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핏값으로 사신 것
2016년 7월 17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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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9절~10절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피값으로 사신 것’ 血をもって買い取られたもの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얼마 전 한국 뉴스을 보니, 어떤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다고 합니다. “민중들은 99%가 개돼지다. 1%가 그 99%를 개돼지로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 누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말을 들은 사람이, “나라가 사회적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느냐” 하니까,
“아이고… 출발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
그리고 또 지난 5월에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사고로 사망한 19살짜리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남긴 유품 중에 컵라면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무리하게 일을 시키고 감독책임도 소홀히 한 회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이 사람한테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가슴 아프지도 않은가. 사회가 안 변하면 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다. 그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봐라.”라고 했더니
이 사람이 말을 하기를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
이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또 어떤 싸구려 정치인이 이런 헛소리를 했나 했습니다만,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서울 명문 사립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교육부에 들어가게 됩니다. 국비로 미국에 가서 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 그 후 2010년에는 교육부 장관 비서관, 2011년에는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했으며, 올해 3월에 교육부 정책기획관으로 승진했습니다. 정책기획관이라고 하면 공무원 2급에 해당되고, 이는 그야말로 교육의 핵심을 담당하는 고위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은, 우연히 어쩌다가 이런 말들이 나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 사람 또한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이고, 그 조직 속에서 생겨난 생각들이 머리속에 젖여 있다보니 불시에 이런 말들이 튀어나왔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결국 이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정부에서 국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하는 것이 들통난 셈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 국민들은 개돼지인가요? 그 사람은 공직자인데 공무원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은 뭐가 되나요? 참으로 한심한 노릇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의 가치는 어느 정도 될까요? 세상적으로 보면 우리가 재벌처럼 돈이 많지도 않습니다. 대통령이나 정부의 고위공직자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개돼지인가요? 그럴 리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요. 과연 얼마나 되는 값어치가 있을까요? 나 자신이 자랑스러우신가요? 물론 그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가요? 아니요, 오히려 본인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어떤 때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못나게 느껴져서, 정말이지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자,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 그림은 얼마일까요. 이 그림은 <Green White>라는 제목이고, 그린 사람은 엘스워스 랠리라는 미국 화가입니다. 여러분께서 이 작품에 가격을 붙인다면 얼마를 붙이시겠습니까. 이 작품은 경매에서 160만불, 약 1억 5천만엔, 16억 원 정도로 팔다고 합니다.
다음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얼마일까요. 이 그림은 사이 트웜블리라고 하는 미국 화가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는 얼마나 가격을 붙이시겠어요? 이 작품은 경매에서 230만불. 23억원 정도에 팔렸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이런 그림 한 장 정도는 그려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는 저도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구입을 원하신다면 예배 후에 제게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그림은 한스 아르퉁이라는 독일 태생의 프랑스 화가 작품입니다. 여러분 보시기에 어떠세요? 얼마쯤이면 사시겠어요? 이 작품은 지난 1월에 있었던 경매에서 225만 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29억원 정도로 경매에서 팔렸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작품들을 보시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다면 이 그림에 붙은 가격은 사기인가요? 만약에 이 그림을 다른 사람이 그렸다거나, 아니면 이 그림이 원본이 아니라 복사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기겠죠. 하지만 틀림없이 이 그림은 웰스워스 랠리라는 사람이 실제로 그렸고, 이 그림도 한스 아르퉁이라는 사람이 분명히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사기가 아닙니다. 그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고 그 가격에 팔렸다는 것이니까 누가 뭐라고 할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요? 우리 스스로에 얼마의 값어치를 불이겠습니까. 말씀을 안 하셔도 좋습니다만, 내 가슴 위에 손을 얹어놓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얼마나 되는 가치가 있을까. 얼마쯤 가격을 맥이셨습니까.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어놓은 김에, 우리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나쁘게 판단한 적이 있나요? 아, 저 인간, 아무짝에도 쓰지 못할 인간 같으니라고……. 혹시 그런 일이 있다면 이 시간에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누가복음 6장 37절,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さばいてはいけません。そうすれば、自分もさばかれません。人を罪に定めてはいけません。そうすれば、自分も罪に定められません。赦しなさい。そうすれば、自分も赦されます。

고린도전서 4장 5절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主が来 られるまでは、何についても、先走ったさばきをしてはいけません。主は、やみの中に隠れた事も明るみに出し、心の中のはかりごとも明らかにされます。そのとき、神から各人に対する称賛が届くのです。


야고보서 4장 11절에는,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兄弟たち。互いに悪口を言い合ってはいけません。自分の兄弟の悪口を言い、自分の兄弟をさばく者は、律法の悪口を言い、律法 をさばいているのです。あなたが、もし律法をさばくなら、律法を守る者ではなくて、さばく者です。

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를 칭찬하지 않을지언정 비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 그렇다면 이야기를 돌아가서 나 자신은 어떨까요. 얼마나 값어치가 있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9절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彼らは、新しい歌を歌って言った。「あなたは、巻き物を受け取 って、その封印を解くのにふさわしい方です。あなたは、ほふられて、その血により、あらゆる部族、国語、民族、国民の中から、神のために人々を贖い(あがない)、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신 분, 즉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자격이 있으신 분이 누구시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어린양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그 피값을 무엇을 사셨다는 것입니까.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즉 우리들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검사 석에 앉아 있는 모세가, 율법의 이름으로 우리가 지은 죄, 내가 평생동안 지은 죄를 하나하나 읽어내면, 판사석에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이를 들으시고 사형판결을 내리려고 하는 순간, 변호인석에 앉으신 예수님이 소리치십니다! 하나님 잠깐만요! 내가 이미 저 사람이 받을 벌을 대신 받았습니다. 저 사람이 흘릴 피를 내가 대신 흘렸고 저 사람이 받을 고통을 내가 대신 받았고, 저 사람이 당할 죽음을 내가 대신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한테는 더 이상 치를 죄값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2절~33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ですから、わたしを人の前で認める者はみな、わたしも、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父の前でその人を認めます。しかし、人の前でわたしを知らないと言うような者なら、わたしも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父の前で、そんな者は知らないと言います。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가 죄가 없나요? 아니요. 죄 투성이입니다. 일거수 일투족 죄로 시작해서 죄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누가 대신 갚아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를 내고 갚아주셨나요. 10억이요? 100억이요? 아닙니다. 그냥 사람도 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갚아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존재입니까.

에베소서 1장 4절~6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すなわち、神は私たちを世界の基の置かれる前からキリストのうちに選び、御前で聖く、傷のない者にしようとされました。神は、ただみこころのままに、私たちを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ご自分の子にしようと、愛をもってあらかじめ定めておられたのです。それは、神がその愛する方によって私たちに与えてくださった 恵みの栄光が、ほめたたえられるためです。

우리를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다음에 하는 꼴을 보고 택하시거나, 아니면 우리 부모가 착하게 사는 것을 보시고 그 다음에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즉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미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거울을 보십시오. 우리가 아무리 초라해보이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보잘것 없이 보이더라도, 우리는 너무나도 대단한 존재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죠? 내가 대단해서요? 아닙니다. 나더러 대단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대단하지도 않는데, 우리를 사랑하지도 않은데 예수님께서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십니까?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을 위해서 부모는 집을 팔기도 하고 땅을 팔기도 합니다. 그 자식이 위대해서요? 훌륭해서요? 아닙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부모가 대단하게 여기고 사랑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집이나 땅이 아니라 본인의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를 위해 모진 고통과 고난을 당해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보다 못하신 분이신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장 8절~9절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ピリポはイエスに言った。「主よ。私たちに父を見せ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満足します。」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ピリポ。こんなに長い間あなたがたといっしょにいるのに、あなたはわたしを知らなかったのですか。わたしを見た者は、父を見たのです。どうしてあなたは、『私たちに父を見せてください。』と言うのですか。

사도 빌립이 예수님이 맨날 자기를 보내신 이, 하나님 아버지, 뭐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말로만 하지 마시고, 우리한테 하나님을 좀 보여주세요. 그럼 우리가 좀 더 잘 믿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나는 너랑 그렇게 오랫동안 있지 않았냐,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인데, 나를 보고도 아직까지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게 무슨 소리냐,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장 3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御子は神の栄光の輝き、また神の本質の完全な現われであり、その力 あるみことばによって万物を保っておられます。また、罪のきよめを成し遂げて、すぐれて高い所の大能者の右の座に着かれました。

빌립보서 2장 5절~8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あなたがたの間では、そのような心構えでいなさい。それはキリスト・イエスのうちにも見られるものです。キリストは、神の御姿であられる方なのに、神のあり方を捨てることができないとは考えないで、ご自分を無にして、仕える者の姿をとり、人間と同じようになられたのです。キリストは人としての性質をもって現われ、自分を卑しくし、死にまで従い、実に十字架の死にまでも従われたのです。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모두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고, 이 모든 하나님이 1/3씩 하나님이라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즉,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보다 못한 분이 아니라 똑같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기본 근간입니다. 그런데 이 부족한 우리 인간들이, 눈으로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으니까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보이시고, 그 뿐만이 아니라 십자게어 죽으셔서 그 핏값으로 우리를 죄 가운데에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하지만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죠? 예수님께서 나 만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이웃을 위해서도 피를 흘려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서로도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값없이 하찮게 여기는 것은 나를 위해 생명을 내주신 예수님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요,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십자가의 피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내 이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 이웃을 무시하거나 비방하는 일은 이 또한 예수님과 예수님의 희생을 무시하거나 비방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そこで、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心を尽くし、思いを尽くし、知力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愛せよ。』これがたいせつな第一の戒めです。『あなたの 隣人をあなた自身のように愛せよ。』という第二の戒めも、それと同じようにたいせつです。律法全体と預言者とが、この二つの戒めにかかっているのです。」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핏값으로 사신 것이 두 가지가 기록됩니다. 그 중 첫번째가 바로 나와 내 이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우리 이웃을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이웃을 사랑하고, 아직 복음을 모르는 이웃이 있다면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예수님이 핏값으로 사신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あなたがたは自分自身と群れの全体とに気を配りなさい。聖霊は、神がご自身の血をもって買い取られた神の教会を牧させるために、あなたがたを群れの監督にお立 てになったのです。

이 교회는 사람이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라, 교회 또한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사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교회는 침목회가 아닙니다. 세상적인 재미나 시간 떼우기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는 장사하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교회를 자신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무슨 고객관리 차원에서 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교회는 세상적인 출세를 위해 다니는 곳도 아닙니다. 자신의 회사의 상사가 그 교회에 다니고 있어서, 자신의 거래처 사람이 교회에 다니고 있어서 맞이 못해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물론 처음으로 교회에 다니게 되는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하물며 자기가 좋아하는 예쁜 여학생이 다니거다 잘생긴 남학생 따라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것을 제가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고 몇 년이 지났는데도, 교회에 다니는 목적이 여전히 그냥 주말에 시간 떼우기 위해서, 자기가 하는 비즈니스의 고객관리를 위해서, 자기 상사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예쁘고 잘생긴 여학생 남학생을 따라다니기 위해서만이라면 이것은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라로 스스로 십자가에서 피흘리고 목숨을 버리셨나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また、御子はそのからだである教会のかしらです。御子は初めであり、死者の中から最初に生まれた方です。こうして、ご自身がすべてのことにおいて、第一のものとなられたのです。

에베소서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また、神は、いっさいのものをキリストの足の下に従わせ、いっさいのものの上に立つかしらであるキリストを、教会にお与えになりました。

내가 학교에 다니면 학교 선생님들께 순종해야겠지요. 내가 회사에 다닌다면 회사의 머리인 사장님을 모시고 따라야겠지요.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의 머리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목사님을 믿으러 다니나요? 장로님을 믿으러 다니나요?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는 바로 누구십니까. 그렇죠.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핏값으로 사신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ふたりでも三人でも、わたしの名において集まる所には、わたしもその中にいるからです。」

두 세 사람이 무엇으로요? 그렇습니다. 세상적인 재미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명예나 출세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님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나 자신의 삶 만이 아니라 내 이웃의 삶도 역시 귀하고 감사하게 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죄 많은 우리 영혼을 예수님께서 핏값으로 구원으로 이루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말의 한가함을 달래주는 여가생활이 아닙니다. 시간이 남아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남아서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생명을 내주고 그 핏값으로 받은 것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체이신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면서 예배를 드릴 때도 주님을 묵상하고 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죄많고 보잘것 없는 우리를 위해 그 귀한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예수님한테 그런 부탁을 했나요? 안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죄가 그렇게 심각한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땠습니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대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그 대가가 무엇입니까. 벌금을 내면 됐나요?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불로 태우면 됐나요? 아니면 어떤 착하거나 선한 사람의 희생이면 됐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아니면 우리의 죄가 해결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흔쾌히 모든 것을 내주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예. 그렇습니다. 바로 이 못난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바로 우리 이웃을 위해서 그 귀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제 눈에는 도저히 낙서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림을 위해서 10억을 냅니다. 그러면 그 그림은 얼마짜리 그림이에요? 예, 10억짜리 그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짜리 값어치인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 보혈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10억짜리 그림은 이제 누구의 것입니까. 그렇죠. 10억을 낸 사람의 것입니다. 왜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십니까. 그것은 바로 그 대가를 지불한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대가를 지불해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자, 그렇다는 나는, 우리는 이제 누구의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는 예수님의 것입니다.

로마서 1장 6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あなたがたも、それらの人々の中にあって、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召された人々です。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삶을 귀하게 감사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이웃을 귀하게 감사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도 귀하고 감사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내 삶이 내 것이면 나 혼자 판단하면 그만이겠지요. 하지만 내 삶은 이제 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이라고 한다면 항상 기도하고 주님의 뜻으로 살기를 원하셔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값으로 산 우리 이웃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되신 교회를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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