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회 생명을 차지하는 믿음
2019년 6월 9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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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創世記 2章9節
“神である主は、その土地に、見るからに好ましく、食べるのに良いすべての木を、そして、園の中央にいのちの木を、また善悪の知識の木を生えさせた。”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생명을 차지하는 믿음” いのちを勝ち取る信仰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자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만드시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창조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2장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創世記2章9節
"
神である主は、その土地に、見るからに好ましく、食べるのに良いすべての木を、そして、園の中央にいのちの木を、また善悪の知識の木を生えさせた。"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장 16절~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創世記2章16節~17節
"
神である主は人に命じられた。「あなたは園のどの木からでも思いのまま食べてよい。
しかし、善悪の知識の木からは、食べてはならない。その木から食べるとき、あなたは必ず死ぬ。」"

이 말씀은 참으로 우리에게 큰 의문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껏 사람을 위해 그 아름다운 동산을 창조하셨다는데, 그렇다면 아름답고 먹기 좋은 열매만 나게 하는 나무만 만들어 놓으셨으면 좋았을 것을, 왜 굳이 먹으면 안 되는, 아니, 그냥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까지 만드셨을까, 하는 의문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이 엄중한 명령을 어김으로 인하여, 그들은 타락하게 되고 결국 우리까지도 이렇게 죄 속에서 허덕이게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낙원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근심걱정에 직면할 때마다, 아이, 참 왜 그 때 아담과 하와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질러가지고는 우리까지도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 그것보다도 하나님이 괜히 쓸데없는 것을 만들어놓으셔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게 된 건 아닌가.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런 나무를 만들어놓지 않으셨다면 아담과 하와가 그런 죄를 지을 일도 없었을 것이요, 우리도 이처럼 고생을 하면서 살아갈 일도 없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 아마도 저만 해본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 의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나무를 만들어놓으셨을까요. 천지를 창조하고 난 다음에 시간이 좀 남아서요? 아니면 에덴을 다 만들고 난 다음, 아직 재료가 좀 남아서,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그런 끔찍한 나무를 만들어 놓으신 것일까요?


저는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이건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덫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덫을 설치해 놓으시고, 만에 하나라도 아담과 하와가 명을 어기고 이 열매를 따먹는 날에는 저주를 내리기 위해서 마련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주장,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처음에는 이 주장에 문제가 전혀 없을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렇잖아요? 이 나무는 마귀가 심어놓은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친히 심어놓으신 것입니다. 우연히 생긴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 나무에 대해서 아담에게 경고를 하실 정도로 이 나무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아담과 하와를 위한 덫,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을 어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신 덫이라고 이해하는 데에 전혀 부자연스러운 점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요? 예,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하나님이, 그와 같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위해 덫을 놓으셨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덫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덫을 놓는 목적이라고 한다면 예를 들어서 사냥꾼이 덫을 놓을 경우, 이는 사냥감이 덫에 걸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 그렇다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사망에 이르는 나무를 심어 놓으신 이유가, 아담과 하와를 잡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이는 보통 일이 아닙니다.


사냥꾼은 덫을 설치해놓고 사냥감이 걸리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사망에 이르는 나무를 심어 놓으시고, 아담이나 하와가 그것을 먹기만을 호시탐탐 기다리고 계셨다? 요놈, 언제 먹는지 한 번 보자. 먹기만 해봐라. 내가 아주 끔찍한 저주를 퍼부어줄 테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셨다는 건가요?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공포의 하나님이지 무슨 사랑의 하나님이십니까.

이렇게 되면 성경의 앞뒤가 맞지 않게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이 점을 오해해서는 곤란하게 됩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저주 받기를 원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주? 아니요, 오히려 칭찬 받기를 바라고 계셨던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해주시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인내로 인한 순종”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인내”에 대해서 많은 기록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ヤコブの手紙 1章4節
その忍耐を完全に働かせ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は何一つ欠けたところのない、成熟した、完全な者となります。

누가복음 21장 19절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あなたがたは、忍耐することによって自分のいのちを勝ち取りなさい。


베드로후서 1장 5절~7절
“5.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第二ペテロの手紙 1章5節~7節
だからこそ、あなたがたはあらゆる熱意を傾けて、信仰には徳を、徳には知識を、
知識には自制を、自制には忍耐を、忍耐には敬虔を、
敬虔には兄弟愛を、兄弟愛には愛を加えなさい。

이처럼 인내에 대한 기록이 많은 이유는 믿음에 있어서 인내가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인내로 인한 순종으로 칭찬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단순히 나쁜 일을 안 하면 아, 저 사람은 인내심이 강하고 절제를 잘 한다고 칭찬을 받을까요?

예를 들어서 “낭비”를 안 한다고 칭찬을 듣는 사람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사람은 참 낭비를 안 해. 대단한 사람이야……이런 말을 듣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일까요.

일단 돈이 많아야겠지요. 돈이 많은데도 도박도 안 해요. 흥청망청 쓰지도 않아요. 부동산 투기 같은 것도 안 해요. 그러면 뭐 칭찬 받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돈이 없어요. 낭비를 하고 싶어도 할 돈이 있어야 하든지 말든지 하죠. 그러니까 할래야 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그 사람이 낭비를 안 한다고 칭찬을 받을 수 가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자기가 원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서 못하는 것이니 칭찬 받을 만한 일이 아니지요.


또는 생활이 대단히 건전한 사람을 봅시다. 예를 들어서 뭐, 어떤 인기 연예인이 있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 저 사람은 참 인기가 많고, 용모도 단정하고 성격도 기가 막히게 좋고, 매너도 좋은 사람인데 스캔들이 없어요. 사생활이 정말 깨끗해요. 아, 그러면 정말 칭찬 받을 만 하겠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인기도 없고 실력도 없고, 그리고 맨날 입고 다니는 건 구질구질하고 잘 씻지도 않아요. 거기다가 성격은 아주 안 좋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스캔들이 없어요. ㅎㅎ 그러면 칭찬 받을 일이 없겠지요.

이처럼 나쁜 일을 안 한다 하더라도, 할래야 할 수 없을 때 나쁜 일을 안 한다고 칭찬을 받지는 못 합니다.

오히려 나쁜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은 경우에 칭찬을 받을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나쁜 일……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바로 유혹입니다.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한 간략한 특징을 살펴보면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이 열매를 따 먹는 것을 하나님은 분명히 금하셨다는 점이요, 둘째는 아담과 하와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따먹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에 대해서는 명확하지요. 분명히 하나님은 따 먹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食べるとき、あなたは必ず死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에 대해서는 창세기 3장 6절을 봅니다.

창세기 3장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そこで、女が見ると、その木は食べるのに良さそうで、目に慕わしく、またその木は賢くしてくれそうで好ましかった。それで、女はその実を取 って食べ、ともにいた夫にも与えたので、夫も食べた。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먼저 따 먹은 것은 하와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따먹기 위해 절벽을 올라갔다거나 어디를 위험을 무릅쓰고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거나 하는 구절이 없어요. 여자인 하와에게 있어서도 그냥 손을 뻗어서 따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만 먹은 것이 아니라 사이 좋게 남편한테도 주었더니 좋다고 낼름 받아 먹었다는 것이지요.

아예 따 먹을래야 따 먹을 수 없었더라면 이를 먹지 않는다고 칭찬 받을 수 없었을 거입니다. 오히려 언제든지 따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내하기 때문에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어떻게 해야 칭찬을 받고 축복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간단합니다.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안 따먹으면 됩니다. 쉽죠? ㅎㅎ 그런데 사실 이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장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神である主は、その土地に、見るからに好ましく、食べるのに良いすべての木を、そして、園の中央にいのちの木を、また善悪の知識の木を生えさせた。

이 말씀은 참 읽으면 읽을수록 심오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신 에덴 동산의 어디에 두셨다고요? 예, 동산 정 중앙, 가운데에 심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생명나무도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정중앙에 있었다고 한다면 에덴 어디에 있어도 항상 눈으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는 나무가 몇 그루나 있었을까요? 한 대여섯 그루 정도 있었을까요?

창세기 1장에 적힌 천지창조 과정을 보면 하늘을 나는 새들, 땅에 움직이는 짐승들, 바다 물고기들이 모두 서식할 정도로 천지를 이미 만드시고, 그 중에도 특별히 아름다운 땅에 에덴을 창설하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수천, 수만의 아름다운 나무들로 가득 찬 곳이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나는 모든 나무 열매들은 다 먹어도 좋아. 하지만 에덴 가운데에 있는 딱 한 그루. 거기에 난 열매만 먹지 마. 그야말로 몇 천 분의 일, 몇 만 분의 일입니다. 이것만 안 먹는다면, 인내함으로 순종한다면 내 명령을 온전히 지킨 것으로 쳐줄게.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명령에는 반드시 상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세상 모두였습니다. 그리고 어디 그 뿐입니까.

사망이 없고 애통도 없고 아픔도 없고 영원히 이어지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넘치는 삶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死はなく、悲しみも、叫び声も、苦しみもなく

하지만 사람이 그와 같은 엄청난 축복을 받는 꼴을 누가 못 봅니까. 그렇습니다. 마귀 사탄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마귀 사탄은 우리가 받을 축복이 있다면 이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로채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온 힘을 다해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 공격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 공격방법은 하나도 안 바뀌었습니다. 그대로입니다. 그 이름은 바로 “유혹”입니다. 머리도 좋다는 마귀 사탄이 왜 공격방법을 안 바꾸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하지요. 이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유혹”이라는 무기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유혹이라는 이름의 무기를 이용하여 마귀 사탄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넘어뜨려 왔는지 모릅니다.

최초의 공격도 역시 유혹이었습니다. 마귀가 하와를 유혹합니다.

창세기 3장 5절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それを食べるそのとき、目が開かれて、あなたがたが神のようになって善悪を知る者となることを、神は知っているのです。」

정말 우리가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 한 마디에 하와는 그냥 넘어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유혹을 느껴본 일이 있습니까. 저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10년은 더 된 것 같습니다만, 옛날에 제가 어떤 사람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돈도 많은 부자였지요. 그런데 그 사람 집에 갔더니 거실에 어떤 물건이 이렇게 놓여 있었습니다.

글쎄요. 저는 평소에 일반적으로 물건이나 옷이나 자동차 같은 것에 대한 욕심이나 애착 같은 것은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거기에 딱 그 물건이…… 아니, 뭐 구체적으로 그게 뭐였는지는 자세히 말씀 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아무튼 그 중에서도 딱 제가 갖고 싶어하는 그 모델이 거기 놓여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뭐 장식해놓은 것도 아니고, 그냥 거실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는데, 또 마침 거실 조명이 오묘하게 비쳐서 참 예쁘게 보였습니다. 손으로 뻗으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내 주머니에 집어넣을 수도 있는 크기였지요.

바로 그 때, 기다렸다는 듯이 마귀는 속삭입니다.

“야, 지금 아무도 안 보고 있어. 저거 빨리 주머니에 넣어버려. 그럼 니 게 될 수 있어.”

여러분, 그것을 내 주머니에 넣으면 내 것이 될 수 있다. 사실인가요? 아닙니다.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내 것이 되기는커녕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될 지도 모르는 노릇입니다.

이런 유혹, 유치하다고 생각되십니까. 아니요. 얼마든지 있습니다.

요즘 뉴스에 보면 어떻습니까. 정말 끔찍한 사건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연일 이어지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주위에 혹시 미운 사람이 있습니까? 마귀가 속삭입니다.

“저 인간만 없으면 너는 행복해질 수 있어. 너는 평안해질 수 있어. 없애버려…….”

하지만 그 끔찍한 공포의 속삭임에 넘어간 사람들의 결말이 어떻습니까. 평안은 고사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 자신이 누리고 있던 자유와 인생 전부를 순식간에 잃어버리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극단적인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미운 사람이 있나요? 여러분께서는 저를 보시기에 어떻게 보이실지는 모르겠습니다.ㅎㅎ

저도 이렇게 무슨 대단한 것처럼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저도 성격이 상당히 좀 그렇습니다. ㅎㅎ 지금까지 되돌아보면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받기도 했지만 또한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머리 속으로 대충 상상이 가요.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면 이 사람이 가장 큰 상처를 입을까 하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면 내가 통쾌할 것 같아요. 아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입히는 것이지요. 그래서 해코지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 또한 유혹인 것입니다. 상처를 입혀보십시오. 해코지를 해보십시오. 통쾌하고 속이 시원해지기는커녕 상대방에게 증오가 싹틉니다. 복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오히려 더욱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 사탄의 수법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기준이 되는 것, 그 때 힘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말씀입니다. 성경말씀인 것입니다.

답답하십니까. 화가 나십니까. 또는 욕심이 나십니까. 유혹이 느껴지십니까. 어딘가에서 마귀의 속삭임이 들려오십니까. 우리는 이 때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肉の思いは死ですが、御霊の思いはいのちと平安です。

여러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단 두 가지입니다. 육신적인 방법, 세상적인 방법을 택하면 금방 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육신의 방법, 세상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확실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혹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까지도 빼앗길지도 모르는 무서운 유혹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 눈 앞에 두 나무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나무요 또 하나는 사망의 나무입니다.

생명의 나무는 영의 생각이요 사망의 나무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사망의 나무로 향하는 유혹을 뿌리치고, 영의 생각, 생명의 나무를 택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을 차지하고,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기쁨과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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