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복된 그릇
2016년 4월 3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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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21절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복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한국에서 인기있는 TV프로 중에 ‘진품명품’이라는 방송이 있었습니다. 들어보신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일본에는 ‘난데모 칸테이단’이라고 해서 매우 인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들 방송을 보면 자기 집에 있는 이런저런 골동품이 있는데 이게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모르겠으니 감정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감정이야 굳이 방송에 나오지 않더라도 자기가 전문가를 찾아가서 부탁하면 되겠지만, 여기에는 아무래도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개인적으로 부탁하면 감정비가 들겠죠. 전문가가 시간을 내서 감정을 한다고 하면, 글쎄요, 얼마나 받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공짜는 아니겠죠. 하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면 감정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오히려 출연료까지 받을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한 마디로 전문가라고 해도 세상에는 워낙 가짜가 많다보니, 누구를 찾아가서 감정을 부탁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텔레비전 방송에 나오면, 그래도 믿을만한 사람을 데려다가 놨을테니,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셋째로는, 아무리 정말 믿을만 하고 유명한 사람이 감정을 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믿어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방송에 나오면 신뢰할 만한 전문가가 공개적으로 감정을 해주는 것이니 이것만큼 결정적인 증거가 또 없겠지요. 그래서 너도나도 집에 있는 골동품들을 다 뒤져다가 응모를 하고, 그 중에서 선정된 물건이 방송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한국에 있을 때 즐겨봤었고, 일본에서도 어쩌다 TV를 볼 때 타이밍이 맞으면 꼭 보는 방송입니다. 이 방송의 묘미는 바로 시청자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물건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물건의 소유자가 나와서 이 물건이 무엇이고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설명합니다. 이런 방송은 일본이 먼저 시작했는데, 저는 한국 방송을 더 좋아합니다. 한국 방송에는 게스트가 세 명 정도 등장하거든요. 물론 이 게스트는 다 비전문가입니다. 그러니까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시선에서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설명을 듣고 질문을 하고 한 다음에 각각 감정가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물건 소유자가 희망감정가를 딱 내놔요. 그러고나서야 이제 전문가들에 의한 진짜 감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송을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그림이나 글씨 같은 것은, 제가 보면 정말 멋지고 훌륭한 것인데 가격이 별로인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유명한 화가가 그린 큰 그림이라서, 적어도 몇 백만원이나 몇 천만원은 하겠지……하고 있으니까 떡 하고 나온 가격이 0원이래요. 그래서 그 이유를 물으니까 가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리지널 유명한 그림이 있는데, 그걸 보고 다른 사람이 그 그림을 흉내내서 그린 거죠. 그냥 못 그린 그림이면 괜찮겠지만, 다른 사람의 그림을 베껴서 그리고 거기에 서명까지 흉내를 냈다면 이건 범죄입니다. 사기죄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또 어떤 그림은 멋진 액자에 들어있는 것인데 정말 진짜 같아요. 그런데 가격이 1만원, 2만원……이래요. 좀 가격이 묘하죠? 비싼 건 아니지만 그래도 0원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 이유를 물으니까 그 그림은 직접 거기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인쇄된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1만원, 2만원이라고 하는 것은 그 그림이나 글씨 가격이라기보다는 그 액자 값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또 어떤 것은 보기에는 별로 볼품 없는 그림이나 글씨, 아니면 도자기라서, 기껏해야 몇 만원 정도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감정가가 몇 백만원, 몇 천만원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입니다. 지금은 경기도 광주군이 아니라 광주시가 되었습니다만, 그 분원에는 과거에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생산된 도자기를 이른바 분원도자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원도자기가 값이 꽤 나간다고 해요. 옛날에 그 지역에는 도자기 가마가 있었기 때문인지 도자기가 꽤 흔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그 중 한 도자기는 개밥그릇으로 쓰기도 했다고 하는데, 서울에서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제발 그 도자기 깨진 조각이라도 좋으니까 달라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분원도자기가 가끔 그 방송에도 나오는데, 저도 그래도 그 방송을 좋아하니까,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물건들을 많이 보면 좀 그나마 돌파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는 눈이 조금은 생기잖아요? 그래서 아 저건 얼마쯤 하겠다……하고 하면, 거짓말 안 하고 제가 생각한 가격에 0가 하나 쯤은 더 붙습니다. 그 감정가를 듣고 게스트나 방청객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면, 아마도 저와 비슷한 생각이었겠지요.
그 분원도자기가 그렇게 값이 나가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물론 작품이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도자기가 백자인데 푸른색으로 그림이 입혀진 모습이 정갈하다고 할까요? 제가 전문적인 표현이 좀 딸려서 그렇습니다만 매우 심플하면서도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분원도자기보다 감정가가 낮은 것들을 보면 더 화려하고 멋지게 만들어진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원도자기의 가격이 높은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겠죠. 두 번째로 높은 이유는 제조된 기간이 짧습니다. 보통 도자기를 당연히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일 수록 값어치가 올라가겠지만, 이 도자기는 조선시대 말기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희귀성이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이 점이 중요합니다. 이 분원가마…도자기 굽는 가마를 ‘요’라고 하죠? 이 분원요에서 구워진 도자기는 어디서 쓰였냐 하면 바로 대궐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진품명품에 나오는 물건들을 보면, 그 작품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누가 만들었는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그 글씨를 누가 썼고 그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하는 것이 안 중요할 리가 없지요.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도자기나 물건이라고 한다면, 그 그릇을 누가 사용했는지도 감정가를 책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도자기는 대궐에서 임금님이 사용하시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니, 이 점으로 볼 때에도 당연히 가격은 최고가 되는 것이지요.

성경에는 그릇이나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의 예가 많이 나옵니다.
예레미야 18장 1절에서 6절 말씀에 봅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主からエレミヤにあったみことばは、こうである。
「立って、陶器師の家に下れ。そこで、あなたに、わたしのことばを聞かせよう。」
私が陶器師の家に下って行くと、ちょうど、彼はろくろで仕事をしているところだった。
陶器師は、粘土で制作中の器を自分の手でこわし、再びそれを陶器師自身の気に入ったほかの器に作り替えた。
それから、私に次のような主のことばがあった。
「イスラエルの家よ。この陶器師のように、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することができないだろうか。―主の御告げ。―見よ。粘土が陶器師 の手の中にあるように、イスラエルの家よ、あなたがたも、わたしの手の中にある。



이사야 64장 8절에는,
“8.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しかし、主よ。今、あなたは私たちの父です。私たちは粘土で、あなたは私たちの陶器師です。私たちはみな、あなたの手で造られたものです。

우리를 누가 지었나요?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토기이고 우리를 지으신 토기장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는 과정을 보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제가 미국 드라마는 보지 않습니다만, CSI 뉴욕편 줄거리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텔레비전을 보니 그 사람은 미국의 한 젊은 남성이었습니다만, 자신의 아내가 911 테러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실의에 빠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지낼 수는 없어서, 자신의 부인의 유품들을 처분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옷가지나 그 당시 쓰던 물건들을 처분하는데, 딱 하나 버리지 못한 물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버리려고 해봤지만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물건이 무엇이었냐 하면 바로 비치볼이라고 합니다. 그 비치볼은 바로 자신의 아내가 불었던 것인데 그 공 안에는 아내의 숨결이 남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버릴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건 드라마 이야기입니다만, 정말 그 마음이 이해가 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보면 사람을 어떻게 만드셨어요?

창세기 2장 7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その後、神である主は、土地のちりで人を形造り、その鼻にいのちの息を吹き込まれた。そこで、人は、生きものとなった。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자기처럼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어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무엇이에요? 우리 안에는 바로 하나님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까 어떤 물건의 가치가 무엇으로 결정된다고 말씀드렸죠? 두 가지가 있었죠? 예, 그렇습니다. 먼저 누가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그 다음에 누가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에는 대충 만드는 법이 절대로 없습니다. 저도 직접 본 기억은 없습니다만 책이나 TV를 통해서 보면 토기장이는 반드시 그 그릇의 용도가 있습니다. 꽃병으로 쓸 것인지 항아리로 쓸 것인지 그 장소와 용도를 먼저 정한 다음에 반죽을 시작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는 절대로 그릇을 만드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드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반죽을 하고 도르래로 그릇 모양을 만든 다음에, 건조시키고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바르고……그것으로 끝나나요? 아니요. 이제 마지막으로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워냅니다. 그게 한 두시간으로 되는 작업이 아니라 굽는 것만으로도 짧게는 5~6시간, 길게는 3~4일동안이나 잠도 자지 않고 계속 굽습니다. 잠을 잘 수 없는 것이 불의 그 미묘한 강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만들어지는 그릇을 토기장이가 어디에 쓸지도 모르는 그릇들을 대충대충 만들 리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5절에는,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父なる神がほめたたえられますように。神はキリストにおいて、天にあるすべての霊的祝福 をもって私たちを祝福してくださいました。すなわち、神は私たちを世界の基の置かれる前からキリストのうちに選び、御前で聖く、傷のない者にしようとされました。神は、ただみこころのままに、私たちを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ご自分の子にしようと、愛をもってあらかじめ定めておられたのです。


토기장이가 그릇 하나를 만들 때 계획을 짜고 만들듯이 우리를 만드실 때에도, 하나님은 언제부터요? 예, 창세 전부터 우리를 택하셔서 계획을 세우시고 만드셨던 것입니다.
사람을 그릇으로 비유하는 부분은 또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택하실 때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에는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しかし、主はこう言われた。「行きなさい。あの人はわたしの名を、異邦人、王たち、イスラエルの子孫の前に運ぶ、わたしの選びの器です。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시고 예수님께서 쓰시기 위하여 만들어진 그릇입니다. 세상에 이보다도 귀한 그릇이 있겠습니까? 이보다도 아름다운 그릇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 그러면 우리가 평소에 쓰는 물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비싼 그릇, 좋은 그릇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그릇들을 자주 쓰고 계신가요? 비단 그릇이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남자분도 그렇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여자분들이 옷에 관심이 많죠? 그렇다면 무조건 비싼 옷이라면 모두 나한테 다 어울리던가요? 유명한 사람이 디자인한 옷이면 모두 내가 입기 편한가요? 남자분들은, 글쎄요. 무조건 비싸기만 하면 모든 넥타이가 다 자기한테 어울리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릇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릇이라고 합니다. 그것만으로 우리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는 그릇, 예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그릇이 진정한 가치 있는 그릇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21절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大きな家には、金や銀の器だけでなく、木や土の器もあります。また、ある物は尊いことに、ある物は卑しいことに用います。
ですから、だれでも自分自身 をきよめて、これらのことを離れるなら、その人は尊いことに使われる器となります。すなわち、聖められたもの、主人にとって有益なもの、あらゆる良いわざに間に合うものとなるのです。

그릇 중에서도 두 종류의 그릇이 등장합니다. 귀하게 쓰이는 그릇과 천하게 쓰이는 그릇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당연히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어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시나요? 21절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된다고 기록됩니다.
자고로 그릇이란 무엇이죠? 그렇습니다. 물건을 담는 것이 바로 그릇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담아야 하겠습니까.

예전에 읽었던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신학과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조금 큰 유리 꽃병을 교실에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 보는 앞에서 그 꽃병 안에 큰 돌맹이 몇 개를 집어넣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큰 돌맹이는 들어가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한테 물었습니다.
“이 꽃병이 가득 찼나요?”
그랬더니 학생들이 “네, 가득 찼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님은 거기에 작은 돌맹이들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안 들어가요? 아뇨. 들어갑니다. 이제 그 작은 돌맹이가 더 이상 안 들어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교수님이 물었습니다.
“이 꽃병이 가득 찼나요?”
이렇게 되니까 학생들은 어떻게 대답해야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 교수님은 가만히 그 꽃병에 모래를 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래가 상당히 많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또 물었습니다.
“이 꽃병이 가득 찼나요?”
이제 학생들은 알았습니다. 모두가 “아니요~”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을 들은 교수님은 “맞습니다. 가득 차지 않았어요.” 라고 대답하고 그 꽃병에 물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요? 꽤 제법 물이 많이 들어가더랩니다.
그리고 물을 가득 붓고 난 다음에 교수님이 학생들한테 물었습니다.
“지금 이 꽃병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러자 어떤 학생이 말합니다.
“아무리 가득 찬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가득차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교수님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듭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바로 “중요한 것을 먼저 담아야 한다” 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죠. 큰 돌을 먼저 담았기 때문에 나중에 작은 돌도 도매로 물도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래나 물믈 먼저 가득 채웠다면 나중에 큰 돌이나 작은 돌을 담을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빌립보서 3장 7절~9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しかし、私にとって得であったこのようなものをみな、私はキリストのゆえに、損と思うようになりました。それどころか、私の主であるキリスト・イエスを知っていることのすばらしさのゆえに、いっさいのことを損と思っています。私はキリストのためにすべてのものを捨てて、それらをちりあくたと思っています。それは、私には、キリストを得、また、キリストの中にある者と認められ、 律法 による自分の義ではなくて、キリストを信じる信仰による義、すなわち、信仰に基づいて、神から与えられる義を持つことができる、という望みがあるからです。

갈라디아서 1장 10절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いま私は人に取 り入ろうと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いや。神に、でしょう。あるいはまた、人の歓心を買おうと努めているのでしょうか。もし私がいまなお人の歓心を買おうとするようなら、私はキリストのしもべとは言えません。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주인이 선한 일에 쓰시기에 합당한 귀한 그릇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라고 합니다. 우리 안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내 안에 나한테 유익한 것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 아닌가, 사람의 기쁨만을 위한 것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 아닌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의 힘으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멋내고 치장을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지 못하는 그릇만큼 비참한 그릇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정으로 복된 그릇, 복된 사람이란 예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손떼가 많이 묻은 사람만큼 복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귀하게 쓰이는 그릇이야말로 복된 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를 선한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내 유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익한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럼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으로부터 유익하게 쓰임 받는 복된 그릇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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