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2017년 6월 4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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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見えるものと見えないもの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2007년부터 여기 일본으로 오게 된 2015년까지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성가대에는 교회의 공식적인 주보가 아니라 성가대 내에서 공유하는 주보가 따로 있었습니다.

저도 그 주보를 제작하기도 했었습니다만, 그 성가대 주보 이름이 참 좋았습니다. 이름이 바로 ‘기대’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끼리는 <주보>라고 부르기 보다는 <기대지>라고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기대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대를 실현에 옮기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힘을 의지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힘을 의지할까요? 대표적으로 세 가지의 힘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첫째는 <자기 자신의 힘>입니다. 다음으로 둘째로는 <다른 사람의 힘>이겠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합니다. 또는 <지성이면 감천이다>라고도 합니다. 무슨 일이든 자신이 노력을 해야지, 자기는 아무 노력도 안 하면서 어떻게 일이 잘 되기를, 또는 성공하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니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마침내 그 노력이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처럼 세상적으로 보면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훌륭한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에 대해서 독특하게 해석을 합니다.

잠언 3장 5절 후반부에 보면요, 이와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自分の悟りにたよるな。

성경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야곱을 보면, 그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긴 했습니다. 축복을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인생을 살아가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자신이 열심히 죽어라고 노력해서 따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잔머리를 굴립니다. 꾀를 씁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았지만 결국 그는 그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룬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고백합니다.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바로 왕이 그의 나이를 묻자, 야곱은 힘없이 대답합니다.

창세기 47장 9절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ヤコブはパロに答えた。「私のたどった年月は百三十年です。私の齢の年月はわずかで、ふしあわせで、私の先祖のたどった齢の年月には及びません。」

新共同訳 苦しみ多く

내가 내 조상들에 비하면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결코 평탄하지 못한,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힘과 자신의 능력을 의지해서 살아가고자 했던 야곱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요? 다른 사람의 힘을 의지해야 하나요? 과거에 김영삼 대통령은 매일 아침 조깅을 하는 대통령으로 유명했지요. 제 기억으로 미국의 카터 대통령도 조깅을 했었던 것 같았습니다만, 이 김영삼 대통령이 했던 말 중에 유명한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머리는 빌려도 건강은 못 빌린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만, 이것을 뒤집어보면, 건강은 못 빌려도 머리는 빌릴 수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머리나, 다른 사람의 능력, 다른 사람의 힘을 의지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도 역시 세상적으로 보면 전혀 나쁜 것이 아닌, 오히려 다른 사람을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본인의 인생도 매우 효율적이고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나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 어떻게 기록할까요.

성경에서 특히 구약을 보면요, 하나님이 아닌 세상적인 방법, 내가 구원 받기 전 과거의 악습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애굽>입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 넘도록 애굽에 살면서 종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서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냅니다.

이제 종살이를 하고 있던 애굽에서 탈출한 그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닙니다. 자유인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이제 하나님의 민족,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민족으로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새로운 자주적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런데 그들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무슨 어려운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어떻게 해요?


출애굽기 16장 3절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イスラエル人は彼らに言った。「エジプトの地で、肉なべのそばにすわり、パンを満ち足りるまで食べていたときに、私たちは主の手にかかって死んでいたらよかったのに。事実、あなたがたは、私たちをこの荒野に 連れ出して、この全集団を飢え死にさせ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

민수기 11장 5절~6절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エジプトで、ただで魚を食べていたことを思い出す。きゅうりも、すいか、にら、たまねぎ、にんにくも。


아니, 하나님이 크나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말미암아 그 지긋지긋한 종살이를 끝내게 하고 해방시켜주셨는데, 뭐요?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 떡을 배불리 먹던 때?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 나?

그게 어디 자기들 겁니까? 노예한테 무슨 자기 것이 있어요? 종살이는 소유권이 없습니다. 그럼 이건 무슨 소리냐 하면, 기껏 한다는 소리가 종살이하면서 주인 것을 몰래 훔쳐먹은 것이 생각난다는 거예요.

그래요. 큰 집에 살았겠지요. 맛있는 음식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러면 뭘해요. 그건 다 자기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섬기는 애굽 주인들 것이에요. 그것 뿐인가요? 자기 자신, 종 역시 그 주인 소유입니다. 아무런 자유도 없고 결정권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래요?

민수기 14장 3절~4절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なぜ主は、私たちをこの地に導いて来 て、剣で倒そうとされるのか。私たちの妻子は、さらわれてしまうのに。エジプトに帰ったほうが、私たちにとって良くはないか。」そして互いに言った。「さあ、私たちは、ひとりのかしらを 立ててエジプトに帰ろう。」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셔서 이렇게 큰 역사를 이루어주셨는데, 기껏 한다는 소리가 다시 그 종살이를 하려고 애굽으로 기어들어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에요?

이사야 36장 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おまえは、あのいたんだ葦の杖、エジプトに拠り頼んでいるが、これは、それに寄りかかる者の手を刺し通すだけだ。エジプトの王、パロは、すべて彼に拠り頼 む者たちにそうするのだ。

이처럼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힘을 의지하는 것은 마치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다고 하는 것인데,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지팡이로 쓰기 위해서는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어야지, 부드러운 갈대로 무슨 지팡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상한 갈대라니요. 그러니까 어떻게 돼 있어요? 갈대가 상하니까 그 줄기가 까칠까칠해져서 오히려 손이 찔린다고 하는 것인데, 이는 그렇게 하면 도움을 얻기는커녕 도리어 해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시편도 한 번 보겠습니다. 시편 146편 3절~4절입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君主たちにたよってはならない。救いのない人間の子に。
霊が出て行くと、人はおのれの土に帰り、その日のうちに彼のもろもろの計画は滅びうせる。

이사야 2장 22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鼻で息をする人間をたよりにするな。そんな者に、何の値うちがあろうか。

여기서의 <인생>이라는 것은요, 다른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을 의지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무슨 지위가 높은 사람, 돈 많은 사람, 권세가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청탁을 하기도 하고, 아부를 하기도 하고, 그리고 때로는 뇌물을 바치기도 합니다.

자, 어서 받으세요. 아무도 모르니까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돈을 주고 받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일본이나 한국이나 사람을 의지하다가, 뇌물을 주고 받다가 망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사실은, 제가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더라도 요즘 신문을 보시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사람의 힘을 의지한 결과는 실로 처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거기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겠습니까. 하지만 공든 탑이 안 무너지기는커녕, 때로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신명기 30장 20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あなたの神、主を愛し、御声 に聞き従い、主にすがるためだ。確かに主はあなたのいのちであり、あなたは主が、あなたの先祖、アブラハム、イサク、ヤコブに与えると誓われた地で、長く生きて住む。


시편 56장 4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神にあって、私はみことばを、ほめたたえます。私は神に信頼し、何も恐れません。肉なる者が、私に何をなしえましょう。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신데, 세상 사람들이 뭐가 두려울 게 있냐는 고백입니다.

시편 115편 9절~10절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イスラエルよ。主に信頼せよ。この方こそ、彼らの助け、また盾である。
アロンの家よ。主に信頼せよ。この方こそ、彼らの助け、また盾である。


이처럼 성경에서는 너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세상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명철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하이고, 알아요, 목사님. 내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어디 세상 사는 게 그런가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간단합니다. 나 자신도 보이고, 돈 많은 사람, 힘 있는 사람도 내 눈에 보이지만,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잖아요? 안 보이는 것을 어떻게 믿으란 말이에요? 그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을 기대해야 하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요? 아니면 눈에 안 보이는 것이요?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私たちは、見えるものにではなく、見えないものにこそ目を留めます。見えるものは一時的であり、見えないものはいつまでも続くからです。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손에 잡히는 것만을 의지하고 따라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狭い門からはいりなさい。滅びに至る門は大きく、その道は広いからです。そして、そこからはいって行く者が多いのです。いのちに至る門は小さく、その道は狭 く、それを見いだす者はまれです。

여러분,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을 기대하면 어떻게 됩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을 기대하면, 베풀지 못하게 됩니다. 겸손하지 못하게 됩니다. 용서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부활이나 심판이나 천국이나 지옥이나 하나님의 구원이, 지금 이 세상에서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그렇다고 만약에 부활도 없고 심판도 없고,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고, 하나님의 구원도 없다면, 그리고 이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무>가 되고 아무 것도 안 남게 된다면, 나 혼자 먹고 살기도 바쁜데, 뭐 하러 남한테 베풉니까. 남들보다도 내 자존심이 중요한데 겸손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용서요? 용서는 무슨. 복수는 나의 힘! 이것 아니겠어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부활도 심판도 천국도 지옥도 하나님의 구원도 없고, 사람이 그냥 살다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한다면 이런 건 다 필요 없겠지요.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이 흥미로운 말을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もし、私たちがこの世にあってキリストに単なる希望を置いているだけなら、私たちは、すべての人の中で一番哀れな者です。

대단히 흥미로운 말이죠? 예수 믿는 많은 분들이 이 세상에서 잘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복을 받으려고 해요. 물론 그건 중요합니다. 가난이 축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질병이 축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요해져야 합니다. 건강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의 말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가기만을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면, 자기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라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요?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그가 당한 고생이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4절~27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v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ユダヤ人から三十九のむちを受けたことが五度、むちで打たれたことが三度、石で打たれたことが一度、難船したことが三度あり、一昼夜、海上を漂ったこともあります。幾度も 旅をし、川の難、盗賊の難、同国民から受ける難、異邦人から受ける難、都市の難、荒野の難、海上の難、にせ兄弟の難に会い、労 し苦しみ、たびたび眠られぬ夜を過ごし、飢え渇き、しばしば食べ物もなく、寒さに凍え、裸でいたこともありました。

만약에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었는데, 그럼 예수 믿고 호강을 했냐 하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호강은 무슨 호강……아주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했습니다. 이렇게 고생하면서 예수를 믿고 복음을 전파했는데 죽으니까 아무 것도 없이 사라져? 그렇다면 얼마나 불쌍하겠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어떻게 기록합니까.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そして、人間には、一度死ぬことと死後にさば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ように、

요한계시록 20장 12절~15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v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また私は、死んだ人々が、大きい者も、小さい者も御座 の前に立っているのを見た。そして、数々の書物が開かれた。また、別の一つの書物も開かれたが、それは、いのちの書であった。死んだ人々は、これらの書物に書きしるされているところに従って、自分の行ないに応じてさばかれた。海はその
v中にいる死者を出し、死もハデスも、その中にいる死者を出した。そして人々はおのおの自分の行ないに応じてさばかれた。それから、死とハデスとは、火の池に投げ込まれた。これが第二の死である。いのちの書に名のしるされていない者はみな、この火の池に投げ込まれた。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 끝에는 반드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간단합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천국. 없으면 지옥입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당당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알리기 위해서,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그렇게 어려움을 많이 겪은 바울은, 체포되어서 포송줄로 묶인 상황에서도 확신에 차 있습니다.


사도행전 26장 29절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パウロはこう答えた。「ことばが少なかろうと、多かろうと、私が神に願うことは、あなたばかりでなく、きょう私の話を聞いている人がみな、この鎖は別として、私のようになってくださることです。」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치 바울의 반짝이는 눈빛이 보일 것만 같습니다. 내가 많은 고생을 했고, 예수님을 위해서 지금도 이렇게 잡힌 신세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믿음을 갖기 원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 말합니다.

로마서 8장 24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私たちは、この望みによって救われているのです。目に見える望みは、望みではありません。だれでも目で見ていることを、どうしてさらに望むでしょう。

그렇지요. 보이면 그건 소망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안 보이니까 소망인 것입니다.
지금 어려우십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기대하고 소망을 꼭 쥐고서 기다려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축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로마서 5장 3절~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そればかりではなく、患難さえも喜んでいます。それは、患難が忍耐を生み出し、忍耐が練られた品性を生み出し、練 られた品性が希望を生み出すと知っているからです。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은 우리들의 힘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神を愛する人々、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従って召された人々のためには、神がすべてのことを働かせて益としてくださ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는 한, 결국에는 잘 됩니다. 그 사실은 절대로 변함이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고,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으로부터 넘치도록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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