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회 수확과 감사
2019년 11월 17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38절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ヨハネの福音書 4章 38節
“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自分たちが労苦したのでないものを刈り入れるために遣わしました。ほかの者たちが労苦し、あなたがたがその労苦の実にあずかっているのです。」”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추수와 감사” 収穫と感謝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만, 이제 2019년 11월도 중순을 넘어섰습니다. 아직 올해는 한 달과 조금 더 남아 있습니다만, 올 한해, 여러분께서는 어떠십니까. 추수를 많이 하셨습니까. 아니면 아직 좀 더 추수를 해야겠습니까.

그렇다면, 추수라고 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옛날에 농사를 짓는 상황이었다고 한다면 풍년이 되어서 많은 수확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추수겠지요. 수확이 많아지면 수입도 늘게 됩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게 풍요로운 수확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올해 여름에 보면 일본 같은 경우에는 태풍 15호에 19호의 영향으로 상당히 많은 수해가 발생하였습니다.

뉴스를 통해서 보니, 한 번은 바람 때문에 피해가 컸는데, 그 다음은 비 때문에 피해가 심했다고 합니다. 같은 태풍이라 하더라도 그 당시 상황에 따라서 이처럼 피해도 다르게 나타나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수확을 방해하는 것은 태풍만이 아니지요. 일본 같은 경우를 보면 때로는 지진이나 화산일 수도 있습니다. 여름에는 너무나 더워도 문제가 생기지만, 그렇다고 너무 안 더워도 농작물에 있어서는 안 좋다고 하지요.

축산물은 어떻습니까. 한국이나 일본을 보더라도 지난 여름에 豚コレラ 돼지열병 때문에 축산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수산물 쪽도 마찬가지겠지요. 지금 보면 지구 전체의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바다 속도 생태계의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니까 해파리가 비정상적으로 번식을 했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수산업을 하시는 분들에게 피해가 상당히 컸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농수산이나 축산을 보더라도 정말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아야지만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고, 여기서 조금만 문제가 생기더라도 금새 문제가 커져서 수확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수라고 해서 그렇겠지만, 어디 농수산, 축산만이 수확일 수 있겠습니까.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 자기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도 모두가 풍성한 수확을 꿈꾸면서 열심히 일을 하시지요. 하지만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면 수입도 늘어나도 생활도 안정되고 하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지요.

자, 그렇다면 우리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는 올 한해 동안, 무엇을 추수하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추수하였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어떠십니까. 많이 추수한 것 같으세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 오늘의 문제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 중에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어디가 이상한지 한 번 마음 속으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이 감사한 이유. 그것은 이만큼 노력해서 이만큼 추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다.

収穫感謝祭が感謝な理由、それは、これくらい努力してこれくらい収穫できたから感謝ある

이 말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이 감사한 이유. 그것은 이만큼 노력해서 이만큼 추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다.

収穫感謝祭が感謝な理由、それは、これくらい努力してこれくらい収穫できたから感謝ある

어떻게 보면 이상한 곳이 없습니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고 추수할 수 있나요? 아니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지요. 그리고 그렇게 노력한 결과 추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말씀은,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상한 점이 숨어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노력해서 그 결과로 추수할 수 있었다면 감사의 대상이 불분명하다는 점이요, 둘째는, 내가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수할 수 없었다면 감사한다는 의미가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점입니다.

먼저, 첫 번째 부분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올 한해 열심히 노력해서 그 결과로 추수를 했는데, 그렇다면 누구한테 감사를 해야 한다는 걸까요? 내가 나 자신한테 감사를 해요? 내가 내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었는데, 그렇다면 이는 감사가 아니라 자랑스러워해야 되지 않겠습니다. 감사는 다른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힘이나 노력으로 수확을 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있을 수 없지요. 그러니까 <내가 내 노력으로 추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다>라는 말은 이 점에서 이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내가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수할 수 없었다면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한다는 말씀은, 그렇다면 오늘 추수감사절 예배는, 그 해에 추수할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만약에 제가 앞서 드린 말씀, <이만큼 노력해서 이만큼 추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 것도 추수한 것이 없는 경우라면 무슨 감사를 드릴 게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살펴본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38절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自分たちが労苦したのでないものを刈り入れるために遣わしました。ほかの者たちが労苦し、あなたがたがその労苦の実にあずかっているのです。」

오늘 이 말씀, 은혜롭게 들리시나요? 여러분이 예를 들어서 회사생활을 하는데, 무슨 큰 성과를 거두었어요. 그래서 자랑스럽게 회사에 돌아가서, 사장님한테, 아~ 사장님, 제가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고 말하는데,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거 니가 노력해서 거둔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니가 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뿐이야.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면 여러분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좀 김이 새겠지요? 사장님이 나를 좀 크게 칭찬해주실 줄 알았는데, 내가 노력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노력했기 때문에 내가 그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에 바로 추수와 감사의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시는 분들 중에서 본인의 월급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100% 만족하고 있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나는 이만큼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일한 만큼 월급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회사에서 한 사람을 고용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들어가는 비용이 그 사람의 월급 뿐일까요?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월급 300만원인 직원을 고용한다고 한다면, 회사에서 그 사람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월급의 3배 정도를 생각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월급 300만원인 직원 한 사람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쓰는 컴퓨터다, 책상이다 의자다, 전기세다, 교통비다 뭐다 해서 적어도 3배인 9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회사 쪽에서 봤을 때 그 직원의 월급이 300만원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한 달에 900만원 정도의 일을 해주어야지만 본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전만으로 회사 경영이 되나요. 그러니까 최소한 900만 원어치 이상 그 직원이 일을 해주어야지만 회사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는, 내가 받는 월급의 3배 정도의 수익을 회사한테 돌려주고 있느냐,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는 월급만큼만 일을 하면 되는 것인 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감사가 아니라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는 회사 쪽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들이 충분히 성과를 올려주고 있다면 직원들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항상 직원들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만 부린다고 한다면, 역시 그 회사 경영자한테는 이 또한 감사가 아니라 불만 밖에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절~8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로마서 4장 2절~8절
2.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もしアブラハムが行い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たのであれば、彼は誇ることができます。しかし、神の御前ではそうではありません。
聖書は何と言っていますか。「アブラハムは神を信じた。それで、それが彼の義と認められた」とあります。
働く者にとっては、報酬は恵みによるものではなく、当然支払われるべきものと見なされます。
しかし、働きがない人であっても、不敬虔な者を義と認める方を信じる人には、その信仰が義と認められます。
同じようにダビデも、行いと関わりなく、神が義とお認めになる人の幸いを、このように言っています。
「幸いなことよ、不法を赦され、罪をおおわれた人たち。
幸いなことよ、主が罪をお認めにならない人。」

이 말씀이 좀 어렵게 들리실지는 모르지만, 이 말씀 하나 가지고도 하루 종일 설명을 드릴 수 있을 정도로 이 말씀에 담긴 내용이 많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アブラムは主を信じた。それで、それが彼の義と認められた。

여기서 “아브람”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시게 되는데, 이는 그 이전,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초창기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셨다. 즉, 쉽게 말하자면 참 잘했다 하고 높이 평가하셨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아브라함이 스스로 열심히 노력을 해서 어떤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바로 그 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높이 평가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5절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로마서 4장 4절~5절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働く者にとっては、報酬は恵みによるものではなく、当然支払われるべきものと見なされます。
しかし、働きがない人であっても、不敬虔な者を義と認める方を信じる人には、その信仰が義と認められます。

이 말씀은, 내가 그만큼 일을 했으니까 이 정도로 돈을 받는다……이렇게 생각하는 사람한테는 감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냐 하면, 내가 그만큼 일을 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높여주시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이죠.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높이 평가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4장 6절~8절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同じようにダビデも、行いと関わりなく、神が義とお認めになる人の幸いを、このように言っています。
「幸いなことよ、不法を赦され、罪をおおわれた人たち。
幸いなことよ、主が罪をお認めにならない人。」

이는 나 자신이 일한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해주셨다는 것에 대해서 다윗은 어떻게 말하고 있냐 하면, 내가 무엇인가를 잘하기는커녕 내가 죄를 지었다면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죄값을 치러야 하겠지만, 내 죄값을 치르기 위해 내가 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죄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를 누가 해결해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을 모두 받아주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옛 선지자들도 포함해서, 우리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하나님의 독생자가 대신해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일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 채찍에 맞아 주셨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인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해결해주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ずうずうしい、あつかましい

이 사실만 보면 너무나 좀 염치 없지 않으세요? 좀 뻔뻔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예수님이 그냥 알아서 와서 십자가에서 그렇게 비참한 형벌을 받음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되었어요. 하지만 성경은 이를 염치 없다거나 뻔뻔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4장 7절~8절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幸いなことよ、不法を赦され、罪をおおわれた人たち。
幸いなことよ、主が罪をお認めにならない人。」

그렇습니다. 염치 없다거나 뻔뻔한 게 아니라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13절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しかし、この方を受け入れた人々、すなわち、その名を信じた人々には、神の子どもとなる特権をお与えになった。
この人々は、血によってではなく、肉の望むところでも人の意志によってでもなく、ただ、神によって生まれたのである。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밥을 해줍니다. 옷을 사 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가 밥을 먹을 만큼 무슨 노력을 했기 때문에요? 옷을 사 입혀줄 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사줍니까.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사랑을 받기 위해서 아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는 것, 그게 전부 다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아직 5살 정도 밖에 안 된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한테 와서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 아버지, 어머니,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냥 맨입으로 밥도 먹여주고 옷도 사 입혀주고 그러시는 것을 그저 받기만 하면 너무나 죄송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제부터 밖에 나가서 좀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생활에 보탬을 드리려고 합니다……이렇게 말을 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 말을 듣고, 어이구 그래. 내가 당장 일자리를 알아봐주마……라고 말할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야야, 됐다. 내가 언제 너한테 그런 걸 바랬냐. 그냥 주는 밥 잘 먹고, 주는 옷 잘 입고, 그리고 엄마 아빠 말 잘 들으면 그걸로 충분해……그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깨끗한 척 잘난 척 해 봤자 소용이 없어요. 우리의 노력으로는 내 죄의 천 분의 일, 만 분의 일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염치가 없어요? 뻔뻔해요? 아니요. 주님 안에서 이것이야말로 복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욥기 41장 11절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だれが、まずわたしに与えたというのか。わたしがそれに報い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に。天の下にあるものはみな、わたしのものだ。

온 천하에 있는 것은 누구의 것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가지신 분입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 봤자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을 갚을래야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것이 필요하겠습니까. 더 큰 노력이요? 아니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감사>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사실을 알기 전에는, 내가 가진 것, 내가 얻은 것이 모두 내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욕심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내가 10만큼 노력했으니까 이만큼 이루었어요. 그러면 내가 20만큼 일하면 두 배로 늘릴 수가 있고, 100만큼 노력하면 열 배로 늘릴 수가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만족이 사라집니다. 감사가 사라집니다. 그러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21절
16.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それからイエスは人々にたとえを話された。「ある金持ちの畑が豊作であった。
彼は心の中で考えた。『どうしよう。私の作物をしまっておく場所がない。』
そして言った。『こうしよう。私の倉を壊して、もっと大きいのを建て、私の穀物や財産はすべてそこにしまっておこう。
そして、自分のたましいにこう言おう。「わがたましいよ、これから先何年分もいっぱい物がためられた。さあ休め。食べて、飲んで、楽しめ。」』
しかし、神は彼に言われた。『愚か者、おまえのたましいは、今夜おまえから取り去られる。おまえが用意した物は、いったいだれのものになるのか。』
自分のために蓄えても、神に対して富まない者はこのとおりです。」

자신만을 알고 자신의 노력만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모르게 되면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그의 인생은 이처럼 허망하게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추수로 감사하는 것은 우리 앞에 쌓인 많은 돈과 재산을 보아야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금은 보화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마치 눈을 감고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언제 사고가 나서 허망한 인생을 마치게 될 지 모르는 일인 것입니다.

어제 텔레비전을 보니까 피겨스케이트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예전에 김연아 선수가 어느 토크쇼에 출연했던 것이 기억이 나요. 사회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연기를 하는 것을 보면 무척 빨리 회전을 하기도 하던데, 그 횟수를 돌면서 다 세고 있는 거예요? 라고 물으니까, 김연아 선수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당연하죠~ 심사위원들이 다 보고 있는데요~ 라고 하더라구요.

참 이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기도 하고 도전이 되기도 하는지 모릅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욥은 그런 의미에서도 참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었나 합니다.

대단한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었던 욥. 재산만이 아니라 자녀들까지도 모두 잃고, 자신은 온통 피부병에 걸려서 괴로워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욥기 2장 7절~10절
7.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8.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9.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10.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サタンは主の前から出て行き、ヨブを足の裏から頭の頂まで、悪性の腫物で打った。
ヨブは土器のかけらを取り、それでからだを引っかいた。彼は灰の中に座っていた。
すると、妻が彼に言った。「あなたは、これでもなお、自分の誠実さを堅く保とうとしているのですか。神を呪って死になさい。」
しかし、彼は妻に言った。「あなたは、どこかの愚かな女が言うようなことを言っている。私たちは幸いを神から受けるのだから、わざわいも受けるべきではないか。」ヨブはこのすべてのことにおいても、唇によって罪に陥ることはなかった。

저는 욥의 아내가 이렇게 심한 말을 한 것이, 그녀가 나쁜 사람이라서 라기보다는, 너무나도 자신의 남편 처지가 딱하고 안타깝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쌍한 처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욥이 어떻게 했다고요? 예,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이게 누가 보기에 그랬다는 것이이요? 그렇습니다. 이 순간, 하나님께서 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욥은 이 사실, 하나님께서 그 순간도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추수감사절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열심히 노력했느냐, 누가 많은 재물을 받았느냐 하는 것을 비교하는 날도 아니요, 자랑하는 날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감사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에 감사하는 날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넉넉하십니까.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감사 드리시기 바랍니다. 채워주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부족하십니까.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감사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넉넉히 채어주실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가 나오는지 불평이 나오는지, 찬양이 나오는지 불만이 나오는지 주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오 천하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못 채워주실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우리의 노력이 아닌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채워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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