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회 방주 속의 삶
2017년 3월 19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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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7장 17절~20절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방주 속의 삶”箱舟の中での生活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분들 중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죄 많은 인간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만들게 하고,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수많은 동물들을 모두 그 방주 속으로 들어가게 해서, 다른 인간들과 짐승들은 모두 죽고, 방주 안에 있었던 사람들과 동물들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이 이야기를 오늘은 함께 묵상해보면서, 이 이야기가 오늘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노아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노아가 방주를 지었을 때의 기간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120년이라고 합니다. 그 근거를 창세기 6장 3절을 지적합니다. 이를 위해 6장 1절부터 3절까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는 천사들과 사람이 결혼을 했다, 또 누구는 셋 자손이 가인의 자손과 결혼을 했다는 등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만, 여하튼 이와 같은 일들로 인해 사람들은 타락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날들을 백이십년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신 시점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6장 9절~14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v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これはノアの歴史 である。ノアは、正しい人であって、その時代にあっても、全き人であった。ノアは神とともに歩んだ。ノアは三人の息子、セム、ハム、ヤペテを生んだ。地は、神の前に堕落し、地は、 暴虐で満ちていた。神が地をご覧 になると、実に、それは、堕落していた。すべての肉なるものが、地上でその道を乱していたからである。そこで、神はノアに仰せられた。「すべての肉なるものの終わりが、わたしの前に 来ている。地は、彼らのゆえに、暴虐で満ちているからだ。それで今わたしは、彼らを地とともに滅 ぼそうとしている。あなたは自分のために、ゴフェルの木の箱舟を造りなさい。箱舟に部屋を作り、内と外とを木のやにで塗りなさい。

이 구절을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때에는 이미 셈과 함과 야벳이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명령을 하실 때에 18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창세기 6장 18절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と契約を結ぼう。あなたは、あなたの息子たち、あなたの妻、それにあなたの息子たちの妻といっしょに箱舟にはいりなさい。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건축할 것을 명령하실 그 시점에는 세 아들뿐만이 아니라 며느리들. 그러니까 세 아들은 이미 부인까지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가 언제였을까요?
창세기 5장 32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ノアが五百歳になったとき、ノアはセム、ハム、ヤペテを生んだ。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는 이미 세 아들이 모두 있었습니다. 그리고 홍수가 나던 해에 노아의 나이가 몇 살이었을까요?


창세기 7장 6절에는 다음과 같기 기록합니다.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大洪水が起こり、大水が地の上にあったとき、ノアは六百歳であった。

이 말씀을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노아가 500세 때에는 이미 셈과 함과 야벳의 세 아들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 건축을 명령하셨을 때에는 그 아들들한테 며느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홍수가 일어난 게 노아가 600세 때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길게 잡는다 하더라도 노아가 방주를 짓는 기간은 100년을 넘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성경을 살펴보지 않고 그저 방주 건축 기간이 120년이라고만 합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120년이라고 하는 기간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이는 인간의 수명을 가리키시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즉,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사람들의 수명이 무척이나 길어서, 창세기 5장을 보면 800세 900세를 살았던 사람들이 수두룩 합니다. 창세기 9장 29절에 보면 노아도 950세까지 살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평균수명은 점점 줄어들어갑니다. 그런데 요즘 신문기사를 보면 가끔 놀랍니다. 인간수명에 대해서 뭐라고 나오냐 하면 인간수명이 몇 살까지 늘지도 모른다? 예, 바로 120세까지 늘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즉, 이것은 무엇인가 하면 창세기 6장 3절에서 그들의 날을 120년으로 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수명을 그 당시보다 몇 분의 일로 줄이겠다는 말씀인 것이지, 그것이 곧 방주를 건축하는 기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은 또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이, 노아의 방주가 있었다고 믿으면 그게 중요한 것이지, 그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냐 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해…… 혹시 그런 생각 드시지 않으시나요?

예, 만약에 이렇게 생각하신 분이 계시다면 지극히 옳은 말씀이십니다.
여러분, 노아의 방주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예, 그것이 중요합니다.


만약에 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는데도 못 믿어진다면,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을 어떻게 믿을 것이며,
하나님의 독생자가 예수님이라는 말씀을 어떻게 믿을 것이며,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것이며,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셨다는 말씀을 어떻게 믿을 것이며,
예수님이 죽으신 후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말씀을 어떻게 믿을 것이며,
예수님이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말씀을 어떻게 믿을 것이며,
성령님을 우리를 위해 선물로 주셨다는 말씀을 어떻게 믿을 것이며,
지금 이 순간도 임마누엘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어떻게 믿을 것이며,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서 2장 10절에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律法全体を守っても、一つの点でつまずくなら、その人はすべてを犯した者となったのです。

라고 기록합니다만, 성경 말씀에서도 어떤 것을 믿고 어떤 것을 안 믿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성경 말씀 중 하나를 믿으면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이요, 하나를 안 믿는다는 것은 모두 안 믿는다는 것과 하등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아의 방주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노아의 방주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말씀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적혀 있지 않을 것을 마치 성경처럼 믿으라고 한다면, 이건 곤란합니다. 예전에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동방박사는 몇 명이다? 예, 많은 분들이 3명이라고 알고 있지만, 동방박사들이 와서 3가지 예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동방박사가 3명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왜냐하면,

옛 찬송가 116장은 <동방박사 세 사람>입니다.
<1 동방박사세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 왔도다>

그리고 123장, 우리 잘 아는 찬송이죠? 저 늘 밖에 한 밤중에…그 가사 4절이 어떻게 되어 있었냐 하면,
< 4 동방박사 세 사람이 새 아기 보고 절하고 그 보배합 다 열어서 세가지 예물 드렸네>

이렇게 되어 있으니, 성경은 안 읽는 많은 사람들이, 아아, 동방박사는 세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계속해서 강력하게 주장한 덕분에……라고 하면 좀 거짓말이겠지요. ㅎㅎ 이번에 개정된 새찬송가에서는 그 <동방박사 세 사람>이라는 찬송은 빠졌습니다.
그리고 <저들 밖에 한 밤중에>의 4절도 바뀌었습니다.

< 저 동방의 박사들이 새 아기 보고 절하고 그 보배합 다 열어서 세가지 예물 드렸네>
라고 되었더군요.

그런데 아직도 바뀌어야 할 찬양 가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찬송가를 말씀 드리기 전에 먼저 이 질문부터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막달라 마리아라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이 점에 대해서도, 그 여인은 일곱 귀신이 씌었던 사람, 예수님께 귀한 향유옥합을 깨뜨린 사람, 또는 매춘부……. 이렇게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꽤 많습니다. 여기 중에서 하나는 진실이고 나무지 두 가지는 거짓……적어도 성경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이른바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설명은 누가복음에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 2절,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また、悪霊や病気を直していただいた女たち、すなわち、七つの悪霊を追い出していただいたマグダラの女と呼ばれるマリヤ、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귀신이 씌었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병 고침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예수님을 정성껏 모시고 섬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향유를 드린 여인은 어떨까요. 그 사건에 대해서는 4복음서에 모두 기록이 있고, 이게 조금씩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그 어디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렸다는 말씀을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찬송가 211장, 옛 찬송가 346장을 보십시오.

그것이 뭐냐 하면 찬송가 211장, 옛 찬송가 346장입니다.

1절 가사는 이렇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 향기론 산 제물 주님께 바치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

아까 말씀드렸던 동방박사 이야기처럼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찬송가에 이렇게 적혀 있기 때문에 이런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 막달라 마리아가 매춘부였다? 이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 역시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없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간혹 <사람의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 말씀을 설교 말씀에서도 들어보았고, 또한 교회에서 붙여놓은 포스터에서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평신도 시절에는, 음, 뭐,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나보다…하고 넘겼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어떤 교회에서 본 포스터에 보니까, 역시 이 문구와 함께 그 근거 구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이 좀 가물가물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마태복음 16장 26절이 아니면 마가복음 8장 36절입니다. 이 두 구절은 똑 같은 내용이에요. 그래서 그래, 잘 됐다. 한 번 찾아봐야겠다. 하고 그 구절을 찾아보니 그 구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먼저 마태복음부터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人は、たとい全世界を手に入れても、まことのいのちを損じたら、何の得がありましょう。そのいのちを買い戻すのには、人はいったい何を差し出せばよいでしょう。

그 다음에 마가복음을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8장 36절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人は、たとい全世界を得ても、いのちを損じたら、何の得がありましょう。

여러분,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정말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처럼 들리나요? 이건 분명히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한 영혼이 귀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영혼이 귀하지요.
얼마나 어느 정도로 귀합니까? 왜 귀합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잘 나서, 내 영혼이 값어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보잘 것 없는 내 영혼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그 피값으로 사셨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우리의 생명, 우리의 영혼을 마음대로 다루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약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생명이나 우리의 영혼을 함부로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 우리의 영혼을 위해 예수님께서 흘려주신 귀한 보혈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 정치인들이 하는 말들을 보면 참 기도 안 찹니다.

“내가 돈을 받았으면 내 목을 걸겠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나오면 자살을 검토하겠다”
“뭐가 어떻게 되면 내 목숨을 내놓겠다”

이런 말을 한 사람 중에서 적어도 한 사람은 개신교이고 또 한 사람은 천주교입니다. 이게 지금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이나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함부로 생각한다는 것 또한 우리가 구원을 해야 할 생명, 예수님께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영혼을 함부로 생각한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사람의 영혼이 귀하다는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으로 비추어 본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적용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온 천하와 사람의 목숨의 가치를 비교하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부귀영화를 누린다 하더라도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아직까지도 “그거나 그거나.” 아니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그냥 성경 말씀이니까 좋은 뜻으로 이해하면 그만이다? 아닙니다. 바로 그런 생각으로 성경을 읽지 않고 어디서 누가 써놓은 해석서나 주석서만을 보고 성경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 자기 멋대로 성경을 해석해놓으면, 교회에 오래 다니고 직분까지 받은 분들까지도 그게 정말인 줄 알고, 그게 무슨 새로운 진리나 되는 줄 알고 곧이곧대로 믿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요?
그 사람의 믿음도 망가지고 그 사람의 인생도 망가지고 그 사람의 직장도 망가지고 그 사람의 생활도 망가지고 그 사람의 가정도 망가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이 우리는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마귀 사탄들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하는 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말씀 드린 부분은 분명 노아의 방주에 대한 내용 중에서 서론이었습니다만, 본의 아니게 무척이나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좀 줄일까 했습니다만, 이거 언젠가는 말씀을 드려야 할 내용이었고, 그리고 이왕 말씀을 드리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굳이 이렇게 오늘 말씀을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점 양해하시고 계속해서 말씀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ㅎㅎ

이야기를 그럼 다시 노아의 방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자, 우리는 노아의 방주가 사실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걸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한다면 머리속에 혼란은 점점 더 늘어만 갑니다.

왜냐 하면, 자,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먼저, 방주에 들어간 사람이 누구냐 하면, 창세기 7장 13절에 그 승객 명단이 나와있습니다.

창세기 7장 13절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ちょうどその同じ日に、ノアは、ノアの息子たちセム、ハム、ヤペテ、またノアの妻と息子たちの三人の妻といっしょに箱舟にはいった。

그러니까 노아와 세 아들,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 1 + 3 + 1 + 3이니까? 몇이에요? 예, 여덟입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죠? 승객명단은 7장에서 13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4절과 15절로도 그 승객명단은 이어집니다.

창세기 7장 14절~15절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彼らといっしょにあらゆる種類の獣、あらゆる種類の家畜、あらゆる種類の地をはうもの、あらゆる種類の鳥、翼 のあるすべてのものがみな、はいった。こうして、いのちの息のあるすべての肉なるものが、二匹ずつ箱舟の中のノアのところにはいった。

그러니까 모든 들짐승, 모든 가축, 모든 땅에 기는 것, 나는 것들이 그 종류대로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주 안에서의 생활이 얼마였냐 하면 대략 1년보다도 조금 더 길어서 371일 정도라고 하는 것이 신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그 여덟 명이 방주에서 1년 이상 동안 가만히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었겠어요? 아마도 무척이나 바빴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짐승이 어디 한 두 마리에요? 어떤 신학자들에 의하면 그 짐승들은 적게 잡아 한 16000마리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16,000마리라고 하면 잘 감이 안 오시죠?
한국에서 가장 큰 동물원이라고 하는 서울대공원에 있는 동물들이 몇 마리 정도일 것 같으세요?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2372마리에다가 이를 관리하고 있는 직원 수는 대략 210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6,000마리나 되는 동물을 고작 8명이 관리를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시간에 맞춰서 먹이도 먹어야 했겠지요. 여기서 움매움매 소리도 나고 저기도 왈왈 소리도 나고,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어디 그 뿐이었겠어요? 1년 넘게 있었다고 하니, 또 어떤 동물은 새끼를 낳았을 수도 있고, 그러면 그걸 또 보살펴줘야겠죠? 그리고 16,000마리나 되는 동물이 배설물은 또 어땠겠습니까. 집에서 동물 한 마리 길러도 그 배설물들 때문에 골치를 앓기도 하는데, 한 두 마리가 아니라, 몇 마리요? 16,000마리입니다. 그러니 냄새는 또 오죽했겠습니까.
여기서 일이 터지면 얘 누구야~ 어머니~ 여보~ 당신~ 뭐 난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게 하루요? 이틀이요? 아니요. 1년 이상 그랬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 이게 뭐야. 하나님이 명령해서 우리더러 방주를 만들라고 했고, 그 명령에 순종해서 이렇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다면 좀 거룩하고 깨끗하고 향기롭고 평탄하고 좀 그런 우아한 미래가 되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우아하기는커녕 이게 무슨 짐승 냄새에다가 배설물 냄새에……맨 처음에는 밥도 제대로 안 넘어갔을 거예요. 그러면 짜증도 내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심술도 부리고, 이거 뭐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난리도 치고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뭐라고 기록하지요?

저는 참 이 구절에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창세기 7장 18절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水はみなぎり、地の上に大いに増し、箱舟は水面を漂った。

그렇습니다. 안에서 티걱티걱 싸우든 알콩달콩 살아가든 믿음의 방주는 물 위에 떠 다녔으며,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그 믿음의 방주는 마침내 아라랏산 꼭대기에 머무르게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8장 1절 전반부를 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神は、ノアと、箱舟の中に彼といっしょにいたすべての獣や、すべての家畜とを心に留めておられた。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신다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우리는 결국은 잘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다고요? 예,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까지도 내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해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기면서까지 우리에게 사랑을 확증해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떠다니는 노아의 방주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너무나도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인도해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방주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주님의 전에 거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6절에서의 다윗의 고백처럼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まことに、私のいのちの日の限り、いつくしみと恵みとが、私を追って来るでしょう。私は、いつまでも、主の家に住まいましょう。

우리가 하나님을 잊을 때에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포기하려고 해도,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끝까지 믿음의 방주 안에, 여호와의 집에 거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인하여 마침내 큰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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