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회 세 가지 찬양
2019년 7월 21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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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37절~40절
"37.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ルカの福音書 19章37節~40節
“イエスがいよいよオリーブ山の下りにさしかかると、大勢の弟子たちはみな、自分たちが見たすべての力あるわざについて、喜 びのあまりに大声で神を賛美し始めて、
こう言った。「祝福あれ、主の御名によって来られる方、王に。天には平和があるように。栄光がいと高き所にあるように。」
するとパリサイ人のうちの何人かが、群衆の中からイエスに向かって、「先生、あなたの弟子たちを叱ってください」と言った。
イエスは答えられた。「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もしこの人たちが黙れば、石が叫びます。」”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세 가지 찬양” 三つの賛美 라고 하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제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십니다. 이 때는 오늘 말씀에도 보이는 것처럼 예루살렘 전체가 떠들썩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37절~38절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37.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イエスがいよいよオリーブ山の下りにさしかかると、大勢の弟子たちはみな、自分たちが見たすべての力あるわざについて、喜 びのあまりに大声で神を賛美し始めて、
こう言った。「祝福あれ、主の御名によって来られる方、王に。天には平和があるように。栄光がいと高き所にあるように。」

마태복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21장 7절~9절

“7.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ろばと子ろばを連れて来て、自分たちの上着をその上に掛けた。そこでイエスはその上に座られた。
すると非常に多くの群衆が、自分たちの上着を道に敷いた。また、木の枝を切って道に敷く者たちもいた。
群衆は、イエスの前を行く者たちも後に続く者たちも、こう言って叫んだ。「ホサナ、ダビデの子に。祝福あれ、主の御名によって来 られる方に。ホサナ、いと高き所に。」

여기서 <호산나>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사야서를 봅니다.

이사야 11장 10절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その日になると、エッサイの根はもろもろの民の旗として立ち、国々は彼を求め、彼のとどまるところは栄光に輝く。

이사야서는 특히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많은 것이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도 돌아오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이새>(エッサイ)는 다윗의 아버지 이름입니다. 그 뿌리에서 왕 중의 왕 메시야가 오신다는 예언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족보로 볼 때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자 온 동네에 찬양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찬양이라고 하면 노래만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그건 너무나도 좁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양예배라고 하면 어떤 예배가 떠오르십니까. 말씀에 대한 내용은 적고 주로 음악과 노래로서 진행하는 예배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한 번 <찬양>이라는 뜻부터 정리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찬양>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답고 훌륭함을 크게 기리고 드러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문으로는 왕의 덕을 찬양하다, 업적을 찬양하다, 효행을 찬양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왕의 덕을 찬양하고 업적을 찬양하고 효행을 찬양하는데 꼭 노래를 불러야 하나요? 아닙니다. 우리는 말로도 얼마든지 이와 같은 찬양을 표현할 수가 있겠지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할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꼭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야지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세 가지, 믿음으로 드리는 찬양, 말씀으로 드리는 찬양, 그리고 행함으로 드리는 찬양으로 정리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먼저 믿음으로 드리는 찬양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アブラムは主を信じた。それで、それが彼の義と認められた。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

福音には神の義が啓示されていて、信仰に始まり信仰に進ませるからです。「義人は信仰によって生きる」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냥 아, 그래, 성경에 있는 것을 나는 믿어…… 그것으로 끝인가요? 만약에 그것이 믿음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성경이 아닌, 예를 들어서 역사책을 읽을 경우는 어떻습니까. 1700몇 년에 어디서 누가 어떤 일을 했고, 1800몇 년에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이것을 믿는 것도 그렇다면 역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둘이, 성경을 읽고 그 내용을 믿는다는 것과, 역사책을 읽고 그 내용을 믿는다는 것이 서로 차이가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차이가 없을까요? 아니요. 분명히 있습니다. 적어도 몇 백 년 전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살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건들은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 개인과는 그리 큰 관계가 없는 경우도 많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성경은 어떻습니까. 성경을 단순히 역사책을 읽는 정도로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이는 그야말로 껍데기만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과거의 기록만을 적어놓은 책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록, 예수님에 대한 기록, 성령님에 대한 기록이라는 사실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드리는 찬양은 어떤 찬양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이 선택이라고 하는 것만 잘 하면 그야말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학생이나 수험생이 치르는 시험문제 같은 데에 나오는 선택지는 4개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5개나 그 이상인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선택지는 대체적으로 2개 정도일 때가 많지 않을까 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뭐냐 하면, 세상적인 방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믿음의 방법을 따를 것인가 하는 경우입니다.

“이봐, 예수를 믿는 것도 좋지만, 좀 적당히 믿어.”

이 말, 별것 아닌 것 같으시죠? 하지만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또 오해를 하실까봐 말씀을 드리자면, 여기서 <세상적인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좀 극단적인 의미로 말씀을 드리자면, 집에 들어가려고 해요. 그러면 손으로 문을 열어야죠. 그런데 아니야. 이런 세상적인 방법을 의지하면 안돼. 기도하고 문이 열리기를 간구해야지…… 이러시라는 게 아닙니다.

세상적인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하게 말씀 드리자면 <믿음의 방법>에 반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중에서도 잠언을 많이 읽으시는 분들이 계신데, 거기에 보면 세상적인 방법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말이 바로 ‘뇌물’입니다.

잠언 15장 27절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되느니라”

利得を貪る者は自分の家族を困らせ、賄賂を憎む者は生きながらえる。

잠언 17장 23절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悪しき者は人の懐から賄賂を受け取り、さばきの道を曲げる。

이와 같은 뇌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믿음 안에서 취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에 어떤 문제에 봉착하는 경우, 믿음의 방법에 반하기는 하지만, 세상적인 방법으로, 편법을 쓰면 왠지 잘 풀릴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방법,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면 왠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고, 잘 안 될 것만 같은데, 그냥 눈 딱 감고 세상적인 방법, 나쁜 일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이번 한 번 만 하면 잘 될 것처럼 생각될 때…… 바로 그 때가 중요한 갈림길인 것입니다. 그 때가 무슨 갈림길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께 우리 믿음의 찬양을 드릴 수가 있는지 없는지의 갈림길인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세상적인 방법이 아닌 믿음의 방법 쪽을 택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 43장 18절~20절

18.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先のことに心を留めるな。昔のことに目を留めるな。
見よ、わたしは新しいことを行う。今、それが芽生えている。あなたがたは、それを知らないのか。必ず、わたしは荒野に道を、荒れ地に川を設ける。
野の獣、ジャッカルや、だちょうも、わたしをあがめる。わたしが荒野に水を、荒れ地に川を流れさせ、わたしの民、わたしの選んだ者に飲ませるからだ。

믿음에 반하는 이전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사막에 길을 내고 강을 내시는 하나님, 광야에 물을 내시는 하나님,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의 찬양을 드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둘째로 말씀으로 드리는 찬양입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에게 있어서 성경 말씀은 우리의 무기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를 보면 말씀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 중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마지막 구절. 요한계시록 22장 21절, 기억하십니까?


요한계시록 22장 21절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主イエスの恵みが、すべての者とともにありますように。

성경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작은 어떻습니까.

창세기 1장 1절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はじめに神が天と地を創造された。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요한복음 1장 2절~3절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この方は、初めに神とともにおられた。
すべてのものは、この方によって造られた。造られたもので、この方によらずにできたものは一つもなかった。

여기서 <그>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즉, 만물 중에서 예수님 없이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이는 예수님의 기록이라고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에서 예수님이 사라집니다. 성경 말씀이 사라집니다. 십자가가 사라집니다.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이 돈 이야기, 재산 이야기, 직분 이야기, 나아가 이제 정치 이야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을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고 하고, 나아가 목사라고 하는 분들까지도 이제 세상 정치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인터넷 유튜브까지 개설해가면서 세상 이야기, 정치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그러라고 십자가에서 못 박고 죽으셨습니까. 저도 정치 이야기 상당히 좋아합니다. 페이스북 같은 곳에 올라오는 정치 이야기들을 보면 저도 막 쓰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제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정치 이야기나 세상 이야기 같은 거나 하게 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나를 인도해 오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고린도전서 2장 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なぜなら私は、あなたがたの間で、イエス・キリスト、しかも十字架につけられたキリストのほかには、何も知るまいと決心していたからです。

당시 최고 엘리트였던 바울도 정치나 경제, 사회와 같은 내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기에 세상적인 말을 하기 원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삶 속에서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증언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경이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말씀이요, 예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말씀으로 드리는 찬양이라는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행함으로 드리는 찬양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아니, 근본적으로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있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건가요?
헌금을 내면 예수님을 믿는 건가요?
세례를 받으면 예수님을 믿는 건가요?
직분을 받으면 예수님을 믿는 건가요?

이는 모두 다 교회 안에서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생활만 잘 하면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한 건가요? 마태복음 11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バプテスマのヨハネの日から今に至るまで、天の御国は激しく攻められています。そして、激しく攻める者たちがそれを奪い取っています。

여기서 <침노>는 공격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천국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론 당연히 천국은 우리의 노력 만으로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우리 죄가 해결되어야 하지만,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우리의 죄를 조금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해야지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씻은 후에야 비로소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천국은 가만히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을 빼앗기 위해서, 천국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노력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행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행함에 있어서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로마서 16장 19절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あなたがたの従順は皆の耳に届いています。ですから、私はあなたがたのことを喜 んでいますが、なお私が願うのは、あなたがたが善にはさとく、悪にはうとくあることです。


누가복음 6장 37절~38절
37.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さばいてはいけません。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さばかれません。人を不義に定めてはいけません。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不義に定められません。赦し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赦されます。
与え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与えられます。詰め込んだり、揺すって入れたり、盛り上げたりして、気前良 く量って懐に入れてもらえます。あなたがたが量るその秤で、あなたがたも量り返してもらえるからです。」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あなたは心を尽くし、いのちを尽くし、知性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
これが、重要な第一の戒めです。
『あなたの隣人を自分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という第二の戒めも、それと同じように重要です。
この二つの戒めに律法と預言者の全体がかかっているのです。」


사람들은 참으로 남들을 비판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합니다. 이는 교회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잘나면 얼마나 잘났기에 큰 소리로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정치인들을 보십시오. 상대방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럼 본인들은 참으로 흠이 없나요?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다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비판하는 데에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 지혜로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의 으뜸은 우리가 가진 것을 주는 것입니다. 이는 돈이나 재산 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웃을 위해 시간을 줄 수가 있습니다. 수고를 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행함으로 드리는 찬양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에서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돌들이 찬양하리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돌멩이가 무엇입니까. 지금 여기까지 오시는 길에 돌멩이가 몇 개나 있었는지 세면서 오신 분 계십니까. 돌멩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들, 하나도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찬양을 멈출 때, 우리 입에서, 우리 삶 속에서 찬양이 멈출 때,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우리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곳에서, 정말 하찮다고 생각해왔던 곳에서부터 예수님의 찬양이 울려 퍼지고 우리에게 있던 축복의 촛대는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옮겨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わたしはすぐに来る。あなたは、自分の冠をだれにも奪われないように、持っているものをしっかり保ちなさい。

우리 모두 믿음으로 드리는 찬양, 말씀으로 드리는 찬양, 그리고 행함으로 드리는 찬양을 통해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의 사랑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면류관을 굳게 지키고,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잘했다고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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