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제자의 믿음과 하인의 믿음
2016년 4월 17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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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Last Update 2019. 5. 21

요한복음 2장 7절~11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제자의 믿음과 하인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다는 이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볼 때 잊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내용에 있어서 바로 핵심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이적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못 걷게 된 사람을 일으키는 이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핵심은 “와,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일으켰네. 거 참 신기하네.”가 아닙니다. 이 이적으로 인해서 베드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4절에 의하면,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라고 기록합니다.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사도행전 9장 32절에서 34절에 보면 8년 동안 중풍병으로 누운 사람을 고치는 이적이 있습니다만, 여기서의 핵심은 9장 35절 말씀,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가 핵심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 표적 바로 뒤에 나오는 내용은, 욥바에 사는 다비다라고 하는 여제자가 죽었는데 사도행전 9장 40절에 보면 이 죽은 다비다를 베드로가 살립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역시 핵심은 표적 그 자체가 아니라 42절 말씀,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라는 구절이 핵심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적을 나타내실 때는, 그저 “와, 대단하네, 신기하네.” 이런 식으로 호기심 유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이적을 나타낸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1절에 의하면 예수님의 첫 표적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결혼식에서 매우 중요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계셨던 예수님이 거기 있던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순종한 하인들은 물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 물을 연회장, 즉 그 혼인잔치에서의 책임자에게 가져다주자, 그것을 마셔보고, 10절에 보면,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놀랍게도 분명 물을 부었는데 포도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연회장이 한 말을 보면 본래 어느 정도 포도주가 있었는데 이것을 다 비우고 더 마시려고 했는데 떨어졌습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포도주는 오랫동안 숙성을 시켜야 그 맛이 좋아지는데, 다른 잔치도 아닌 혼인잔치인데 얼마나 오랫동안 숙성시킨 최고급 포도주를 내놓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방금 맹물을 부어서 만든 포도주가 더 맛이 좋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지요.
자, 여기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서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저 “와, 물이 포도주가 됐다고 하네. 거 참 신기하네.”로 끝난다면 그건 성경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되고 맙니다.
이건 좀 여담입니다만, 지금도 나사렛에서 7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실제로 가나라고 하는 동네가 남아있고, 그리고 이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하셨던 예수님의 첫 표적을 기념하기 위해서 혼인잔치기념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결혼하면 행복해진다고 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교회에서는 포도주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서 방문하는 사람한테 포도주를 준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포도주는 빨간색 포도주와 흰색 포도주가 있습니다. 이것은 포도주를 만드는 포도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인데, 자, 그럼 예수님께서 물로 만드신 포도주는 빨간 포도주였을까요? 아니면 흰 포도주였을까요?
물론 이건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어떤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아마도 그건 흰 포도주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꽤 근거가 있어요.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용하던 항아리는 돌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거기에는 뚜껑이 없습니다. 그래서 물을 붓고 연회장한테 갖다주기까지 언제 포도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부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항아리에 투명한 맹물을 붓고 연회장에게 그냥 갖다 준 것입니다. 그것을 포도주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왜요? 아니 자기들이 맹물을 부었는데 어떻게 그걸 포도주라고 갖다주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연회장이 보기에는 하인들이 항아리에 뭔가를 가득 담아왔습니다. 그래서 연회장이 그것을 맛보았는데, 세상에 그게 물이 아니고 포도주, 그것도 매우 맛이 좋은 포도주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라고 되어 있는 것인데, 만약에 빨간 포도주였다면, 색깔이 맹물에서 빨간 색으로 바뀌었을 텐데, 그랬다면 연회장이 맛 보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이 하인들은 그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았겠지요. 하지만 그런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빨간 포도주가 아니라 흰 포도주가 아니었을까 하고 어떤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제법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포도주가 빨간 포도주였건 흰 포도주였건 간에 이 부분은 예수님께서 물로 하여금 포도주로 변하게 하셨다는 말씀인데, 자,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여기 7절에서 11절까지 중에 등장인물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있죠? 물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포도주가 된 물을 마셔본 연회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혼식의 신랑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지시를 따랐던 하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제자들입니다.
2절에 보면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 중에서 핵심 인물이 누구였을까요. 술이 떨어졌는데 더 마시고 싶어하는 결혼식 하객들이었을까요? 술이 떨어져서 안절부절하는 연회장이나 신랑이었을까요?
아까 말씀드린 공식을 대입시키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못 걷는 사람을 일으키고, 이것으로 인하여 말씀을 전할 기회를 얻고 마침내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에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남자만 오천 명이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이 예수님을 믿게 된 많은 사람들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요? 바로 이 사람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그와 같은 기적을 일으키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중풍병으로 누운 사람을 고친 사람 이야기에서는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욥바에 사는 다비다라는 여제자를 살린 이야기에서의 핵심은, 온 욥바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는 구절이 핵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물이 포도주가 된 이야기의 핵심은요?
그것은 바로 11절입니다.
요한복음 2장 11절 말씀,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 표적의 핵심은 바로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데에 그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이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있었으나, 그들 중에는 베드로처럼 강력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제자가 된 경우가 있었나 하면, 또 어떤 이는 제자가 되긴 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메시아적인 체험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을 굳게 하실 의도를 가지시고 이 곳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인해서, 아직 믿음이 없거나 약했던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럴 리야 만무하겠으나, 만약에 예수님이 무슨 속임수를 써서 물을 도중에 바꿔치기를 하려고 하셨다면 누구를 이용했을까요. 아마도 셋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첫째는 예수님 본인이 바꿔치기를 하는 것이죠. 물을 붓는 척 하면서 사실은 포도주를 붓는다거나, 아니면 물을 붓고 가져가는 척하다가 슬쩍 포도주가 들어있는 항아리로 바꿔서 가져간다거나 했을 것입니다. 둘째는, 마리아입니다. 3절에서 5절에 의하면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어쩌면 속임수를 위해 부탁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바로 예수님의 제자이죠. 자신들의 스승님의 위대함을 조작하기 위해서 속임수를 도왔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의심을 모두 물리치시기 위해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바로 그 집에 있던 하인들을 이용하셨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수고해서 예수님을 위대하게 보이도록 조작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이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는 제자들로 하여금 믿음을 더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맹물을 부으라고 말씀하셨고, 그 물을 연회장한테 가져가니까 그 물이 정말로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어요. 아, 정말 저 분이 보통 분이 아니구나 하고 이제 정말로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 하인들입니다.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실에서 속임수가 없었다는 것을 1차적으로 알았던 사람들은 바로 하인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정말 물을 붓고, 그걸 그저 가져다가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절대로 물이 포도주가 될 틈이 없었다는 것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은, 어쩌면 제자들보다도 하인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했나요? 예수님을 믿었나요? 예수님을 따랐나요? 아니요. 그냥 “어? 신기하네?”로 그들의 믿음은 끝나버린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6절~48절에 보면,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라고 합니다.
여러분, 증인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찾고 있는데, 어! 내가 몇 날 몇 시 몇 분에 어디서 누구를 봤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증인이 되나요? 아니요. 그것만으로는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증인은 무엇을 해야 해요? 그렇습니다. 바로 증언을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보았다고 증언을 할 수 있어야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분명히 보았다 하더라도 증언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증인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께 기도를 드리고 응답을 받았다면, 그것만으로 증인인가요? 아니요. 증인이 될 자격이 있을 뿐 아직 증인은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을 증거해야지만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말라기 1장 10절~11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민족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9장 39절~40절에는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잠잠하면 오히려 돌맹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축복을 우리보다도 한참 못한 돌맹이들한테 빼앗겨서야 되겠습니까. 여기서 돌맹이들이라는 것은 물론 길가에 떨어져 있는 돌맹이가 아니라, 정말 우리가 보기에는 축복 받기에 부족할 것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분명 저 사람보다 믿음이 더 좋은줄 알았는데, 나는 저 사람보다 더 축복 받을 줄 알았는데, 그 축복을 내가 받을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빼앗긴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된 축복을 절대로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인의 믿음이 아니라 제자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증언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가 복음을 전하던 모습을 생각해보십시오. 가만히 집에 앉아서 도나 닦고 있었습니까? 명상을 하고 있었나요? 아니요. 그분들의 믿음은 매우 역동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대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라고 기록합니다.
주님께서 하인의 믿음이 아니라 제자의 믿음을 갖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예수님을 전하는 예수님의 증인 복음의 증인이 되어,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된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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