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회 열매를 맺는 삶
2019년 9월 8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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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ヨハネの福音書 15章 5節
"わたしはぶどうの木、あなたがたは枝です。人がわたしにとどまり、わたしもその人にとどまっているなら、その人は多くの実を結びます。わたしを離れては、あなたがたは何も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열매를 맺는 삶” 実を結ぶ人生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그 나뭇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고로 나무들이 자라면서 잎사귀가 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수분과 영양분을 섭취하고 태양열을 받으면서 광합성을 하며 성장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때가 되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 같이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입사귀가 많고, 아무리 크기가 크고 높다 하더라도 그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결국 그 나무는 번성하지 못하고 그 한 그루 만으로 멸종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삶의 가치라고 한다는 것은 내가 내 삶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큰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는 그 회사도 사라지고 그 사람이 했던 사업도 완전히 문을 닫았다고 한다면, 아무리 그 사람이 생전에 돈을 많이 벌고 큰 회사를 세웠었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고 맙니다.

이는 돈도 그렇고 명예도 그렇죠. 어떤 학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를 해서, 평생을 걸쳐 논문도 쓰고 그랬는데, 그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또는 어떤 작가가 살아 있을 때에는 그가 쓴 책도 많이 팔리고 사람들로부터 선생님 소리도 듣기도 하고 상도 많이 받았는데, 조금 지나니까 아무도 그 사람의 책을 읽지도 않고, 그 사람 자체도 잊혀지고 말았다면, 그 사람이 살아간 인생의 의미는 그리 크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진정한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있어서의 열매란 과연 무엇일까요. 세상에서는 이른바 대를 잇는다고 합니다. 이는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아브라함도 자신의 대를 이을 자식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얻은 아이가 바로 이삭이지요.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가 되어서야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요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왕 같은 경우를 보면 후사 문제가 생기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꼭 자식이 있어야지만 대를 잇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큰 회사 같았으면 친자식이 아니라 하더라도 후계자를 세워서 그 사업을 계속해 나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서부터는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열매란 정말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에게 아들이나 딸이 있다면, 내 육신적인 유전자를 남길 수가 있었다면, 그것으로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 인생의 목표는 오직 좋은 자식을 낳는 것에 집중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좋은 열매 맺는 것이 진정한 가치 있는 삶이고, 좋은 열매라는 것이 훌륭한 자식이라고 한다면, 진정한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훌륭한 자식을 갖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서는 어떨까요. 성경에 보면 베드로는 결혼을 해서 아내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땠습니까. 성경에는 그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명확한 기록 또한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들에게는 아들이나 딸이 있었는지는 기록이 없지요.

그렇다면 훌륭한 자식을 갖는 것이 진정한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한다면, 베드로와 바울은 열매 없는 삶, 가치 없는 삶을 살았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가요? 아니요. 어느 누구도 그들이 열매 없는 삶, 가치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훨씬 더 많은 열매를 맺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한 번 창세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물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창세기 1장 21절~22절
“21.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神は、海の巨獣と、水に群がりうごめくすべての生き物を種類ごとに、また翼のあるすべての鳥を種類ごとに創造された。神はそれを良しと見られた。
神はそれらを祝福して、「生めよ。増えよ。海の水に満ちよ。鳥は地の上に増えよ」と仰せられた。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말씀하셨냐 하면 창세기 1장 27절~28절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28절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神は人をご自身のかたちとして創造された。神のかたちとして人を創造し、男と女に彼らを創造された。
神は彼らを祝福された。神は彼らに仰せられた。「生めよ。増えよ。地に満ちよ。地を従えよ。海の魚、空の鳥、地の上を這うすべての生き物を支配せよ。」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만이 아니라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만약에 전쟁 같은 상황에서 상관이 부하들에게, 저 땅을 공격해서 점령하라! 이렇게 명령을 했다면, 이는 너희들이 열심히 노력을 해서, 저 땅을 빼앗으라는 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라……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우리더러 땅을 정복할 수 있도록, 생물들을 다스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라……라는 말씀아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는 바로 우리에게 땅을 정복할 수 있는 권세, 그리고 천하의 모든 생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다는 뜻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휩쓸려 가는 삶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주님의 명령에 따라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신약이라고 하는 것, 이는 단순히 막연한 기준이 아니라 또 하나의 천지창조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はじめに神が天と地を創造された。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하지요.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初めにことばがあった。ことばは神とともにあった。ことばは神であった。

참 너무나도 멋진 천지창조 아닙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창세기 때의 타락을 바로잡기 위해 오셨다는 내용도 성경에 기록합니다.

로마서 5장 19절
“19.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すなわち、ちょうど一人の人の不従順によって多くの人が罪人とされたのと同様に、一人の従順によって多くの人が義人とされるのです。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타락하게 되었으나, 예수님 한 분이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처럼 신약은 또 하나의 시작, 새로운 천지창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말씀이 신약에도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디인가 하면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과 마가복음 16장 15절~16절 말씀입니다.

먼저 마태복음부터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イエスは近づいて来て、彼らにこう言われた。「わたしには天においても地においても、すべての権威が与えられています。
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行って、あらゆる国の人々を弟子としなさい。父、子、聖霊の名において彼らにバプテスマを授け、
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命じておいた、すべてのことを守るように教えなさい。見よ。わたしは世の終わりまで、いつもあなたがたとともにいます。」

그리고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16절
“15.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それから、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福音を宣べ伝えなさい。
信じてバプテスマを受ける者は救われます。しかし、信じない者は罪に定められます。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이른바 예수님의 지상명령 또는 선교 지상명령이라고도 하는 말씀이지요.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그럼 창세기 말씀에 대입을 시켜보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것이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는 것이다.

둘째, 이는 우리더러 노력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를 능히 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이렇게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실천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그렇습니다. 베드로나 바울이,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이 이와 같은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은 귀중한 것이요 진정한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삶이야말로 진정한 열매를 맺는 삶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금 당장 모든 직업을 포기하고 모두가 신학을 공부하고 안수를 받아야만 하는 건가요?

우리는 열매 맺는 삶, 열매 맺는 삶……이라고 하는데, 이 ‘열매’라고 하는 것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과 같이 많은 나무들은 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잎사귀도 내고 광합성도 하고 성장도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 열매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열매의 특징이 뭐죠?


물론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되겠습니다만,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그 안에 들어있는 씨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열매가 크고 맛이 좋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든 씨가 없다면 번식을 할 수가 없겠지요. 사실 열매를 맛이 좋게 하는 이유는, 새들이나 짐승들이 열매를 먹고는, 그 씨를 널리 퍼뜨리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 안에서 이 땅에 번성하고 이 땅을 정복하는 진정한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씨를 퍼뜨려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이라고 하는 씨를 퍼뜨려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씨 없는 믿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교회에서 정치 이야기나 돈 이야기를 합니다. 권력이나 세상 윤리 도덕 이야기를 합니다. 무엇이 사라지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라고 하는 귀한 씨가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집 근처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작은 강이긴 하지만, 그 강가에 자전거 도로가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초여름이 되니까 그 도로 옆에 보면 일대에 풀들이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정말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다에 그 풀들이 닿을 정도인데, 가만히 놔두면 길을 아주 덮어버릴 기세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제초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저기서 기계로 그 무성한 풀들을 깎아버립니다. 그러면 그 깎인 풀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 순간은 그래도 푸른 빛이 남아 있습니다. 잘린 풀들은 그대로 거기 놓여있고, 색깔도 그대로니까, 물론 잘려서 이렇게 누워있긴 합니다만, 여전히 흙이나 본래 줄기와는 붙어있긴 하지요. 아니, 붙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며칠 뒤에 가보니까 어떻게 되어 있었겠습니까. 여전히 땅바닥에 놓여 있고 그 풀들의 본래 줄기와 붙어 있긴 했습니다만, 잘려나간 풀들은 완전히 갈색으로 변해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わたしはぶどうの木、あなたがたは枝です。人がわたしにとどまり、わたしもその人にとどまっているなら、その人は多くの実を結びます。わたしを離れては、あなたがたは何も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

교회에는 두 가지 부류의 성도님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라고 하는 포도나무에 꼭 붙어 있는 성도님들. 또 하나는 예수님이라고 하는 포도나무에 꼭 붙어 있는……것처럼 보이는 성도님들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찰 티가 안 나요. 교회에 매주 나오고, 믿음 생활도 뭐 나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쪽은 정말 꼭 붙어 있는 성도님이요, 다른 한쪽은 정말 꼭 붙어 있는……것처럼 보이는 성도님이라는 것이지요.

겉으로 보면 차이가 별로 안나 보이지만 조금 지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자전거 도로에 나 있던 풀들처럼, 정말로 줄기에 붙어 있는 풀들은 여전히 푸르지만,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풀들은 얼마 지나자 갈색으로 시들어버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라고 하는 포도나무에 꼭 붙어 있는 사람은 열매를 맺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성장합니다. 내 주변에 예수님의 향기가 넘쳐납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라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점점점점 그 믿음이 식어갑니다. 시들어져 갑니다. 메말라 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나와 예수님 사이의 접착제가 말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접착제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교양을 쌓았다 하더라도, 아무리 세상 책을 많이 읽었다 하더라도 성경말씀이 우리 안에 없다면 이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 그야말로 전도서 기자처럼 헛되어 바람을 잡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진정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예수님은 주님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앞서 읽어드린 요한복음 1장 1절을 기억하십니까.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初めにことばがあった。ことばは神とともにあった。ことばは神であった。

성경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기록하십니다.


출애굽기 13장 9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9.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10.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これをあなたの手の上のしるしとし、あなたの額の上の記念として、主のおしえがあなたの口にあるようにしなさい。力強 い御手で、主があなたをエジプトから導き出されたからである。

신명기 6장 8절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これをしるしとして自分の手に結び付け、記章として額の上に置きなさい。

신명기 11장 18절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このことばを心とたましいに刻み、それをしるしとして手に結び付け、記章として額の上に置きなさい。

이 말씀 때문에 유대인 남성들이 기도할 때 보면 성경이 적힌 작은 상자를 여기 이마에 묶거나 팔뚝에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우리도 이렇게 성경을 작게 만들어서 이마에 매고 팔뚝에 칭칭 감아야 제대로 말씀을 지키는 것이 되나요?

머리와 손에 말씀을 달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머리로 하는 생각과 팔로 하는 행동에 있어서, 말씀을 기준으로 하라는 주님의 명령이리고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서는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무엇이 먼저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먼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먼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 말씀이 먼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와 같은 삶이야말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음 안에서의 삶, 진정한 가치 있는 삶이란 바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 예수님을 전하는 삶, 예수님을 나타내는 삶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라고 하는 포도나무에 성경말씀으로 꼭 붙어 있는 나뭇가지가 되어서, 예수님이라고 하는 씨를 전파하고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통해서, 주님께서 주시는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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