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롯의 처를 기억하라
2016년 5월 8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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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Last Update 2019. 5. 21

창세기 19장 24절~26절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롯의 처를 기억하라’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 18장 20절 이후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크기 때문에 멸망시키려고 하셨습니다만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하나님께 말씀하기를 의인이 50명, 40명, 30명, 그리고 1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마실 것을 간구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들어주십니다.
창세기 18장 3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거기서 열 명이라도 찾을 수 있었나요? 아니요, 열 명은 고사하고 단 한 명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창세기 19장 24절~25절,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하십니다. 지금도 지질학자들이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유황 덩어리가 발견된다고 하는데, 본래 유황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에는 땅속에도 유황이 함유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던 그 지역에는 땅속에 전혀 유황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데도 지면에는 유황 덩어리가 발견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유황 덩어리를 하늘로부터 내려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셨던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 불길과 규모가 얼마나 크고 극심했던지 창세기 19장 27절~28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분명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인이 열 명은커녕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에서도 예외가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나요? 아니요.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이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그런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50명, 40명, 아니, 단 10명이라도 의인이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거기 소돔과 고모라에 있었다면, 하나님이 나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으셨을까. 아니면 나는 살아나올 수 있었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시 한 번 질문을 드립니다.
첫째 질문은, 내가 소돔에 있었더라면, 고모라에 있었더라면, 하나님은 나로 말미암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으셨을까요?
둘째 질문은, 내가 소돔이나 고모라에 있있었더라면 나는 거기서 살아나올 수 있었을까요?
먼저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께서 의인이 열 명만 있었더라도 멸망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하나님께 대해서 “자, 내가 여기 있으니 여기를 멸하지 마십시오.” 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오직 절망 뿐인가요? 두번째 질문을 보겠습니다. 내가 소돔이나 고모라에 있었더라면 나는, 우리는 거기서 살아나올 수가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바로 살아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롯이 살아서 나왔습니다. 롯의 가족이 살아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롯과 롯의 가족은 어떻게 해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창세기 19장 29절을 봅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이 얼마나 놀라운 구원의 역사입니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해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로마서 10장 9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원칙,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우리는 벌써 이미 예전에 유황불로 멸망을 당해도 아무 말도 못하는 그런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를 붙잡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만 붙잡으면 됩니다. 바로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라고 우리 입으로 시인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우리는 구원 받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구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받으신 징계를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채찍에 맞으신 것을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닌 예수님의 공로로,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는 줄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롯의 가족한테 뭐라고 명령을 합니까.
창세기 19장 17절,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분명히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가라고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그대로 따라야지요.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여유가 있는 때인가요? 어디 놀러가는 길이에요? 아닙니다. 매우 긴박한 상황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에 그 성에서 나온 사람은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딸이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소알 땅을 향해 정신없이 달렸을 것입니다. 숨은 헐떡 거립니다.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는 과정에서 롯의 처는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법이나 세상의 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지 말라고 한 일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나요? 그렇죠. 처벌을 받습니다. 그 결과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도대체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그 유황과 불에 멸망해가는 거대 도시를 보고, 혹시 그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보고서는 하나님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 처참한 심판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에 대해 감격해서였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하나님이 벌하지는 않으셨겠지요.
그녀는 버리지 못했습니다. 무엇을요? 그것은 바로 소돔에 두고 온 세상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그녀가 어디서 태어나고 소돔에서 얼마나 살았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동안 거기에서 살면서 모아두고 이루어 놓았던 것들을, 집착과 아쉬움에 가득찬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지난날들에 대한 추억들을 아름답게 기억합니다. 옛날은 참 좋았어. 아, 그때,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그 때는 정말 참 좋았어……그렇게 하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는 것이 절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과거의 추억, 집착, 미련이 내 믿음의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빌립보서 3장 8절~9절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면 믿기 전에 행하던 구습과 악습을 버리고 새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 내가 알던 것, 믿던 것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내 마음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을 보고 아, 그냥 그랬었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쯧쯧쯧. 이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7절~30절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노아의 홍수가 나기 직전에도 사람들은 심판이 임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는 소돔과 고모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과거의 일만이 아닙니다.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누가복음 17장 30절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즉, 장차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7장 31절~32절에는,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
여기서 ‘그 날’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심판날을 말합니다. 빨리 저기 눈앞에 보이는 소알까지 달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 세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이 매우 심오합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을 기억하라는 말이 있습니까? 모세나 다윗을 기억하라는 말씀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그런데도 롯의 처는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왜일까요. 생각해보십시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당연히 기억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다닐 때에도 선생님이 그러잖아요. 누가 보아도 알아볼만한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요. 하지만 놓치기 쉬운 것에 대해서는 “얘들아, 이거 중요하니까 꼭 외워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그러시는 것입니다. “너희들 롯의 처에 대해서 놓칠 수도 있으니까 내가 말하는데 말이야. 너희들 이거 꼭 기억해”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 문제 내겠습니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 때, “얘들아, 이거 중요하니까 꼭 외워라” 라고 하신 부분이 시험에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그건 물어볼 필요도 없겠죠? 반드시 나옵니다.
그렇다면 롯의 처에 대해서는요? 다행히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필기시험 같은 것을 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 삶 속에서, 우리의 믿음 속에서 주님이냐, 세상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바로 시험날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을 “내가 분명히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했는데, 제대로 기억했는지 어디 한 번 보자” 라고 하시면서 누가 보고 계세요? 그렇죠. 바로 예수님이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환난 날에도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의 공로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우리 입으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우리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아직도 믿기 전의 일을 그리워하고 불신앙 속에 있었을 때의 구습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세상에 대한 미련, 하나님을 믿기 전에 가졌던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을 붙잡고 그 안에서 옛 사람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을 입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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