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2016년 7월 24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60장 1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일어나 빛을 발하라’ 起きよ。光を放て。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 일본뉴스를 보면 오는 7월 31일에 있을 동경 도지사 선거 이야기, 그리고 8월 5일에 남미 브라질에서 개최되는 리우 올림픽 이야기가 한창입니다만, 그 틈새를 타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있지요. 바로 지난 7월 6일 출시된 게임 포케몬go 입니다. 혹시 들어보신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포케몬이라고 하는 것은 만화이자 애니메이션인데 이것이 게임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만, 사실 포케몬이라고 하는 만화가 워낙 인기가 있었던 것이라서 게임으로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특별히 이번에 나온 게임은 전세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개발한 곳은 일본 게임 회사인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7월 6일에는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미국에서 출시되었고, 정작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아직 서비스가 시작되지 않았는데, 특이하게 한국 속초지역에서만 할 수 있다고 해서 한국에서는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 속초로 몰려가고 그랬다고 합니다. 이 게임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미국에서는 벌써 6천 500만명이 이 게임을 즐기고 있고, 이 포켓몬 go를 개발한 닌텐도는 게임 출시 5일만에 주가가 120%나 상승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포켓몬go가 뭐길래 이렇게 난리인가 하니, 이는 모바일 게임의 일종입니다만, 기존 게임과는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보통 게임을 한다고 하면 집이나 어디 앉아서 게임 캐릭터를 손가락으로 비벼가면서 앉아서 하는 게 보통인데, 이 게임은 손가락으로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자기가 밖에 나가서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에는 실제 자기가 있는 지역의 지도가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서 저쪽에 무슨 목표가 되는 곳이 있어요. 그렇다면 거기까지 캐릭터를 손으로 움직여서 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걸어서 거기까지 가야지만 된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물론 기존에도 이와 같은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출시된 게임은 포켓몬이라고 하는 만화의 지명도와 완성도에 있어서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니 기존에 생각으로 본다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방안에 틀어박혀서 가만히 게임만 하게 되니 운동부족이고 비만이 된다고 하는데, 이제 이 게임을 하게 되니까 직접 밖으로 나와서 걸어다니게 된 것입니다. 참 획기적인 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되니까 어떤 효과가 있냐 하면, 이제 사람들이 돌아도니면서 게임을 즐기고, 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에서는 다른 캐릭터와 전투도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점점 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냥 돌아다니기만 하나요? 돌아다니면 배도 고프니까 이것저것 사 먹게 되고, 포켓몬이 여기저기 숨어 있으니까 사람도 여기저기 구석구석 다니게 되니까 가게들도 매출이 오르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런 경제적인 효과를 가리켜서 벌써부터 이 포켓몬이 주는 경제적인 효과라고 해서 포켓몬과 경제를 가리키는 영어 에코노미를 합해서, 아베노믹스가 아닌 포케모노믹스라는 말까지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렇잖아도 경제가 안 좋았는데 이 게임이 경제회복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사야 60장 1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起きよ。光を放て。あなたの光が来て、主の栄光があなたの上に輝いているからだ。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람의 능력인가요?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를 용서해준다고 하면 이해가 갑니다만,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뿐이에요?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그 분들의 부모님이 태어나시기도 한참 전인 2천년 전에 이미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모두 해결해주셨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이 어디 적혀 있어요? 예, 바로 성경입니다. 이것이 믿어지시나요? 아멘. 그 믿음은 매우 귀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의 노력이 아닙니다.

성경을 봅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14절,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さて、ピリポ__カイザリヤの地方に行かれたとき、イエスは弟子たちに尋ねて言われた。「人々は人の子をだれだと言っていますか。」
彼らは言った。「バプテスマのヨハネだと言う人もあり、エリヤだと言う人もあります。またほかの人たちはエレミヤだとか、また預言者のひとりだとも言っています。」

고난 받으실 날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말하느냐고 물으시니까 제자들이 말하기를 누구는 죽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 또 누구는 구약을 대표하는 선지자 엘리야다, 또 누구는 예레미야나 다른 선자자 같은 사람이다…라고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이 익히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구약에도 믿음 좋고 하나님의 능력을 행했던 선자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바로 그 중 하나다…라고 사람들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15절~17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5절~17절
“15.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あなたがたは、わたしをだれだと言いますか。」
シモン・ペテロが答えて言った。「あなたは、生ける神の御子キリストです。」
するとイエスは、彼に答えて言われた。「バルヨナ・シモン。あなたは幸いです。このことをあなたに明らかに示したのは人間ではなく、天にいますわたしの父です。

그래?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면, 그럼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러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주는 그리스도 구세주, 메시아,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이스라엘의 왕이요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시는 분, 즉 지금 이 순간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네가 복이 있다.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네 지식이나 노력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 사실을 네게 알게 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ですから、私は、あなたがたに次のことを教えておきます。神の御霊 によって語る者はだれも、「イエスはのろわれよ。」と言わず、また、聖霊によるのでなければ、だれも、「イエスは主です。」と言うことはできません。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예수를 구주,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요한1서 4장 15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だれでも、イエスを神の御子と告白するなら、神はその人のうちにおられ、その人も神のうちにいます。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이요, 이를 입으로 시인하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자, 우리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무려 2천년 전에 모두 해결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 예수의 이름을 믿는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오늘 읽은 말씀처럼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겠습니까. 성령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알게 된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죠?
그렇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입니다. 이는 권고사항이 아닙니다. 빛을 발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가 아닙니다. 빛을 발하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빛’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12장 46절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わたしは光として世に来ました。わたしを信じる者が、だれもやみの中にとどまることのないためです。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가복음 16장 15절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それから、イエスは彼らにこう言われた。「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福音を宣べ伝えなさい。

이것이 바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빛이 있는데 빛을 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빛으로 오신 이유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 있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만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온 천하는커녕 집앞에도 안 나가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은 고사하고 내 이웃한테도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빛을 발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한테 후레시가 있습니다. 그런데 빛을 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어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은 사람들,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축복을 받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노아도 그렇고, 아브라함도 그렇고, 요셉도 그렇고, 엘리야도 그렇고, 사무엘도 그렇고, 다윗도 그렇고, 모두 다 가만히 앉아 있기는커녕 쉴새없이 역동적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 이것이 바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한테나 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아무한테나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한테 믿음이 좋은 내가, 그래요 아무도 안 하면 제가 하죠 뭐. 손을 들어서 뽑혔나요? 아닙니다.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だが、今、ヤコブよ。あなたを造り出した方、主はこう仰せられる。イスラエルよ。あなたを形造った方、主はこう仰せられる。「恐れるな。わたしがあなたを贖(あがな)ったのだ。わたしはあなたの名を呼んだ。あなたはわたしのもの。

내가 먼저 나선 것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고, 나를 지명해서, 내 이름을 꼭 찍어서 부르시면서 하는 말씀이, 너는 내 것이다! 라고 말씀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わたしを遣わした父が引き寄せられないかぎり、だれもわたしのところに来ることはできません。わたしは終わりの日にその人をよみがえらせます。

요한복음 15장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あなたがたがわたしを選んだのではありません。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選び、あなたがたを任命したのです。それは、あなたがたが行って実を結び、そのあなたがたの実が残るためであり、また、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父に求めるものは何でも、父があなたがたにお与えになるためです。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택해주시고 내 이름을 부르셔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께로 인도해주시지 않았다면 아무도 예수님께로 올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나도 감사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찬양할 정도의 일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구속하시고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빛을 발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복음을 나만이 가지고, 이 축복을 나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에게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명자라고 해서도 무슨 목사나 전도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사명자이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지 않으신 사람은 한 사람도 이 곳에 올 수가 없다는 말씀은, 다시 말해서 여기 지금 계신 분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셔서 오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집밖으로 나가서 옆에 사는 사람을 교회로 끌고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그와 같은 마음을 주셔서 복음을 전한다면 대단히 귀한 일이겠습니다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꼭 그것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このように、あなたがたの光を人々の前で輝かせ、人々があなたがたの良い行ないを見て、天におられるあなたがたの父をあがめるようにしなさい。

아무리 우리가 성경말씀을 전하고 예수님을 전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행실이 악하고 법을 지키지도 않고, 민폐를 끼치고 행동이 바르지 못하면 누가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내 이웃이, 내 주변 사람이 나를 보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일본에 있는 속담 중에서 “犬も歩けば棒に当たる”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직역을 하면, 개도 걸으면 막대기에 맞는다…는 뜻입니다만, 흥미로운 것은 이 속담의 해석이 두 가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먼저 첫번째 해석은, 그냥 집에 가만히 있어야지, 괜히 쓸데없이 돌아다니다가는 막대기에 얻어맞는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해석은, 집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밖에 나가야지만 무슨 기회라도 잡을 수 있다…라고 하는 해석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느 쪽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둘 다 일리 있는 해석입니다만, 믿음 안에서는 두 번째 해석이 옳다고 해야겠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한테 축복을 주셨어. 아멘. 참 좋네. 감사하네. 라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을, 내게 주신 은혜를, 내게 주신 평안을, 내게 주신 감사를, 내게 주신 구원의 기쁨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빛은 비춰야 합니다. 사명은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한계시록 2장 4절~5절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しかし、あなたには非難すべきことがある。あなたは初めの愛から離れてしまった。それで、あなたは、どこから落 ちたかを思い出し、悔い改めて、初めの行ないをしなさい。もしそうでなく、悔い改めることをしないならば、わたしは、あなたのところに行って、あなたの燭台 をその置かれた所から取りはずしてしまおう。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면,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증인이 무엇입니까. 증인은 증언을 하는 사람을 증인이라고 합니다.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 내가 받은 것을 증언하는 사람이 증인이지, 아무리 그 사람이 보고 들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증언하지 않는 사람은 증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2절~33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ですから、わたしを人の前で認める者はみな、わたしも、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父の前でその人を認めます。しかし、人の前でわたしを知らないと言うような者なら、わたしも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父の前で、そんな者は知らないと言います。

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축복을 받았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을, 내게 주신 은혜를, 내게 주신 평안을, 내게 주신 감사를, 내게 주신 구원의 기쁨을 전하고, 주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주님의 빛을 이 땅 온 세상에 발하여 전하는, 그리고 마침내 주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36회 빈 집 →

← 제34회 핏값으로 사신 것

 

이카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