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9회 주님의 뜻대로
2019년 7월 14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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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8절~31절
“28.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マタイの福音書 21章28節~31節
“ところで、あなたがたは、どう思いますか。ある人にふたりの息子がいた。その人は兄のところに来て、『きょう、ぶどう園に行って働いてくれ』と言った。
兄は答えて『行きます。お父さん』と言ったが、行かなかった。
それから、弟のところに来て、同じように言った。ところが、弟は答えて『行きたくありません』と言ったが、あとから悪かったと思って出かけて行った。
ふたりのうちどちらが、父の願ったとおりにしたのでしょう。」彼らは言った。「あとの者です。」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告げます。 取税人や遊女たちのほうが、あなたがたより先に神の国に入っているのです。”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님의 뜻대로” 主の願ったとおりに 라고 하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역시 마태복음 21장 28절~3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지난 주 말씀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뉘우침>이란 후회와 회개가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우리 과거에 부끄러운 일, 후회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멈춰서는 게 아니라 회개하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언제나 받아주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또 다른 각도로 이 말씀을 우리가 받음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 중에서도 특히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예수님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행적의 중심은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한 기록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서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하는 점만이 아니라, 그 말씀이 누구를 향해서 하신 말씀인가 하는 것도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에 보다 대단히 큰 근거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은 누구를 향해서 하신 말씀인가요.

마태복음 21장 23절 중반까지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それからイエスが宮に入って教えておられると、祭司長たちや民の長老たちがイエスのもとに来て言った。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당시 성전에 있었던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하신 말씀의 결론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오늘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31절 후반 부분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取税人たちや遊女たちが、あなたがたより先に神の国に入ります。

이게 참 놀라운 결론입니다.

당시에는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고 율법을 어기면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대제사장이나 장로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학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스스로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믿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율법을 지도하는 위치, 이른바 기득권 세력들,(既得権益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세리나 창녀들은 어땠을까요. 그들은 율법에서 제일 먼 존재, 구원에서 제일 먼 곳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 나라에는 가장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지킨다고 하는 그들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에서 가장 먼 존재, 구원에서 제일 먼 존재인 세리나 창녀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을까요.

먼저 오늘 본문 말씀들, 지난 주에도 살펴보았으니까 여러분께서는 모두 잘 기억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그래도 또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 번 간략하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에는 두 아들이 나오지요. 맏아들과 둘째 아들입니다.

맏아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아버지가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했더니, 대답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가지 않았지요.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대답은 순종, 행동은 불순종. 이것이 맏아들이었습니다.

반면 둘째 아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했더니, 대답은 싫소이다. 안 가겠다 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갔지요. 왜 갔느냐 하면, 예, 뉘우쳤기 때문에, 자기 잘못을 후회하고 회개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을 따라서 포도원에 간 것입니다. 역시 이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둘째 아들의 경우를 보면 대답은 불순종, 그러나 회개한 후 그의 행동은 순종……. 이것이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맏아들은 말로만 순종, 행동은 불순종

둘째 아들은 말로는 불순종, 그러나 행동은 뉘우치고 순종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던지셨지요. 31절 전반부입니다.

마태복음 21장 31절 전반부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二人のうちのどちらが父の願ったとおりにしたでしょうか。」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했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는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 등장합니다. 이 말씀을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말하자면 종교적 지도자들, 기득권자들에게 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세리들과 창녀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맏아들을 종교적 지도자들, 그리고 둘째 아들을 세리와 창녀들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당시에 종교적 지도자들, 기득권자들은 어땠습니까. 정말로 믿음이 좋았나요? 당시 그들에게는 문제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는 제 추측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가장 많이 꾸짖은 사람들이 바로 이 당시 종교지도자들, 기득권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목에 힘을 주고 다녔습니다. 거리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 모인 곳에서 대우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남들이 들으라고 큰 소리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마태복음 23장 3절~7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ですから、彼らがあなたがたに言うことはすべて実行し、守りなさい。しかし、彼らの行いをまねてはいけません。彼らは言うだけで実行しないからです。
また彼らは、重くて負いきれない荷を束ねて人々の肩に載せるが、それを動かすのに自分は指一本貸そうともしません。
彼らがしている行いはすべて人に見せるためです。彼らは聖句を入れる小箱を大きくしたり、衣の房を長くしたりするのです。
宴会では上座を、会堂では上席を好み、
広場であいさつされること、人々から先生と呼ばれることが好きです。

마태복음 6장 5절
“5.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また、祈るとき偽善者たちのようであってはいけません。彼らは人々に見えるように、会堂や大通りの角に立 って祈るのが好きだからです。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彼らはすでに自分の報いを受けているのです。

겉으로는 믿음이 좋은 척, 겉으로는 깨끗한 척, 거룩한 척을 하는 그들을 예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그래서 마태복음 23장 27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わざわいだ、偽善の律法学者、パリサイ人。おまえたちは白く塗った墓のようなものだ。外側は美しく見えても、内側は死人の骨やあらゆる汚れでいっぱいだ。

아무리 시신을 묻어놓고 그 바깥을 하얗게 칠해서 깨끗하게 보이도록 해놓아도 그 속은 시체가 썩어가고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다고 하는데, 당시 종교지도자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이와 같은 모습이었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지만 세리들, 창녀들은 어떻습니까. 그렇다고 또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시 세리나 창녀가 모두 거룩하고 천국에 간다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너희들은 회개하지 않지만, 차라리 과거에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하물며 율법적으로나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모든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온다면, 즉, 처음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반항했었다 하더라도 나중에 뉘우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둘째 아들과 같은 그들이, 말로만 믿는 척, 겉으로만 순종하는 척만 하고 결국은 회개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 너희들 보다 천국에 먼저 들어가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좀 화제를 바꾸어볼까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혹시 구원의 확신에 대한 질문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무엇입니까. 나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 이 확신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확신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구원의 확신이 있으십니까? 지금 이 순간 죽더라도 나는 틀림없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예, 아멘.

이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일본에서 살다가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당시 대학부 예배에 처음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이제 처음 왔으니까 새신자 등록카드 같은 것을 쓰라고 했던 것 같아요.

거기에는 뭐 이름이나 주소 같은 것들을 적는 곳도 있었습니다만, 제 기억에 이런 것도 적혀 있더라구요?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예, 아니오.

그래요. 뭐 예전부터 교회에 다니고 있는 성도님들이라면 어느 정도 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전 좀 그 때 당황했습니다. 아니, 그게 새신자 등록카드잖아요? 저는 뭐 일본에서 신앙생활을 계속 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좀 당황스러운데 오늘 처음으로 교회에 나온 사람들한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그 때 처음 나온 분이 저만이 아니었는데, 역시 어떤 다른 분이 그 종이를 들고 질문을 하더라구요.

“이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는 지금 반드시 대답해야 하느냐”

그러니까 그 서류를 받으시는 분이 하시는 말씀이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대답을 해주셔야 합니다”라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들은 그 분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럼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ㅎㅎ
성경에 보면 구원의 확신이 강한 분들, 꽤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 구원의 확신이 강한 분일까요? 장담할 수 있습니다.

바로 당시 종교지도자들, 앞서 말씀 드린 대제사장이나 장로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학자들, 예수님께서 꾸짖으셨던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을 잠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0절~14절
“10.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二人の人が祈るために宮に上って行った。一人はパリサイ人で、もう一人は取税人であった。
パリサイ人は立って、心の中でこんな祈りをした。『神よ。私がほかの人たちのように、奪い取る者、不正な者、姦淫する者でないこと、あるいは、この取税人 のようでないことを感謝します。
私は週に二度断食し、自分が得ているすべてのものから、十分の一を献げております。』
一方、取税人は遠く離れて立ち、目を天に向けようともせず、自分の胸をたたいて言った。『神様、罪人の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
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が、義と認められて家に帰ったのは、あのパリサイ人ではなく、この人です。だれでも自分を高くする者は低くされ、自分を低くする者は高くされるのです。」

이 두 사람 중에서 구원의 확신이 누가 있겠습니까. 예, 바리새인입니다. 그는 분명히 구원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감사가 넘쳐납니다. 그러면서 세리를 보고는 경멸을 합니다. 아마도 그는 생각했겠지요. 나는 구원을 받았지만 저 세리는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쯧쯧쯧……

반면에 이 세리는 어떻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당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리, 어떻습니까. 성전 안으로도 제대로 못 들어왔습니다. 저기 멀리 서 있어요. 감히 하늘도 쳐다보지 못합니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교회 저기 바깥에 서서 십자가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주여…주여…제가 죄인입니다…불쌍히 여기소서……하고 눈물만 흘렸을 것입니다. 그에게 구원의 확신이요? 아니요. 없었어요.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이 죄 많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는 간절한 회개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를 물리치시고 이 세리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강한 구원의 확신을 가졌던 사람들,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 율법학자들, 그들이 했던 일들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자신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더니 마침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구원의 확신, 누가 가장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을까요. 분명합니다.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구원의 확신이요? 당연히 있겠지요. 내가 그렇게 문제를 일으키고 나쁜 일을 저질러도 나는 천국에 간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토록 당당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구원의 확신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진정한 구원의 확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주심으로 우리를 대속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확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 어쩌면 잘못하면, 믿음의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막무가내 식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 이는 마치 안전띠 하나 매고는, 이제 나는 괜찮다면서 속도 무시, 신호 무시, 다른 차량들 무시해가면서 운전하는 것, 그러면서 자기가 안전할 것이라고 바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실제로 이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고 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다치는 것도 시간 문제지요. 자기만 다치나요? 자칫하면 애꿎은 다른 사람한테까지도 피해를 입히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확신이 아닙니다. 무모한 확신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구원의 확신이 진정한 확신인지, 아니면 무모한 확신인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호세아 6장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ホセア書 6章 3節
私たちは知ろう。主を知ることを切に追い求めよう。主は暁のように確かに現れ、大雨のように私たちのところに来られる。地を潤す、後の雨のように。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을 알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알아야 하겠습니까.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예, 맞습니다.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는 다음과 갈이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からだを殺しても、たましいを殺せない者たちを恐れてはいけません。むしろ、たましいもからだもゲヘナで滅ぼすことができる方を恐れなさ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기도 하시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과 두려운 하나님이라는 이 두 사실이 모두 알아야지만 진정한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한 번 마음 속으로 한 사람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이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못 갈 것이다……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더도 말고 딱 한 사람만 떠올려 보십시오. 어떠세요? 생각 나셨나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사랑의 하나님과 두려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절대로 천국에 못 갈 것 같은 바로 그 사람이 우리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그 영광스러운 뒷모습을 우리는 멀리서 지켜보게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천국에 막 들어가려고 하는 그 사람을 뿌리치고 내가 먼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천국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기를 소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 16장 2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人には自分の行いがみな純粋に見える。しかし、主は人の霊の値打ちを量られる。

여러분,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의롭습니까? 우리가 우리 이웃보다 대단한가요? 설령 그렇게 생각된다 하더라도 오십보 백보, 아니요, 오십보 오십보입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나 자신이나 내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나 다 거기서 거기인 것입니다. 마지막 날 심판대 앞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내 과거에 대해서 하나하나 적힌 책이 읽혀진다면 그 앞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新しい戒めを与えます。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愛し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

서로 용서해주고 서로 사랑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 예수님의 뜻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하나님, 그리고 두려운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주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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