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질투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2016년 4월 24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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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4절~6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질투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한국이나 일본의 법에는 이른바 6법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헌법과 형법과 민법과 상법과,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특별한 법이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바로 헌법입니다. 법이 적용되는 순서는, 헌법 법률 명령 조례 규칙 순서로 우선되고, 법률 중에서도 일반법보다는 특별법이 우선해서 적용됩니다만, 그 나라에 있는 모든 법률이나 명령, 조례, 규칙 등은 바로 ‘헌법’이라고 하는 규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일반 법률에 규정과 달리 특별하게 적용하는 법률을 만듦으로 해서 일반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법률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절도를 하면 처벌하지만 상습적으로 같은 범죄를 일으킬 때에는 특별히 더 무거운 죄로 처벌한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테두리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헌법”이라는 테두리에서만은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법률을 만든다고 하는 뜻인 ‘입법’이라고 하는 말은 ‘국회’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국회에서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국회의원들이 찬성을 해서 법률을 만들었다 해도 헌법에서 벗어나는 법률일 경우에는 ‘위헌’판정을 받게 되어서, 위헌판결이 나면 그 즉시로 그 법은 효력을 잃게 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수는 613개 조항이나 됩니다. 그 조항에는 긍정의 명령, 즉 “하라”라고 하는 명령이 248개, 금지 명령, 그러니까 “하지 말라”라고 하는 명령이 365개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법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이 헌법에 해당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바로 십계명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에 십계명이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한 곳만이 아니라 구약, 특히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에서 되풀이해서 등장합니다만, 처음 등장하는 곳이 출애굽기 20장입니다.
먼저 제1 계명부터 제4 계명까지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1 계명은 출애굽기 20장 3절 말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あなたには、わたしのほかに、ほかの神々があってはならない。

제2 계명은 20장 4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あなたは、自分のために、偶像を造ってはならない。上の天にあるものでも、下の地にあるものでも、地の下の水の中にあるものでも、どんな形をも造ってはならない。

제3 계명은 7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あなたは、あなたの神、主の御名を、みだりに唱えてはならない。主は、御名をみだりに唱える者を、罰せずにはおかない。

제4 계명은 8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安息日を覚えて、これを聖なる日とせよ。

이처럼 제1계명에서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12절부터 17절까지는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인데, 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규정들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부터 17절까지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あなたの父と母を敬え。あなたの神、主が与えようとしておられる地で、あなたの齢 が長くなるためである。殺してはならない。姦淫してはならない。盗んではならない。あなたの隣人に対し、偽りの証言を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隣人 の家を欲しがってはならない。すなわち隣人の妻、あるいは、その男奴隷、女奴隷、牛、ろば、すべてあなたの隣人のものを、欲しがってはならない。」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613개 조항의 율법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당연히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이 무슨 일을 벌이느냐 하면 그 율법을 늘려나갑니다. 그래서 이 613개의 율법을 어디까지 늘려가냐 하면 2134개로 늘려버립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나요? 그 사람들의 머리로 만든 율법에는 바로 이 십계명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규정들이 생기고 맙니다.

마태복음 15장 4절~6절을 봅니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神は『あなたの父と母を敬え。』また『父や母をののしる者は、死刑に処せられる。』と言われたのです。それなのに、あなたがたは、『だれでも、父や母に向かって、私からあなたのために差し上げられる物は、供え物になりましたと言う者は、その物をもって父や母を尊んではならない。』と言っています。こうしてあなたがたは、自分たちの言い伝えのために、神のことばを無にしてしまいました。

십계명에는 분명히 부모를 공경하라는 규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냥 입으로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라고 자기 멋대로 규정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바로 사람들 마음대로 만들어낸 말도 안 되는 규정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세요? 곧바로 위헌판결을 내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위헌판결을 내리는 이유가 뭐예요? 헌법을 없애는 건가요? 아니요, 반대로 헌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18절에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わたしが来たのは律法や預言者を廃棄するためだと思ってはなりません。廃棄するためにではなく、成就するために来 たのです。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告げます。天地が滅びうせない限り、律法の中の一点一画でも決してすた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全部が成就されます。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들 중에는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잘못 가르치는 사람들을 질책하고 그들이 자기들 멋대로 만들어낸 규정들에 대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다고 위헌판결을 내리셨다는 일도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특별히 두 번째 계명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2 계명은 아까 살펴보았지만 오늘 말씀이기도 한 부분까지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20장 4절~6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あなたは、自分のために、偶像を造ってはならない。上の天にあるものでも、下の地にあるものでも、地の下の水の中にあるものでも、どんな形をも造ってはならない。
それらを拝んではならない。それらに仕え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神、主であるわたしは、ねたむ神、わたしを憎む者には、父の咎を子に報い、三代、四代にまで及ぼし、
わたしを愛し、わたしの命令を守る者には、恵みを千代にまで施すからである。

이 말씀은 신명기 4장 15절~19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 4장 15절~19절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あなたがたは十分に気をつけなさい。主がホレブで火の中からあなたがたに話しかけられた日に、あなたがたは何の姿も見なかったからである。堕落して、自分たちのために、どんな形の彫像をも造らないようにしなさい。男の形も女の形も。地上のどんな家畜の形も、空を飛ぶどんな鳥の形も、地をはうどんなものの形も、地の下の水の中にいるどんな魚の形も。また、天に目を上げて、日、月、星の天の万象を見るとき、魅せられてそれらを拝み、それらに仕えないようにしなさい。それらのものは、あなたの神、主が 全天下の国々の民に分け与えられたものである。

그러면서 신명기 4장 23절~24절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気をつけて、あなたがたの神、主があなたがたと結ばれた契約を忘れることのないようにしなさい。あなたの神、主の命令にそむいて、どんな形の彫像をも造ることのないようにしなさい。あなたの神、主は焼き尽くす火、ねたむ神だからである。

우리가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을 탈출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후에 그 역사를 짧게나마 정리를 한다면, 첫 번째로 죄를 짓고 타락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하나님이 경고하십니다. 하지만 그래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 번째, 그 때까지 가만히 있던 이웃 나라가 갑자기 쳐들어오거나 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네 번째, 그제서야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다섯 번째,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세우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합니다. 그러면 여섯 번째 이스라엘 민족들은 뭐라고 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하면서, 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또 어떻게 되요? 예, 또 타락합니다. 이 반복이에요. 타락하고, 타락하면 경고하고, 경고를 무시하고, 무시하면 핍박 받고, 핍박 받으면 그제서야 회개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구원해주십니다. 하나님이 구원해주시면 찬양하고….거기서 끝나야지요. 왜 또 타락합니까. 성경을 읽으면 참 답답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답답한 이유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이 미워서요? 어리석어서요? 아니요, 그 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역시 똑같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답답해지고 화가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한테 사과하기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제가 잘못했다고 하나님한테 사과하기 좋아하는 사람, 회개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없겠지요. 그렇다면 하나님한테 회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되죠? 거꾸로 풀어가면 쉽습니다. 하나님한테 회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요? 그래요. 하나님한테 혼날 짓을 안 하면 됩니다. 그 혼날 짓이 뭐였죠? 바로 타락입니다. 그렇다면 그 타락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시작하는가를 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타락하는 것을 막을 수가 있고, 타락하는 것을 막으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징계를 피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항상 타락하기 시작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과 이방 신들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이 우상들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철저하게 금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신약에는 어떻게 되어 있나요?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하여 율법을 지키기가 더 수월해졌나요? 아니요, 더 어려워지면 어려워졌지 수월해지지는 않았습니다.

구약에서는 살인하지 말라고만 했을 뿐인데,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5장 21절에서 22절에 보면,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昔の人々に、『人を殺してはならない。人を殺す者はさばき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われ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兄弟に向かって腹を 立 てる者は、だれでもさばきを受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兄弟に向かって『能なし。』と言うような者は、最高議会に引き渡されます。また、『ばか者。』と言うような者は燃えるゲヘナに投げ込まれます。

여기서 <라가> 라는 말은 ‘속이 비었다’, ‘쓸모 없다’라고 하는 말인데, 이는 그 당시 사용되었던 언어 중 하나인 ‘아람어’에서 욕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말 사람을 죽이지 않더라도 사람한테 욕설을 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 만으로도 살인한 것과 같은 무거운 벌을 받게 된다고 하는 것이죠. 이 우상에 대해서도 구약에서는 어떤 형상을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고, 거기에 대해 절을 하고 숭배하고 하는 것만이 우상이었습니다만, 신약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하면,

누가복음 16장 13절에 보면,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しもべは、ふたりの主人に仕えることはできません。一方を憎んで他方を愛したり、または一方を重んじて他方を軽んじたりするからです。あなたがたは、神にも仕え、また富にも仕えるということはできません。」

이 재물도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짧게 살펴보았죠? 먼저 우상을 숭배하면서 타락합니다. 하나님이 경고해도 무시합니다. 그랬더니 혼줄이 나서 때로는 몇 십년 동안 고생을 합니다. 죽기도 합니다. 포로로 끌려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회개합니다. 그러자 구원을 받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비슷하게 일어납니다. 회사에서 짤렸습니다. 사업이 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간구합니다. 그랬더니 그 기도를 들으시고 축복이 쏟아집니다.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사업이 번창합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요? 이제 돈 벌기 바빠서 하나님은 멀리 합니다. 주일에도 일하느라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대신 재물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세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あなたがたは、神にも仕え、また富にも仕えるということはできません。

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매우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얼핏 보면 이 말씀은 예수님이 마치 재물과 하나님은 동등하다고 하시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됩니까? 하나님과 재물이 동등해요? 말도 안 됩니다.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예수님이 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 사람이 재물을 마치 하나님 섬기듯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물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가능하다? 아니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재물 또한 마치 우상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어디 그것 뿐인가요? 마태복음을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わたしよりも父や母を愛する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い者ではありません。また、わたしよりも息子や娘を愛する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い者ではありません。

라고 하십니다. 이제 재물만이 아니라 부모님이나 자식들이라 하더라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것 또한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기억하시죠? 제5계명에는 분명히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예를 들어서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해요, 교회에 가지 말라고 해요. 아니면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말씀에 어긋나는 일을 하라고 하요. 그렇다면 그것에 따라야 한다? 아니요.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들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 딸을 잘 키워야 합니다.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고 하나님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게 된다면 이 또한 우상이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일본은 특히 우상이 넘쳐난다고 하는 말을 여러 사람들한테 듣습니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죠. 맞는 말씀입니다. 한 동네에는 반드시 신사나 사찰이 있고, 여기저기 우상들을 모셔놓은 곳들이 많습니다. 거기 가면 딸랑딸랑 방울이나 종을 흔들거나 치고 돈을 던지고 소원을 빕니다. ‘오마모리’라고 하는 부적이 든 조그마한 종이주머니를 사들고 다닙니다. 자동차 앞에 매달아 놓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것은 우리에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신사가 아무리 많다 해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르는 우상입니다.
앞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우상은 재물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니라 놀랍게도 우리에게는 뜻하지 않는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자 성경책입니다. 십자가가 우상이 될 수 있어요? 성경책이 우상이 될 수 있어요? 예, 있습니다. 교회에 다시니는 분들 중에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십자가 목걸이나, 또 누구는 십자가 반지까지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괜찮아요. 그것을 떼어버리라거나 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다니면 그 십자가 목걸이가 나를 지켜주나요?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닌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생각하면서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무슨 부적이나 오마모리 같이 생각하고 다닌다면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경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만난, 이 분은 목사님이신데도 항상 자동차 뒷자리에 성경책을 꽂아두십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이 성경책을 누군가가 읽으시나요?” 했더니, 그 목사님은, 그건 아니지만 이렇게 성경책을 이렇게 뒷자리에 꽂아두면 안심이 된다고 합니다. 마음이 편하대요. 그게 말이 되나요? 아니요. 성경은 그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닫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책 자체는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진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걸 꽂아둔다고 마음에 평안이 와요? 그것이야말로 우상이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반복해서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출애굽기 34장 14절에도 보면,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あなたはほかの神を拝んではならないからである。その名がねたみである主は、ねたむ神であるから。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 4장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私たちは、私たちに対する神の愛を知り、また信じています。神は愛です。愛のうちにいる者は神のうちにおり、神もその人のうちにおられます。

라고 하십니다. 내 여자친구가 아니면 내 부인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고 다른 남자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진정 나를 사랑하는 것이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내 남자친구가 아니면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른 여자와 함께 있고 다른 여자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진정 나를 사랑하는 것이겠습니까.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내 남편이 다른 여성을 만나거나, 내 부인이 다른 남성을 만나더라도 내가 아무렇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내 남편을 또는 내 부인을 사랑하는 것인가요?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다.

잠언 3장 11절~12절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わが子よ。主の懲らしめをないがしろにするな。その叱責をいとうな。
父がかわいがる子をしかるように、主は愛する者をしかる。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며 하나님이 경고하시고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어느 정도로 사랑하셨어요? 바로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까지 주실 정도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아요. 만약에 일찍감치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면 하나님은 질투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내가 싫어서 버렸는데, 그 버린 사람이 누구를 좋아하든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리 우리가 못난 짓을 해도 자기를 멀리해도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이 식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조건은 단 하나, 우리 마음이 우상에서 떠나 오직 우리 주님 품에서 주님만을 섬기기만 하면 됩니다.
언제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믿고 주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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