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회 영생과 영벌
2019년 11월 24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36절
31.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マタイの福音書 25章 31節~36節
31.人の子は、その栄光を帯びてすべての御使いたちを伴って来るとき、その栄光の座に着きます。
32.そして、すべての国の人々が御前に集められます。人の子は、羊飼いが羊をやぎからより分けるように彼らをより分け、
33.羊を自分の右に、やぎを左に置きます。
34.それから王は右にいる者たちに言います。『さあ、わたしの父に祝福された人たち。世界の基が据えられたときから、あなたがたのために備えられていた御国 を受け継ぎなさい。
35.あなたがたはわたしが空腹であったときに食べ物を与え、渇いていたときに飲ませ、旅人であったときに宿を貸し、
36.わたしが裸のときに服を着せ、病気をしたときに見舞い、牢にいたときに訪ねてくれたからです。』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영생과 영벌” 永遠のいのちと永遠の刑罰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먼저 본문말씀이 있는 마태복음에 앞서 누가복음부터 살펴볼까 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24절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24절
19.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ある金持ちがいた。紫の衣や柔らかい亜麻布(あまぬの)を着て、毎日ぜいたくに遊び暮らしていた。
その金持ちの門前には、ラザロという、できものだらけの貧しい人が寝ていた。
彼は金持ちの食卓から落ちる物で、腹を満たしたいと思っていた。犬たちもやって来ては、彼のできものをなめていた。
しばらくして、この貧しい人は死に、御使いたちによってアブラハムの懐に連れて行かれた。金持ちもまた、死んで葬られた。
金持ちが、よみで苦しみながら目を上げると、遠くにアブラハムと、その懐にいるラザロが見えた。
金持ちは叫んで言った。『父アブラハムよ、私をあわれんでラザロをお送りください。ラザロが指先を水に浸して私の舌を冷 やすようにしてください。私はこの炎の中で苦しくてたまりません。』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보면 돈이 많았던 부자와 가난했던 나사로가 죽게 되었는데 부자는 지옥에 떨어지고 나사로는 천국에 갔다는 이야기이지요.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사실 알고 보면 여기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놀라운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 포함된 마태복음에도 숨겨져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까지 조금 길지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

31.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人の子は、その栄光を帯びてすべての御使いたちを伴って来るとき、その栄光の座に着きます。
そして、すべての国の人々が御前に集められます。人の子は、羊飼いが羊をやぎからより分けるように彼らをより分け、
羊を自分の右に、やぎを左に置きます。
それから王は右にいる者たちに言います。『さあ、わたしの父に祝福された人たち。世界の基が据えられたときから、あなたがたのために備えられていた御国 を受け継ぎなさい。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が空腹であったときに食べ物を与え、渇いていたときに飲ませ、旅人であったときに宿を貸し、
わたしが裸のときに服を着せ、病気をしたときに見舞い、牢にいたときに訪ねてくれたからです。』
すると、その正しい人たちは答えます。『主よ。いつ私たちはあなたが空腹なのを見て食べさせ、渇いているのを見て飲ませて差し上げたでしょうか。
いつ、旅人であるのを見て宿を貸し、裸なのを見て着せて差し上げたでしょうか。
いつ私たちは、あなたが病気をしたり牢におられたりするのを見て、お訪ねしたでしょうか。』
すると、王は彼らに答えます。『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あなたがたが、これらのわたしの兄弟たち、それも最も小さい者たちの一人にしたことは、わたしにしたのです。』
それから、王は左にいる者たちにも言います。『のろわれた者ども。わたしから離れ、悪魔とその使いのために用意された永遠の火に入れ。
おまえたちはわたしが空腹であったときに食べ物をくれず、渇いていたときに飲ませず、
わたしが旅人であったときに宿を貸さず、裸のときに服を着せず、病気のときや牢にいたときに訪ねてくれなかった。』
すると、彼らも答えます。『主よ。いつ私たちは、あなたが空腹であったり、渇いていたり、旅人であったり、裸でいたり、病気をしていたり、牢 におられたりするのを見て、お世話をしなかったでしょうか。』
すると、王は彼らに答えます。『まことに、おまえたちに言う。おまえたちがこの最も小さい者たちの一人にしなかったのは、わたしにしなかったのだ。』
こうして、この者たちは永遠の刑罰に入り、正しい人たちは永遠のいのちに入るのです。」

여기 31절에 보면,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人の子は、その栄光を帯びてすべての御使いたちを伴って来るとき、その栄光の座に着きます。

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의 상황을 말씀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오셨을 때에는 고난 받는 종,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시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으나,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이제 민족들을 모두 모아놓고 예수님께서 심판을 하시는데, 그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우선 의인과 악인으로 나누시고는 의인은 영생에, 그리고 악인은 영벌에 들어가라는 하는 판결을 내리십니다.

역시 이 말씀도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를 자세히 보면 역시 여기에도 대단히 충격적인 사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먼저 이 두 이야기 중에 등장하는 형벌을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부자와 나사로에 등장하는 부자는 어땠습니까.

누가복음 16장 23절~24절
23.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金持ちが、よみで苦しみながら目を上げると、遠くにアブラハムと、その懐にいるラザロが見えた。
金持ちは叫んで言った。『父アブラハムよ、私をあわれんでラザロをお送りください。ラザロが指先を水に浸して私の舌を冷 やすようにしてください。私はこの炎の中で苦しくてたまりません。』

지금 이 부자는 그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할 정도로 불꽃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요.

그리고 이제 마태복음으로 돌아와보면, 오른편과 왼편으로 나누신다고 하는데, 그 때 왼편에 있는 사람들이 받은 형벌은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마태복음 25장 41절
41.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それから、王は左にいる者たちにも言います。『のろわれた者ども。わたしから離れ、悪魔とその使いのために用意された永遠の火に入れ。

이 또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는 무서운 판결을 내리십니다.

여러분, 한국이나 일본을 보면 제일 무거운 형벌이 사형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 어떤 끔찍한 죄를 저지른 흉악범이라 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형벌은 없습니다. 그리고 형 집행에 있어서도 지금은 가급적 고통을 주지 않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죄를 저지른 범인이라 하더라도 국가권력이 합법적으로 그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서는 대단히 까다로운 법적 절차를 필요로 합니다. 보통 지법, 고법, 대법까지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몇 년, 형이 확정될 때까지 길게는 10년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확정된다 하더라도 재심청구를 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간이 많이 걸리게 됩니다.

사형보다 그래도 가벼운 형벌은 무기징역이지요. 이는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서 나올 수 없는 게 아닙니다. 보통 30년 이상 지나면 가석방 심사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심사를 해서 이제 사회에 나가도 되겠다 하고 판단이 되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장 무거운 사형판결 정도를 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무거운 죄를 범해야 하는가 하면, 이는 물론 여러 상황이 고려되어야 하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사람을 해치는 살인죄가 대표적인 중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일은 그야말로 무거운 범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런데 일반적으로 보면 단순히 한 사람을 해치는 정도 가지고 사형이 확정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형이 아니라면 무기징역, 또 그 밑에는 징역 몇 년이라고 하는 유기징역, 금고, 집행유예, 벌금 등등 판결 종류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살펴본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받은 형벌은 어떻습니까. 누가복음에 등장한 부자도 그렇고 마태복음에 등장한 사람들도 그렇고 영원히 불 속에 던져진다고 하는,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요즘 세상에서, 아무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뭐 예를 들어서 죽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사우나 속에 몇 년 동안 집어넣는다……만약에 그런 형벌을 만든다고 한다면, 이는 국내 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크나큰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차라리 사형이 백 번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런데 성경에 등장하는 형벌은 어떻습니까. 이건 뭐 뜨거운 사우나 정도가 아닙니다. 꺼지지 않는 불, 영원히 타는 불 속으로 던져 넣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거기 던져진 사람은 어떻게 되요? 불 때문에 죽어버리나요? 아니요. 이미 죽었습니다. 이상한 말이지만 차라리 죽으면 고통은 끝이 나니까 다행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죽지 않습니다. 고통이 끝나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계속됩니까. 그렇습니다.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그 불 속에서 고통 속에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형벌입니까.

자,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죄를 저질렀기에 이처럼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 것인지를 살펴봐야지요. 이게 참 놀랍습니다.


먼저, 불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부자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어떤 무거운 죄를 저질렀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21절
19.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ある金持ちがいた。紫の衣や柔らかい亜麻布(あまぬの)を着て、毎日ぜいたくに遊び暮らしていた。
その金持ちの門前には、ラザロという、できものだらけの貧しい人が寝ていた。
彼は金持ちの食卓から落ちる物で、腹を満たしたいと思っていた。犬たちもやって来ては、彼のできものをなめていた。

음? 이게 뭐예요? 부자가 사람을 죽였대요? 부자가 남의 것을 훔쳤대요? 부자가 남을 속였대요? 아니에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이 기록만 본다면, 부자는 자기 돈으로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답니다. 그게 다예요.

마태복음에서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마태복음 25장 42절~45절
42.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おまえたちはわたしが空腹であったときに食べ物をくれず、渇いていたときに飲ませず、
わたしが旅人であったときに宿を貸さず、裸のときに服を着せず、病気のときや牢にいたときに訪ねてくれなかった。』
すると、彼らも答えます。『主よ。いつ私たちは、あなたが空腹であったり、渇いていたり、旅人であったり、裸でいたり、病気をしていたり、牢 におられたりするのを見て、お世話をしなかったでしょうか。』
すると、王は彼らに答えます。『まことに、おまえたちに言う。おまえたちがこの最も小さい者たちの一人にしなかったのは、わたしにしなかったのだ。』

여기에 보면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지극히 작은 자,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의지할 곳이 없어지거나, 헐벗었거나, 병 들었거나 옥에 갇혔거나 하는 것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부자나 왼편에 있는 자들이나, 우리가 생각할 때 그들이 저지른 죄가 이 세상에 있는 사형판결을 받을만한 범죄보다도 더 가혹한 형벌을 받아 마땅할 정도로 무거운 죄를 지은 것 같이 보이십니까.

아니요. 정반대입니다. 윤리나 도덕적으로 본다고 한다면 비난을 받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법적으로 보면 어떻습니까. 자신의 돈으로 좋은 옷을 입는 게 죄인가요? 자신의 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게 죄인가요? 가난한 나사로를 도와주지 않은 것이 죄인가요?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 당해야 합니까?

흉악범은 고사하고 세상적으로 본다면 부자나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무죄.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죄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것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으로 던져 넣을 정도로 무거운 죄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게 여러분께서는 이해가 되십니까? 납득이 되시나요? 이해가 되시고 납득이 되신다는 분은, 그럼 여러분께서는 지금 이 순간 주님이 오시면 오른편에 있을 자신이 있으신가요?

성경을 조금 아시는 분들은 여기까지 들으시고, 어쩌면 로마서 3장 23절~24절을 인용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24절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すべての人は罪を犯して、神の栄光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
神の恵み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よる贖いを通して、価なしに義と認められるからです。

자, 봐라. 우리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불 속에 던져질 정도의 무거운 죄인이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게 된다고 기록되지 않느냐.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벌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누군가가 주장한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이 주장은 대단히 그럴듯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간단히 말해서 순서의 오류라고 하겠습니다.

만약에 이 부자에 대한 비유와 왼편에 있는 사람에 대한 비유가 구약에 나왔다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쓰여진 것이었다면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누가 하신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꺼지지 않는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죄인이지만 나를 믿으면 구원을 받아 영생에 들어갈 것이다.”

예수님께서 만약에, 너희들이 무거운 죄를 지은 죄인이지만 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취지로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자 했다면 이렇게 됐겠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끔찍한 형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큰 근거가 있습니다. 항상 제가 말씀 드리듯이, 특히 복음서를 읽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셨는지 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만약 이 비유가 아직 믿음이 없는 일반 회중들에게 하셨다면 믿음과 구원에 대한 말씀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두 비유는 주로 누구에게 말씀하셨냐 하면, 성경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신 대상은 누구냐 하면 그 비유가 나와 있는 누가복음 16장 1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절 초반부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イエスは弟子たちに対しても、次のように語られた。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에 나와 있는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유는 24장부터 시작합니다. 이 말씀을 시작하시는 마태복음 24장 3절 초반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절 초반부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イエスがオリーブ山で座っておられると、弟子たちがひそかにみもとに来て言った。

즉, 이 두 비유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두 말씀은 “나를 믿는 너희들에게 해줄 말이 있는데……”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부자도 아브라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의 변명을 다시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2절~45절
42.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おまえたちはわたしが空腹であったときに食べ物をくれず、渇いていたときに飲ませず、
わたしが旅人であったときに宿を貸さず、裸のときに服を着せず、病気のときや牢にいたときに訪ねてくれなかった。』
すると、彼らも答えます。『主よ。いつ私たちは、あなたが空腹であったり、渇いていたり、旅人であったり、裸でいたり、病気をしていたり、牢 におられたりするのを見て、お世話をしなかったでしょうか。』
すると、王は彼らに答えます。『まことに、おまえたちに言う。おまえたちがこの最も小さい者たちの一人にしなかったのは、わたしにしなかったのだ。』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만약에 그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사람이 별볼일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도와드렸겠지요……. 그들의 변명은 마치 이와 같이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제가 지난 주, 토요일 쯤에 이빨이 좀 안 좋아졌어요. 원래 좀 어금니가 안 좋긴 한데, 영 좀 불편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주로 다니는 동네 치과병원이 있는데, 거기 원장님이 수요일에 나오십니다. 그래서 뭐 그럭저럭 견디다가 수요일에 가봤는데, 그 분은 제가 몇 년 동안 다니고 있기 때문에 제 이빨 사정에 대해서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잇몸에 염증이 생겼기 때문에 잇몸에 약을 넣어야 된대요.

그래서 알겠다고 그랬지요. 예전에도 약은 넣어준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곪았을 때 넣은 약은 좀 다른가 보더라고요. 미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좀 아프대요. 그런데 이걸 넣어야지만 빨리 낫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지요. 그랬더니 거 참 이게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아니, 약을 넣을 때도 그렇지만, 넣고 난 다음에도 너무너무 아파요. 이게 아픈 이유가 그만큼 염증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시던데, 아, 정말 지금까지 그렇게 오랫동안 통증을 느껴본 일도 별로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팠습니다.

저녁 때 집에 와서 진통제를 먹고 누워서 잠을 좀 청해보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아요. 한 5시간 정도는 그렇게 아프지 않았을까 해요. 어느 쪽으로 누워도 아프고 그래서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고 참 모처럼 아주 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제가 이 어금니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아, 그거 제대로 관리를 안 했기 때문 아니냐 하겠습니다만, 아니에요. 한국에 있을 때에도 꼬박꼬박 치과 다니면서 스케일링도 받고 검사도 받고 그랬습니다.

치아관리요? 저는 그 정도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냥 그렇게 양치질도 하고 그렇게 치과도 다니면, 그러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치과에 가니까 그러는 거예요. 이 이빨을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 거죠. 아니, 내가 그 치과에 계속 다니고 있었는데 그 때까지는 그런 말을 한 마디도 안 하다가, 이제 지금 와서 갑자기 그러면 그게 어떻게 된 거예요?

결론은 하나입니다. 그 치과가 엉터리였던 거예요. 제대로 검사도 안 하고, 스케일링도 그냥 흉내만 내다가, 이제 치아가 제대로 나빠지니까 돈이 많이 드는 임플란트를 권해온 것이다……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그렇게 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 치과는 그 이후로 가지 않았습니다만, 그렇다고 나빠진 제 이빨이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지요.

치과 잘못 고른 대가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 이빨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뭐, 이발이야 치료하면 됩니다. 치료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지요. 여차하면 빼버릴 수도 있겠지요. 맹장 같은 것도 빼버린다는데 그깟 이빨 몇 개 빼버린다고 생명에 지장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우리 신앙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주일 예배 드리고, 헌금하고 그러면 되는 줄 알았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가끔 금식하고, 그러면 되는 줄 알았다.

앞서 살펴본 왼쪽 사람들의 주장을 읽어보면 당황한 듯한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아니,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하면서, 설마 자신이 그렇게 끔찍한 벌을 받게 될 줄은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믿음 생황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믿음과 말씀과 행함이 올바로 서 있는지를 점검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6절~17절
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あなたがたのうちのだれかが、その人たちに、「安心して行きなさい。温まりなさい。満腹になるまで食べなさい」と言っても、からだに必要な物を与えなければ、何の役に 立つでしょう。
同じように、信仰も行いが伴わないなら、それだけでは死んだものです。

야고보서 2장 22절
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あなたが見ているとおり、信仰がその行いとともに働き、信仰は行いによって完成されました。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죽은 믿음, 그러니까 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니, 있으면 오히려 해만 되는 믿음입니다. 행함이 함께 있어야 온전한 믿음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서 아멘, 할렐루야, 하고 아무 것도 안 하다면, 그 믿음은 있으나 마나 한 믿음, 아니, 오히려 없느니만 못하는 믿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왼편이 아니라 오른편에 있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출애굽을 하려는 모세에게 바로는 말합니다.

출애굽기 8장 28절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ファラオは言った。「では、おまえたちを去らせよう。おまえたちは荒野で、おまえたちの神、主にいけにえを献げるがよい。ただ、決して遠くへ行ってはならない。私のために祈ってくれ。」

지금도 믿음과 말씀을 가지고 행함으로 실천하려는 우리들에게 마귀는 속삭입니다.
ほどほど
너무 멀리 가지 마, 적당히 해. 적당히 믿음생활도 하고, 적당히 말씀 묵상도 하고, 적당히 행함도 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적당히 천국에 갑니까.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적당히 라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영생 아니면 영벌, 천국 아니면 지옥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5절~7절
5.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だからこそ、あなたがたはあらゆる熱意を傾けて、信仰には徳を、徳には知識を、
知識には自制を、自制には忍耐を、忍耐には敬虔を、
敬虔には兄弟愛を、兄弟愛には愛を加えなさい。

적당히 가 아니라 조금만 더 힘써 봅시다. 적당히 믿음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더 힘써 믿음생활을 하고, 조금만 더 힘써 말씀 묵상도 하고, 조금만 더 힘써 행함을 합시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주님의 왼편이 아닙니다. 오른편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지옥이 아니라 천국입니다.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영벌이 아니라 영생인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축복을 받은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4절~36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4절~36절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それから王は右にいる者たちに言います。『さあ、わたしの父に祝福された人たち。世界の基が据えられたときから、あなたがたのために備えられていた御国 を受け継ぎなさい。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が空腹であったときに食べ物を与え、渇いていたときに飲ませ、旅人であったときに宿を貸し、
わたしが裸のときに服を着せ、病気をしたときに見舞い、牢にいたときに訪ねてくれたからです。』


이제 11월도 이번 주가 마지막입니다. 다음 주는 이제 12월이지요. 올해가 가기 전에 이제부터 조금만 더 힘써 믿음과 말씀을 가지고 행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면서, 정말 언제 예수님이 오시더라도, 주님의 오른편에 서게 되어 영생의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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