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회 칠천 명이 보입니다
2019년 5월 5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8절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칠천 명이 보입니다” 七千人が見えます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먼저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8절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しかし、わたしはイスラエルの中に七千人を残している。これらの者はみな、バアルに膝をかがめず、バアルに口づけしなかった者たちである。」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겨 두셨다고 하십니다만, 그 사람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입맞추지도 아니한 자라고 합니다. 이는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상에게 굴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처럼 많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엘리야가 하나님께 드린 말씀이 있습니다.

조금 앞에 있는 구절을 잠시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0절 말씀입니다.


열왕기상 19장 10절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エリヤは答えた。「私は万軍の神、主に熱心に仕えました。しかし、イスラエルの子らはあなたとの契約を捨て、あなたの祭壇を壊 し、あなたの預言者たちを剣で殺しました。ただ私だけが残りましたが、彼らは私のいのちを取ろうと狙っています。」

뒤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칠천 명이 남아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앞에서 엘리야는 칠천 명이 아니라 오직 자기만이 남았다고 했습니다. 이를 풀어보면 엘리야한테는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신 칠천 명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여러분,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열왕기상 17장 1절~7절을 보면, 수년 간의 걸친 가뭄을 예언하고, 8절 이후에 보면 사르밧 과부(ツァレファテのやもめ)한테 가서, 굶주림과 가난 때문에 죽으려고 하던 그녀를 위해 기름병을 가득 채우는 기적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22절에서는 질병으로 죽은 그 집 아들을 살리기도 하였으며, 당시 왕이 이세벨(イゼベル)의 사주로 온 나라로 하여금 바알을 숭배하도록 만든 이스라엘 아합(アハブ) 왕 앞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또한 18장에서는 갈멜산(カルメル山)에서 바알과 아세라(アシェラ) 선지자들 850명과 싸워서 대승을 거두었으며, 몇 년에 걸친 가뭄을 종식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엘리야의 기적은 한 둘이 아니지요. 나아가 열왕기하 2장에 의하면 엘리야는 이 땅에서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처럼 하늘로 올라간 사람은 예수님을 제외하면 창세기 5장 24절에 등장하는 에녹(エノク)과 엘리야 뿐입니다.

엘리야는 또한 신약에도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17장 1절~3절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それから六日目に、イエスはペテロとヤコブとその兄弟ヨハネだけを連れて、高い山に登られた。
すると、弟子たちの目の前でその御姿が変わった。顔は太陽のように輝き、衣は光のように白くなった。
そして、見よ、モーセとエリヤが彼らの前に現れて、イエスと語り合っていた。

이처럼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하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구약에 있어서 모세와 엘리야의 위치는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명사이자 엘리야는 선지자의 상징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선지자, 수많은 기적을 행했던 구약의 대표적인 예언자인 엘리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셨다고 하신 7천 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하나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열왕기상 19장 4절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自分は荒野に、一日の道のりを入って行った。彼は、エニシダの木の陰に座り、自分の死を願って言った。「主よ、もう十分です。私のいのちを取 ってください。私は父祖たちにまさっていませんから。」

이제 아합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데 자기는 이제 죽었으면 좋겠대요. 왜냐하면 갈멜산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왕비 이세벨(イゼベル)이 알아차리고는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 하나님의 능력자인 엘리야가 이처럼 순식간에 나약해졌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이를 두고 많은 분들은 엘리야의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우울증……. 저는 개인적으로 우울증이라기보다는 무기력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고, 갑자기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지고, 그저 이대로 쓰러지고 넘어지고 좌절할 것만 같은 상황입니다.

사실 엘리야한테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우리한테는 한편으로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도 그런 일 있잖아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도 저도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면서 드는 생각……. 아…… 내가 너무 믿음이 없어서 그런가, 너무 믿음이 약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어떻습니까. 그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이처럼 우울증 무기력증을 앓았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러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방안에서 걸어 다니다가, 어딘가에 새끼발가락을 세게 부딪혀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러면 그 순간 어때요? 이상하게 정말 순간적으로는 아프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요. 무엇을 알아요? 예, 이게 불과 몇 초 후면 어마어마하게 아파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상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있으면 정말 몇 초 후……어떻습니까. 아, 정말 상상만 해도 아파오지 않나요? 정말 어마어마하게 아프죠.

그렇다면요. 여러분.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처럼 걸어가다가 새끼발가락을 부딪힐까요? 좀 못 배운 분이요? 믿음이 약한 사람이요? 그러면 반대로 박사학위 받은 사람은 이런 경험이 없을까요? 믿음이 좋은 분은 새끼 발가락을 부딪친 적이 없어요? 아닙니다. 다 있어요. 그러면 이렇게 부딪혔을 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아파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서 새끼 발가락을 부딪쳤을 때에도 거룩하게 “주여……” 그럴 수 있나요? 아니에요. 똑같이 아픕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나 조금 배운 사람이나 믿음이 약한 사람이나 믿음이 좋은 사람이나 발가락을 부딪히면 똑같이 아파요. 정말 아야 아야 하면서 깡총깡총 뛸 정도로 아픕니다. 사실 또한 그렇게 아야 아야 하면서 아파해야 그나마 조금 덜 아픈 것 같이 느껴집니다.

다른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여러분 소면 드실 때 츠유 안에 와사비를 넣어서 드시잖아요? 그런데 그걸 이렇게 젓가락으로 잘 저어서 완전히 녹인 다음에 드셔야 하는데, 사실 츠유 자체가 차갑기 때문에 잘 녹지 않아요. 그럴 때 어떤 경험이 있으세요? 예, 어? 좀 싱거운데? 라고 하면서 좀 와사비를 더 넣었는데, 아이구, 제대로 녹지 않은 와사비 덩어리가 입에 들어오면 어떻게 됩니까. 난리 나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럼 이럴 때 많이 배운 사람이나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아…… 주여…… 라고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요? ㅎㅎ당해본 사람은 알아요. 아이구, 어떻게 그걸 그냥 참아요. 정말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들기까지 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 두 경우를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내가 방에 있을 때, 있는 힘을 다 해서 발가락을 부딪혔어요. 아니면 소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와사비 덩어리가 입에 들어왔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많이 배웠으니까, 교양이 있으니까, 믿음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아니요. 똑같아요. 역시 아프고 괴롭습니다.

좀 안타까운 말씀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이 경우에는 답이 없습니다. 아, 물론 너무 세게 부딪혀서 새끼발가락이 부러졌다거나 하면 그야 당연히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겠습니다만, 대부분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리고 만약에 김치 같은 매운 것을 먹었을 때에는 물을 마시거나 하면, 조금은 그 매운 것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있습니다만, 이 와사비를 먹었을 때 매운 것은 정말 답이 없어요.

그러면 이 두 경우, 가장 현명한 대처방법은 무엇입니까. 예. 꾸욱 참는 것입니다. 그냥 발가락의 아픔이 지나갈 때까지 꾸욱 참아야지요. 와사비의 그 매운 맛이 지나갈 때까지 꾸욱 참는 것뿐입니다. 아이구 아파 아이구 아파…… 해도 괜찮습니다. 아휴 매워 아휴 매워 하면서 눈물을 좀 흘려도 괜찮습니다. 만약에 똑 같은 경우를 당했다고 한다면 분명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도 아파했을 것이요, 와사비를 먹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매워했을 것입니다.

그럼 주위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끔 사람은 위로를 한답시고 사람한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 너 그렇게 맨날 왔다 갔다 하니까 언제 한 번 발가락을 부딪칠 줄 알았어…… 그래, 어쩐지 너 아까 보니까 와사비를 많이 넣더라…… 그걸 봤을 때 그렇게 매워할 줄 알았어……

이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말은 위로가 아니지요. 사실 이건 조금 다른 말이지만,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 사모님이 목사님한테 가끔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경우가 있대요.

오늘 설교가 이게 이렇게 안 좋았고 저게 저렇게 안 좋았고 하면서, 마지막에 꼭 붙이는 말이 있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나니까 당신한테 이런 말을 해주지 누가 이런 말을 해주겠어요.” 라는 말씀, 아마 목사님이시라면 사모님이나 가족 분들이 이렇게 하시는 말씀을 몇 번 정도는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이것은 말씀하시는 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상처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 참고로 저희 집사람은 저한테 이런 말은 안 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ㅎㅎ

그럼 이웃이 새끼 발가락을 부딪혔을 때, 와사비 덩어리를 먹었을 때, 이럴 때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아이구, 이걸 어쩌면 좋아. 괜찮아. 그래 조금만 참아. 나도 당해봐서 아는데 지금은 무척 아프고 무척 맵지만, 조금만 기다려봐. 그럼 금방 나아질 거야…… 이렇게 위로해주는 것, 이것이 최선이고 이것이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어떻게 하셨습니까. 야, 엘리야. 니가 지금 뭐하는 거야? 그래 너 내가 준 능력으로 이런 저런 기적을 일으키고 그럴 때 보면, 아하, 너 언젠가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에 걸려서 날 좀 죽여주쇼 할 줄 알았어. 거봐. 내 생각대로잖아? 하나님이 이러셨나요? 아니요. 그러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19장 5절~7절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彼がエニシダの木の下で横になって眠っていると、見よ、一人の御使いが彼に触れ、「起きて食べなさい」と言った。
彼が見ると、見よ、彼の頭のところに、焼け石で焼いたパン菓子一つと、水の入った壺があった。彼はそれを食べて飲み、再び横になった。
主の使いがもう一度戻って来て彼に触れ、「起きて食べなさい。旅の道のりはまだ長いのだから」と言った。

참 얼마나 자비로운 하나님이신지 모릅니다. 천하의 대선지자 엘리야가 나무 아래 쪼그리고 자고 있으니까 천사가 그에게 와서 발길로 걷어차는 게 아니에요. 어루만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얘야, 일어나. 어서 이거 먹어. 그리고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주시더래요. 그러니까 그걸 받아먹고 또 잤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또 시계를 보고, 얘가 또 배가 고플 시간이 됐구나 하고, 또 오셔서는, 어루만지면서 먹을 것을 주면서, 자, 이걸 먹고 어서 기운을 차려…… 네가 해야 할 길이 남았잖니…… 괜찮으니까 자, 어서 먹고 힘을 내보자…… 이렇게 다정하게 말씀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달리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러니까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이지요.


세상에서도 보면 상담자가 상담할 때, 부족한 상담자는 상대방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라고 한답니다. 반면에 능숙한 상담자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실의에 빠진 사람한테,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을 해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말을 한 사람은 이 말 한마디에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기력증에 빠지고 우울증에 빠질 때? 믿음이 좋은 사람은, 많이 배운 사람은 그런 일이 없어요? 아니에요. 내가 모자라서가 아니에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도 다 똑같이 그런 일을 겪습니다. 엘리야도 나 하나인줄 알았습니다. 다 죽고 나 혼자만 남아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했어요? 예, 잠시 쉬었습니다. 잘 먹고 잘 지는 것이 최고입니다. 이게 바로 성경적인 치료 방법이에요. 그렇잖아요? 엘리야도 겪었던 일입니다. 괜찮습니다. 조금 있으면 지나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저 누워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체력이 떨어져가지요.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을 간단히 세 가지로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식물을 예로 들어보면 알기 쉽습니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첫째로 태양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회복시켜주시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치유해주시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일으켜주신다는 믿음,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시작이요 믿음의 끝인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信仰の創始者であり完成者であるイエスから、目を離さないでいなさい。この方は、ご自分の前に置かれた喜びのために、辱めをものともせずに十字架を忍び、神の 御座の右に着座されたのです。

우리를 온전하게 해주시는 주님, 우리를 회복시켜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쁠 때라도 슬플 때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최선이자 유일한 해답이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영양분을 흡수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흡수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을 흡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없이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은 학생이 수업에 들어가서 귀를 막고 선생님 얼굴만 쳐다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한테 주목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집중력을 키우게 해줍니다. 그런데 중요한 선생님 말씀을 못 들어요. 그렇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경 말씀, 하나님 말씀을 꾸준히 흡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제 식물은 광합성을 합니다. 태양으로부터 얻은 힘과 뿌리로부터 빨아올린 영양분을 바탕으로 하여 광합성을 일으킵니다. 그래야지만 자신의 에너지가 되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렬한 태양과 풍부한 영양분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에너지로 만들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급요리, 아무리 좋은 약을 먹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몸 안에서 소화되고 실질적으로 에너지로 변환하지 못한다면 이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냥 돌덩이나 삼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행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17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私の兄弟たち。だれかが自分には信仰があると言っても、その人に行いがないなら、何の役に立 つでしょうか。そのような信仰がその人を救う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
兄弟か姉妹に着る物がなく、毎日の食べ物にも事欠いているようなときに、
あなたがたのうちのだれかが、その人たちに、「安心して行きなさい。温まりなさい。満腹になるまで食べなさい」と言っても、からだに必要な物を与えなければ、何の役に 立つでしょう。
同じように、信仰も行いが伴わないなら、それだけでは死んだものです。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흡수해서 이를 우리의 에너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행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을 흡수합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눕니다. 성경을 읽음으로써 은혜를 받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행함이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성경 말씀을 본다면서 꼬박꼬박 교회에 나간다면서, 십일조 감사헌금 바친다면서, 바깥에서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야박하고 더 배려심도 관용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곧 죽은 믿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말씀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행함 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뭉쳐졌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 전까지는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행함을 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7천 명이 보이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물리칠 수 있는 강한 믿음의 군대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힘드십니까. 외로우십니까.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부족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도 그랬다는데 어찌 여러분을 탓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우울증, 무기력증은 물리칠 수 있습니다. 믿음과 말씀과 행함으로 인하여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조금만 인내하면 모든 것이 지나갑니다.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스타나 연예인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한국이나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단한 선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사람들 보면 방탄소년단은 2013년에 데뷔했고 트와이스가 데뷔한 것이 2015년이더라구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5~6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52장 13절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見よ、わたしのしもべは栄える。彼は高められて上げられ、きわめて高くなる。

2~3년 뒤, 5~6년 뒤, 또는 7~8년 뒤, 세상 사람들은 새롭게 떠오르는 믿음의 용사, 하나님의 능력으로 떠오르는 믿음의 사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우리,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흡수하여 이를 행함으로써 주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 넘치는 축복을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180회 일어나세요 →

← 제178회 새로운 시대의 시작

 

이카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