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회 우리들의 예복
2019년 7월 28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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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절~14절
"1.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マタイの福音書 22章 1節~14節
"イエスは彼らに対し、再びたとえをもって話された。
「天の御国は、自分の息子のために、結婚の披露宴を催した王にたとえることができます。
王は披露宴に招待した客を呼びにしもべたちを遣わしたが、彼らは来ようとしなかった。
それで再び、次のように言って別のしもべたちを遣わした。『招待した客にこう言いなさい。「私は食事を用意しました。私の雄牛 や肥えた家畜を屠り、何もかも整いました。どうぞ披露宴においでください」と。』
ところが彼らは気にもかけず、ある者は自分の畑に、別の者は自分の商売に出て行き、
残りの者たちは、王のしもべたちを捕まえて侮辱し、殺してしまった。
王は怒って軍隊を送り、その人殺しどもを滅ぼして、彼らの町を焼き払った。
それから王はしもべたちに言った。『披露宴の用意はできているが、招待した人たちはふさわしくなかった。
だから大通りに行って、出会った人をみな披露宴に招きなさい。』
しもべたちは通りに出て行って、良い人でも悪い人でも出会った人をみな集めたので、披露宴は客でいっぱいになった。
王が客たちを見ようとして入って来ると、そこに婚礼の礼服を着ていない人が一人いた。
王はその人に言った。『友よ。どうして婚礼の礼服を着ないで、ここに入って来たのか。』しかし、彼は黙っていた。
そこで、王は召使いたちに言った。『この男の手足を縛って、外の暗闇に放り出せ。この男はそこで泣いて歯ぎしりすることになる。』
招かれる人は多いが、選ばれる人は少ないのです。」"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들의 예복” 私たちの礼服 라고 하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에 있는 내용입니다만, 이와 비슷한 말씀은 누가복음에도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있는 내용을 잠시 살펴볼까 합니다. 누가복음 14장 16절~24절입니다.

누가복음 14장 16절~24절

16.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するとイエスは彼にこう言われた。「ある人が盛大な宴会を催し、大勢の人を招いた。
宴会の時刻になったのでしもべを遣わし、招いていた人たちに、『さあ、おいでください。もう用意ができましたから』と言った。
ところが、みな同じように断り始めた。最初の人はこう言った。『畑を買ったので、見に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どうか、ご容赦ください。』
別の人はこう言った。『五くびきの牛を買ったので、それを試しに行くところです。どうか、ご容赦ください。』
また、別の人はこう言った。『結婚したので、行くことができません。』
しもべは帰って来て、このことを主人に報告した。すると、家の主人は怒って、そのしもべに言った。『急いで町の大通りや路地 に出て行って、貧しい人たち、からだの不自由な人たち、目の見えない人たち、足の不自由な人たちをここに連れて来なさい。』
しもべは言った。『ご主人様、お命じになったとおりにいたしました。でも、まだ席があります。』
すると主人はしもべに言った。『街道や垣根のところに出て行き、無理にでも人々を連れて来て、私の家をいっぱいにしなさい。
言っておくが、あの招待されていた人たちの中で、私の食事を味わう者は一人もいません。』」

여기서 보면 이 누가복음은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1차 초청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잔치할 시간이 되자 이 분은 그냥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초청한 사람들에게 직접 종을 보내고는, 자, 이제 잔치 준비가 되었으니까 오십시오……라고 말을 전하지요.

그랬더니 어땠냐 하면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기는 밭을 샀기 때문에, 자기는 소를 샀기 때문에, 또는 자기가 장가 들었기 때문에 가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기껏 잔치 준비를 하고 미리 초청도 하고 그랬는데, 자기들 사정 때문에 못 오겠다고 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 이유가 보면 모두 자기 개인적인 일, 세상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마지막 사람을 보면 자기 결혼식이 있기 때문에……가 아니에요. 뭐, 자기 결혼식이 있기 때문에 남의 집 잔칫집에 못 간다고 하면 그나마 이해가 되겠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자기가 이미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자기가 신혼이기 때문에, 자기 마누라와 같이 있고 싶기 때문에, 당신 잔치에 못 가겠다……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보면 우선순위를 정하지요. 그 우선순위를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큰 잔치보다도 자기의 개인적인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당연히 화가 났지요. 자기가 정성을 다해서 잔치를 준비했는데, 초청한 사람들이 잔치보다도 각자의 일을 더 중요시 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주인, 어떻게 했냐 하면, 다음 단계로 접어듭니다. 누가복음 16장 21절을 봅니다.

누가복음 16장 21절
“21.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しもべは帰って来て、このことを主人に報告した。すると、家の主人は怒って、そのしもべに言った。『急いで町の大通りや路地 に出て行って、貧しい人たち、からだの不自由な人たち、目の見えない人たち、足の不自由な人たちをここに連れて来なさい。』


이제 두 번째, 2차 초청으로 넘어갑니다. 처음에 초청했던 사람들은 모두 안 온다고 하니까, 집 주인이 노했다고 하지요? 어쭈, 그래? 그럼 됐다고 그래. 그러면서 하는 말이,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에 나가서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초청을 받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특징이 뭐예요?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
貧しい人たち、からだの不自由な人たち、目の見えない人たち、足の不自由な人たち

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를 두고 성경이 빈부차별, 장애인 차별……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래서 이 사람들을 다 불러왔는데, 그래도 아직 자리가 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이제 제3차 초청입니다.

누가복음 16장 23절
“23.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すると主人はしもべに言った。『街道や垣根のところに出て行き、無理にでも人々を連れて来て、私の家をいっぱいにしなさい。

그러면서 이 주인의 마지막 말이 24절에 나옵니다.


누가복음 16장 24절
“24.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言っておくが、あの招待されていた人たちの中で、私の食事を味わう者は一人もいません。』」

여기서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招待されていた人たち)>이라고 하는 것은 1차 초청 때 불렀던 사람들, 처음에 초청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사람들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원래 부르기로 했던 사람들, 좋은 음식이 차려진 큰 잔치에 초청된 사람들은 하나도 들어오지 못하고, 오히려 예정에 없었던 사람들이 그 잔치에 참여하여 기쁨을 누렸다는 뜻입니다.

성경 특히 신약에서 <잔치>라고 하면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
“9.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御使いは私に、「子羊の婚宴に招かれている者たちは幸いだ、と書き記しなさい」と言い、また「これらは神の真実なことばである」と言った。

마지막 날에 예수님과 함께 드리는 잔치가 바로 이 어린 양의 혼인잔치이지요.

여기서 1차 때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잔치에 들어오지 못하고 2차 초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2차 초청에서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이는 빈부차별이나 장애인 차별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기존 유대인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유대인이 아니지요. 예를 들어 제사장이나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나 율법교사들 같은 사람들은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 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같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소외 당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잔치에 초청을 받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래도 빈 자리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3차 초청으로 넘어갑니다.

2차 초청에서는 ‘시내 거리와 골목’으로 가서 사람을 불러오라고 했었는데, 3차 초청에서는 ‘길과 산울타리’까지 가서 데려오라고 합니다.

‘시내 거리와 골목’이라고 한다면 이는 그 지역 울타리 내부를 이야기 하지요. 시내 거리와 골목은 그 지역에 있는 길가와 좁은 골목에 있는 사람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유대인은 유대인이지만 길가나 좁은 골목 같은 곳에 있는 소외계층인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3차에서는 ‘길과 산울타리’라고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길’은 시내 거리가 아닙니다. 시외 즉 바깥으로 연결되는 길입니다. 그리고 산울타리는 외부와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는 다른 말로 이방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까지도 이 잔치에 초청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의 마지막 말로 알 수 있듯이, 그 동안 소외 계층이나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게 되지만,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은 아무리 유대인, 선택 받은 민족이라 하더라도 성대한 예수님의 잔치에는 들어올 수가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누가복음 말씀은 상당히 깔끔합니다. 이해하기가 쉬어요.

자,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마태복음을 보기에 앞서 누가복음 말씀을 살펴본 이유는, 누가복음은 비교적 내용이 간결하기 때문에 이를 먼저 살펴보고 난 다음에 마태복음을 보시면 더욱 잘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 중 먼저 마태복음 22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天の御国は、自分の息子のために、結婚の披露宴を催した王にたとえることができます。

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이는 어떤 주석서에 의하면 원문 문법상으로 봤을 때, 천국이 어떤 왕과 같은 것이 아니라, '천국은 어떤 왕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베푼 혼인잔치와 같다(天の御国は、ある王が自分の息子のために催した結婚の披露宴にたとえることができる)'고 이해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참 타당한 지적 같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이 곧 왕이라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혼인잔치로 말씀하셨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왕이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풀었다고 하니, 얼마나 성대하고 얼마나 정성스럽게 차려진 잔치였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앞서 살펴본 누가복음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3절에 보면 1차 초청이 나오는데, 청한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금방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2장 4절
“4.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それで再び、次のように言って別のしもべたちを遣わした。『招待した客にこう言いなさい。「私は食事を用意しました。私の雄牛 や肥えた家畜を屠り、何もかも整いました。どうぞ披露宴においでください」と。』

아하, 1차 초청에서 그냥 오라고 했더니 이 사람들이 잔치 내용을 잘 몰라서 그랬나 보구나. 그래, 그러면 이 잔치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내가 얼마나 정성껏 준비한 성대한 잔치인지를 알려주면 오겠지……하고 다시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들이 어떻게 했답니까.

마태복음 22장 5절~6절
“5.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ところが彼らは気にもかけず、ある者は自分の畑に、別の者は自分の商売に出て行き、
残りの者たちは、王のしもべたちを捕まえて侮辱し、殺してしまった。

이런 나쁜 사람들이 있습니까. 기껏 종들을 보내면서까지 오라고 했더니만, 누가복음에서 살펴본 것처럼, 종들을 무시하고 각자 자기 일을 하러 간 것만으로 모자라, 이제 어떤 사람들은 잔치에 초청한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 당연히 임금님은 화를 냅니다.


마태복음 22장 7절
“7.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王は怒って軍隊を送り、その人殺しどもを滅ぼして、彼らの町を焼き払った。

임금은 이제 자신이 보낸 종들을 무시하고 죽이기까지 한 그들을 진멸하고는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그 동네들을 완전히 멸망시켜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2장 8절~10절을 봅니다.

8.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それから王はしもべたちに言った。『披露宴の用意はできているが、招待した人たちはふさわしくなかった。
だから大通りに行って、出会った人をみな披露宴に招きなさい。』
しもべたちは通りに出て行って、良い人でも悪い人でも出会った人をみな集めたので、披露宴は客でいっぱいになった。

이 부분은 누가복음을 이미 살펴보았으니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본래 초청했던 사람들이 안 온다고 하기에, 네거리 길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을 다 모아왔다더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 찼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특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그 다음부터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1절~13절
11.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王が客たちを見ようとして入って来ると、そこに婚礼の礼服を着ていない人が一人いた。
王はその人に言った。『友よ。どうして婚礼の礼服を着ないで、ここに入って来たのか。』しかし、彼は黙っていた。
そこで、王は召使いたちに言った。『この男の手足を縛って、外の暗闇に放り出せ。この男はそこで泣いて歯ぎしりすることになる。』

자, 1차로 초청을 했던 사람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다 불러다가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거기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당신은 왜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왔냐고 하자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임금이 화를 내서 그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졌다고 하지요.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사람은 꾸짖음을 당한 것일까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이 글을 맨 처음 읽을 때 느꼈던 것은, 아니, 네거리 길가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데려오라고 했다면서요. 그래서 종들이 길거리에 나가서 선한 자나 악한 자나 그냥 만나는 대로 다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복을 안 입었다고 혼이 나요? 아니, 무슨 예복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나요?


얼마 전에 보니까 요즘 영국 귀족들은 어딜 가든지 누군가가 돌아가셨을 때 입을 수 있는 상복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고 그러더라구요. 하지만 예수님 당시 사람들, 그것도 귀족도 아닌 일반 서민들이 항상 예복을 가지고 다닐 일이야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입지 않았다고 내쫓겨야 한다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열왕기하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10장 22절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다가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エフーが衣装係に、「バアルの信者すべてに祭服を出してやれ」と命じたので、彼らのために祭服を取り出した。

이 기록은 북 이스라엘 왕 예후가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기 위해서 함정에 빠뜨리게 하려는 장면입니다만, 여기에 보면, ‘예복 맡은 자’ 라고 되어 있으며, 그가 사람들에게 예복을 나누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기원전 800년대의 일이고, 이와 같은 문화가 예수님 당시까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 기록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다른 사람들은 예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지목했다고 하는데, 만약에 예복을 입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 한 사람만 내쫓겼다고 보기에는 부자연스럽습니다. 오히려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은 이 사람뿐이었다고 하는 것이 문맥 흐름상 타당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다음은 둘째로, 이 사람이 예복을 입을래야 입을 수 없었다면 내쫓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임금은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하는데, 애써 사람을 불러놓았는데 그 사람이 아무리 예복을 입고 싶어도 어떤 사정이 있어 입을 수 없었는데 이를 두고 내쫓았다고 하면 공의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이렇게 본다면 한다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왕이 초청한 손님들을 위해 예복을 주는 고대 문화가 당시까지 남아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분명히 자신이 원했다면 얼마든지 예복을 입을 수 있었다고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복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내쫓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예복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예복, 천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다른 곳에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는가 하는 것을 살펴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イエスは答えられた。「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に言います。人は、新しく生まれなければ、神の国を見ることはできません。」

우리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또 하나 중요한 구절을 기억해야 해겠습니다.

자, 오늘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가장 처음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을까요. 마태복음 4장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この時からイエスは宣教を開始し、「悔い改めなさい。天の御国が近づいたから」と言われた。

천국이 멀리 있을 때, 심판이 멀리 있을 때에는 네 멋대로 살아도 괜찮아. 하지만 이제 천국이 가까이 왔다. 심판의 날이 바로 눈앞에 닥쳤다. 이제 그렇다면 빨리 회개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다급하셨으면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회개였겠습니까.

여기까지의 말씀들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라는 예복을 입고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2장 10절에 보니 뭐라고 되어 있었어요?
“10.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しもべたちは通りに出て行って、良い人でも悪い人でも出会った人をみな集めたので、披露宴は客でいっぱいになった。

참 이상합니다. 아니, 천국 하나님 나라 잔치인데 선한 자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악한 자도 데려올 수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 이상하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왜 괜찮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악한 자라 하더라도 회개라는 예복을 입고 거듭나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 회개라는 예복은 우리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져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간의 힘으로 반성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별로 힘이 없습니다. 흙탕물을 물컵에 담아서 가만히 놓아보세요.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맑아집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맑은 건가요? 젓가락으로 휘 저으면 또다시 시커멓게 되고 맙니다. 그것이 인간의 힘으로 반성한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반성해봤자, 아무리 죄를 짓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와봤자 또다시 죄를 짓게 되고 맙니다. 인간은 그토록 참 연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계시록 7장 14절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そこで私が「私の主よ、あなたこそご存じです」と言うと、長老は私に言った。「この人たちは大きな患難を経てきた者たちで、その衣を洗い、子羊の血で白くしたのです。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피에 우리 죄를 씻고 회개하여야 진정으로 흰 예복을 입고, 거듭난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가 내쫓긴 곳이 어디입니까. 바깥 어두운 데라고 하지요. 이는 지옥입니다.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지옥에 떨어진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누가복음 16장 24절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金持ちは叫んで言った。『父アブラハムよ、私をあわれんでラザロをお送りください。ラザロが指先を水に浸して私の舌を冷 やすようにしてください。私はこの炎の中で苦しくてたまりません。』

그에 대해서 바로 앞 16장 19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ある金持ちがいた。紫の衣や柔らかい亜麻布(あまぬの)を着て、毎日ぜいたくに遊び暮らしていた。

오해하지 마십시오. 부자라고 해서 다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호화롭게 즐기기만 하던 부자,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그는 지옥에 떨어진 후, 물 한 방울을 달라며 아브라함에게 호소를 합니다. 그렇게 처참한 곳이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곳은 뭐 경험 삼아 가본다 하더라도 지옥에만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근처에도 가서는 안 되지요.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내쫓긴 사람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간다는 표현은 성경에 종종 나오는 표현입니다만, 특별히 신약에서는 그 감정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억울함입니다. 억울함이라고 하는 것은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후회하는 억울함입니다.

지옥에 떨어진 그들이 하는 가장 큰 후회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회개하지 않은 후회일 것입니다. 내가 회개할 걸. 여기에 떨어지기 전에 회개할 걸. 회개만 했다면, 회개의 흰 옷, 회개의 예복만 입었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십자가의 피로 깨끗하게 씻긴 회개의 예복을 입기만 했었다면 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하지만 이미 심판이 내려진 후에는 아무리 후회를 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이지요.

이제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늦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거듭나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보혈에 우리의 죄를 씻고 거듭난 모습으로 회개라는 이름의 흰 예복을 입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으로 들어가서 어린양의 혼인잔치, 큰 기쁨으로 충만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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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