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회 함께 하시는 하나님
2019년 1월 1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함께 하시는 하나님” 共におられる神様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의 기록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それゆえ、主は自ら、あなたがたに一つのしるしを与えられる。見よ、処女が身ごもっている。そして男の子を産み、その名をインマヌエルと呼ぶ。

라고 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요셉과 마리아는 약혼한 상태였습니다. 약혼이라고 하면 요즘은 결혼하기 전에 하는 단순한 약속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습니다만, 당시 이스라엘에서의 약혼은 단지 동거를 하지 않을 뿐이지 법적으로는 결혼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약혼관계를 해지하는 것, 즉 파혼을 한다는 것은, 지금으로 본다면 이혼이나 마찬가지이며 간음으로 인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큰일이 났습니다. 아직 동거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는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아직 함께 살고 있지 않은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본다면 결혼을 약속한 요셉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라는 말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과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대단히 무서운 율법을 주셨습니다.

신명기 22장 23절~24절
“23.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24.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ある男と婚約中の処女の娘がいて、ほかの男が町で彼女を見かけて一緒に寝た場合、
あなたがたはその二人をその町の門のところに連れ出し、石を投げて殺さなければならない。その女は町の中にいながら叫ばなかったからであり、その男は隣人 の妻を辱めたからである。こうして、あなたがたの中からその悪い者を除き去りなさい。

즉, 율법대로라고 한다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관계를 끊으려고 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이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결혼을 하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장 20절~23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彼がこのことを思い巡らしていたところ、見よ、主の使いが夢に現れて言った。「ダビデの子ヨセフよ、恐れずにマリアをあなたの妻として迎えなさい。その胎に宿 っている子は聖霊によるのです。
マリアは男の子を産みます。その名をイエスとつけなさい。この方がご自分の民をその罪からお救いになるのです。」
このすべての出来事は、主が預言者を通して語られたことが成就するためであった。
「見よ、処女が身ごもっている。そして男の子を産む。その名はインマヌエルと呼ばれる。」それは、訳すと「神が私たちとともにおられる」という意味である。

이에 따라 요셉은 마리아와 예정대로 결혼을 하게 된 것이지요.

저는 예전에 성경을 읽을 때 이 부분이 좀 마음에 걸렸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유대인이라고 한다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예언은 모두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메시아의 탄생을 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라고 하셨지만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지요.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부분 때문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제가 생각하기를 애초에 이사야 서에서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가 아니라 “예수라 하리라”라고 되어 있었다면 사람들이 좀 알기 쉽지 않았을까 했던 것이지요.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이름이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말한 것을 어떤 사람이 말했다고 하면, 잘못 해석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오늘 복음서에 보니 하나님의 사자가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의심할 수가 없겠지요. 이사야서에 기록된 임마누엘은 틀림없이 예수님을 뜻합니다.

하지만 메시야 탄생을 예언한 구약성경에는 메시야의 이름이 “예수”다 라고 하는 구절이 어디에도 없거든요. 예언서에 보면 메시야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예언되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예수”라는 이름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헷갈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그렇다면 성경이 좀 잘못 적혀 있는 건가요? 하나님의 문장 실력이 우리보다 좀 못해서 그러셨을까요? ㅎㅎ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임마누엘 메시야가 오신다는 예언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구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예수라 하리라”라고까지 기록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이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름이 “예수”라고 하면서, 자기가 메시야라고 하면서 백성들을 현혹했겠습니까.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까 자기가 재림예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5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무려 20여명이래요. 이 숫자가 전세계적인 것일까요? 아니요. 한국에서만 이렇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내가 하나님 부인이다, 내가 보혜사 성령이다(助け主の精霊). 내가 엘리야나 다윗이다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이건 뭐 난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도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어쩌면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주님의 이름을 마지막까지 숨겨놓으셨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라는 이름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임마누엘>은 그럼 또 무엇일까요. 사실 이 <임마누엘>에는 그 뜻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뜻이 바로 예수님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임마누엘>은 히브리어인데 <임>은 ~과 함께, 영어로 with이고, <마누>는 <우리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엘>은 하나님을 가리키죠. 그러니까 오늘 말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아담과 하와 때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단히 가깝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만, 사람이 죄악으로 타락한 후에, 하나님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예언자나 선지자에 국한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신 후에 어떻게 변했습니까.


여기서 한 번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
“7.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しかし、わたしは真実を言います。わたしが去って行くことは、あなたがたの益 になるのです。去って行かなければ、あなたがたのところに助け主はおいでになりません。でも、行けば、わたしはあなたがたのところに助け主を遣わします。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제자들은 아마도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에 하늘에 올라가신 다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 2장 1절~4절
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五旬節の日になって、皆が同じ場所に集まっていた。
すると天から突然、激しい風が吹いて来たような響きが起こり、彼らが座っていた家全体に響き渡った。
また、炎のような舌が分かれて現れ、一人ひとりの上にとどまった。
すると皆が聖霊に満たされ、御霊が語らせるままに、他国のいろいろなことばで話し始めた。


많은 이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는 가운데 홀연히 하늘로부터 성령이 내려와서 각 사람에게 임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과거에는 하나님 근처에도 갈 수 없었던 우리였습니다만, 이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친히 하나님께서 와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해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제 집 사람이 체류비자를 받기 전에는 무비자로 입국을 했습니다. 한국여권을 가지고 있으면 90일 동안은 비자를 받지 않아도 체류할 수가 있지요. 하지만 그 체류자격은 기본적으로 관광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일을 할 수도 없고, 학교에 다닐 수도 없습니다. 재류카드를 만들 수도 없고 면허증도 딸 수 없으며, 그 흔한 휴대폰도 계약할 수가 없지요.

첫 번째 90일이 다 하고 난 다음에 한 번 귀국을 했습니다만, 몇 주 후에 다시 들어오려고 하니까 일본 공항에서 어딘가로 끌려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지금 비자를 신청중이라고 하니까 신청한 비자가 안 나오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몇 번이나 못을 박았다고 합니다. 참 까다롭게 굴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얼마 전에 입국관리국에서 재류자격인정증명서……라고 하는 요만한 작은 종이 한 장이 도착했습니다. 말하자면 정식 비자가 나온 것이지요. 이 작은 종이 하나에 어떤 힘이 있었냐 하면, 이걸 일본 대사관에 가져갔더니 바로 다음 날 비자를 여권에 찍어줍니다. 일본 공항에 도착해서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거기 왔다 갔다 하는 담당 직원이 그 종이를 보고는, 아, 재류카드를 만들어야 하는군요……라고 하면서 다른 방으로 데려가서 재류카드를 뚝딱 만들어주고는 남들보다도 일찍 심사를 마치고 입국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시청에 갔더니 주민등록도 되고 의료보험도 됩니다. 이제 다음 달이면 운전면허도 얻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참 그 작은 종이 한 장의 위력이 대단해요. 저도 예전에 똑같이 했었기 때문에 새로울 것도 없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토록 오래 기다렸던 터라 참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어떤 분의 말씀에 의하면 잠이 안 올 때 읽으면 정말로 효과적이라고 하는 레위기. 그 1장 1절부터 보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방법이 적혀 있는데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지 모릅니다. 짐승일 경우에는 어떻게 하고 새일 경우에는 어떻게 하고, 또 곡물일 경우에는 어떻게 하고……라는 규정이 대단히 까다롭게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다가 잘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그 단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몰라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아주 짧은 길이의 이름을 주셨어요.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라는 짧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 예수라는 이름의 힘이 어떻습니까.

사도행전 4장 11절~12절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あなたがた家を建てる者たちに捨てられた石、それが要の石となった』というのは、この方のことです。
この方以外には、だれによっても救いはありません。天の下でこの御名のほかに、私たちが救われるべき名は人間に与えられていないからです。」


우리는 이 짧은 이름,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14절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またわたしは、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求めることは、何でもそれをしてあげます。父が子によって栄光をお受けになるためです。
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何かをわたしに求めるなら、わたしがそれをしてあげます。

요한복음 16장 23절~24절
“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その日には、あなたがたはわたしに何も尋ねません。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わたしの名によって父に求めるものは何でも、父はあなたがたに与えてくださいます。
今まで、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名によって何も求めたことがありません。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受けます。あなたがたの喜 びが満ちあふれ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이제 양이나 소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복잡한 자격이나 절차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그 짧은 이름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면 모든 일들이 가능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모든 기도가 응답 받을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 예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라고요? 그렇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까. 그 이유는 간단하지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채찍에 맞아주시고, 우리를 위해 가시관을 써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주시고,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주시고, 우리를 위해 죽어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셔서 우리를 위해 하늘로 올라가주신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1서 4장 19절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第一ヨハネの手紙
私たちは愛しています。神がまず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한국이나 일본을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토정비결을 보고 일본에서는 오미쿠지를 뽑습니다. 그것도 꽤 비싸지요.


여러분께서도 새해를 맞이해서 2019년이 궁금하십니까? 올 한 해가 여러분에게 있어서 어떻게 되실지 궁금하십니까? 좋습니다. 제가 봐드리겠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올 한 해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축복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안 하시면 멸망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시련처럼 보여도 그것은 축복으로 가는 길이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축복처럼 보이는 길도 시련이요 멸망으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멀리까지 가서 우상들한테 절을 할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비싼 돈 내고 토정비결이다 오미쿠지다 하는 것을 뽑을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안 하시면 멸망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진정하고도 영원한 진리인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은 명령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 무서운 하나님이셨다고 한다면, 신약에서의 하나님,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지금 이 시대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언제나 만날 수 있는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제 한 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도 수많은 기쁨과 웃음과 즐거움과 반가움이 있겠지만, 때로는 슬픔과 눈물과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神を愛する人たち、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したがって召された人たちのためには、すべてのことがともに働いて益とな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아무리 슬픔과 눈물과 어려운 일이 닥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에게는 이 모든 일에 결국은 마침내 큰 축복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30배 60배 100배의 놀라운 축복, 누르고 흔들어 넘치는 축복을 모두 받은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162회 부족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

← 제160회 평강을 위하여

 

이카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