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회 의무입니까, 감사입니까
2019년 6월 2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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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ピリピ人への手紙 4章13節
“私を強くしてくださる方によって、私はどんなことでもできるのです。”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의무입니까, 감사입니까” 義務ですか、感謝ですか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들, 참 잘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오늘은 여러분께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오늘 교회에 오신 것, 의무라고 생각하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권리라고 생각하고 오셨습니까.

의무와 권리. 이 개념을 보면 어려울 수도 있고 복잡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 한 번 쉽게 생각해보겠습니다.

의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 또는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의무는 지켜야 본전입니다. 그 대신 안 지키면 문제가 발생하지요. 어쩌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민의 의무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뭐냐 하면 바로 납세의 의무……즉 세금을 내야 하는 의무입니다.

일본은 올해 10월부터 소비세가 현재 8%에서 10%로 인상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세금이 오르게 되면 나라 예산이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국민들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니까 좋은 일이다……그렇게 생각되시나요? 아니에요? 왜요? 일본은 우리나라가 아니라서요? 그렇다면 우리가 한국에 살고 있다면, 세금이 오른다면 좋아요?

물론 일부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은 좋아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세금을 올린다고 좋아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쉬운 예를 본다면,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공약을 내세우면서 세금을 내리겠다고 하는 경우는 많지만, 내가 당선되면 세금을 올리겠다! 이렇게 공약을 내거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유야 간단하죠. 세금을 올린다고 하면 국민들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세금을 올리는 경우에는,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아 있을 때, 선거까지 아직 충분히 기간이 있을 때 슬그머니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원론적으로 생각해볼 때, 왜 세금 내기를 싫어합니까. 이유야 간단하지요. 내게 세금을 내서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안 내면 처벌을 받고 강제로 세금을 징수 당하지만, 내가 낸다고 해서 나한테 직접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세금을 안 내보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세금을 많이 내려고 할까요? 그게 가능할까요? 예, 가능합니다. 그것은 바로 세금을 의무가 아닌 권리로 규정하면 됩니다.

즉, 이는 세금을 많이 내면 많이 낼수록 자기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많아지게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세금을 많이 내려고 할 것입니다. 세무서에 달려가서 어떻게든 세금을 더 내려고 해요. 더 낼 필요 없다고 해도 어떻게든 더 내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겠지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안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나라 예산이 바닥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요즘은 연금 같은 것을 보면, 고령자들이 늘어서 연금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막상 돈을 내야 할 젊은 사람들 수는 점점 더 줄어가서, 결국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많이 내고 적게 받는다”는 것이 현재 연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기쁜 마음으로 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라에서는 어떻게든 세금을 거두려고 하고, 국민들은 어떻게든 세금을 줄여보거나, 심한 경우에는 안 낼 수 있다면 안 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무라고 하는 것이 꼭 안 좋은 것만은 아니지요. 예컨대 군대는 어떻습니까. 한국남성이라고 하면 병역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체검사를 받고 문제가 없으면 일정기간 동안 군 복무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창 젊은 시기에 몇 년 동안 군생활을 한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은 아니지요.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어떻게든 안 가려고 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2002년, 당시 한국 가요계 정상을 차지하고 있던 어떤 남성 연예인이 신체검사를 받고 군입대 판정을 받자 한국 국적을 버리고 외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군대를 안 가게 되었습니다만, 그 결과 한국에서는 이 사람에 대해서 입국금지처분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해외에서는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고 한국에 들어가고 싶어하지만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이 연예인은 여전히 한국에서 입국을 금지 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군대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특히 연예인들한테 참 위험이 크다고 합니다. 몇 년의 공백기간을 거치면서 사람들한테 잊혀지게 되면 또다시 예전 그 자리로 복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때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냐 하면, 아, 군대를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는 것보다 갔다 오는 것이 더 낫구나 하고 여겨지게 되어서, 이제는 오히려 외국 국적을 갖고 있던 사람도 그것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해서 군대를 가는 일도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 하면 오히려 이로 인해서 인기가 더욱 올라가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어쩌면 그 전에는 큰 부담만으로 느껴졌던 병역의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대한민국 남성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권리로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이 의무이고 무엇이 권리인지 우리는 간혹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어렸을 때, 여러분께서는 혹시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 이렇게 집에 있으면 어머니가 밥을 먹으래요. 뭐 배가 고프면 반가운 소식이겠습니다만, 어쩔 때는 밥맛이 별로 없을 때 있잖아요. 그럴 때에도 시간이 되었으니까 밥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아니, 저 먹기 싫어요. 배 안 고파요……라고 해도 한 숟가락이라도 먹으라고 하십니다. 그럼 때로는 참 많이 성가 싫어요. 아니, 맨날 밥만 먹나? 안 먹을 수도 있지 않나? 왜 먹기 싫은데 자꾸 먹으라고 해? 뭐 이래가지고 어렸을 때는 짜증을 낸 적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제가 혼자서 살고 그러니까 말이죠. 밥 한 끼를 먹는다는 것이 참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혼자 살 때에는 뭐 맨날 대충 바깥에서 사먹는 거죠. 쉬는 날에 집을 있을 때에는 근처 식당에 배달을 시켜서 먹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맨날 뭘 먹을지 고민을 하고 그러는 게 얼마나 귀찮고 그런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혼하기 전에 가끔 일본 집에 왔을 때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식사 때만 되면 그냥 자동적으로 밥이 나와요.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뭘 먹고 싶냐고 해서 대충 말하면 고기든 면이든 그 음식을 먹을 수가 있어요. 정말 광야에서 내렸다고 하는 만나가 따로 없지요.

이 감사함을 이제는 안 다음에는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셨을 때거나, 지금은 제 아내가 밥 먹으라고 했을 때 단 한번도 싫다고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한 일이 없습니다. 정말 식사 때마다 얼마나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해지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아니, 무슨 여자가 밥해줄 때만 감사하게 느껴지냐……뭐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니, 그런 말씀이 아니라요ㅎㅎ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면 아무런 감사도 나오지 않지만, 모든 것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감사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 의무로 살아가십니까? 감사로 살아가십니까. 우리가 의무라고 생각하면, 정말 마지못해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아무런 기쁨도 못 느낍니다. 그냥 억지로 살아가는 건데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금방 힘들어 합니다. 금방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감사라고 생각했을 때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은혜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가요? 아무런 감사도 못 느끼시나요? 아니요. 이는 너무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날은 다카사키 쪽 전도지를 돌리는 날이라서 식사를 마치고 저녁 8시쯤에 차를 타고 골목을 지나서 이제 큰 길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요즘은 해가 길어졌다 하더라도 8시쯤이면 아주 캄캄합니다. 그래서 오른쪽을 보고 큰 길로 나가려는 순간, 제 눈 앞에 뭔가가 휙 하고 지나가요. 저는 솔직히 무슨 귀신인가 했습니다. 정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눈앞에 휙 하고 지나갔었거든요.

그래서 뭐지? 하고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고 나서 자세히 봤더니 어떤 남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제 자동차 앞을 휙 지나간 것입니다. 아~주 신나게 달려가요.

제가 저 스스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것은 좀 우스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그래도 운전은 꼼꼼하게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속도 잘 하지 않고, 상당히 안전운전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글쎄요. 그 학생 자전거의 전조등이 꺼져서 못 봤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그 자전거가 오고 있는지 몰랐어요.

그 순간은, 아~주 저기를 신나게 달려가는 뒷모습이 얼마나 얄밉던지요. 허허어, 짜식 큰일나면 어쩔라구……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운전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아이구, 큰일날 뻔 한 건 그 학생만이 아니라, 저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순간, 차가 그 자전거에 슬쩍 닿기라도 했다면, 그래서 그 친구가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그 결과 차도로 밀려 나가서, 저 쪽에서 오는 자동차와 그 학생이 부딪치기라도 했다면……

만약에 그랬다고 한다면 어쩌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경찰에 연행되어서 조사를 받고 있을 지도 모르는 노릇이지요.

어디 그 뿐인가요. 이제 이번 주부터는 제 비자 갱신 수속도 시작해야 하는데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면 비자를 내주겠어요? 비자가 안 나오면 이제 아무런 대책 없이 저와 제 아내는 한국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니까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찔하더라구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정말 감사하게도 접촉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주 얄밉게 달려간다고 생각했던 그 친구 뒷모습이, 넘어지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고 그냥 휙 지나가준 그 남학생이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롭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지난 주에도 참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지요. 일본에서는 5월 28일 아침 카와사키 시에 갑자기 흉기를 들고 나타난 범인에 의해 19명이 피해를 입고, 그 중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과 39세 외무성 직원이 숨졌다고 합니다. 정말 아직 꿈을 펼치지도 못한 어린 학생과, 이제 그의 인생에 있어서 전성기를 맞이하려고 했던 일본 최고 엘리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현지시간 그 다음날인 5월 29일, 헝가리에서 발생한 유람선 침몰사고 소식은 어떻습니까. 현지인도 있었지만 대부분 한국 여행객이었다고 하지요. 오늘 아침에 뉴스를 보았더니 여전히 사망 7명, 실종 19명이라고 합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말도 없었다, 안전교육도 없었다고는 하지만, 무슨 계곡을 고무보트 타고 내려가는 것도 아닌 그냥 보통 유람선이었잖아요? 저는 아직 헝가리를 가본 일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유람선은 지금까지 한국에서나 일본에서 몇 번이나 타봤습니다. 그런데 그 때 무슨 구명조끼요? 그런 건 한 번도 입어본 일도 없고, 안전교육? 그런 교육을 받아본 일도 없어요. 그리고 뉴스에 나온 목격자 인터뷰를 보니까 유람선이 대형선박과 충돌해서 침몰했다고 하는데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고 합니다. 정말 쿵 하고 곧바로 가라앉아버린 것이었겠지요. 아무리 조끼가 있었다고 한들, 교육을 받았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가와사키에서 발생한 묻지마 흉기사건도 범행시간은 10 몇 초 정도라고 합니다. 그 피해를 입은 분들이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이라 하더라도 그 순식간에 닥친 일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겠습니까. 참으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 우리가 이렇게 오늘 한 자리에 모여서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가요? 아니에요. 절대로 당연하지 않습니다. 한 순간 한 순간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에 조심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우리는 그야말로 눈을 감은 채로 어둠 속을 헤매는 존재일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요? 그냥 그렇게 살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지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기 부딪히고 멍이 들고, 저기 걸려서 넘어지고 그렇게 되고 맙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イエスは再び人々に語られた。「わたしは世の光です。わたしに従う者は、決して闇の中を歩むことがなく、いのちの光を持ちます。」

요한복음 12장 46절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わたしは光として世に来ました。わたしを信じる者が、だれも闇の中にとどまることの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す。

우리는 우리 삶의 빛이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가야 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의무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감사가 없습니다. 기쁨도 없고 은혜도 없습니다. 그저 있는 것이라고는 짜증이요 불평이요 불만입니다.

왜 그렇게 의무로 생각될까요? 그것은 우리가 어둠 속에 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보지 못합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 때라도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라도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이라고 하는 빛을 밝히고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내가 지금 있는 것, 내가 겪고 있는 것, 이 모두가 은혜요, 이 모두가 감사요, 이 모두가 축복으로 보이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그냥 빛이다, 그냥 감사다 은혜다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만 붙잡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요? 예수님이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에요? 그래서 세상에서도 높은 사람을 의지하면 출세하니까 신앙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높은 분한테 잘 보이면 축복 받을 것 같아서 맨날 예수님만 찾는 건가요?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5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人の子の肉を食べ、その血を飲まなければ、あなたがたのうちに、いのちはありません。

우리가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 문자적으로 보면 참으로 무섭게 느껴지는 이 말씀입니다만,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첫째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신 것이 내 죄를 위해 희생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요, 둘째는 우리가 음식을 먹고 거기서 힘을 얻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힘과 능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私を強くしてくださる方によって、私はどんなことでもできるのです。


우리가 예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마치 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인가요? 용감한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왜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없이 축복된 인생을 보낼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 이도 역시 지혜롭거나 용감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어리석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캄캄한 어둠 속을, 불도 켜지 않은 상태로 자동차로 전속력으로 달리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무모한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わたし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いのちなのです。わたしを通してでなければ、だれも父のみもとに行くことはできません。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만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4장 11절~12절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あなたがた家を建てる者たちに捨てられた石、それが要の石となった』というのは、この方のことです。
この方以外には、だれによっても救いはありません。天の下でこの御名のほかに、私たちが救われるべき名は人間に与えられていないからです。」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른 이름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뿐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이시요 우리의 능력이시요, 우리의 참된 빛이시요, 우리의 인도자이심을 믿으며,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쁨과 감사로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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