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회 거두기 위하여
2019년 11월 3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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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ガラテヤ人への手紙 6章 9節
“失望せずに善を行いましょう。あきらめずに続ければ、時が来て刈り取ることになります。”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거두기 위하여” 刈り取るために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를 보면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불평등>을 느낄 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습니까. 주변을 바라보면 삶이 평등하다고 생각되시나요?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아니, 사실은 자기보다도 잘 사는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사람들 사정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잘 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요.

한국에서는 흔히들 금수저, 흙수저 라는 말을 쓰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 시작부터 다르지 않습니까?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지,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경제 형편인지 알 수도 없지요.

누구는 큰 집도 몇 채나 가지고 있고, 돈도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나 하면, 누구는 좁은 사글세 집, 정말 매달 집세 내는 것도 버거운 집에서 태어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벌써 이처럼 시작부터 다른데, 어떻게 이 세상이 평등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갈은 상황을 두고,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은 젊은이들을 앞에서, 희망을 잃지 말라,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하고 강조를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극심한 불평등 앞에서도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이 말은 제게 있어서 의문에서 시작하여 의문으로 끝나는 말처럼 여겨집니다.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

꿈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젊은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일이라고 해두지요. 그러면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나요?

자, 정말 그런지 우리 한 번 생각해봅시다. 내가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냐 하면, 옛날에는 학력이 필요 없었습니다. 대학교를 굳이 나오지 않더라도 사법시험을 치를 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응시비용도 대단히 저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하면,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로스쿨,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해야 합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은 말 그대로 대학원과정이기 때문에 4년제 대학을 졸업했거나 이와 동등한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로스쿨에 들어가서 3년간의 과정을 마쳐야지만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집니다.

한국의 경우 4년제 대학등록금을 보면 1년에 대략 문과의 경우 700만원 정도 합니다. 그러면 4년 동안에 2,800만원이 들겠지요. 여기에 로스쿨 3년간의 등록금이 대략 6,000만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벌써 여기까지만 보면 등록금만 9,000만원이 드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는 그 동안의 생활비나 교재비가 아니라 순수 대학에 내는 등록금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금액으로 본다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하더군요.

자,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앞서 말씀 드렸던 3단계,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면, 길이 열린다……. 이게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 일인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꿈을 가져야겠지요? 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요즘은 학자금 시스템도 많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를 어느 정도 이용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제한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무사히 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변호사시험에도 한 번에 붙을 수 있었습니다.

학자금 덕분에 졸업도 하고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했습니다. 이제 빚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1억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자, 여기서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대형 로펌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럼 연봉 1억 이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고민은 해결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을 하니까 길이 열렸어요. 그렇죠?

하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습니다. 대학입시도 그렇고 로스쿨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해서 모두에게 동일한 결과가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대체적으로 보면 소수가 자신이 원하는 대학, 로스쿨에 들어가고 다수는 2지망, 3지망으로 하향조정을 하거나, 아니면 도중에 진로를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고 로스쿨을 나왔다 하더라도, 그리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하더라도 이른바 연봉 몇 억씩 되는 대형로펌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명문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시험성적도 좋아야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역시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변호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자금을 갚기 위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이건 상대적으로 그나마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도 의사가 되고 싶다거나 하면 대학교 등록금은 문과보다 2배 이상 들어갈 것이요, 그 문은 훨씬 더 좁아집니다. 아니면 대학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또한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자기 집안에서 하는 대학이 있다면 또 모를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돈 안 되는 시간 강사 몇 년 동안 한다 하더라도 교수로 임용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지요.


자, 이렇게 본다면 어떻습니까.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이 말이 아직도 희망적으로 들리시니나요? 누구는 꿈을 가지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더니 좋은 대학, 직장……이처럼 길이 열렸겠지요. 하지만 이는 극소수입니다. 대다수는 어떻습니까. 정말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을 해도 길이 안 열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젊은이를 두고 어른들은 뭐라고 합니까. 니가 열심히 노력을 안 했기 때문이다……여러분, 이 말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 줄 아십니까.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링컨 대통령을 존경하는 어떤 아버지가 있었는데, 그 분에게 아들이 3명이 있었대요. 그런데 그 아들들이 아버지 마음에 안 들었나 봅니다. 하루는 이 아들 셋을 불러놓고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첫째야, 링컨 대통령이 네 나이 때는 이러이러 했었어. 둘째야, 링컨 대통령이 네 나이 때에는 이러이러 했었어. 셋째야, 링컨 대통령이 네 나이 때는 이러이러 했었다구.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있던 첫째가 뭐라고 했다고요? 아버지, 링컨 대통령이 아버지 나이 때에는 대통령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만하지요. 링컨 대통령은 51세 때 대통령이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학생에게 너의 꿈이 뭐냐고 물었대요. 그러니까 이 학생이 하는 말이, 제 꿈은 재벌2세입니다. 이 말을 듣고, 음, 그렇구나……했는데, 이 학생이 하는 말이, 그런데 좀 문제가 있대요. 그래서 뭐가 문제냐고 하니까, 자기가 재벌 2세가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재벌 1세가 되어야 하는데, 아버지가 노력을 잘 안 한대요.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을 하면 길이 열린다? 이 말은 희망을 심어주는 말이 아니라 대다수에게 절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는, 대단히 위험한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떨까요. 역시 성경에도 열심히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 길이 안 열리는 건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이렇게 적혀 있을까요?

우선 성경에서 시편과 예레미야와 이사야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편 139편 13절입니다.

시편 139편 13절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あなたこそ 私の内臓を造り 母の胎の内で私を組み立てられた方です。

다음은 예레미야 18장 4절~6절입니다.
예레미야 18장 4절~6절
“4.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エレミヤ書 18章 4節~6節
陶器師が粘土で制作中の器は、彼の手で壊されたが、それは再び、陶器師自身の気に入るほかの器に作り替えられた。
それから、私に次のような主のことばがあった。
「イスラエルの家よ、わたしがこの陶器師のように、あなたがたにする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か──主のことば──。見よ。粘土が陶器師 の手の中にあるように、イスラエルの家よ、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手の中にある。

마지막으로 이사야 29장입니다.

이사야 29장 16절
“16.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ああ、あなたがたは物を逆さに考えている。陶器師を粘土と同じに見なしてよいだろうか。造られた者がそれを造った者に「彼は私を造らなかった」と言い、陶器が 陶器師に「彼にはわきまえがない」と言えるだろうか。

이 세 말씀은 무엇입니까. 우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직접 지으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으셨냐 하면, 토기장이가 자기 마음대로 진흙을 주물러서 그릇을 만들듯이 내가 너희를 하나님 마음대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면 어떻습니까. 아니, 좀 정성을 들여서 만드시든지 하시지, 내가 내 마음대로 만들었으니까 너는 그냥 순종해…….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나도 좀 다른 사람들처럼 멋있게 잘 살고 싶은데, 정말 누구처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게 해주셨다면 참 좋을 텐데, 왜 나를 이렇게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 태어나게 하셨을까. 외모도 보면 좀 예쁘고 잘생기게 만들어주시지 왜 이렇게 못 마땅하게 만들어주셨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의 등장인물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누구부터 해볼까요.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이요? 신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허허벌판 광야로 불러내어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가십니다. 그는 거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나 그의 부모가 그에게 해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지요.

다윗은 어땠습니까.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그는 양을 치는 이새의 여덟 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제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 이새를 찾아갔을 때, 사무엘이 이새에게 그의 아들들을 부르라고 하지요. 그래서 이새가 그의 일곱 아들을 불렀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여기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여기 있는 아들들이 전부냐고 물었더니, 막내 아들이 하나 남긴 했는데, 그는 지금 형들을 대신해서 양을 지킨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그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시켰더니, 그 막내 아들이 바로 다윗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막내라고 해서 형제들에게 무시를 당했습니다. 아니, 형제만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한테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의 서른 살에 왕이 되어 40년간을 다스리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신약에 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무슨 금수저가 있었나요. 베드로나 요한이나 야고보 같은 사람들을 보면 다들 고기잡이 어부가 아니면, 세리라고 하여 동족한테까지 손가락질을 받는 일을 하는 마태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흙수저 중의 흙수저라고 할 수 있지요. 당시 사회적으로 보면 그들이 인생에 있어서 놀라운 반전이 있으리라고 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름도 없이 왔다가 이름도 없이 사라질 뿐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인생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한낱 고기잡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으로서 거듭나고 하나님의 귀한 일을 감당하는 위대한 인물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1절~25절
21.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目が手に向かって「あなたはいらない」と言うことはできないし、頭が足に向かって「あなたがたはいらない」と言うこともできません。
それどころか、からだの中でほかより弱く見える部分が、かえってなくてはならないのです。
また私たちは、からだの中で見栄えがほかより劣っていると思う部分を、見栄えをよくするものでおおいます。こうして、見苦しい部分はもっと良い格好 になりますが、
格好の良い部分はその必要がありません。神は、劣ったところには、見栄えをよくするものを与えて、からだを組み合わせられました。
それは、からだの中に分裂がなく、各部分が互いのために、同じように配慮し合うためです。

제가 학교 다닐 때 제 대학 동기한테서 들었던 이야기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그는 저와 같이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 친구는 의대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자기가 해부실습을 했다는 거예요. 뭐 의대니까 그런 과정이 있겠지요. 그런데 해부를 하고 인체를 보니까 인체 구조가 너무나도 정교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친구가 당시 믿음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냥 대충대충 만들어진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에요.

참 그 친구의 이 말은 오랫동안 제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나쁜 사람, 정말 별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 받아 마땅한 사람, 미움 받아 마땅한 사람, 값진 인생을 살다 갈 사람, 값없는 인생을 살다 갈 사람……이런 식으로 구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태에서부터 정성 들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몸에서 각 지체마다 역할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모두가 변호사가 되거나 의사가 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 49장 15절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女が自分の乳飲み子を忘れるだろうか。自分の胎の子をあわれまないだろうか。たとえ女たちが忘れても、このわたしは、あなたを忘れない。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흙수저처럼 보이고 귀하지 않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 누구도 대충대충 만들어진 사람, 있으나마나 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 모두가, 그리고 우리 이웃 모두가 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력은 그럼 이제 안 해도 되는 건가요? 아니요. 노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노력은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노력이 되어야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神が上に召してくださるという、その賞をいただくために、目標を目指して走っているのです。

욥기 23장 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しかし神は、私の行く道を知っておられる。私は試されると、金のようになって出て来る。

우리가 이웃만 부러워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힘을 다해 노력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노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21절
20.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第二テモテへの手紙 2장 20절~21절
大きな家には、金や銀の器だけでなく、木や土の器もあります。ある物は尊いことに、ある物は卑しいことに用いられます。
ですから、だれでもこれらのことから離れて自分自身 をきよめるなら、その人は尊いことに用いられる器となります。すなわち、聖なるものとされ、主人にとって役に立 つもの、あらゆる良い働きに備えられたものとなるのです。

이 말씀을 참 은혜가 많이 됩니다. 금 그릇도 있고 은 그릇도 있고 나무 그릇이나 질 그릇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구분 방법은 그게 아니라 귀하게 쓰는 그릇이냐, 아니면 천하게 쓰는 그릇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친히 창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 안에서 맡은 역할이 있습니다. 그 역할을 바꾸어달라고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금 그릇이나 은 그릇, 금 수저나 은 수저가 되게 해 달라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믿음 안에서 깨끗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여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ですから、だれでもキリストのうちにあるなら、その人は新しく造られた者です。古いものは過ぎ去って、見よ、すべてが新しくなりました。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 주님으로부터 귀하게 쓰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ガラテヤ人への手紙 6장 9절
失望せずに善を行いましょう。あきらめずに続ければ、時が来て刈り取ることになります。

우리가 아무리 힘들 때라도, 주님 안에 있으면 영원한 낙심도 없고 영원한 절망도 없습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주님께서는 때가 이르면 반드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거두게 해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주님 안에 머물므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되어서,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푯대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서 마침내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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