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무거운 짐과 가벼운 짐
2016년 5월 1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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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Last Update 2019. 5. 21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무거운 짐과 가벼운 짐’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한 주도 그랬고 또한 다음 한 주도 그럴 것입니다. 돈 있는 사람도 돈 없는 사람도, 젊은 사람도 나이 든 사람도 살아갑니다. 거기에는 사회적으로 권력이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요,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입니다. 영적으로, 믿음 안에서 보자면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거운 짐을 진 사람과 가벼운 짐을 진 사람’ 이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이 두 종류의 사람 밖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거운 짐을 진 사람과 가벼운 짐을 진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정답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무거운 짐을 진 자는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고 가벼운 짐을 진 사람은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하십니다.
이 구절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란, 이 세상을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능력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인생에서 홍해가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바다가 아름다우십니까? 환한 낮에 바라보면 정말 아름답지요. 특히 여름철의 바다는 얼마나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시원합니까. 하지만 인생의 바다는 그와 같은 여름철 바다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갗이 찢어질 정도로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 밤의 바다를 아십니까. 달도 없는 밤이라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육지이고 어디서부터 바다인지도 모릅니다. 저 멀리서는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과, 소름끼치는 파도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 앞을 건너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습니다. 더 이상 길이 없는데 어쩌겠습니까. 손으로 퍼냅니다. 나무로 양동이를 만들어서 퍼냅니다. 그것도 안 되니까 땅을 파서 길을 내보려고 합니다. 그런다고 바다에 길이 납니까? 안 납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으니까 이것저것 모든 것을 다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하고 지치게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해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그렇게 수고할 필요 없어. 나한테 오면 내가 쉬게 해줄게.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에 안 다니는 분들, 예수님을 아직 영접하지 않은 분들에게 예수를 믿으시라고 말씀을 드리면 하는 말이 “아이, 제가 술을 많이 먹어서요, 술을 끊고 가든지 할게요” 아니면, “제가 담배를 많이 피워서요, 담배를 끊고 가든지 할게요.” 그리고 가끔 보면 또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지은 죄가 많아서요. 좀 나중에 가던지 할게요.”
여러분, 오늘 이 28절을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술 끊고 담배 끊고 죄가 다 없어지면 그제서야 내게로 오라”라고 되어 있나요? 아니에요. 왜 성경을 마음대로 바꾸십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이제 막 기차가 떠나려고 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기차, 천국행 기차 예수 그리스도 호가 지금 막 출발하려고 해요. 이제 출발하면 언제 올지 모릅니다. 어쩌면 평생 안 올지도 몰라요.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요. 그 기차를 놓치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어요.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아니, 잠깐만요. 화장 좀 고치고 갈게요. 아니, 옷 좀 갈아입고 갈게요. 아니, 잠깐 하던 일 좀 다 하고 갈게요. 그러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러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아니요. 오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네 힘으로 살아가려고 했지? 얼마나 힘들었니. 이제 나한테 와. 내가 쉬게 해줄게, 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제 예수님한테 오라고 하시죠? 평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 사이에요? 주말은 쉬어요? 아닙니다. 1년 365일, 윤년이면 366일, 24시간 언제든지 주님에게로 가는 길은 열려있습니다. 바로 지금 가시면 되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예수님 품으로 달려가시기만 하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서 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마리아 상을 놓고 거기에 대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제가 한 번 “예수님이 아니고 왜 마리아에 대고 기도를 합니까”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하는 말씀이, 우리는 너무나 죄가 많고 부족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기도를 해서, 우리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하는 겁니다.” 라고 합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우리가 죄가 많아요? 예, 많습니다. 우리가 많이 부족해요? 예, 부족합니다. 정말이지 보통 부족한 것도 아니고 많이 부족합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너희들은 죄가 많고 부족하니 내 엄마한테 가서 먼저 허락 받고 그 다음에 내게로 오라” 라고 합니까? 아니, 예수님이 무슨 마마보이에요? 왜 성경을 마음대로 바꾸십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그리고 그 다음에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다 내게로 오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함이 넘치는 말씀입니까. 이 말씀이 복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박국 2장 4절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주님께로 가는 믿음 외에는 그 어떤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도 항상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주님 품으로 인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자, 여기까지 28절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으면 아무 일도 안 해도 되나요? 가만히 있으면 되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는 그 말씀이 누구를 향해서 쓰여졌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특히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말씀하셨는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로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한테 천국을 말씀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바리새인들한테, 때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말씀은 누구한테 하신 것일까요.
마태복음 11장 7절~9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여기서 보면 바로 7절에 나오는 ‘무리’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의하면 이 ‘무리’는 요한 즉 세례요한를 만나러 갔었던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과 구원이라는 것을 더욱 굳건히 세우게 하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처럼 교회에 다니고 있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믿음이 올바로 굳건히 서게끔 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간혹 설교말씀에서는 이 마태복음 11장 28절 만으로도 너무나 은혜로우니까 이 말씀만으로 끝나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도 함께 우리가 알아야만 더욱 믿음이 굳게 서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30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요한복음 6장 38절을 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이 세상의 모든 거짓 교주나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은, “너희들은 중요하지 않아, 내가 중요해, 내가 제일이야. 나를 섬겨, 나한테 좋은 것을 가져와……”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인의 뜻으로 오시거나 본인의 뜻으로 행하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보내신 이, 즉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 세상의 모든 거짓 교주나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의 신자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자기가 희생하기는커녕 신자들을 희생시키고 착취하면서 자신들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고는 부귀영화를 누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채찍에 맞으시고 온갖 능욕과 수치를 모두 당하시고 온몸이 피범벅이 되시고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바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히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신 최대의 목적이 바로 그것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누구의 뜻이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고 예수님은 그 뜻에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자신을 가리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 말을 했다면, 그 말을 한 순간, 벌써 그 사람은 겸손한 것은 아니게 되겠지요.
이 말씀은 예수님이니까 하실 수 있는 말이요,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이요,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은 거짓이나 과장이 아닌 사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어요? 그렇습니다. 바로 십자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살펴보면, 마태복음 11장 29절 후반부에서 30절까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들으시면 어떠세요? 저는 옛날에 이 말씀을 듣고 제게 들었던 처음 느낌은 이랬습니다. “뭐야? 내가 지금 지고 있는 짐을 내려놓으라고 하면서 자기 짐을 지라고 해? 그럼 결국 자기가 부려먹으려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멍에’라고 하는 것은 ‘ㅅ’자로 생겨서 소나 말한테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기 위해서 목 부분에 메게 하는 도구입니다.
여러분께 하나 묻겠습니다. 청년 A와 B가 서 있습니다. 그 두 사람 앞에 각각 단단하게 잠긴 문이 하나씩 있습니다. 두 문 모두 아무리 밀어도 당겨도 걷어차도 열리지 않습니다. A는 아무런 짐을 안 갖고 있습니다. B는 짐을 갖고 있었습니다. 누가 문을 열 수 있었을까요? 답은 B였습니다. 여기서 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인생에서 우리 눈 앞에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우뚝 서 있습니다. 저 성을 함락시키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생각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결사항전 임전무퇴,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 최후의 1인까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피터지게 싸우는 것, 이는 마치 단단히 잠긴 문 앞에서 밀고 당기고 걷어차고 해서 만신창이가 되는 것, 이것이 무거운 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여호수아 6장 3절~4절에 의하면,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성벽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사람의 생각으로는 한 번이라도 더 쳐서 성벽을 헐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성벽을 건드리지 말고 그 성벽 주위를 빙글빙글 돌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여호수아 6장 20절 중반부에 보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라고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건물이든지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만 하면 무너져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무너졌을까요? 그것은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라고 하시는 가벼운 짐은 곧 순종인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에게 순종한다면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예수님에 대한 순종은 곧 생명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만약 예수님이 여느 교주나 종교지도자처럼 자기 배를 채우고 자신만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이었다면 그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세상에서도 난폭하고 교만한 지도자한테 순종하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삶이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을 믿고 우리 스스로의 능력을 믿고 우리 스스로의 짐을 지고 나아간다면, 순간적으로는 잘 되는 것 같이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 짐은 결국 사망으로 가는 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의 짐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고, 예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이 지어주시는 짐을 질 때, 그 짐은 진리의 짐이요, 구원의 짐이요, 생명의 짐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진 짐 때문에 너무나도 무거워합니다. 아무 짐도 안 보여요? 예, 그렇겠죠. 등에 짊어지고 있으니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등을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을까. 내가 내 힘만 믿고 의지하지 않았을까. 내가 하나님을 멀리 하고 나 혼자의 생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바로 무거운 짐이요 사망으로 가는 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무거운 짐, 사망으로 가는 짐을 모두 내 앞에 내려 놓아라. 그리고 내가 지어 주는 가벼운 짐, 생명으로 가는 짐을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지어주시는 가벼운 짐, 생명으로 가는 짐을 지고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며 세상에서도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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