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그가 돌아간 이유
2017년 3월 12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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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1절~22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가 돌아간 이유”彼が立ち去った理由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읽어드린 성경구절은 마가복음입니다만, 성경에는 마가복음 이외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이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언급이 되어 있을 정도이니, 당시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이들에게 있어서 이번 일에 대한 인상은 매우 강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오늘 살펴본 마가복음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7절~2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イエスが道に出て行かれると、ひとりの人が走り寄って、御前にひざまずいて、尋ねた。「尊い先生。永遠のいのちを自分のものとして受けるためには、私は何をしたらよいでしょうか。」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なぜ、わたしを『尊い』と言うのですか。尊い方は、神おひとりのほかには、だれもありません。戒めはあなたもよく知っているはずです。『殺してはならない。姦淫(かんいん)してはならない。盗んではならない。偽証(ぎしょう)を 立(た)ててはならない。欺(あざむ)き取(と)ってはならない。父と母を敬え。』」
すると、その人はイエスに言った。「先生。私はそのようなことをみな、小さい時から守っております。」イエスは彼を見つめ、その人をいつくしんで言われた。「あなたには、欠けたことが一つあります。帰って、あなたの持ち物をみな売り払い、貧しい人たちに与え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は天に宝を積むことになります。そのうえで、わたしについて 来なさい。」
すると彼は、このことばに顔を曇らせ、悲しみながら立ち去った。なぜなら、この人は多くの財産を持っていたからである。


이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그러면서 내가 계명들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그럼 이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 맞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그래. 참 잘했다. 그런데 너한테 하나 부족한 게 있는데, 네가 가지고 있는 재산들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 그래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당장 팔아서 나눠주고 올 테니 잠깐 기다리고 계세요……그랬나요?
아니요. 오히려 이 사람은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대단히 친숙한 말씀이긴 합니다만, 오늘은 조금 더 이 말씀에 대해서 깊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 여기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리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알아보기 위해서 먼저, 성경에 나타난 이 사람의 특징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이 사람의 경제적 여건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이 사람은 대단히 재물이 많았습니다. 공관복음…그러니까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의하면 한결같이 그를 재물이 많은 큰 부자라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에 대한 특징은 그것만이 아니죠.
둘째로, 이 사람의 사회적 위치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 마가복음에는 그저 “한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마태복음 19장 20절에 의하면 그를 “청년”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8장 18절에는 이 사람을 “어떤 관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그는 젊은 나이에 관리직에 오른 사람,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고시 패스를 한 사무관?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공부도 열심히 해서 지식도 상당히 있고, 앞길이 창창한 젊은 엘리트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이 사람의 자라온 가정환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람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려서부터 지켜왔다고 합니다. 아무리 착한 아이라 한다 하더라도 자기가 예수님이 아닌 이상, 갓난 아기가 자기 혼자의 힘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자란 환경은 경건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모범적인 가정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이 사람의 인품을 보고자 합니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 의하면 그냥 예수님께 와서 말을 했다고 기록하는데, 오늘 살펴본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이 가시는데 이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말씀을 드렸다고 합니다. 과연 청년 엘리트답죠? 교만하고 거들먹거리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구하는 자세가 대단히 겸손합니다.

예수님께 말씀을 드릴 때 그냥 꼿꼿이 서서 말하는 게 아니라 꿇어 앉았다고 하니 그의 인품이 얼마나 겸손하고 성실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섯째로, 이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유형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선한 의도가 아닌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요. 누구는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누구는 예수님을 덫에 걸리게 하려고, 예수님을 고발할 빌미를 잡으려고 일부러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진 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 성경은 반드시 그 부분을 기록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의하면 이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한 이유가, 자신을 남들 앞에서 잘난 척 하기 위해서이거나 예수님을 골탕먹이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즉, 이 청년은 구원과 영생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구원에 대한, 영생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고, 이를 예수님께서는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이 사람의 모습을 한 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그는 부유하고 경건한 가정, 모범적인 가정에서 자란 청년 엘리트였습니다. 부와 명예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앞길도 창창했습니다. 그는 겸손함도 갖고 있었고 예수님이 자신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 영생에 이르는 길을 알게 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정말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인물 아니겠습니까? 돈도 많고, 집안 좋고, 나이도 젊은 데다가 출세까지 보장되어 있어요. 이 청년이 독신이라면 그야말로 신랑감으로서는 아마도 1등급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곧바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게 됩니다. 그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이죠?

마가복음 10장 21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イエスは彼を見つめ、その人をいつくしんで言われた。「あなたには、欠けたことが一つあります。帰って、あなたの持ち物をみな売り払い、貧しい人たちに与え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は天に宝を積むことになります。そのうえで、わたしについて 来なさい。」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니, 도대체 이 말씀이 무엇이기에 이 성실한 엘리트 청년을 순식간에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근심하게 만들어서, 결국 이 겸손한 청년이 인사도 없이 예수님 곁을 떠나게 만들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냥 “부자가 돈이 아까워서 그랬다”라고 간단하게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뭐예요?
나는 부자가 아니라서 괜찮아. 나는 가진 게 별로 없어서 다행이야.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청년더러 믿음이 없다고 비웃고는, 그 한편으로는 자기를 위로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가 소유하고 있었던 것을 여기서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가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죠? 돈이요? 물론 재물이 많았다고 하니 돈도 많았겠지요. 하지만 그것만 소유하고 있었나요?

지금 그가 갖고 있는 부유함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청년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돈 외에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이었겠습니까. 예, 먼저 그는 청년 관리였습니다. 앞날 보장된 엘리트였습니다. 그리고 그 지위까지 오르기 위한 지식도 많았을 것입니다. 노력도 어마어마하게 했겠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 하시는 말씀, 네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다시 말해서 네가 지금까지 물려받은 재산, 네가 노력해서 얻은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모두 포기하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이게 보통 말씀처럼 들리나요?
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네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낸 고시 합격증을 당장 찢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좋은 대학을 어렵게 졸업하고 대기업에 합격했는데, 그 입사를 취소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뜻은 아닙니다만, 이 청년관리한테는 아마도 그런 식으로 들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게 그리 쉬운 말이겠어요? 내가 그걸 얻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거길 들어가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제 와서 나더러 그걸 버리래.
그래요. 백 보 양보해서 그래야겠다…하고 결심을 했다고 칩시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어! 그거 참 잘했다!” 그러겠어요?
내가 니 뒷바라지를 하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런 헛소리냐……니가 지금 제정신이냐……이걸 감당하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이런 생각들이 한번에 머리 속을 강타하니까 아마도 이 청년은 정신이 없었겠지요. 그리고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집니다. 침통해집니다. 그리고 뭐예요?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すると彼は、このことばに顔を曇らせ、悲しみながら立ち去った。

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 청년한테 그런 힘든 요구를 하셨을까요. 그 청년이 미워서요? 아니에요. 성경에는 뭐라고 되어 있어요?

오늘 살펴본 마가복음 10장 21절 앞부분에 보면 분명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イエスは彼を見つめ、その人をいつくしんで言われた。

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 관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그러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이 가난해지기를 원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대로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면 하늘에서 보화를 네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그 다음이 있어요. 다 팔고, 그 다음에 어쩌래요?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그 청년을 미워했다면 나를 떠나라…라고 하시지 나를 따르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청년은 이 모든 것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면서 예수님 곁을 말없이 떠나갔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네게 있는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정말 지금 당장 나가서 집 팔고 땅 팔고, 고시 합격증도 찢어버리고, 일류 회사에도 들어가지 말고 그러라는 것인가요? 그리고 다 신학교 가서 목사 안수 받으라는 것인가요? 그게 지정으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요?
이 말씀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참 편리합니다. 누구한테 편리해요? 사이비 교주한테 편리합니다.

자,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재산, 돈, 다 팔아서 교회에 바치세요. 가난한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거? 아~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교회가 다 알아서 나눠줄 거예요. 그러니까 집 팔고, 땅 팔아서 다~ 교회로 가져오세요. 그래야 복 받아요.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받을 겁니다!

뭐 이래가면서 협박하기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이 말씀의 핵심을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라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세히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왜 팔라고 말씀하세요? 누구를 위해서요? 예, 바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서 팔라는 것입니다. 즉, 엄밀히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돈으로 바꾸어서 그 돈을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디 그 뿐입니까? 세상에는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건강 문제로 어려워하고 있는 분도 많습니다. 법적인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한테 무조건 돈만 준다고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질병 때문에 어려워하고 있는 사람한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약이 필요합니다. 법적인 문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라면 법조인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의료비나 변호사비가 보통 비쌉니까. 그리고 막상 어디 있는 어떤 의사나 변호사들 찾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다가 결국 기회를 잃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분들 중에는 의료봉사나 법적 봉사를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이 말씀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드시나요? 에이, 의사나 변호사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게 뭐가 어려요….이런 생각 안 드세요?


사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합니까. 예과 2년, 본과 4년, 거기에 인턴, 레지던트 하면 적게 잡아 10년은 해야 전문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나요? 국공립 의대는 그래도 저렴한 편이겠습니다만, 사립 의대의 경우에는 최소한 몇 천 만원을 들여야 공부를 마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사만 되면 먹고 살아요? 대학에 남아서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동안 경쟁에서 이겨서 살아 남아야 합니다. 그리고 종합병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야 하고, 개업을 한다고 하면 돈도 보통 필요한 게 아닙니다.
법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사법시험이고 요즘은 변호사시험입니다만, 합격만 한다고 해서 출세길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하다면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판검사로 임용되어서 부장판사나 부장검사를 달고 난 다음 변호사로 나오면 가장 좋습니다. 그래야 경험도 있고 인맥도 있으니 대형 로펌에 들어가서 대우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낮은 곳으로 가서 의료봉사나 법률서비스를 하는 법조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돈 벌줄 몰라서, 돈 좋은 줄 몰라서 그러겠어요? 아닙니다. 그 분들도 다 알지요. 하지만 그것이 바로 내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하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 드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바로 포기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저기 제일 안쪽 어금니를 하나 뽑았습니다. 이 이빨을 뽑는다는 게 어렸을 때 유치를 뽑는 것 빼고는 처음 해보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이 이빨을 뽑으라는 말을 병원에서 들은 게 2013년이었으니까 단순계산으로 4년을 버틴 샘이지요. 이 이빨을 충치로 예전에 치료한 적은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이빨 문제가 아니라 잇몸에 생긴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뭐 건들건들 거리긴 했습니다. 그러니 오죽했으면 병원에서도 뽑으라고 했겠어요. 하지만 저는 그래도 버텼지요. 당시에는 뭐, 흔들리기는 해도 아프거나 하는 건 아니었었거든요. 하지만 아무래도 그 흔들리는 것 때문에 옆에 틈새가 생기니까, 뭘 먹고 난 다음에 양치질을 해도 그 사이로 들어가고 하니까 가끔 잇몸이 붓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제가 일본에 다시 와서 살게 된 게 2년 전인 2015년부터였는데, 그런 문제 때문에 여기서도 종종 치과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뭐 그 때마다 역시 이 이빨을 뽑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버텼지요.
그래서 저는 믿었습니다.

느헤미야 9장 21절,
“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

四十年の間、あなたは彼らを荒野で養われたので、彼らは何も不足することなく、彼らの着物もすり切れず、足もはれませんでした。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옷이 해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해주셨다는데, 이 일본땅에서의 광야생활 동안 내 이빨도 지켜주시겠지……

그런 믿음으로 나름 버텼습니다만, 발이 부르트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양치질을 열심히 자주 해도 제 잇몸은 심심하면 부르트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판이 되니까, 손으로 만져봐도 알겠더라구요. 완전히 이빨 자체는 빠져서 흔들흔들 거리고 있습니다. 다만 옆에 잇몸에 붙어 있는 것인데, 그러니까 오히려 더욱 아파요.
치과 의사는 자꾸 뽑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혹시 이빨을 뽑으면 비싸서 큰 돈이라도 남나 해서, 뽑는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보험처리를 하면 1500엔 정도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빨을 뽑아서 큰 돈이 남는 것 같진 않아요. 그래서 좀 더 생각해봤죠. 제가 좀 의심이 많습니다. ㅎㅎ 그래서 저는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하. 이거 이빨을 뽑게 하고 거기 인플란트를 넣게 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거구나…생각하고는, 의사선생님한테

“이걸 뽑으면 인플란트 같은 것을 해야 하나요”

라고 물어보았더니, 제일 안쪽 어금니는 뽑고 난 다음에 보통 아무것도 안 한데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를, 아무래도 윗쪽 어금니를 뽑으면 아랫쪽 이빨과 서로 맞닿지 않게 되니까 대단히 불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게 불편하지 않냐고 했더니만, 그 선생님 말씀이, 처음에는 조금 어색할지 모르지만 좀 지나면 괜찮을 거라는 거예요.


아니, 생각해보세요. 저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인데, 윗쪽 어금니를 하나 뽑는데 그게 어떻게 안 불편하겠습니까.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말하기를 전혀 안 불편하다고 하고, 그리고 그 이빨을 뽑는다고 해서 의사 선생님이 무슨 큰 돈을 버는 것 같지도 않고……해서 제가 마지막으로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이걸 뽑으라고 하느냐……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하시는 말이 이 이빨이 있어봤자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 일본에 다시 와서 살면서 교회도 아직 어렵고 한데 이빨까지 뽑게 되니까, 이게 참 솔직히 하나님한테 좀 섭섭하고 씁쓸하고 서운하고 좀 그렇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생각을 해도 이게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게, 이걸로 씹으면 아프고,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해도 오히려 다른 쪽 이빨이나 잇몸한테 안 좋으면 안 좋았지, 좋을 게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겠어요? 오랫동안 망설임 끝에 결국 지난 2월 27일에 뽑아 버렸습니다. 뽑을 때는 정말 참 잇몸도 마음도 아프더라구요.

자, 그런데 뽑고 난 다음에 어땠을까요. 이제 지혈도 되고, 뽑은 통증도 사라지니까 어떻게 됐을까요.

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 동안에는 이빨이 아픈 것이 당연하다시피 했는데, 이빨이 전혀 아프지 않은, 정말 평범한 일상이 돌아온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어색함도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만, 조금 지나니까 이제 뭘 씹을 때에도 안쪽에 어금니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요. 제 생각은 분명 불편하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전혀 안 불편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왜 그렇게 오랫동안 미련하게 참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드리려는 것이 그렇다고 조금 아프다고 이빨을 다 뽑아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빨 하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인데 잘 관리하면서 쓸 수 있을 때까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써야죠.

하지만 인간이라는 것이, 이미 사용할 수 없게 된, 그 수명이 다 한 이빨까지도 막상 뽑으려고 하면 아깝게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포기하게 된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불편함과 상실감을 느끼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그 이빨도 이빨이만, 예전에 그 이빨 충치를 치료할 때 금으로 씌웠거든요. 그때도 제가 기억을 해요. 한국에서 그걸 씌우는데, 보험이 되는 걸로 하면 싸고, 보험이 안 되는 금으로 하면 비싼데 당연히 비싼 게 좋죠.

그래서 고민 끝에 보험이 안 되는 금으로……에이, 그래봤자 몇 만원이에요. 그런데 그 기껏 비싼 걸로 씌운 이빨인데…하면서 그것까지도 아깝게 느껴지더라니까요. 그래서 그런 것들까지도 뽑을 때 끝까지 망설이게 만들었습니다만, 하지만 결과는 어땠어요? 치과 선생님 말씀대로 뽑았더니 이처럼 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포기해야 할 것이 있을까요?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장 8절~9절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もし、あなたの手か足の一つがあなたをつまずかせるなら、それを切って捨てなさい。片手片足でいのちにはいるほうが、両手両足 そろっていて永遠の火に投げ入れられるよりは、あなたにとってよいことです。
また、もし、あなたの一方の目が、あなたをつまずかせるなら、それをえぐり出して捨てなさい。片目でいのちにはいるほうが、両目 そろっていて燃えるゲヘナに投げ入れられるよりは、あなたにとってよいことです。

예수님께서는 이빨 정도가 아니라 손이나 발, 눈까지도 믿음에 있어서 방해가 된다면 빼버리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わたしよりも父や母を愛する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い者ではありません。また、わたしよりも息子や娘を愛する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い者ではありません。

더 나아가서 마지막 날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7장 31절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その日には、屋上にいる者は家に家財があっても、取り出しに降りてはいけません。同じように、畑にいる者も家に帰ってはいけません。

이와 같이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들이나 딸을 버려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집착을 경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눈으로 안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달 어떤 신문에 보니까 이른바 기독교 원로 지식인이라고 하는, 어느 대학교 명예교수라는 분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사회는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교회는 정체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 50년 전이나 요즘이나 똑같습니다. 어느 대학교가 미국 한인 교회 목사들을 부흥회에 초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목사에게 질문했습니다. 무신론자인 사르트르, 카뮈의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목사들은 사르트르, 까뮈를 몰라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니, 이들은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여러 많은 지식들이 있는데, 목사들은 그런 철학자들의 지식이 없으니 문제다…라는 것 아니겠어요?

성경은 이와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なぜなら私は、あなたがたの間で、イエス・キリスト、すなわち十字架につけられた方のほかは、何も知らないことに決心したからです。


갈라디아서 6장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しかし私には、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以外 に誇りとするものが決してあってはなりません。この十字架によって、世界は私に対して十字架につけられ、私も世界に対して十字架につけられたのです。

사도 바울도 수많은 학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으로 삼겠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믿음을 방해하는 집착을 버리고 주님만을 따르겠다고 하는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그 청년관리에게 바라셨던 고백이요, 지금 이 시대에 바라는 고백일 것입니다.

여러분, 치과 선생님보다도 크신 예수님께서 여러분께 말씀하십니다. 집착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지금 그게 아깝다고 하더라도 그건 이미 너한테 아무런 도움이 안돼. 오히려 있어봤자 너한테는 방해가 될 따름이야. 그게 돈이든 지식이든 아니면 사람에 대한 사랑이든 그와 같은 집착이 믿음에 있어서 장애가 된다면 어서 버려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질문 앞에 섰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0장 21절에서 “그를 보시고”가 아니라 ‘〇〇〇’를 보시고, 여기에 자기 이름을 한 번 넣고 한 번 소리 내어서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〇〇〇를(을)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イエスは彼を見つめ、その人をいつくしんで言われた。「あなたには、欠けたことが一つあります。帰って、あなたの持ち物をみな売り払い、貧しい人たちに与え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は天に宝を積むことになります。そのうえで、わたしについて 来なさい。」
すると彼は、このことばに顔を曇らせ、悲しみながら立ち去った。なぜなら、この人は多くの財産を持っていたからである。

예수님께서 그러셨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쁨으로 순종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슬픈 기색을 띠며 근심하며 돌아가시겠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방해하는 집착을 버리시길 원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없으면 못살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집착을 버렸을 때 진정한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해질 줄 믿습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모든 집착을 버리고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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