てたこの宮に向かって、あなたに祈るなら、

여러분, 이 기도를 들으시면 어떠십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 같으신가요? 이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그 앞에서 드린 기도인데, 아무리 봐도 무슨 새로운 교회를 지어놓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어설픈 담임목사님 기도로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적, 자신의 공로를 사람들한테 큰 소리로 알리는 기도, 자화자찬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높이는 기도지 어디가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입니까.
그 증거로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열광기상 9장에 나와 있습니다.

특히 열왕기상 9장 6절~9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6.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8.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9.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もし、あなたがたとあなたがたの子孫が、わたしに背を向けて離れ、あなたがたの前に置いたわたしの命令とわたしの掟を守らずに、行ってほかの神々に仕え、それを拝むなら、
わたしは彼らに与えた地の面(おもて)からイスラエルを断ち切り、わたしがわたしの名のために聖別した宮をわたしの前から投げ捨てる。イスラエルは、すべての民の間で物笑いの種となり、嘲(あざけ)りの的となる。
この宮は廃墟となり、そのそばを通り過ぎる者はみな驚き恐れてささやき、『何のために、主はこの地とこの宮に、このような仕打ちをされたのだろう』と言う。
人々は、『彼らは、エジプトの地から自分たちの先祖を導き出した彼らの神、主を捨ててほかの神々に頼 り、それを拝み、それに仕えた。そのため主はこのすべてのわざわいを彼らに下されたのだ』と言う。」

제가 솔로몬이었으면 좀 민망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솔로몬아 잘 했다. 사람들이 네가 지은 성전을 향해서 기도를 하면 내가 들어줄게……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성전이 헐릴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참 좀 재수없는 (縁起でもない)이야기가 아닐 수 없지요.

하지만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솔로몬이 사망한 다음 솔로몬의 불순종한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리고 결국은 바벨론에 의해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흔적도 없이 파괴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성전이란 무엇입니까. 정말 그야말로 솔로몬 성전이나 노트르담 대성당처럼 화려한 건물에 우아한 예술품이나 장식들이 있는 곳인가요? 그런 것은 사실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이사야 56장 7절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わたしの聖なる山に来 させて、わたしの祈りの家で彼らを楽しませる。彼らの全焼のささげ物やいけにえは、わたしの祭壇の上で受け入れられる。なぜならわたしの家は、あらゆる民の祈りの家と呼ばれるからだ。

골로새서 1장 18절~20절
“18.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また、御子はそのからだである教会のかしらです。御子は初めであり、死者の中から最初に生まれた方です。こうして、すべてのことにおいて第一の者となられました。
なぜなら神は、ご自分の満ち満ちたものをすべて御子のうちに宿らせ、
その十字架の血によって平和をもたらし、御子によって、御子のために万物を和解させること、すなわち、地にあるものも天にあるものも、御子によって和解させることを良しとし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교회에 있어서 화려한 건물이나 우아한 예술품, 장식 같은 것은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에 있는 이 벽화 같은 것은 이곳이 아직 미술관일 때에 바티칸에 있는 카톨릭 시스티나 성당을 본 따서 만들었기 때문에 있는 것이지, 이런 그림이나 벽화 같은 것과 그 교회의 가치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이요, 예수님께서 머리 되신 곳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20절도 봅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20절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まことに、もう一度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あなたがたのうちの二人が、どんなことでも地上で心を一つにして祈るなら、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父はそれをかなえてくださいます。
二人か三人がわたしの名において集まっているところには、わたしもその中にいるのです。」

이 곳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모여서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는 곳, 그 곳이 진정한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머리 되신 곳이 교회일까요.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길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으시길래 예수님을 구주라고 우리가 여기는 것입니까.

이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 질문을 던지면 교회에 다니시는 많은 성도님들이 <십자가>를 말씀하실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저도 항상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드리고 있듯이,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증명되었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셨고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걸로 된 건가요? 이걸로 이제 다 완성인가요? 아닙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서 끝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단순히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아주신 것 뿐입니다. 그러면 된 거 아냐? 라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더 중요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이것으로 인해서 죄 사함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들어가려고 입장료를 냈어요. 그러면 들어갈 수 있나요? 예를 들어서 동경 디즈니랜드 하루 이용권이 7,400엔인가 하는 것 같은데, 그 돈만 내면 들어갈 수가 있어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뭐가 필요하냐 하면, 그렇습니다. 반드시 입장권을 받아야 합니다. 입장권을 받지 못한다면 7,400엔이 아니라 몇십만엔을 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 30절~31절
“30.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私たちの父祖の神は、あなたがたが木にかけて殺したイエスを、よみがえらせました。
神は、イスラエルを悔い改めさせ、罪の赦しを与えるために、このイエスを導き手、また救い主として、ご自分の右に上げられました。

부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채찍에 맞아주셨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다 하더라도 우리의 죄가 용서받지 못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는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용서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부활인 것입니다. 부활이야말로 우리가 천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こういうわけで、いつまでも残るのは信仰と希望と愛、これら三つです。その中で一番すぐれているのは愛です。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부활 없이 믿음 없고, 믿음 없이 소망 없고, 소망이 없으면 사랑도 소용이 없습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이요, 주님 믿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요, 소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해서 우리를 위해 채찍에 맞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다 해결해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머리 되신 교회를 섬기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림으로 말미암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갖고,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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