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회 높이시는 하나님
2018년 11월 4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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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4장 7절~11절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높이시는 하나님” 高くされる神様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말씀, 여러분, 어떠십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면 좀 어떠세요? 아멘, 할렐루야가 절로 나오세요?

자, 그럼 다른 말씀을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39절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悪い者に手向かっ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の右の頬を打つ者には左の頬も向けなさい。

이 말씀을 들으시면 어떻습니까. 할렐루야가 절로 나옵니까. 감사가 넘칩니까.

믿음이 좋으신 분들은 분명 그러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여러분 자녀나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누가 너의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도 돌려 대면서 패라고 해라……” 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솔직히 그렇게 말하기가 쉽습니까. 아니, 나 자신이 그렇게 살아가기도 힘든데, 다른 사람, 그것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한테 그렇게 살라고 해요. 솔직히 이건 참 어려운 문제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더러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나요? 아니요.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사랑하세요? 예, 우리를 위해서, 너무나도 죄가 많은 우리를 대신해서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려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씻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왜 우리더러 그렇게 어렵게 살라고 하셨을까요.

이 사실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아니, 도대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면서 왜 맨날 당하고 살라고 하실까.

그럼 이 말을 들은 어떤 믿음 좋으신 분은 말씀하시겠지요. 아니야. 그렇게 살아야 복 받아. 그렇게 살아야지 천국 간다니까……

정말 그런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그렇게 맨날 당하고 살아야 합니까. 맨날 그렇게 살다가 홧병에 앓아 누우면 책임져 주신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맨날 그렇게 손해만 보면서 살아야 복 받는다는 건가요?

그리고 또 오늘 말씀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데, 이왕 말씀을 하실 거면 천국이나 구원이나 죄 사하심 같은, 좀 멋있고 거창한 말씀을 해주셔야 하지 않나요? 기껏 하신다는 말씀이 앉는 자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까. 이거 너무 잔소리가 좀 심한 것 같지 않으세요? ㅎㅎ 여러분은 은혜롭게 모두 알아들으시는데, 저만 좀 삐딱하게 해석하는 건가요? 어쩌면 이렇게 이해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아, 예수 믿기 정말 힘들다……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처럼 우리더러 당하고 살라고, 손해보고 살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이렇게 앉는 자리 같은 사소한 말씀까지도 예수님께서는 하신 것일까요.


오늘은 이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고, 여기에 담긴 예수님의 마음을 올바로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넘치는 은혜를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우리더러 무리한 일, 이유 없는 일을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믿는 일은 축복된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다른 선택지가 없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당하고만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논리는 앞뒤가 안 맞는 것처럼 들입니다만, 아닙니다. 대단히 논리정연한 말씀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이에요. 나랑 별로 친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와서 굽실거립니다. 아주 친한 것처럼 반갑게 웃으면서 악수를 청해요. 이유가 뭐예요? 왜 그럴까요?

예, 그렇습니다. 바로, 선거철입니다. 이 사람 입후보한 사람이에요. 국회의원, 시의원, 시장 구청장, 그리고 대통령 등에 출마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얼릉 다가가서 인사하고 악수하고 그럽니다. 그 사람은 자존심이 없어요? 손해보고 살려고 하는 거예요?

아닙니다. 거기서 그렇게 자존심을 굽히고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보이고 그러면 훨씬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 머리 속에는 정확한 계산이 있기 때문인 것이에요. 그 증거로 선거철인데, 자신의 지역구를 벗어나서 인사하거나 악수하는 것을 보셨나요? 예를 들어서 서울시장으로 출마했는데 경기도나 충청도 가서 막 인사하고 악수하고 그래요? 아니요. 그건 이상한 사람이죠.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이 굽실거리는 대상은 분명합니다. 누구한테 굽실거려요? 예, 바로 유권자, 자신한테 표를 찍어줄 사람들한테만 굽실거립니다.

어디 굽실거릴 뿐인가요? 만약에 그 사람이 길가에 서서 유세를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그 사람한테 다가가서 싫은 소리를 했어요. 당신은 말이야, 이게 이래서 나쁘고, 저게 저래서 잘못했어! 라고 길가에서 따졌다고 칩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뭐가 어째고 어째? 이게 지금 누구한테 큰 소리야? 나 몰라? 나 국회의원 될 사람이야. 아니면 나 시장 될 사람이야. 아니면, 나 대통령 될 사람인데 날 어떻게 보고 이런 무례한 소리를 해! 이렇게 따져야 되겠습니까? 안 되요? 왜요? 사람들한테는 친절하게 해야 하니까요?ㅎㅎ

물론 그렇기도 하겠습니다만, 그러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 만약에 그랬다가는 선거에 떨어지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 때까지 아무리 착하고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왔으면 뭘 합니까. 그 사람이 많이 배웠으면 뭘합니까. 모든 것이 그 순간에 날라가 버리는 것입니다.

실제 선거를 보면 어떻습니까. 싫은 소리만 해요? 경우에 따라서는 계란을 던지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주먹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보들은 어떻게 해요? 당장 다가가서 멱살을 잡고 혼내주나요? 아니요. 묵묵히 그것을 맞습니다. 때리면 맞고 계란을 던지면 그것도 맞습니다. 이유가 뭐라고요? 예, 당선되기 위해서, 그 순간을 견디면 자신이 더 큰 영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순간, 많은 유권자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묵묵히 참고 견디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른뺨을 때리면 왼쪽뺨을 대래요. 이게 쉬운 일인가요? 아니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는 지혜로운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이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이 순간을 누가 보고 계세요? 예, 영적인 유권자. 나를 당선 시킬 수도 있고 낙선 시킬 수도 있는 분, 나를 높이실 수도 있고, 낮추실 수도 있는 분, 나에게 축복을 주실 수도 있고, 축복을 빼앗아가실 수도 있는 분, 바로 주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이제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내가 뺨 두 대 맞고 엄청난 축복을 받을 수 있다면 그깟 뺨이 문제겠습니까. 차라리 맞고 말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축복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는 제 상상이 아닙니다.

그 축복이 어느 정도의 축복일까요. 마태복음 13장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天の御国は畑に隠された宝のようなものです。その宝を見つけた人は、それをそのまま隠しておきます。そして喜 びのあまり、行って、持っている物すべてを売り払い、その畑を買います。

이 말씀에 의하면 밭에 감추어진 보화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이 보화를 발견하고 어떻게 했냐 하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보화의 가치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서 사도 기쁠 정도의 보화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은 비단 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이나 경험이나 명예나 자존심이나 그 모든 것을 다 쏟아 붓고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남는 장사이기 때문에 이 밭을 사고도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이요 그것이 바로 축복인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좀 더 거창한 주제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왜 하필이면 무슨 앉는 자리 같은 사소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 특히 복음서를 읽을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께서는 그저 지나가는 말로 아무런 의미 없이 하신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10년이고 20년이고 말씀하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1시간 1분 1초, 십자가로 향해야 하는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와 같이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하시듯 한마디 한 마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앉는 자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낮은 자리에 앉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대우해 주기를 원합니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생각해주기를 원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권력입니다.

저는 얻어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권력이라고 하는 것을 얻으면 그렇게 달콤하다고 합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설설 깁니다. 모두가 내 말에 복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눈치를 살피고, 내 안색을 살핍니다. 어떻게든 내 마음에 들려고 사람들이 애를 씁니다. 누구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아부를 하면, 그걸 당하는 사람도 바보가 아닌데, 눈치를 챈다는 것입니다. 아, 저 사람이 나한테 아부를 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죠.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 것이니 참 묘합니다.

우리도 앉는 자리는 중요하지요. 벌써 앉아 있는 것만 보더라도 누가 높은 사람인지 낮은 사람인지 압니다. 그래서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은 요즘도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람한테서 받는 상은 작고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상이 진정으로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살짝 방심만 해도 이를 잊고 맙니다. 무엇보다 저부터도 그래요.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교회 주변에 전도지를 들고 돕니다만, 어느 순간 저 자신한테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 주변에 보면 크고 좋은 집도 많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좀 낡고 비좁은 집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집에 제가 전도지를 넣으려고 우체통을 찾는데, 저 자신이 주저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유가 뭐겠어요. 우리 교회 사정도 어려운데, 생활이 어려운 분이 교회에 오시면 우리가 감당할 수가 있을까……뭐 이런 생각을 제가 하면서 전도지를 넣고 올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사라고 하는 인간이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입니까.

내가 지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공손히 전도지를 우체통에 넣고 나왔습니다.

아무리 교회 사정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럼 크고 좋은 집에만 전도지를 돌리고, 가난하고 어려운 집에는 전도지를 안 돌려요? 그건 무슨 짓입니까. 그건 마치 축복은 사람이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하는 것이지요. 아, 저 큰 집에 살고 좋은 차를 모는 사람이 우리 교회에 나와서 헌금도 많이 내고 그러면 참 좋겠다……아휴, 괜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와서 헌금도 못 내고 속이나 썩이고 그러면 어떡하지……

만약에 목사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하면, 그렇다면 목사는 그만해야겠죠. 사실 이것은 목사만이 아닙니다. 여러분, 회사원을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상품을 거래처에 판매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회사에서 주는 월급이 적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고객한테 판 돈을 내 주머니에 넣어요? 안 됩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횡령이죠. 범죄입니다. 내 경제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고객이 나한테 주는 돈은 내 돈이 아니에요. 그것은 회사 돈입니다. 회사에서 주는 돈, 사장님이 주는 월급이 내 정당한 수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라면서 돈 많은 사람만 쫓아다니고 돈 좀 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횡령하려고 작정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이건 목사만 해당된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사실 이른바 “주의 종”이라고 하면 목사만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목사가 아닌 성도님들은 무엇입니까. 목사 만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주의 종이라고 하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주의 종이라고 하는 사명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나한테 축복을 갚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오늘 말씀 다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4장 12절~14절

“12.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イエスはまた、ご自分を招いてくれた人にも、こう話された。「昼食や晩餐をふるまうのなら、友人、兄弟、親族、近所 の金持ちなどを呼んではいけません。彼らがあなたを招いて、お返しをすることが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す。
食事のふるまいをするときには、貧しい人たち、からだの不自由な人たち、足の不自由な人たち、目の見えない人たちを招きなさい。
その人たちはお返しができないので、あなたは幸いです。あなたは、義人の復活のときに、お返しを受けるのです。」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 사람이 나한테 은혜를 갚을까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운 이유가 뭐예요? 내가 그 사람한테 은혜를 받으면 그건 지극히 작은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고, 이를 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안 되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잘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더러 안 좋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우리더러 큰 축복을 받으라고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11절을 보십시오. 누가복음 14장 11절입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なぜなら、だれでも自分を高くする者は低くされ、自分を低くする者は高くされるからです。」

이 말씀 안에 주님의 사랑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낮아지기를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높아지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힘과 능력으로 힘껏 높이 뛰어 올라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주님이 높여주십니다.

사무엘상 2장 7절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第一サムエル記 2章7節
主は貧しくし、また富ませ、低くし、また高くします。

이사야 52장 13절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見よ、わたしのしもべは栄える。彼は高められて上げられ、きわめて高くなる。

하나님은 우리가 낮은 곳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높아지기를 원하십니다. 높이 들리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앞서 말씀 드렸던 선거철의 후보들로부터 배우십시다. 그들의 지혜를 믿음 안에서 활용해봅시다. 선거 때를 보면 그 후보가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유권자가 표를 넣어주지 않으면 절대로 당선될 수 없습니다.


믿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나 스스로 나를 높이려 해도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꼼짝 못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작정하시고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ピリピ人への手紙 4章13節
私を強くしてくださる方によって、私はどんなことでもできるのです。

사무엘하 22장 49절
“나를 원수들에게서 이끌어 내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높이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

第二サムエル記 22章49節
神は、敵から私を携え出される方。あなたは、向かい立つ者から私を引き上げ、不法を行う者から私を救い出してくださいます。

시편 103편 5절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あなたの一生を良いもので満ち足らせる。あなたの若さは鷲のように新しくなる。

우리가 높아지려고 스스로 아등바등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높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주님께 순종하고 살아갈 때 주님으로부터 높임을 받고 독수리 같이 새롭게 날아오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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