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
2017년 5월 28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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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Last Update 2019. 5. 21

창세기 40장 23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내용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 그는 레아의 여동생 라헬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본래 야곱은 라헬을 사랑해서 그녀를 얻는 대가로 그녀의 아버지이자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버니, 그러니까 야곱의 외삼촌인 라반을 위해 도합 14년 동안이나 무료봉사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라반을 섬겼지만 그의 딸 라헬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창세기 29장 20절에 보면 짧은 시간처럼 여겼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야곱은 모두 네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라헬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두 아이를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러니 야곱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리고 그 두 아이가 하나는 요셉이요 둘째는 베냐민이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이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야곱은 요셉과 베냐민을 무척 사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편애를 하게 되면 반드시 이에 대한 반발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요? 예, 세상에나, 그 형들은 그를 애굽으로 가는 노예상인에게 은 20을 받고 팔아버리고 맙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참 잔인합니다.
이렇게 해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요셉은 영문도 모른 채 막무가내로 끌려갑니다. 그 때까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에게는 이제 더 이상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은 무슨 사랑이겠습니까. 매라도 안 맞으면 다행이고, 밥이라도 안 굶으면 다행입니다.
그는 이제 산 설고 물 설고 낯선 애굽 땅에 왔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 곳에 무슨 관광객으로 온 것도 아닌,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보디발 장군 집으로 넘겨지게 됩니다.
평민도 아닌 장군 집이라고 하니 거기서 일하는 노예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거기서 이제 말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의 나이 불과 17살이었을 때입니다.
거기에는 분명 텃세도 있었겠지요. 나이도 어리고 신참인데다가 말도 안 통하는 요셉, 거기에다가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정말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랐을 텐데, 무슨 힘든 일을 해보기라도 했겠어요? 모든 일이 생소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이도 어리고 일도 제대로 못하고 하니, 처음에는 괴롭힘도 당하고 모진 일도 당하고 그랬을 지도 모릅니다.
요셉은 이제 귀한 집 아들내미가 아닙니다. 그저 일개 종에 불과합니다. 그는 죽지 않으려면 거기서 버텨야 했습니다. 참고 인내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수밖에 그의 살 길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39장 2절~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를 데려온 보디발 장군이, 하나님께서 이 나이도 어리고 애굽 말도 못하는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보디발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아보았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요 이렇게 티가 나는 법입니다.
이 보디발 장군이 가만히 지켜보니까 무슨 일이든 요셉한테 맡기기만 하면 일이 잘 되요. 그러니까 어떻게 했대요?
창세기 39장 4절~5절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맨 처음에는 나이도 어린 외국인 노예였습니다만 요셉이 맡아서 일을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세요. 그래서 보디발 장군은 이 청년 요셉한테 집안 일 모든 것을 맡깁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대요? 그 애굽 사람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면 안될 단어가 있습니다. 왜 그 집에 복을 내리셨다고 기록되어 있나요?
예, 바로 <요셉을 위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요셉한테 만이 아니라 요셉이 속해있던 그 이방인 보디발 장군 집에까지도 복을 내리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래, 내가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일로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이렇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이제 정말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어쩌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그랬습니까? 이제 좀 살아볼 만 하니까, 보디발 장군의 부인이 요셉을 유혹합니다.
창세기 39장 6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요셉이 이처럼 능력 있고 거기에다가 외모까지 멋지게 생겼다고 하니 음란한 보디발 장군 부인, 이 미세스 보디발이 가만히 못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유혹을 하려고 합니다만, 요셉은 완고하게 거절을 합니다.
창세기 39장 8절~9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이렇게 요셉이 유혹이 넘어가지 않으니까 이 보디발 장군 부인, 미세스 보디발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 하면 오히려 요셉이 자신을 유혹하려 했다고 억지를 부려서 그만 요셉은 감옥에 갇히고 말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때 요셉의 심정을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무슨 어떤 실수를 해서, 아니면 소위 재수가 없어서 돈 얼마를 손해 보았다거나 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 종으로 외국에 팔려간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신 적이 있으십니까?
일반 사람들한테는 평생 동안 단 한번도 일어나기 힘든 일이 연달아 이 청년 요셉에게 덮칩니다. 아무런 죄도 없이, 남들도 아니고 자신의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와서는, 힘들고 고달픈 종살이를 하다가 이제 좀 살만 했는데, 주인한테 귀여움도 받아가면서 이제야 좀 팔자가 피나 했는데, 이게 웬 봉변입니까.
정말로 신세 한탄을 해도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옆에서 이 요셉의 처지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랬을지도 모르죠.
하이구……그거 참 팔자도 기구하다…형들한테 버림 받고, 주인한테 버림 받고……저걸 보니 분명히 하나님한테도 버림 받은 게 분명해……. 쯧쯧쯧. 이런 말이 안 나오겠어요?
이처럼 딱한 경우를 겪는 사람이 성경에는 또 있습니다. 바로 욥입니다.
욥기 1장 1절~3절에는 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이것 보십시오.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자식들도 많았고 재산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인품이 완벽한 데다가 재산까지 많았으니 정말 그야말로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본인도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재앙이 닥치기 시작합니다. 종들이 살해 당합니다. 재산을 모두 빼앗깁니다. 자녀들까지 한 명도 남김 없이 피해를 입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욥 자신도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당시 욥의 모습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욥기 2장 7절~8절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정말 여느 왕이 안 부러울 정도로 부귀를 누리고, 좋은 옷에 좋은 음식에, 큰 집에 화목한 가족들. 그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었던 가정이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납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부인이 뭐라고 합니까.
욥기 2장 9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아내가 보기에도 얼마나 기가 찰 노릇입니까. 모든 재산들이 순식간에 날라가고 자녀들도 하루 만에 일곱 명이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질병으로 허덕이고 있어요. 교회 다니는 사람이 가끔 이런 말 하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러지는 않을 거야.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겠어”
욥의 아내도 똑 같은 심정이었겠죠.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믿었더니만 결국 이 꼴이 나고 말았지 않느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을 하는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죽하면 그러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이 때에 욥은 어떻게 말합니까. 그래, 여보, 당신 말이 맞네. 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팍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 이러나요?
욥기 2장 10절을 봅니다.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사람이 잘 될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진정한 믿음을 갖고 있는지는 이처럼 이렇게 위기가 닥쳤을 때 이 위기관리를 어떻게 잘 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어떻게 되나요? 욥기 42장에 보면 어떠한 환란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에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요셉도 마찬가지이죠. 팔자도 기구하지 어떻게 이런 일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닥치겠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운명을 원망했다는 기록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누가 보더라도 요셉은 하나님이 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겠으나, 요셉 만은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됩니까.
창세기 39장 20절~23절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라면 우리가 죄 없이 노예로 팔려간다 하더라도, 우리가 아무런 잘못 없이 감옥에 갇힌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요셉은 이를 믿고 묵묵히 감옥생활을 했었습니다. 언젠가 기회를 주실 것이다. 언젠가는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믿음이 있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런데 마침 기회가 왔습니다. 창세기 40장에 보니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해서 잡혀 들어왔다고 합니다.
여기서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라고 하면 무슨 청와대 주방장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도 계신 것 같습니다만, 이건 그렇지 않고 훨씬 더 정치적이고 실무적인 자리, 말하자면 대단히 벼슬이 높은 자리입니다. 글쎄요. 오늘날로 말할 것 같으면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청와대 수석 정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하자면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지체 높으신 분들이 어떤 잘못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이들이 같은 날 밤에 꿈을 꿉니다. 그런데 그 꿈 내용을 요셉이 듣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대로 풀어보니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은 좋은 꿈이에요. 이제 3일만에 석방되고 본래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러면서 요셉은 이 말을 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40장 14절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이렇게 술 맡은 관원장에게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거죠. 그들이 감옥에 있으면서 아마도 요셉은 자신이 놓인 처지를 설명하지 않았겠어요? 사실 제가 이러이러 해서 애굽까지 팔려오게 됐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러저러하게 되어서 억울하게 감옥에까지 갇혔지만, 난 하나도 잘못한 게 없으니까, 높은 지위로 복직되면 왕한테 말해서 나를 좀 내보내달라……이런 말이었겠지요.
이렇게 말할 시점을 보면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 17세에 애굽으로 팔려오고 11년이나 지난 시기였습니다. 그 때까지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해본 요셉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정말 작심하고 큰맘 먹고 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요셉도 드디어 찬스가 왔다. 할렐루야. 이제서야 나가게 되는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꿈을 해석해준 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사흘 만에 복직이 되었습니다. 그 감옥 안에 수감되어 있는 일반 죄수들이라면 몰라도, 이 요셉은 죄수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모든 관리를 맡고 있었다고 하니, 이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었다는 소식도 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뭐예요? 예, 이제 소식만 기다리면 됩니다. 이제 술 맡은 관원장이 왕한테 내 억울한 사정을 말해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제 내가 여기서 나가게 될 거야……하고 밤이고 낮이고 기다렸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안 옵니다.
분명히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됐는데, 내가 그렇게 신신당부를 해놓았는데, 드디어 이제 누명을 벗고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창세기 40장 23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기껏 그렇게 부탁을 해놨는데, 내가 그렇게 꿈을 해몽해줬는데, 그리고 그 사람이 갇혀 있을 때 내가 그 사람한테 신경 써서 해준 게 얼만데, 그걸 까먹어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아니, 여보쇼.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내가 그렇게 간곡히 부탁을 했는데 이거 너무 무심한 거 아니에요? 뭐 이렇게 따지고 그러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같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는 똑 같은 죄수 신분이라서 서로 이야기도 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 한쪽은 왕의 비서실장이고, 요셉은 여전히 죄수입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으면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글쎄요. 저 같으면……이런 생각을 한 번 해봤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지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그 관원장한테 한번 메모라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그렇잖아요? 뭐 긴 말이 필요하겠어요? <요셉이 궁금해합니다>라고 단 한 마디만 해주면 될 거 아니에요?
하지만 요셉이 그처럼 사람의 방법대로 했다는 이야기가 성경 어디를 찾아봐도 안 나와 있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 감옥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해나갑니다. 하지만 이제 언제 또 다시 그런 기회가 돌아올지 전혀 모를 상황이죠.
그러던 중 드디어 기회가 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입니다. 바로가 꿈을 꿨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거예요. 이 말을 누가 들었겠습니까. 당연히 최측근인 비서실장인 술 맡은 관원장이 들었겠지요.
그러고보니 아차차차……내 정신 좀 봐. 맞아 맞아. 그때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내 꿈을 해몽해준 친구가 하나 있었지? ……라고 비로소 요셉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왕한테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41장 9절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라면서 요셉이 해몽을 했는데 그게 딱 맞았더라……라고 왕한테 말씀을 전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 술 맡은 관원장이 얼마 만에 요셉을 떠올렸는지 아세요?
창세기 41장 1절 전반부를 봅니다.
“만 이 년 후에……”
그러니까 자신이 석방되고 나서 만 2년이 지나서야 이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해냈다는 것이지요. 참 너무하지 않습니까.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기억력이 안 좋은 관원장을 비난해야 할까요? 아니면 이렇게 2년 동안이나 기다리게 하신 하나님을 원망해야만 할까요?
여기서 우리 한 번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만약에 요셉이 감옥에 있으면서 사람의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술 맡은 관원장에게 메모를 전달했다고 칩시다.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이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뭐 그래도 뇌물을 준다든지 어떻게 해서 성공했다고 칩시다.
이 메모를 본 술 맡은 관원장. 어. 그래 맞아. 내가 깜빡 했었네. 그래. 내가 왕한테 말씀을 드려서 나오게 해줘야지……라고 해서 나왔다고 합시다. 만약에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제 요셉은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자유인이 된 건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이 죄를 짓지 않았지만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인이 되나요? 아니요. 본래부터 요셉은 노예로 애굽에 팔려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뭐예요? 요셉이 풀려났다고 한들 결국은 노예, 종살이입니다.
글쎄요. 술 맡은 관원장이 특별히 왕에게 말을 해서 풀려났다고 해도 여전히 미세스 보디발이 있는데, 보디발 장군 집으로 가서 예전처럼 일을 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렇다면 특별히 배려를 해서 내가 너를 데리고 있겠다……뭐 이렇게 해서 술 맡은 관원장 집에서 살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뭐 그런 인생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그렇게 술 맡은 관원장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늙어서 죽었다……라는 요셉의 인생이 그런 식이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요셉을 기억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요셉의 삶이 그러한 삶이었다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아니,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하더라도 성경 구석에 작게, 그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적혀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람의 방법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법에 맡겼습니다. 불평 불만을 토로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년 후. 17살에 자신의 고향 가나안 땅에서부터 끌려온 지 13년 만에 그는 바로 왕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됩니까. 예, 바로 왕으로부터 직접 애굽의 총리로 임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임명하는 장면을 한 번 보십시오.
창세기 41장 38절~43절을 봅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총리라고 해서 그냥 말만 총리가 아니에요.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명실상부한 강대국의 2인자가 된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묻겠습니다. 요셉이 그와 같은 강대국의 2인자가 되기 위해서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고시에 합격했습니까?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그 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인맥을 총동원해서 이루어냈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한 것은 오로지 단 하나. 자신이 놓인 위치에서 종살이를 하건 억울한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혀있건 간에,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고 인내했다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술 맡은 관원장이요? 그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바로 왕으로부터 막강한 권력을 위임 받은 총리 요셉에게 비하겠습니까? 오히려 그가 요셉까지도 섬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시면 높일 자가 없고 하나님께서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나 문제가 닥쳐왔을 때, 우리는 반드시 이 선택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사람의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또 하나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당장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결국 잘 돼봐야 노예로서, 종으로서 신분이 회복될 뿐입니다. 그게 다예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생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그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릅니다. 참고 인내하고 견뎌야 합니다. 어찌 보면 매우 미련한 방법처럼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어떻습니까.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는 방법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러분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의지할 것은 십자가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의지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밖에는 없습니다. 그 순간에는 아무리 미련해 보이더라도 십자가의 방법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이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방법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힘드십니까? 문제가 있으십니까? 여차하면 하나님이고 뭐고, 내 생각대로 해버리고 싶으십니까? 조금만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주님의 방법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반드시 주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이요, 반드시 요셉이 받은 축복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설령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어도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또한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 끝까지 절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주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바라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고 인내하면서 주님의 생각을, 주님의 방법을 사모하면서, 주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요셉이 받은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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